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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만한글

생각은 죽는다, ‘논어’도 죽었을까

by Diligejy 2017. 9. 18.
반성하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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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는 그것을 만병통치약으로 포장해서 독자들에게 팔 때 시작된다. 그러한 부류의 고전 해석은 해당 고전보다는 그 판매자에 대해서 보다 많은 것을 알려준다. 누군가 덤프트럭에서 정서적 위안을 얻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덤프트럭에 대해서보다는 덤프트럭에서조차 위안을 찾아야 하는 그 사람의 상태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는 것처럼. 만병통치약을 표방하는 고전 해석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동양 고전에 대한 상대적으로 정확한 지식이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전시하는 지적 권위에 대한 화급한 욕망, 사회인들의 전방위적 멘토가 되어보겠다는 허영, 그리고 무엇보다 지성계에 광범위하게 뿌리 내린 허위의식이다.

2.
근본적이든 아니든 인간에게 문제는 늘 있다. 그것이야말로 근본문제다. 그렇다면 변치 않는 근본문제의 유무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에 대한 답이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지적 네크로필리아들이 전제하는 것은 어떤 특정 고전이 인간이 가진 근본문제에 대해 확고하고도 결정적인 답을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고전이 결정적인 해답을 정말 줄 수 있었다면, 아마도 그 문제는 오래전에 해결되어 더 이상 인간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고전은 변치 않는 근본문제에 대해 결정적인 답을 제공하기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문제에 관련하여 상대적으로 나은 통찰과 자극을 주기에 유의미하다. 그래서 하나의 고전을 성전으로 만드는 대신 지적 네크로필리아들은 과거에 존재했던 다양한 양질의 자극을 찾아서 오늘도 역사의 바다로 뛰어든다.

3.
고전의 지혜가 우리가 현대에 당면한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논어>를 왜 읽는가? 고전을 왜 읽는가? 실로 고전 텍스트를 읽는다고 해서 노화를 막거나, 우울증을 해결하거나, 요로결석을 치유하거나, 서구문명의 병폐를 극복하거나, 21세기 한국 정치의 대답을 찾거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거나, 현대인의 소외를 극복하거나, 자본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길은 없다.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811267.html?_fr=fb#cb#csidx0a539560f496dce88f6e39801ad0ab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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