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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프랑스소설

페스트

by Diligejy 2017. 5. 22.

어떤 형태의 감금 상태를 다른 형태로 표현해보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해보는 것만큼이나 합리적이다.


대니얼 디포


p.12

한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p.50~51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오래 안 갈 거야. 너무 어리석은 짓이야"라고 말한다. 전쟁이 어리석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금방 끝나는 것은 아니다. 어리석음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만약 사람들이 항상 자기만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민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여서 자신들만 생각했다. 다시 말해, 재앙을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인본주의자들이었다. 재앙은 인간의 척도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들은 재앙을 비현실적이고 곧 지나가 버릴 악몽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 재앙이 지나가버릴 때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사라지는 쪽은 사람들, 누구보다도 인본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리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자기들에게는 여전히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p.88

병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 고문하는 듯한 죽음의 공포보다 인간적인 감정이 더 강했던 예는 단 한 건밖에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기대하듯 고통을 초월해 서로에게 사랑을 쏟아붓던 연인들의 경우가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해온 늙은 의사 카스텔과 그의 아내의 경우였다. 전염병이 시작되기 며칠 전에 카스텔 부인이 이웃 도시에 간 것이다. 그 가정은 남들에게 본보기가 될 정도로 행복한 가정도 아니었다. 서술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 부부는 십중팔구 지금까지의 결혼생활이 만족스러웠는지도 확실히 알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느닷없이 시작된 별거 생활이 길어지면서 그들은 서로 헤어져서 살 수 없음을, 그리고 갑자기 드러난 그 진실에 비하면 페스트는 하찮은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p.94~95

극도의 고독 속에서 이웃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아무도 없었고 저마다 홀로 자신의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쩌다 속내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자기 감정과 관련된 어떤 사실을 말한 뒤 대답을 듣게 되면, 그 대답이 어떤 것이든 대부분의 경우 그것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상대방과 자신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는 오랜 시간을 두고 마음속으로 곱씹으며 괴로워하던 끝에 심정을 표현했고, 그가 전달하고자 한 이미지는 기대와 열정의 불 속에서 오랫동안 익혀온 것인데, 상대방은 그것을 시장에 가면 살 수 있는 싸구려 괴로움이나 연속극에서 볼 수 있는 우울증 같은 상투적인 감정일 거라고 상상했다. 호의적이든 적대적이든 그 대답은 빗나가기 마련이어서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이상 침묵을 견딜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남들이 진심이 담긴 진정한 말을 할 줄 모르게 된 이상 자기도 체념하고 시장에서 쓰는 말투를 받아들이게 되고, 그들 자신도 단순히 보고하거나 지엽적인 일화를 전하는 상투적인 방식, 말하자면 일간지의 기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가장 절실한 고통이 흔히 일상 대화에서 쓰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드러나는 게 보통이었다. 페스트의 포로가 된 사람들은 이런 대가를 치르고서야 비로소 수위의 동정을 얻고 옆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p.101

일하는 남자, 가난, 서서히 막혀가는 미래, 저녁 식탁을 둘러싼 침묵, 그런 세계에 열정을 위한 여지란 없기 마련이다.


p.131

더 주목할 만한 사실 그리고 랑베르도 결과적으로 주목하게 된 사실은, 재난이 절정일 때에도 한 기관이 여전히 일을 하고 있으며, 그 목적으로 설치된 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종종 최고 행정기관도 모르게 후일을 위한 조치를 주도적으로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p.133

보통 새벽 네시면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비록 배반의 밤이라 하더라도 모두 잠을 잔다. 그렇다, 그 시간에는 모두 잠을 잔다. 그리고 잠을 자면 안심이 된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끝없이 소유하는 것, 또는 한동안 헤어지게 되었을 경우 다시 만나는 날까지 그 꿈도 없는 잠 속에 사랑하는 사람을 빠뜨려놓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불안한 사람이 마음에 품는 거대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p.153

세계의 질서가 죽음에 의해 규정되는 이상, 신이 침묵하고 있는 하늘을 바라볼 일이 아니라, 신을 믿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죽음과 싸우는 것이 어쩌면 신에게도 더 좋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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