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쓰는 글/자기발견

살아요. 그냥. 어떻게든 살아요.

by Diligejy 2020. 3. 7.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 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 싶었다.

김훈 [칼의 노래]

혼자 있으니 우울증이 심해진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우울증 환자다.
'환자'라고 하니까 뭔가 위험한 느낌을 주는데 뭐 사실 그대로니까.

 

우울증 환자는 조심해야 할 게 있는데 크게 생활리듬패턴 깨지는 것, 혼자 있는 것, 운동 안하는 것 3가지다.

 

요새 코로나덕에 3가지가 다 겹쳤다. '원격'근무가 아니라 '재택'근무인만큼 방에 박혀 혼자 VSCode를 켜고 키보드를 치고, 그러고나서 시간 남으면 VSCode로 재미있는 거 따라입력해보거나 강의를 듣는다. 

 

물론 친하게 지내는 분에게 전화해서 괜히 장난치기도 하지만 재택근무의 취지에 맞게 사람을 최대한 만나지 않고 혼자 지내고 있다.

 

상황이 그리 좋은 게 아니지만 함부로 투덜대지 못하는 이유는 생명에 위협을 받으시거나, 생계를 위협받으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이 수두룩한데 이 정도의 고통으로 투덜거리는거 자체가 민망할 것 같았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서점 아저씨, 아주머니와 친하게 지냈다. 서점 아저씨는 조선시대 선비로 태어났으면 딱이다 싶은 분이었다. 그저 책읽고 공부하기를 좋아하셨다. 나 또한 책 읽고 얘기하는 걸 좋아하다보니 아저씨와 친해졌고 시간 날 때마다 서점 운영을 돕다보니 아주머니와도 친해졌다. 학교서점은 매 학기마다 팔면 팔수록 마이너스였다. 인건비조차 건질 수 없었다. 종합대학교도 아닌 조그마한 학교에서 전공서적만 팔 뿐이니 수익이 날리가 없었고 그나마도 책을 별로 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서점 아주머니가 고마워했다.

 

언젠가 수업을 마치고 서점에 와서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았다. 거기 화면에 띄워져 있는 마이너스 통장에 쌓인 대출금 상태가 심각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하루하루 쌓여만갔다. 그럼에도 아저씨는 책을 읽고 수염을 기른채 고전 공부에 전념하셨고 아주머니만 속앓이를 하며 발을 동동구르고 있었다. 설상가상 자제분들의 사업도 실패해서 그 빚까지 늘어났다고 했다. 연말에는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시던 도중 교통사고를 당하시고 입원하시기도 했다. 악재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어찌저찌 버티셨다.

 

시간이 흘러 나는 입대를 했다. 학교에 있을 때야 자주 연락했지만 입대한 후 연락할 이유도, 연락할 일도 별로 없었다. 가끔 휴가나오면 안부전화를 드리는 정도였다. 말년휴가때도 안부전화를 드리고 찾아뵙겠다고 했다. 서점아저씨는 놀러오면 밥을 사주시겠다고 했다.

 

전역을 한 뒤 학교에 찾아갔다. 아저씨를 찾으러 학교 복지관 건물에 갔는데 서점이 있던 장소엔 우체국이 들어섰다. 우체국 직원에게 물으니 서점이 이전했다고 했다. 찾아보니 더 조그마한 장소로 이전했다. 몇 년만에 인사를 드리러 들어간 순간 처음 보는 사람이 있었다. 아드님인가 하고 여쭤봤더니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고 서점을 인수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아저씨는 어딨냐고 여쭤보자 아저씨 내외가 빚에 쫓겨 잠적했다고 말했다. 

 

사람의 부재는 살면서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빚'이라는 명사와 '쫓기다'라는 동사와  '잠적했다'라는 단어가 조합된 문장이 너무 낯설었다. 잠시 멍해졌다. 다시 여쭤봤다. "뭐라구요? 정말이에요?" 60대가 넘은 노인부부가 잠적하고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지 걱정되었다. 다시 물어봤지만 서점 주인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네. 그래서 저도 학교도 난감하고 정신없었어요"라고 말했다.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단순히 슬프다는 감정 그 이상이었다. 내 주변 누군가가 이렇게 떠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상이 무서웠다. 돈이 무서웠다. 돈때문에 나 또는 내 주변 사람들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게 겁이 났다. 

 

코로나로 인해 생계가 위협받는 분들이 많다는 기사를 보며 아저씨를 떠올렸다. 어떤 누군가가 또 아저씨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가 사라지듯 누군가 사라지고 그 주변 다른 누군가는 그 부재를 견디지 못하고 속앓이를 할 게 보였다. 

 

그 장면을 상상할 때마다 우울해졌다.

이 우울이 언제 끝날지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이 핏빗바람도 언젠간 멈출테니 어떻게든 살아주기를, 떠나지 말기를 바라며 기도할 뿐이다.

분명 멈출거니까.

'내가 쓰는 글 > 자기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타트업 함부로 하지마라.  (0) 2020.04.10
코딩능력 太 부족  (0) 2020.03.18
항공모함 앞의 소총수  (0) 2020.03.05
개발 목표  (0) 2020.03.04
목표  (0) 2020.03.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