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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전쟁이론

화산의 온통 손자병법

by Diligejy 2022. 1. 21.

p.21~22

춘추시대의 일이다. 제 환공이 죽자 맹주의 자리가 비었다. 송 양공은 맹주가 되고 싶었지만 그럴 실력은 뭇 되는지라 인의를 표방하고 나섰다. 어질고 의로운 자가 나섰으니 세상이 모두 감복하여 그를 맹주로 추대해주길 바란 것이다.

 

송 양공이 맹주 노릇을 하겠다고 나서자 다들 시큰둥했다. 오히려 정나라는 초나라를 맹주로 추대했다. 이에 송 양공은 정나라를 타이르려고 군대를 일으켰다. 정나라는 초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초나라는 즉각 병력을 파견하여 송나라를 응징하러 나섰다. 송 양공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홍수 강가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

 

기원전 638년, 송나라와 초나라는 홍수 근처에서 교전하게 되었다. 송나라는 이미 임전태세를 갖추었다. 초나라는 아직 홍수를 건너기 전이었다. 송나라 대장군 공손고가 송 양공에게 진언했다. "중과부적이니 초나라가 강을 반쯤 건넜을 때 공격하십시오." 송 양공은 거절했다. 우리는 어질고 의로운 군대이므로 곤경에 처한 자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초나라 군대가 안전하게 강을 건너와 진을 치기 시작했다. 공손고가 또 진언했다. 초나라 군대가 진을 치려고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어서 공격하자는 것이다. 송 양공은 또 거절했다. 비록 적국이라 하더라도 진용을 갖추지 않은 군대는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마침내 초나라 군대가 임전태세를 갖추었다. 송 양공은 비로소 북을 치며 공격 명령을 내렸다. 결과는 송나라의 참패였다. 송 양공 본인도 심하게 다쳐 그 이듬해에 죽었다.

 

송나라가 패하자 송나라 백성들은 송 양공을 원망했다. 그때 송 양공은 이렇게 해명했다. "군자란 이미 부상당한 병사를 더 이상 공격하지 않는다. 또한 머리칼이 반백인 사람을 생포하지 않는다. 옛날에 전쟁할 때는 험준한 지형에서 적을 요격하지 않았다. 과인이 비록 주나라에 멸망당한 은나라의 못난 후예지만 임전태세를 갖추지 않은 군대를 향해 공격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송 양공을 비웃었다. 착하기마나 하여 쓸데없이 아량을 베풀다가 되레 당했다거나 어리석게 대의명분만 내세울 뿐 실속이 없는 관대함을 가리켜 '송양지인', 즉 '송 양공의 인자함'이라 조롱했다. 송 양공은 '바보의 관용'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된 것이다. 심지어 모택동은 송 양공의 관용을 일러 '돼지같이 미련한 인의도덕'이라 혹평하기도 했다.

 

p.36~37

우리는 [손자병법]을 읽을 때 첫 글자부터 오독한다. 오독도 아주 심하게 한다. 이것은 가치관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 첫 글자는 [손자병법] 첫 편의 첫 글자인 '계計'이다. 

 

사람들은 [손자병법]과 '삼십육계'르르 함께 논하는 경향이 있는데 심지어는 함께 묶어 책으로 내기도 한다. 시중에 종종 보여지는 [손자병법과 삼십육계] 같은 종류가 그것이다. 하지만 [손자병법]과 '삼십육계'는 기본적인 성격이 다르다. '삼십육계'의 계는 묘책으로서 음모라든가 휼계를 가리킨다. 그에 비해 [손자병법]의 계는 그러한 음모나 휼계를 구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계산'한다는 뜻이다.

 

계를 음모나 휼계로 이해하는 것이 왜 가치관의 문제일까? 그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약점이기 때문이다. 뭐든 기교를 부려서 빨리 이루려는 심리, 어떻게 하든 묘책을 사용하여 한 방에 해결하려는 심리 말이다. 그런데 그런 묘책을 손자는 반대했다. [손자병법]은 묘책으로 승리하라는 책이 아니라 실력으로 승리하라는 책이기 때문이다.

 

손자가 말하는 계는 기본 바탕을 말하는 것이지 운영의 묘가 아니다. 손자는 졸렬할지언정 기본 실력을 요구하는 것이지 기발한 묘책을 요구하지 않는다. 손자가 강조하는 계는 계산하라는 것이다. 실력을 계산해보라는 것이다. 비교할 것은 다섯 분야고 계산할 항목은 일곱 항목이니 '오사칠계五事七計'라 한다.

 

다섯 가지 비교할 분야는 도道, 천天, 지地, 장將, 법法이다. 일곱 가지 계산할 항목은 주숙유도主熟有道, 장숙유능將熟有能, 천지숙득天地熟得, 법령숙행法令熟行, 병중숙강兵衆熟強, 사졸숙련士卒熟練, 상벌숙명賞罰熟明이다. '오사칠계'는 곧 아군과 적군 상방의 정치, 천시, 지리, 인재 및 법치를 분석하고 비교하여 계산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손자가 말하는 계는 현대 경영학에서 흔히 말하는 SWOT분석에 해당한다. 아군과 적군의 강점, 약점, 기회, 위협을 비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야 당연히 승리다. 다섯 분야의 일곱 항목을 비교하면 전쟁을 하기 전에 미리 승부를 판단할 수 있다. 미리 계산하고 비교하면 승산이 있는지 없는지 미리 알 수 있는 것이다.

 

p.38~39

두목의 해설은 정확하다. 먼저 비교하여 계산을 하면 승부가 가려질 것이고, 승리가 확실할 때 비로소 전쟁을 하는 것이니 이를 일러 승산이라 한다. 승산이 없다면 당연히 전쟁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손자병법]의 핵심 사상이다. 먼저 이긴 다음에 전쟁을 벌이는 것이니 나는 이것을 '이긴 다음에 싸우라'로 정리했다.

 

중국 역사상 누가 이런 계에 가장 능했을까? 사람들은 십중팔구 제갈량을 꼽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제갈량의 계는 전부 묘책이었지 앞서 언급한 '오사칠계'가 아니었다. [손자병법]의 '오사칠계'에 근거하여 판단하면 제갈량은 낙제인 것이다. 도, 천, 지, 장, 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다음에 이야기하더라도 적어도 앞서 언급했던 SWOT분석만으로 비교해도 제갈량의 촉나라가 조조의 위나라의 이길 항목은 무엇인가? 없어 보인다. 그래도 제갈량은 천하통일이라는 꿈을 이루고 '삼고초려'에 보답하기 위하여 군사를 일으키고 군중을 동원하여 여섯 번 기산을 나섰고, 아홉 번 중원을 정벌하면서 국력을 소모하고 백성을 희생시켰다. 그가 했던 전쟁은 사실상 모험이었으며 요행을 바라는 일이었다. 그런데 더욱 역설적인 것은 제갈량이야말로 천하에 가장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자신이 없는 전쟁은 하지 않았기에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가차 없이 철군하곤 했다. 그럴 바에야 왜 당초에 전쟁은 전쟁을 일으켰을까?

 

그러므로 제갈량의 계는 엉망진창, 제대로 계산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 사이에 제갈량의 명성은 여전하고 제갈량의 인기는 대단하다. 그 이유는 또 무엇일까?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묘책이 나오니까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토리를 좋아하고 기묘한 전략에 매력을 느끼기에 너도나도 즐겁게 제갈량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전략, 진정한 승리는 너무도 단순하고 명료하여 이야깃거리가 안 된다.

 

[손자병법]이 강조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전쟁을 잘하는 자의 승리는 지혜로운 명성이 없고 용맹스러운 공훈이 없다" 단순명료하기에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손자병법]에서 배워야 할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문외한이 볼 때 별 재미도 없고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곳에 전문가가 되는 비결이 있으며 전문가의 진정한 내공이 담겨 있다.

 

p.50

강태공이 말했다. "전쟁은 천도에 따랐다고 하여 꼭 길한 것은 아니고 천도를 어겼다고 하여 꼭 흉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 어긋나면 삼군은 패망한다. 게다가 천도나 귀신은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지혜로운 자는 따르지 않고 어리석은 자는 구속된다. 지금 우리는 현자를 존중하고 능력자를 임용했고 거사를 함에 때에 합당하다. 그러므로 굳이 시기를 보지 않아도 일이 유리하고, 점을 치지 않아도 일이 길하고, 기도하고 제사지내지 않아도 복이 따른다." 마침내 전군을 향해 돌격을 명했다.

 

p.52

장예는 이렇게 해설했다. "작전을 짤 때는 지형을 미리 아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가까운지 알아야 비로소 질러갈 것인지 돌아갈 것인지 계산할 수 있다. 험한지 평탄한지 알아야 보병을 쓸 것인지 기병을 쓸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 넓은지 좁은지 알아야 전체 병력으로 펼칠 것인지 소수 병력으로 요처를 장악할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 죽을 곳인지 살 곳인지를 알아야 병사들이 죽을 각오로 싸우려 들지, 살려고 도망치려 할지 파악할 수 있다."

 

p.60

'위엄'에 대해 두목은 이렇게 해설했다. "위엄이란 위세와 형벌로 전군을 단속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이른바 명장이라 불리는 장군들이 출정에 앞서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사람을 죽이고 위엄을 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때 희생될 사람이 황제의 최측근이거나 이른바 '빽'을 믿고 설치는 자라면 가장 좋다. 오왕 합려가 가장 총애하던 궁녀를 손자가 죽인 것도 그 때문이고, 사마양저가 황제의 측근이던 장가를 처단한 것도 그 때문이다. 요컨대 출정을 앞두고 꼭 한 명씩은 살해되는데, 그들이 책을 읽었다면 조심했을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은 탓이다.

 

p.62

장교가 솔선수범하겠다고 앞장서서 돌격하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장교의 역할은 뒤에서 지휘를 잘하는 데 있지 앞으로 돌격하는 데에 있지 않다. 장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금 심하게 말해서 치밀한 작전 계획이나 침착한 지휘라기보다는 오히려 '공평한 분배'에 있다. 누가 무슨 공을 세웠고 누가 무슨 일을 망쳤음을 당신이 모두 분명하게 안다면 그에 따라 적시에 적절하게 상벌을 시행하게 될 것이다. 사병들은 상벌이 적시에 정확하게 처리된다는 것을 아는 순간 모두 용감하게 당신을 위해 목숨을 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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