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투자

돈을 배우다

by Diligejy 2017. 3. 31.

표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최대한의 돈이 아니라 최소한의 철학이다"


p.19

쉽게 말해 신분제는 정치적 권력을 세습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리고 정치적 권력이 세습되는 곳에서 돈은 그렇게 중요한 대상이 못 되었다. 목숨이나 지위 같은 것을 자의적으로 뺴앗을 수 있는 환경하에서 돈은 단지 수탈의 결과물일 뿐이었다.


p.21

돈이 신분제를 타파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돈 자체는 신분을 차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내 한 표가 조선 왕조 후예의 한 표와 같은 것처럼, 평민의 1실링은 귀족의 1실링과 전적으로 동일한 1실링이었다. 누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느냐는 누가 더 능력이 뛰어나냐를 판단하기 위한, 완벽하지는 않지만 세습 신분에 의존하던 예전보다는 훨씬 개선된 지표였다. 한마디로 돈은 객관적이면서 동시에 평등한 매체였다.


p.29

돈의 세 가지 기능에는 공통적인 단어 하나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물건'의 교환을 쉽게 하고, '물건'의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이며, '물건'의 가치를 측정하는 단위, 즉 '물건'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돈은 다른 물건들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하는 종속물이라는 뜻이다. 다른 물건들이 없다면 돈은 눈에는 보일지언정 손에는 잡히는 게 없는 신기루 같은 것이 되고 만다. 돈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 돈으로 교환할 수 있는 가치 있는 다른 물건이 있어야만 한다. 한마디로 돈은 일종의 파생상품이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돈은 결국 그 사람의 재산 중에 다른 물건과 교환할 수 있는 것들의 합이라고 볼 수 있다. 현금이 돈의 일부인 것은 당연한 일이고, 집이나 자동차같이 어렵지 않게 팔아서 다시 다른 물건을 확보할 수 있는 것도 돈으로 보자는 것이다. 즉 돈은 한 사람의 총체적인 구매력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비싼 가격을 치르고 샀지만 막상 처분할 길이 막막한 물건들은 재산이긴 하지만 돈은 아니다.


p.31~32

이자율과 수익률은 2차적 변수다. 무슨 말인고 하니, 수량과 시점이 모두 기술된 두 개 이상의 돈이 주어지면 이자율 혹은 수익률이라는 변수를 계산할 수 있다. 돈이 먼저 정의되고 나면 부차적으로 계산 가능한 대상이 수익률이라는 것이다.


p.33

온통 수익률 얘기뿐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자본의 관점이 온 세상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무한히 증식하기를 원하며, 수익률은 바로 무한증식의 시금석이다. 다시말해 수익률을 논하는 것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돈을 갖고 있음을 전제한다. 그렇지 못한 보통의 개인에게 수익률은 패션쇼에나 등장할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오트 쿠튀르를 입는 것과 같다. 개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수익률이 아니라 돈 그 자체다.


p.34

수익률은 이자율보다 좀 더 일반적인 돈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 변수다. 수익률과 이자율의 관계를 정리하자면 이자율은 수익률의 부분집합이다. 이자율은 이미 확정된 수입을 나타내는 것인 반면 수익률은 확정되어 있지 않은 일반적인 상황까지 아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자율로 표현되어 있는 돈을 수익률이라는 안경으로 바라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p.35~36

중요한 것은 수익률이라고 해서 다 같은 수익률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계산한 수익률 숫자를 놓고 이게 높네 저게 높네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한마디로 기가 막힐 정도다. 이에 당하지 않으려면 질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수익률이 얼마입니다"하고 얘기하는 금융회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어떤 수익률을 계산한 것인지, 그 계산식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어떤 돈의 흐름이 그 계산에 사용된 것인지를 캐물어야 한다.


그들의 대표적인 수법 몇 가지만 얘기하도록 하자. 모든 수익률 중에 왜곡이 가장 적은 수익률은 절대수익률과 다기간 누적수익률이다. 두 개의 돈만 있으면 절대수익률을 쓰고 들락날락하는 세 개 이상의 돈이라면 다기간 누적수익률을 쓰면 된다. 그런데 절대수익률로 표기하면 될 것을 굳이 연 환산수익률로 제시한다.


가령 연 5퍼센트의 수익률이 났다고 하면 100의 원금에 대해 5의 수익이 발생한 것처럼 느껴지기 쉽다. 하지만 그 수익률이 발생한 기간이 3개월에 불과하다면 실제로 얻은 수익은 1.25로 절대수익률로는 1.25퍼센트다. 9개월이라는 추가 기간 동안 매 3개월마다 1.25의 수익을 계속 얻어야만 1년에 5라는 수익이 확정된다. 확실하지 않은 커다란 '만약 ~하다면'이라는 조건들이 붙어 있는 것이다.


연 환산수익률로 나타내는 수법은 손실이 났을 때도 요긴하다. 예를 들어 3년간 묶인 돈이 결국 반 토막이 났다고 해보자.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100, 3년 전'과 '50, 지금'인 상황이다. 이에 대한 절대 수익률을 구하면 -50퍼센트다. 하지만 이를 연 환산수익률로 바꾸면 -16.7퍼센트가 된다. 느낌이 확 다르다. 그렇게 심하지 않은 손실인 듯 느껴지는 것이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가면 앞의 3개월짜리 수익과 뒤의 3년짜리 손실을 각각 연 수익률로 바꿔 산술평균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수익률은 있으나 마나 한 결과다.


p.42

돈 공부는 세 가지 측면에서 행해져야 한다. 벌고, 불리고, 쓰는 것을 동시에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다. 여러 종교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3이라는 숫자가 돈에도 적용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p.58

돈은 수량, 시간, 불확실성, 마찰이라는 네 개의 좌표로 표현되는 4차원 벡터공간 상에 존재한다.


p.63~64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쓸모 있는 물건과 무관한 돈은 그게 얼마든 있으나 마나 한 존재라는 것이다. 돈의 총량이 늘어난 결과로 물건의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물건을 갖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더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은행들은 신용을 통해 돈의 총량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특정 산업이나 계급에게 선택적으로 돈을 공급한다. 그렇게 허공에서 생긴 돈은 물건들의 가격을 왜곡시키고 심하면 버블까지 만들어낸다.


p.106

평균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다음의 두 가지를 반드시 명심하면 좋겠다. 하나는 평균이 아닌 중간값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범위, 즉 최대값과 최소값을 확인해보는 것이다.


p.115

평균적으로 볼 때 누가 더 높고 누가 더 낮으냐를 따질 필요는 없다. 평균보다는 개별적인 내가 결국 얼마를 벌 수 있느냐가 문제다. 생각보다 무슨 직종이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내가 그 안에서 얼마나 잘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 보인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벌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가다.


p.129~130

불확실성과 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앞에서 운은 내가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에 반해 불확실성은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하고 결정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해볼 여지가 있는 것을 말한다. 남들 누구나 만드는 제품을 적당히 만들어놓고 대박이 나길 기다리는 것은 운에 기대는 것이다. 반면 뭔가 남다른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고생하고 노력하면 그땐 불확실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확실성의 핵심적 의미는 다음의 두 가지다. 첫째, 내가 혹은 보통 사람들이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 아무 때나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측 불가능성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둘째, 그렇지만 우리의 모든 수고가 결코 헛되지는 않다는 점이다. 결과를 결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애쓴 사람과 애쓰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있다. 


'경제 > 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법의 돈 굴리기  (0) 2017.05.24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0) 2017.05.17
인구와 투자의 미래  (0) 2017.04.21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  (0) 2017.03.20
돈 버는 선택 돈 버리는 선택  (0) 2017.03.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