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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다우트 - 나는 확신한다 고로 존재한다

by Diligejy 2022. 2. 8.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의심의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과 비슷해보이지만 이 영화의 의심은 근거가 없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알로이시스에게는 근거가 없더라도 자신의 가설은 100% 옳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반증 증거를 들이밀어도 받아들일 순 없다.

네이버 영화 평점 중 하나는 이런 평가를 내리는데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로이시스 수녀는 잠자코 있었다.

그녀는 묻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았다. 

 

자신의 가설을 검증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직감을 믿을 뿐이었다. 그 직감은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신부의 행동이 거슬렸던 감정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가설은 직감과 감정에서 도출될 수 있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 

하지만 반증가능한 증거가 나오면 가설을 수정하든 아니면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는 증거를 찾든 어떤 행동을 더 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이 수녀는 했는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연기한 플린 신부에게 떠날 것을 강요하며, 플린 신부가 이전에 근무했던 교구의 수녀에게 전화했다고 했을 때, 플린신부는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말한다.

 

"주임신부님께 전화했어야죠"

"미리 말씀드렸나요?"

 

이건 의심이 아니다. 의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확신이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다시 정리하면 "나는 확신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영화만 보고서, 플린신부가 성추행을 했을지 안했을지 100% 확신할 순 없다.

알로이시스 수녀가 제대로 된 가설검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설검증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확신에 맞춘 증거만 대라는 그녀의 강요는 영화를 보는 내내 얼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리고 계속해서 플린 신부의 억울함에 기울어지도록 만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기도했다.

"알로이시스 수녀같은 사람을 곁에 두지 않도록 해주시옵소서"

어떤 설득으로도 증거로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저런 사람은 곁에 두지 않는게 상책이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영화 마지막에 계속 자신은 의심스럽다면서 울먹인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울음이 가증스러웠다. 

 

밀러부인이 하소연을 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간곡하게 부탁할 때 그녀의 표정은 어땠는가?

그녀의 대답은 어땠는가? 그녀는 그 상황 앞에서도 계속해서 규칙과 규정을 따졌다. 

아이가 아빠에게 맞는다는 얘기를 듣고서도 자신의 확신에 찬 가설을 위해서 밀러부인을 이용하려고 했다. 

그런 그녀가 우는것이 뭐가 대수란 말인가?

 

그녀는 그저 자신의 아픔만 보고, 자신의 규칙만 볼 뿐 다른 사람은 볼 줄 몰랐다.

그랬기 때문에 엄격했고, 변화할 줄 몰랐다. 다른 사람이 화를 내고 눈물을 흘려도 공감할 줄 몰랐다.

모르겠다. 

 

한쪽에 너무 기운 시각이라고 볼지 모르겠다. 

맞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줄 모르는 쪽에 기울기보단 아픔에 공감하고 조금 더 개선하겠다는 쪽에 기울었다.

 

물론, 가설검증을 해서 플린신부가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나왔다면 얘기는 다를것이다.

그건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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