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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투자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by Diligejy 2017. 5. 17.

p.6~8

대한민국 부동산은 이제 저성장체제로 접어들었다. 저성장체제라는 것은 장기적으로 실질 가격(명목 가격에서 물가 상승분을 뺀 가격) 기준으로 부동산 값이 오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추월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 경제의 잠재 성장률 하락, 주택 보급률 확대, 주력 부동산 소비층인 베이비부머의 은퇴, 3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층의 구매력 약화 등의 요인들이 겹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부동산이 일본식 버블 붕괴와 같은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 저성장체제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 한 명목 가격을 기준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시장은 보수적으로 접근할 때 마음이 편안한 법이다. 부동산 시장의 체질이 달라지는 만큼 시장 참여자들의 태도도 확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내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크게 4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가격보다 가치를 지향하는 삶이 더 소중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대세 상승기에나 통했던 가격 상승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다. 가격을 종교처럼 숭배하고 가격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가격에 올인하는 삶은 행복할 수 없다. 가치보다 가격을 중시하는 환경에서는 하우스 푸어의 불행이 언제든지 다시 찾아온다. 가격을 멀리하자. 집은 투자재인 '하우스'에서 삶의 가치와 행복을 늘리는 '스위트 홈'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둘째, 심리적 편향에서 벗어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동산 시장은 각종 오해와 편견, 욕망, 광기, 공포가 지배하는 심리 전쟁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동산에 대해서 유독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을 드러낸다.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지 않고 보고 싶은 대로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도 자신이 만들어놓은 사고의 틀로 세상을 자기 식대로 해석하기 일쑤다. 그 누구도 편향의 굴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 굴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는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 사고, 일방적인 주장에 빠지지 않는 균형적 사고, 가끔은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거리 두기' 자세가 필요하다.


셋째, 수익은 공짜가 아니라 '고통의 위자료'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마음 고통을 겪으며 밤잠을 설쳐야 함을 뜻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안정성과 고수익을 겸비한 이율배반적인 상품을 원한다. 부동산 시장에 마법의 상품은 없다. 장기적으로 부동산, 주식, 채권 등의 수익률은 정기예금이나 물가에 수렴한다. 대박보다는 쪽박을 차지 않는 법을 배우는 슬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부동산 세계에만 갇혀 있지 말고 자산 시장이라는 큰 틀에서 폭넓게 바라보는 열린 시각도 절실해진다.


넷째, 다가오는 부동산 미래에 대해서는 좀 더 유연하고 통계적인 사고를 했으면 한다. 한쪽에서 세상이 끝장이라도 날 것 같은 극단적 비관론이 득세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근거 없는 장밋빛 낙관론이 고개를 든다. 판단은 자신의 몫이다. 다만 그런 전망들이 확률적으로나 통계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감안해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p.23

아파트 계급의 몰락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계층이 50~60대다. 50~60대는 아파트를 통해 부를 키웠지만, 아파트 때문에 쌓아올린 부를 상당 부분 잃어버린 아이러니컬한 세대다. 이들이 아파트로 준비해온 노후 준비 자산은 많이 사라지고 완전히 복구되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 중대형 아파트는 단기간 급락 탓에 약간의 회복 조짐은 엿보인다. 하지만 가구원 수가 줄고 실속을 찾는 소비 현상이 여전해서 중대형이 과거의 영광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p.93~94

월세 전환율이 떨어지면 세입자들의 집세 부담이 낮아질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우리나라 주택 임대차 구조를 보자.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점유 형태별 분포는 자가(54.2%), 전세(21.7%), 보증부 월세(18.2%), 보증금 없는 월세나 사글세(3.3%), 무상(2.7%) 등의 순이다. 우리나라 주택 임대 시장은 전체 임대료에서 차지하는 보증금의 비율에 따라 임대 형식이 달라진다. 예컨대 보증금 100%를 임대료로 지불하는 게 전세, 부분적으로 보증금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월세로 내는 게 보증부 월세다.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같은 월세라도 보증금이 전혀 없는 순수 월세는 미미하고 대부분이 보증금이 있는 보증부 월세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반전세도 보증부 월세의 범주에 들어간다.


주택 임대료를 계산할 때 전세와 월세는 완전히 동떨어질 수 없다. 월세를 낼 때 임대료의 산정 기준이 바로 전세이기 때문이다. 월세 방에 들어가더라도 전세로 임대료 총액을 정한 뒤 이를 월세로 환산한다. 우리나라에만 월세 전환율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증금 2억 원에 월 50만 원짜리 서울 지역 60m2(18평형) 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형욱(가명, 40세) 씨, 김 씨의 보증부 월세를 전세로 환산하면 3억 원 수준(월세 전환율 연 6% 기준)이다.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같은 단지 아파트 전세 보증금도 4억 원으로 올랐다고 하자. 만약 월세전환율이 약간 낮아진다(가령, 6%->5.8%)고 하더라도 보증금이 1억원 오른 상황이어서 김 씨의 집세 부담금은 낮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오른다. 그래서 순수 월세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전세 가격이 오르면 곧바로 보증부 월세 세입자에게 부담이 가중되는 구조다. 말하자면 전세 시장의 불안에 월세 세입자도 유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나라 주택 시장은 집주인과 세입자뿐만 아니라 임대 시장도 서로 이리저리 얽혀 있다. 자가-월세라는 간단한 구조를 갖춘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자가-전세-월세로 복잡하다보니 정책을 펴기도 그만큼 어렵다.


p.97~98

전세는 임대 수익 개념보다는 금융, 특히 사금융에 더 가깝다. 말하자면 전세의 불안정성이 큰 것은 그 자체가 금융 성격이 강하기 떄문이다. 전세 제도가 확산된 배경에는 지난 197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생겨난 금융 시장의 왜곡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수출 기업에 자금을 배정하기 위해 소비자 금융을 통제하면서 개인은 돈을 빌릴 방법이 없었다. 이러다보니 집주인은 세입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었고,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보증금은 곧 은행의 대출 역할을 했다.


이처럼 전세는 주거 공간을 매개로 개인끼리 돈(보증금)을 주고받는 사금융이나 대출의 개념이 강하다. 미국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는 금융의 가장 큰 특성으로 불안정성을 꼽는다. 그에 따르면 금융 시스템은 안정된 균형점이 없으며 습관처럼 불안한 주기를 형성하기 일쑤다. 사실 금융은 '자금 융통'의 약자다. 즉, 신용(빚) 창출 과정이다. 금융은 허공에서 신용을 창출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금융시장은 실물경제와 달리 뚜렷한 실체가 없어 작은 변화에도 수시로 출렁인다. 어떻게 보면 전세 시장은 금융(채권)을 닮아 불안정성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전세는 태생적으로 불안정성을 안고 있으므로 지속적인 안정도 쉽지 않는 구조다. 더욱이 김치나 라면, 쌀처럼 생필품과 같아 단기적인 수요 조절도 어렵다. 매매 시장에서는 수요자들이 미래에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매입 시기를 미룬다. 하지만 전세 거주자들은 전세 가격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길바닥에 텐트를 치고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정부가 전세 시장 안정 대책을 내놓아도 단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전세 시장을 안정시키려면 적어도 2~3년을 내다보고 선제적인 대처를 해야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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