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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휘둘리지 않는 힘

by Diligejy 2016. 11. 5.

p.27

햄릿이 내던져진 무대, 햄릿의 존재가 처해 있는 구조를 봐야 한다. 햄릿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보라. 친부의 살인자이자 왕위 찬탈자, 그런 왕을 추대하고 추종하는 공신 그룹, 침략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외국의 군대들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친부를 죽인 현재의 왕과 재혼했고, 애인의 아버지와 오빠조차 자신의 편이 아니다. 친구들도 현재의 권력 편에 붙어서 그를 배신하고 있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복수를 완성하고 빼앗긴 왕권을 되찾아올 것인가, 햄릿 왕자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낭만주의자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고, 용의주도함은 우유부단으로, 고통은 우울로, 무사로서의 과단성은 광기로 묘사되었다.


p.31~32

한 사람의 생각의 중심을 간파하려면 

첫째, 타인이 이미 해놓은 기존의 평가에 의존하지 말고 어디까지나 자신의 눈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편견을 가지지 않는다.


둘째, 그 사람이 가진 한 단면만 보지 말고 여러 측면을 관찰해야 한다. 이때 양지만 보지 말고 음지도 보아야 한다. 성공했을 때와 실패했을 때, 기뻐할 때와 슬퍼할 때, 얻었을 때와 빼앗겼을 때, 평온할 때와 위급할 때,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를 두루 고려해야 한다.


셋째, 그 사람의 언행과 그것이 반복되는 유형을 오래 잘 관찰해야 한다. 물론 말과 행동 중에서 더 진실에 가까운 것은 행동이다. 그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을 대표하지 않는다. 말은 너그러우면서 행동은 각박하거나, 말은 진보적으로 하면서 행동은 아주 보수적인 사람도 있고, 말은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인 것처럼 하면서 행동은 매우 자유로운 사람도 있으리라. 그러나 제대로 보고, 오래 보면 결국 알게 된다.


넷째, 그 사람이 결코 양보하지 않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p.31~32

"중요한 문제들은 결국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네. 그동안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원칙이나 말을 내세워 변명하고 이런 것들이 과연 중요할까?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질기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어디에서 신의를 지켰고, 어디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았느냐? 너는 어디에서 용감했고, 어디에서 비겁했느냐?"


산도르 마라이 [열정] 中 재인용


p.56

햄릿, 이 사람에게는 사랑도 우정도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자신이 목표로 삼은 고결한 삶을 사는 일,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일, 역사의 주인공으로 기록되는 일, 오직 그것만이 덴마크 왕자 햄릿의 생각의 중심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 뜻대로 고결한 영웅으로 기록될지는 몰라도,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 친구, 가족, 연인은 매우 힘든 삶을 살게 되리라. 


p.57

진실이란 때로 섬뜩하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귀찮고 힘들더라도, 우리는 허상에 휘둘리는 맘 편한 길 대신 용모와 말과 태도의 뒤에 숨은 진면목을 발견해내야 한다. 허상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의 과정, 그것이 바로 지성이다.


p.98

운명은 신의 영역이지만, 리어 왕의 비극은 리어 스스로가 자기 목에 건 밧줄이었다.


p.99

울음은 가장 인간적인 행위다. 그러나 리어는 울지도 못한다. 내면이 완전히 무너져서 자존심을 잃은 사람은 눈물이라는 인간적인 면모조차 보여줄 여유가 없다. 다만 유일하게 남은 무기는 신에게 호소하거나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는 일뿐, 그러나 만약 신이 있어 이 모든 일을 보고 있다 하더라도 비극의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날아오는 신은 없다.


p.125

사람의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우리는 연습 없이 태어나서, 실습 없이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삶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고통으로부터 숨기 위해서 자아의 둘레에 벽을 쌓아 올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딱 한 번뿐인 이 소중한 삶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가장 자주 해야 할 연습은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물어보는 일,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정말 진리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일,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기울이는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어 왕은 우리의 타자이자 우리 인생의 반면교사다.


p.134

가장 좋은 커뮤니케이션이란 진실을 말하는 것인줄로 알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커뮤니케이션에는 설득이라는 측면도 있고 조화라는 측면도 있다. 상대방과의 조화, 조직의 조화가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일 수도 있다.


조화의 커뮤니케이션은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살펴서 그것과 자기 생각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다. 소통의 목표는 진실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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