본문 바로가기
역사

사피엔스

by Diligejy 2018. 9. 6.

p.25~26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이들 종을 단일 계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에르가스터가 에렉투스를 낳고 에렉투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낳고 네안데르탈인이 진화해 우리 종이 되었다는 식이다. 이런 직선 모델은 오해를 일으킨다. 어느 시기를 보든 당시 지구에 살고 있던 인류는 한 종밖에 없었으며, 모든 오래된 종들은 우리의 오래된 선조들이라는 오해 말이다.

 

사실은 이렇다. 2백만 년 전부터 약 1만 년 전까지 지구에는 다양한 인간 종이 동시에 살았다. 왜 안 그랬겠는가? 오늘날에도 여우, 곰, 돼지 등 수많은 종이 동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몇만 년 전의 지구에는 적어도 여섯 종의 인간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상한 점은 옛날에 여러 종이 살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딱 한 종만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더구나 우리 종의 범죄를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곧 살펴보겠지만, 우리 사피엔스 종에게는 사촌들에 관한 기억을 억압할 이유가 있다.

 

p.26~27

커다란 뇌는 자원을 고갈시키는 밑 빠진 독이다. 무엇보다 갖고 다니기 어렵다. 커다란 두개골 안에 들어 있으면 더 그렇다. 심지어 연료도 많이 소모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몸무게의 2~3퍼센트를 차지할 뿐이지만, 뇌가 소모하는 에너지는 신체가 휴식 상태일 때 전체의 25퍼센트나 된다. 반면에 다른 유인원의 뇌가 소모하는 에너지는 신체가 휴식 상태일 때 전체의 8퍼센트에 불과하다.

 

고인류는 뇌가 커지면서 두 가지 대가를 지불했다. 첫째, 식량을 찾아다니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둘째, 근육이 퇴화했다. 국방예산을 교육 부문으로 전용하는 정부처럼 인류는 근육에 쓸 에너지를 뉴런에 투입했다. 이것이 아프리카의 대초원에서 살아남기 좋은 전략이었다는 결론을 성급히 내려버릴 수는 없다. 침팬지는 호모 사피엔스와 논쟁을 벌여 이길 수는 없지만 인간을 헝겊 인형처럼 찢어버릴 완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p.28~29

여성은 더 큰 비용을 치렀다. 똑바로 서서 걸으려면 엉덩이가 좁아야 하므로 아기가 나오는 산도(질)도 좁아지는데, 하필이면 아기의 머리가 점점 커져가는 기간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분만 중 사망은 인간 여성에게 주요한 위험이 되었다. 아기의 뇌와 머리가 상대적으로 작고 유연할 때 일찍 출산하는 여성이 더 살아남기 쉬웠고, 더 많은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자연선택은 이른 출산을 선호했다. 사실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인간은 생명유지에 필요한 많은 시스템이 덜 발달된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갓 태어난 망아지는 곧 걸을 줄 알고, 고양이는 생후 몇 주만 지나면 어미 품을 떠나 혼자 힘으로 사냥에 나선다. 그에 비해 인간의 아기는 무력하여, 여러 해동안 어른들이 부양하고 지키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인간의 사회적 능력이 뛰어난 것도 이 덕이요. 특유의 사회적 문제를 안게 된 것도 이 탓이다. 혼자 사는 엄마는 줄줄이 딸린 자녀와 자신을 위한 식량을 충분히 조달하기가 어렵다. 애를 키우려면 가족의 다른 구성원 및 이웃의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인간을 키우려면 부족이 필요했고 따라서 진화에서 선호된 것은 강한 사회적 결속을 이룰 능력이 있는 존재였다. 게다가 인간은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교육을 받고 사회화할 수 있는 기간이 다른 어떤 동물보다 길다.

 

p.30~31

이것은 우리의 역사와 심리를 이해하는 열쇠다. 먹이사슬에서 호모 속이 차지하는 위치는 극히 최근까지도 확고하게 중간이었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은 자기보다 작은 동물을 사냥하고 식물을 채취해왔으며 지속적으로 대형 포식자에게 사냥을 당해왔다. 인간의 몇몇 종들이 대형 사냥감을 정기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40만 년 전부터였고, 인간이 먹이사슬의 정점으로 뛰어오른 것은 불과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면서부터였다.

 

중간에서 꼭대기로 단숨에 도약한 것은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던 다른 동물, 예컨대 사자나 상어는 수백만 년에 걸쳐 서서히 그 지위에 올랐다. 그래서 생태계는 사자나 상어가 지나친 파괴를 일으키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사자의 포식 능력이 커지자 가젤은 더 빨리 달리는 쪽으로 진화했고, 하이에나는 협동을 더 잘하도록 진화했으며, 코뿔소는 더욱 사나워지도록 진화했다.

 

이에 비해 인간은 너무나 빨리 정점에 올랐기 떄문에, 생태계가 그에 맞춰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인간 자신도 적응에 실패했다.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는 대부분 당당한 존재들이다. 수백만년간 지배해온 결과 자신감으로 가득해진 것이다. 반면에 사피엔스는 중남미 후진국의 독재자에 가깝다. 인간은 최근까지도 사바나의 패배자로 지냈기 때문에,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공포와 걱정으로 가득 차 있고 그 때문에 잔인하고 위험해졌다. 치명적인 전쟁에서 생태계 파괴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참사 중 많은 수가 이처럼 너무 빠른 도약에서 유래했다.

 

p.33

인간은 불을 길들임으로써 무한한 잠재력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독수리와 달리 인간은 불을 일으키는 장소와 시기를 선택할 수 있었으며, 수많은 용도로 불을 이용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불의 힘이 신체의 형태나 구조, 힘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이었다. 부싯돌이나 불붙은 막대기를 가진 여자 한 명이 몇 시간 만에 숲 전체를 태울 수도 있었다. 불을 길들이는 것은 앞으로 올 일에 대한 신호였다.


p.46

사피엔스는 녹색원숭이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서로 구별되는 소리를 낼 수 있지만, 그 점에서는 고래와 코끼리도 우리 못지않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앵무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하는 모든 말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벨소리, 문이 쾅 닫히는 소리, 사이렌 울리는 소리도 흉내 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앵무새보다 나은 점이 있더라도 그것은 목소리와는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의 언어는 무엇이 특별할까?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우리의 언어가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제한된 개수의 소리와 기호를 연결해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무한한 개수의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주위 세계에 대한 막대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며 소통할 수 있다.


p.48

우리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사람이나 사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 직접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는 사피엔스뿐이다.


p.49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성경의 창세기, 호주 원주민의 드림타임 신화, 현대 국가의 민족주의 신화와 같은 공통의 신화들을 짜낼 수 있다. 그런 신화들 덕분에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개미나 벌도 많은 숫자가 모여 함께 일하는 능력이 있지만, 이들의 일하는 방식은 경직되어 있으며 그것도 가까운 친척들하고만 함께한다. 늑대와 침팬지의 협력은 개미보다는 훨씬 더 유연하지만, 협동 상대는 친밀하게 지내는 소수의 개체들뿐이다. 사피엔스는 수없이 많은 이방인들과 매우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다. 개미는 우리가 남긴 것이나 먹고 침팬지는 동물원이나 실험실에 갇혀 있는 데 비해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p.54

우리는 '원시인''들이 유령과 정령을 믿음으로써, 그리고 보름달이 뜰 때마다 불 주위에 모여 함께 춤을 춤으로써 사회적 질서를 강화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한다. 우리가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은 현대의 사회제도들이 정확히 그런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기업들의 세계를 예로 들어보자. 현대의 사업가와 법률가들은 사실상 강력한 마법사들이다. 이들과 원시 샤먼 간에 주된 차이는 현대 법률가들이 하는 이야기가 훨씬 더 이상하다는 점뿐이다. 푸조의 신화가 좋은 사례다.


p.57

인간 아르망 푸조는 정확히 어떻게 회사 푸조를 창조했을까?


그 방식은 역사를 통틀어 사제와 마술사가 신과 악마를 창조해낸 방식과 매우 비슷했다. 오늘날 수천 명의 프랑스 신부들이 일요일마다 교구 성당에서 여전히 성체를 창조해내는 것과도 대단히 유사하다.


p.58~59

효과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남들이 그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 게 어렵다. 역사의 많은 부분은 이 질문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어떻게 한 사람이 수백만 명에게 신이나 국가에 대한 특정한 이야기, 혹은 유한회사를 믿게 만드는가? 그러나 일단 성공하면, 사피엔스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서로 모르는 사람 수백 명이 힘을 모아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강이나 나무, 사자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고 치자. 그랬다면 국가나 교회, 법체계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p.147

우리가 밀이나 옥수수 같은 식물의 이야기를 조사할 때는 순수한 진화적 관점이 타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소나 양, 사피엔스처럼 각자 복잡한 기분과 감정을 지닌 동물의 경우, 진화적 성공이란 것이 개체의 경험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 종이 집단적으로 힘을 키우고 외견상 성공을 구가한 것이 개개인의 큰 고통과 나란히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


p.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끼리아저씨의 코는 누구에게? - 초협력사회]  (0) 2018.11.13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0) 2018.09.07
한국 근대사 산책 1권  (0) 2018.04.23
처칠을 읽는 40가지 방법  (0) 2018.04.10
모든 지식의 시작 1  (0) 2018.03.2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