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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한국소설

무슨 말 하는진 알겠는데 - 빛의 과거

by Diligejy 2020. 7. 30.
빛의 과거
국내도서
저자 : 은희경
출판 : 문학과지성사 20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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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젠더문제를 다룬 책이나 글에 대해 무언가를 적는 건 많이 두려운 일이다. 내가 느끼기엔 지금 이 시기는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아직도 젠더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내용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갈등과 타협을 통해 합의를 만들어내는 과도기적 시점이고, 좋게 표현해서 갈등이라고 했지만, 기술의 발달으로 공인이 아닌 개인의 의견 또한 언제든지 조리돌림 당할 수 있는 걸 보면 때론 마녀사냥의 시대같기도 하다. 이런 시대에 젠더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언제든지 조리돌림 당할 각오를 해야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물론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조리돌림당할 수 있다. 하지만 젠더문제에 대해선 더욱 크게 부각되곤 하는 거 같다. 저성장시대다보니 파이를 나눌게 없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그랬는데 저성장시대이다보니 부각되는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책을 보다보면 꼭 저성장시대여서 그런거 같진 않다. 여권이 많이 신장되어서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났고 저성장시대다보니 합의하려면 서로 고통을 감내해야하다보니 그런거 같다. 

책은 70년대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며 '나'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그 속에서 세밀하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강요되는 가치관, 개저씨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성희롱, 그 시대 속에서 사는 여성들의 고민을 보여준다. 특히 '나'와 친구들이 떠났던 해운대 여행을 보다보면 진짜? 라는 물음이 절로 나올정도로 여성의 삶이 위험했구나. 어쩌면 그런 위험한 세상이었기에 조금 더 안전하게 있으라고 강요한건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위험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돌이킬 수 없을만한 피해를 당한 사람에게 충분한 위로와 보상이 주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 사람을 뭐라고 하는 시대였다. 그러다보니 개인이 할 수 있는거라고는 그저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거 뿐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성폭행을 당한 사람이 평소에 짧은 치마를 입었다고 한다면 니가 행실을 그따위로 했으니 성폭행을 당했다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들. 내 자식부터 챙기고 싶은 부모입장에선 이런 피해와 멸시, 조롱을 남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수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같은 상황을 두고 누군가는 이 위험한 상황을 아예 바꾸자고 주장을 했고, 거기에 덧붙여 기술이 발달하며 시대정신이 바뀌어갔다. 이 소설은 그 과정 속 단면을 보여주는 자료집이라고 생각한다.

'자료집'이라고 표현했듯 소설 자체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다. 어떻게 했다는 내용의 나열, 누가 무엇을 했다는 나열. 내겐 그다지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고 읽다가 마지막 부분에선 대충 덮었다.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하지 못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해운대 여행이야기는 실제로 있었을지 의심했을 정도니까. 다만, 소설에서 재미를 찾지는 못했다는 의미다. 

98~99페이지를 보면 '남자들 걔네가 뭘 알어. 립글로스 바른 거랑 군만두 기름 묻은 것도 구별 못 하는데'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그 문장을 보면서 피식하긴 했다. 

 

밑줄

p.28
다름은 개인성의 독립이지만 섞임이 그 종합은 아니기 때문이다.

p.98~99
남자들 걔네가 뭘 알어. 립글로스 바른 거랑 군만두 기름 묻은 것도 구별 못 하는데

p.115
약자는 위로받기보다 차별이 없는 존중을 원한다. 결점이 있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특별한 배려를 받는 게 아니라, 다수와는 다른 조건을 가졌을 뿐 동등한존재로서의 권리를 누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맞은 편 대열에서 응원을 보내기보다는 내 곁으로 와서 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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