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경1 성에 p.15 친구는 그 선배와 공유했던 추억들, 그들 사이에 오갔던 은밀한 시선과 사랑의 기호들, 터무니없이 큰 의미를 부여한 사소한 기억들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윤색되고 부풀려진 흔적이 역력했고, 실재했던 이야기라기보다는 친구의 내면에서 희구해온 환상에 가까워 보였다. 더 냉정하게 말하면 친구의 애통함은 선배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과 사랑의 환상을 잃는다는 상실감에 가까워 보이기도 했다. 어차피 환상 속 사랑이라면 그 대상의 실체나 생존 여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지 않냐고 반문하려다가 연희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환상에 대해 생각할 때 진심으로 궁금한 사항이었지만 입 밖에 내어 말하는 순간 치명적인 폭력이 될 것 같았다. p.18 그것을 '알아본다'.. 2022. 5. 2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