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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싱크 어게인

by Diligejy 2022. 4. 30.

p.12

대원들은 도지의 시도가 생존 전략이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의 생존 전략은 자기 앞에 있는 풀을 태워버림으로써 무섭게 올라오는 화마의 먹잇감을 미리 없애버려 불길의 강도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려 안전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도지는 물통의 물로 손수건을 적셔서 입을 막은 다음에 재만 남은 그 공간에 납작 엎드려 15분을 버텼다. 성난 불길이 그를 지나쳐서 산 정사응로 타고 올라갈 때 그는 지면 가까이에 있는 산소에 의지해서 가까스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비극이었다. 대원 열두 명이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한 대원의 유품으로 발견된 회중시계의 두 바늘은 녹아내린 채 멈춰 있었는데, 바늘이 가리킨 시각은 오후 5시 56분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대원 세 사람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우선 강인한 신체를 들 수 있다. 도지 외의 다른 두 대원은 강인한 신체 덕분에 불길의 추격을 가까스로 따돌리고 불길보다 먼저 능선에 다다랐기에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도지는 강인한 정신 덕분에 살아남았다.

 

p.12~13

정신적인 강인함을 갖추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 사람들은 보통 지능을 떠올린다. 똑똑할수록 복잡한 문제를 그만큼 잘 풀 수 있고 같은 문제라도 더 빨리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지능은 생각하고 학습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납게 요동치는 격변의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지능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일련의 기술들이 있다. 다시 생각하기와 자기가 알고 있던 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기술과 관련된 능력이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당신은 지금 막 객관식 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당신이 선택한 답들 가운데 하나가 미심쩍다. 다행히 아직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다. 이 경우에 당신은 최초의 직감을 믿고 답을 그냥 두겠는가, 아니면 답을 바꾸겠는가?

 

약 4분의 3에 해당하는 학생이 답을 고치면 틀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수험생들이 이용하는 교육업체 카플란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한 적이 있다.

 

"일단 답을 선택한 뒤에 그 답을 고치려고 마음먹는다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경험칙으로 보자면 답을 고치는 학생들 가운데 많은 수가 정답을 버리고 오답을 선택한다."

 

나는 경험이 주는 교훈을 존중한다. 그렇지만 증거의 엄정함을 선호한다. 심리학자 세 명이 33개의 관련 논문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는데, 모든 논문에서 답이 바뀐 경우 가운데 다수가 오답에서 정답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했다. 이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최초 직감의 오류(first-instinct fallacy)라고 부른다.

 

p.14~15

우리는 한 번 결정한 답을 다시 생각하는 것만 망설이는 게 아니라 다시 생각하는 것 자체를 망설인다. 실험을 하나 보자. 수백 명의 대학생에게 무작위로 최초 직감의 오류라는 개념을 가르쳤다. 이어서 그 학생들에게 마음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가르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충고했다. 이렇게 한 다음에 두 차례 시험을 치게 했지만, 한번 결정한 답을 고치려 하지 않는 성향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지적 게으름 때문이다. 몇몇 심리학자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정신적 구두쇠(mental miser)라고 지적한다. 새로운 걸 붙잡고 어렵게 쩔쩔매기보다는 기존의 의견이나 생각에 안주하는 손쉬운 쪽을 자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려는 의지를 가로막는 한층 깊은 차원의 저항이 사람의 심리에 존재한다. 자신을 믿지 못하고 의심할 때 세상은 한층 더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자기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은 자기가 알던 사실들이 이미 바뀌어버렸을지도 모름을, 즉 과거에 옳았던 것이 지금은 틀릴지도 모름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깊이 신봉하는 어떤 것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의심할 때는 자기의 한 부분을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다시 생각하기'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진행되는 투쟁은 아니다. 대상이 물건일 때 사람들은 열정을 다해서 업데이트를 한다. 예를 들어서 입던 옷이 유행에 맞지 않을 때는 옷을 새로 장만하고 주방 구조나 설비가 유행에 뒤처지면 새로 단장한다. 그러나 대상이 지식이나 견해일 때는 기존의 것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집착하고 얼어붙기(seizing and freezing)'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의심할 때의 불편함보다 확신할 때의 편안함을 더 좋아한다. 지금도 여전히 윈도95를 쓰는 사람을 보고 비웃으면서도 1995년에 형성되었던 자신의 견해는 여전히 붙잡고 놓지 않는다. 머리가 복잡해지는 온갖 이야기보다는 기분이 좋아지는 의견에 편안하게 귀를 기울인다.

 

p.19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쳐야 한다면 우선 무거운 짐을 버려서 발걸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는 것이 우선임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그러나 소방대원에게 화재 진압 장비는 임무 수행의 필수 도구이기에 장비를 잘 챙겨야 한다는 원칙이 훈련 과정이나 경험에서 그들의 머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래서 도지가 장비를 버리라는 지시를 내릴 때까지도 대원들은 그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대원은 다른 대원이 뺏어서 버릴 때까지 계속 삽을 들고 있었다. 만일 대원들이 무거운 장비를 일찍 포기했더라면 그들이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조금은 더 커지지 않았을까?

 

p.29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도구들 가운데 어떤 것, 그리고 자기 정체성의 가장 소중한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을 버릴 시점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지혜이다.

 

p.34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가진 지식과 전문성에 긍지를 느끼며 자신의 믿음과 의견을 고수하는 데 자부심을 가진다. 자기 생각에 확신을 가질 때 보상을 받는 안정된 세상에서라면 이런 접근이 일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은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라는 데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생각하는 데 보내는 시간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다시 생각하기에 써야 한다.

 

p.36

살마들은 보통 누군가에게 다시 생각하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제3자의 입장에 섰을 때는 금방 알아본다. 자신이 받아든 어떤 의학적 진단을 놓고 다른 의사의 의견을 구할 때는 늘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심을 품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기 자신의 지식과 의견을 놓고서는 태도가 달라진다. 흔히 옳다는 사실보다 옳다고 느끼는 편을 선호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누구를 채용할 것인가에서부터 시작해서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직접 많은 진단을 내린다. 그러므로 어떤 것에든 자기 자신의 두 번째 의견을 만드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p.41

과학적 사고의 관점에서 전략은 하나의 이론이고, 고객과의 면담은 여러 가설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며, 최소실행가능제품과 시제품은 그 가설들을 시험하는 실험이 된다. 이럴 때 기업가의 과제는 결과를 엄청나게 측정하고 가설이 맞는지, 혹은 틀리는지를 토대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p.42~43

우리는 보통 위대한 기업가와 지도자가 강인한 사고방식과 분명한 시각을 가졌다는 사실을 들어서 그들을 찬양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단호하고도 확고한 신념의 화신이며 모범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드러난 증거로 보자면 그렇지 않다. 기업의 이사들을 놓고 토너먼트로 경쟁을 시켜보면 실제로 최고의 전략가는 단호하고 확고한 사람이 아니라 느리고 확신이 없는 사람이다. 그들은 조심스러운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마음을 바꿀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충분히 뜸을 들이고 시간을 들인다. 

 

p.47

연구는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데이터 분석도 잘하는지 살펴보았는데, 결과는 '그렇다'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붙었다. 피부에 난 뾰루지를 치료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직업에서만 그랬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총기 소유 관련 법안처럼 찬성자와 반대자가 강력한 감정을 드러내는 이념적인 쟁점에 초점을 맞춘 데이터를 분석할 때도 그럴까?

양적인 분석을 잘하는 사람은 결과를 해석할 때 한층 정확하다. 단, 그 결과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믿음과 일치할 때만 그렇다. 그러나 만일 그 선험적인 패턴이 본인이 가진 이념과 다를 경우에는 수학 실력이 더는 도움이 되지 않고 장애물로 작용한다. 수학 실력이 자산이 아니라 부채로 작용하는 것이다. 숫자를 잘 주무르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가진 의견과 충돌하는 패턴들을 분석하는 작업에서는 크게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자유주의자인 수학 천재는 총기 규제가 실패했음을 입증하는 증거를 평가하는 데서 다른 일반적인 동료보다도 못했다. 반면에 보수주의자인 수학 천재는 총기 금지가 효과가 있다는 증거를 제대로 잘 평가하지 못했다.

 

p.56~58

애플 르네상스의 전설은 스티브 잡스라는 외로운 천재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아이폰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졌던 확신과 선명한 전망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는 휴대전화라는 범주를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직원들은 휴대전화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애플을 되살린 것은 잡스의 마음을 돌리게 만든 직원들의 능력이었다. 비록 잡스는 '다르게 생각하기'의 방법을 알고 있긴 했지만 다시 생각하기의 많은 부분을 실행한 것은 그의 팀이었다.

 

2004년에 엔지니어와 프로그램 설계자, 그리고 마케팅 담당자로 구성된 작은 팀이 애플의 히트 제품인 아이팟을 아이폰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잡스는 "왜 우리가 ㅆㅂ 그걸 해야 돼? 내가 들은 아이디어 가운데서 제일 멍청한 소리네"라고 쏘아붙였다. 이 팀은 휴대전화가 음악을 들려주는 기능을 탑재하기 시작했음을 이미 깨달았지만 잡스는 그 방향으로 나가다가는 자칫 한창 잘나가는 아이팟 사업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는 휴대전화 제조사들을 증오했으며 통신사들이 묶어놓은 이런저런 제한을 받아들인 채 그 안에서 제품을 설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던 터라 그는 사적인 자리에서나 공적인 자리에서 절대로 휴대전화는 만들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공언했다.

 

그러나 애플의 엔제니어 몇 명은 이미 그 분야에 대한 연구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힘을 모아서 잡스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잡스 자신이 무언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이므로 자신이 확신하는 것들을 제발 좀 의심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즐겨 사용할 스마트폰을 만들거나 통신사들을 애플이 하자는 방식대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변화에 저항할 때는 현재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여러 전망은 연속성에 대한 전망까지 아우를 때 한층 더 매력적이다. 전략이야 달라지며 진화할지 몰라도 정체성은 계속 이어진다.

 

잡스와 가깝게 일했던 엔지니어들은 이것이 잡스를 설득하는 가장 좋은 길임을 알았다. 그들은 잡스에게 자기들은 애플을 전화기 회사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애플은 여전히 컴퓨터 회사로 남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만 기존 제품들을 여전히 안고 가면서 전화기를 추가할 뿐이라고 했다. 애플은 이미 2만 개의 노래를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는데, 노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주머니에 집어넣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기술을 놓고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기들의 DNA를 유지해야 했다. 여섯 달에 걸친 토론 끝에 비로소 잡스는 그들의 노력을 격려할 정도로 그 분야에 충분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아이팟에 호출 기능을 덧붙여야 할지, 아니면 맥킨토시를 전화기 기능도 하는 미니 태블릿으로 전환할지 시험하는 실험을 하기 위해 두 개의 팀이 출범해서 경주를 벌였다. 그리고 아이폰 출시 4년 뒤에 애플 수익의 절반이 아이폰에서 나왔다.

 

p.63

일반적인 인지 능력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자기 신체에 분명히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증상을 의학계에서는 '안톤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뇌의 후두엽 손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조차도 안톤증후군의 또 다른 버전에 우리는 취약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지식과 의견 안에 맹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실과 관련해서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동시에 있다. 나쁜 소식은 이 맹점 때문에 우리는 자기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전혀 바라보지 못할 수 있고, 또 그 바람에 자기 판단에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서는 다시 생각하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좋은 소식은 올바른 확신을 가지기만 하면 자신을 보다 분명하게 바라보고, 또 자기 견해를 수정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운전을 처음 뱅루 때 우리는 시야의 사각지대가 있다는 말과 함께 거울과 센서를 조정해서 이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음가짐(사고방식)에는 거울이나 센서 따위가 없으므로 자기의 인지적 맹점을 인식하고 자기 생각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p.66~68

이론적으로 확신과 역량은 손을 잡고 나란히 간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둘은 자주 서로를 배척한다. 이런 현상은 어떤 사람이 가진 리더십 역량을 놓고 본인이 평가하는 내용과 동료나 상사, 혹은 부하가 평가하는 내용이 다른 경우에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모두 합해서 수십만 명의 사례를 담은 95건의 연구논문에 대한 메타분석에서 확인하기로는, 여성은 자신의 리더십 역량을 과소평가하고 남성은 과대평가하는데, 이런 패턴은 전형적이다. 

 

당신은 아마도 프로 미식축구 감독보다도 자기가 아는 게 더 많다고 확신하는 열혈 스포츠맨을 만나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사로잡혀 있는 마음가짐의 상태가 바로 확신이 역량을 훨씬 초과하는 안락의자 쿼터백증후군이다. 오드손은 심지어 한 나라의 경제를 망쳐놓고서도 여전히 자기가 감독이 될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자기의 약점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안락의자 쿼터백증후군의 반대편에는 역량이 확신을 초월하는 가면증후군이 있다. 아무리 봐도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성공을 거둔 사람이 있다. 당신 눈에 이렇게 보이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똑똑하거나 창의적인지, 혹은 매력적인지 정말 까맣게 모른다. 그리고 당신이 아무리 그렇다고 설득하려 들어도 이들은 자신의 견해를 다시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심지어 온라인 청원으로 많은 사람이 자기를 신뢰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다음에도 할라는 여전히 자기가 한 나라를 이끌 자격을 갖추었다고 확신하지 못했다. 즉 그녀의 눈에는 자기가 가진 힘과 강점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p.78~79

 

p.81

사람들은 흔히 겸손함을 잘못 이해한다. 겸손함은 확신을 적게 하는 것, 즉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겸손함(humility)'의 라틴어 어원 가운데 하나는 '땅에서부터'이다. 한마디로 말해 겸손함은 얼마든지 오류를 저지르고 잘못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땅에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는 것이다.

 

확신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많이 믿느냐 하는 문제이다. 확신은 자기 방법론을 얼마나 신봉하느냐 하는 것과 구분된다는 사실은 증거가 말해준다. 미래에 어떤 목표를 달성할 능력이 자기에게 있음을 호가신하면서도 현재 자기가 올바른 도구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는 겸손함을 유지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확신의 최적점이다.

 

자기 힘과 전략을 완전히 확신할 때는 오만함 때문에 눈이 먼다. 반대로 그 힘과 전략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는 의심으로 마비되고 만다. 올바른 방법론을 알고 있지만 그 방법론을 실행할 능력에 확신이 없을 때는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 있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확신에 찬 겸손함, 다시 말해서 자기가 올바른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 문제를 올바르게 설정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자기 능력을 믿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자기가 가진 낡은 지식을 다시 살펴보겠다는 의심을 품으며, 새로운 통찰을 찾아 나서겠다는 충분한 확신을 갖는다.

 

p.83~84

확신에 찬 겸손함은 학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무조건 확신하지 않고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일 때 발생하는 편익을 다룬 짧은 글을 읽은 학생들이 자기 약점 분야에서 추가로 도움을 구하러 나설 확률은 65퍼센트에서 85퍼센트로 뛰어오른다는 것을 한 실험이 확인했다. 또한 그 학생들은 자기가 몰랐던 사실을 배우기 위해 정치적 반대 진영의 견해를 탐구할 가능성도 더 높았다. 

 

확신에 찬 겸손함은 다시 생각하기로 들어가는 마음의 문을 열어줄 뿐만 아니라 다시 생각하기의 질을 높여준다.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자기 믿음을 기꺼이 수정하겠다는 태도를 가진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서 성적이 좋다. 고등학교에서도 자기가 무언가를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학생은 교사로부터는 효과적으로 학습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급우들로부터는 팀에 더 많이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지막 학년이 끝날 때 이 학생들은 확신에 차 있던 동료들보다 수학 점수가 상당히 높았다.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이해한 수준을 검증하려고 끊임없이 문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겠다는 자신감(확신)을 가질 때 이들은 증거가 얼마나 강력한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자기가 반대되는 의견들을 읽고 이해하는 데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쓴다. 미국과 중국을 대상으로 리더십 효과를 다룬 엄정한 연구논문들이 내린 결론에 따르면, 가장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팀은 확신에 차 있거나 겸손한 지도자가 이끄는 팀이 아니었고, 가장 효과적인 지도자들은 자신감과 겸손함 두 측면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그들은 자기 능력에 믿음을 가졌지만, 또한 자신의 약점도 예리하게 인지했다. 귿르은 위대함의 한계를 밀어 올리며 한층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려면 우선 자기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런 뒤에 그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p.90

그런데 자기가 책임자가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낀 간호사가 실제로는 책임자의 역할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수행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온 부분적인 이유는 그들이 다른 동료들에게서 제2의 의견을 구하는 데 보다 더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을 현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에서 뛰는 사람으로 보았으며, 경험이나 전문성 측면에서 자기에게 부족한 것들 가운데 많은 부분을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보완할 수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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