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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초인수업(2)

by Diligejy 2015. 6. 12.

 


초인수업

저자
박찬국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4-10-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안일함을 탐하는 ‘말세인’으로 살 것인가! 고귀하고 기품 있는 ...
가격비교

p.149~150

보라,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초인은 대지의 뜻이다. 그대들의 의지는 초인은 대지의 뜻이라고 말한다. 나의 형제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 맹세하거니와 이 대지에 서일하고 천상의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자신들이 알든 모르든 독을 섞는 자들이다.

그들은 삶을 경멸하는 자, 죽어가는 자, 독에 중독된 자들이며 이 대지는 그들에게 지쳐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죽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에는 신에 대한 모독이 가장 커다란 모독이었다. 그러나 이제 신은 죽었고 그와 더불어 신의 모독자들도 사라졌다. 이제는 대지에 대한 모독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어디서 인용했는지 모르는부분

 

p.167

정신의 강함, 정신의 힘과 정신의 넘치는 힘으로부터 비롯되는 자유는 회의를 통해서 입증된다.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가치와 무가치와 관련된 근본적인 모든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확신이란 감옥이다. 그것은 멀리도 보지 못하고 자기 아래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가치와 무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격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 아래에 - 그리고 자기 뒤에 - 오백 가지나 되는 확신들을 봐야 한다. (중략) 위대한 일을 하고자 하는 정신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을 바라는 정신은 회의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종류의 확신으로부터의 해방, 자유롭게 볼 수 있는 능력은 강한 힘의 특성이다.

 

어디서 인용했는지 모르는부분

 

p.172

회의가의 존재 근거이자 그의 존재의 힘인 위대한 정열, 곧 회의가 자신보다도 훨씬 더 개명되고 훨씬 더 전제적인 위대한 정열은 회의가의 지성 전체를 수단으로 이용한다. 그것이 회의가를 대담무쌍하게 만든다. 심지어 그것은 신성하지 못한 수단들을 사용할 수 있는 용기까지 부여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것은 확신마저도 허용한다. 수단으로서의 확신! 많은 것이 확신에 의해서만 달성되다. 위대한 정열은 확신을 이용하며 확신을 다 사용해버리고 확신에 굴복하지 않는다. - 그것은 자신을 자신의 주인으로 생각한다.

 

어디서 인용했는지 모르는부분

 

p.174~175

확신에 대한 심리학, '믿음'에 대한 심리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이미 오래 전에 나는 확신이 거짓말보다 훨씬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 아닐까라고 숙고한 적이 있다.

 

확신은 확신에 사로잡힌 인간을 지탱해주는 기둥이다. 여러가지 사물들을 보지 않는다는 것, 어떤 점에서도 공평하지 않다는 것, 철저하게 편파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것, 모든 가치를 하나의 엄격하고 필연적인 관점에서 본다는 것 - 이것만이 확신에 사로잡힌 인간이 존속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러나 그 때문에 그는 진실한 인간과 진리에 반대하고 그것에 적대하는 자가 된다.

 

신앙인에게 '참'과 '거짓'의 문제에 대한 양심을 갖는 것이 자기 뜻에 달린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가 그 문제에 대해서 성실하다 보면 그는 즉각 파멸하게 된다.

 

어디서 인용했는지 모르는부분

 

p.213

어떤 사람에게 연민의 눈길을 보낸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을 불쌍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고, 불쌍한 사람으로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나약하고 무력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연민을 받는 사람이 느끼고 있는 무력감을 강화시킵니다. 그리고 연민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은 당연히 누구나 좌절할 수밖에 없고 그래도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수용하게 됩니다.

또한 연민은 우리가 그 사람과 유사한 처지에 있으면 그 사람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합니다. 이렇게 연민에 빠지면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좌절한 사람과 자신을 동등한 사람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니체는 '인간은 거리의 파토스에 의해서 발전한다'라고 말합니다.

 

박찬국 교수의 말.

 

p.253

아름다움은 우연이 아니다. - 어떤 종족이나 어떤 가족이 갖는 아름다움, 그들의 모든 품행에서의 우아함과 자애로움 역시 습득된 것이다.

천재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은 여러 세대에 거쳐서 축적된 작업의 최종 산물이다.  훌륭한 취미를 위해서 사람들은 큰 희생을 치렀음에 틀림없고, 그것을 위해 많은 것을 행하고 많은 것을 포기했음에 틀림이 없다.

- 17세기의 프랑스는 이 두 가지 점에서 찬탄할 만하다. - 17세기에는

사교, 주거, 의상, 성적인 만족을 위해서 하나의 선택의 원리를 가졌음에

틀림없으며, 이익, 습관, 의견, 나태보다는 아름다움을 택했을 것임에 틀림 없다. 최고의 지침은 혼자 있을 때에도 '자신을 멋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디서 인용했는지 모르는부분

 

p.256~

단순히 감정과 사상을 훈련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

가장 먼저 설득시켜야만 하는 것은 바로 신체다. 중요하고 선택된

품행을 엄격하게 견지하는 것, '자신을 되는대로 방치하지'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의무를 지키는 것, 이것들만으로

중요하고 선택된 인물이 되기에 완전히 충분하다.

 

민족과 인류의 운명과 관련하여 결정적인 것은 도야[Kultur(문화)]를

올바른 장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사제들과 절반쯤 사제인 자들의 숙명적인 미신이 그랬던 것처럼)'영혼'에서 시작해서는 안 된다. 올바른 장소는 신체, 품행, 섭생법, 생리학이며, 나머지는 그것으로부터 저절로 따라 나오는 것이다.

 

어디서 인용했는지 모르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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