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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일본소설

은하영웅전설1

by Diligejy 2022.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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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1: 여명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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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

[역사를 돌이켜 보았을 때, 민중이란 본래 자주적 사고와 그에 수반한 책임보다도 명령과 종속과 그에 따른 책임 면제를 선호한다. 루돌프의 등장은 이를 한 번 예증하는 것이었다. 민주정치 체제에서 일어난 실정은 부적절한 위정자를 선택한 민중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오지만, 전제정치에서는 그렇지 않다. 민중은 자기반성보다도 마음 편히, 무책임하게 위정자를 험담할 수 있는 처지를 선호하는 법이다.]

 

후대의 D. 싱클레어라는 역사학자는 이렇게 기술했다. 그 평가가 옳은지 그른지는 차치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이 분명히 루돌프를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p.54~55

소년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루돌프가 그렇게 악당이었다면 왜 사람들은 그를 지지하고 권력을 준 걸까?

 

"그야 루돌프는 끝장나게 나쁜 놈이었으니까 민중을 교묘하게 속인거지"
"민중은 왜 속은거야?"

"루돌프가 무진장 나쁜 놈이었으니까 그렇지."

이런 문답은 소년을 만족시켜주지 못했으나, 소년의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과 다소 다른 견해를 보였다. 아들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민중들은 고생하길 싫어했거든"

"고생하길 싫어해?"

"그렇고말고. 스스로 노력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어디서 뚝 떨어진 초인이나 성자가 자기들 고생을 전부 혼자 짊어져 주기를 기다렸더너 거지. 루돌프는 그걸 이용한 거야. 너도 잘 들어둬. 독재자는 독재자를 만들어낸 쪽에 더 많은 책임이 있다는 걸.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잠자코 지켜봤다면 공범이야. ...... 하지만 너 말이다. 그런 것보다 더 유익한 데 관심을 좀 가져봐라."

 

p.63

"결국 3,400년 전부터 전투의 본질이란 변하질 않았군. 전장에 도착할 때까지는 보급이, 도착한 후에는 지휘관의 질이 승패를 좌우하는 거야."

전쟁사 지식에 비추어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 '사자 한 마리가 이끄는 양 백 마리는 양 한 마리가 이끄는 사자 백 마리를 이긴다' 등등, 예로부터 지휘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격언은 헤아릴 수도 없었다.

 

스물한 살의 소령은 자신이 성공한 원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제국군만이 아니라 동맹군도 과학기술을 맹신한 결과 레이더에 비치는 것은 인공물이 아니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바로 여기에 기책을 도입할 허점이 있었다.

 

경직된 고정관념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생각해보면 생도 시절, 그가 와이드본에게 시뮬레이션으로 승리를 거둔 것도 정면대결만 고집하는 상대의 의표를 찔렀던 덕 아니었던가.

 

적의 심리를 읽는다. 용병의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전장에서 능력을 완전히 발휘하려면 보급이 반드시 필요하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적의 본대를 칠 필요는 없다. 보급만 끊으면 된다. 적은 싸우지도 못하고 퇴각할 수밖에 없다.

 

p.81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알지도 못하는 상대와 살육전을 벌여야만 하는가. 이 순간 병사들에게 그런 의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과 승리하는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시간 후면 살아남은 그들 중 얼마는 새로운 사자의 대열에 끼어야만 한다.

 

p.89

전쟁을 하는 이상 희생을 치르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희생의 증가에 반비례해 승리의 효과는 감소한다. 용병학의 존재 의의는 이 두 가지 명제를 양립시키는 데 있지 않은가. 쉽게 말해 최소 희생으로 최대 효과를 거두라는 것이며, 냉혹하게 표현한다면 '어떻게 해야 더욱 효율적으로 아군을 죽일 수 있는가'라는 한 마디로 귀결된다. 사령관이 과연 이 사실을 이해하고 있을지 양은 의심스러웠다.

 

이미 발생한 희생은 어쩔 수 없다. 사실 어쩔 수 없다는 한마디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수뇌부는 자신들의 작전지휘가 얼마나 졸렬했는지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모든 것이 끝난 후 이야기할 일이다. 지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실수의 확대재생산을 방지하면서 전화위복을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머리를 짜내는 것이다.

 

후회한다고 전사한 장병이 부활한다면 킬로리터 단위의 눈믈을 흘려도 좋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비통함을 연기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p.115

"전문가가 문외한에게 밀리는 경우가 종종 있지. 장점보다도 단점을, 기회보다도 위기를 보기 때문일세. 이 쌍방의 포진을 보면 전문가는 포위된 제국군의 패배가 불가피하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겠지. 하지만 아직 포위망이 완성된 것도 아니니, 병력이 분산된 동맨군 쪽에 오히려 위기가 보였던 걸세."

 

p.117

어떤 조직이건 기계건, 운용은 어차피 인간의 손에 맡겨지는 것. 위에 선 자의 재간과 기량에 따라 호랑이가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하지. 호랑이의 이빨이 어느 쪽으로 향할지, 이것 또한 조련사에게 달린 법.

 

p.156

잠자코 견디기만 해서 사태가 개선된 사례는 없다. 누군가가 지도자의 책임을 규탄해야만 한다.

 

p.157

본래 명장과 졸장은 도의를 기준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졸장이 아군을 100만 명 죽였을 때, 명장은 적을 100만 명 죽였다는 차이가 있을 뿐, 죽음을 당할지언정 죽이지는 않는다는 절대평화주의의 견지에서 본다면 어느 쪽이나 대량살인자라는 데는 차이가 없다.

 

졸장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능력의 부족함이지, 도의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말해봤자 이해해줄 것 같지도 않았으며, 이해를 구해야만 할 일도 아닌 것 같았다.

 

우주항의 탑승 안내방송이 제시카를 소파에서 일으켰다. 그녀가 탈 정기선의 출항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잘 있어, 양. 배웅해줘서 고마워."

"몸조심해."

"출세해줘. 장의 몫까지."

양은 탑승구로 사라지는 제시카의 뒷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출세해달라니.

 

그것은 곧 지금보다도 더 많은 적을 죽이라는 뜻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마, 아니, 절대 모를 것이다. 그것은 은하제국에 그녀와 똑같은 처지를 가진 여성을 만들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때 제국의 여성들은 누구에게 비탄과 분노를 쏟아내야 할까.

 

p.215

"무인의 마음이라고?"

 

쓰디쓴 분노의 감정. 프리테리카 그린힐 중위는 양의 목소리에서 분명히 그것을 느꼈다. 실제로 양은 분노했다. 죽음으로 패전의 죄를 씻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왜 자신 혼자만 죽지 않는단 말인가. 왜 부하들을 강제로 길동무 삼으려 하는가.

 

'이런 놈이 있으니 전쟁이 끝나지 않는 거야.'

 

p.251

정의로운 전쟁이라.

자유행성동맹 정부 재정위원장 조안 레벨로는 말없이 팔짱을 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막대한 피를 흘리고 국가경제를 파국으로 몰아넣고 국민들의 고혈을 짜내야만 한다면, 정의란 탐욕스러운 신과도 같다. 끊임없이 산 제물을 요구하며, 만족할 줄을 모르는 것이다.

 

p.264~265

그 불쾌하기 짝이 없는 우국기사단이 어릿광대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과장되고 희극적인 행동들이 교묘하게 계산된 연출의 결과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거 루돌프 폰 골덴바움을 일찍부터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젊은 세대들을 은하연방 위정자들은 쓴웃음과 연민 어린 미소로만 대하지 않았던가.

 

객석에서는 보이지 않는 두꺼운 커튼 너머에서는 누군가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p.268

사람은 누구나 밤하늘에 손을 뻗어 자신에게 주어진 별을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자신의 별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자신은, 양 웬리는 어떨까. 명확히 자신의 별을 인지하고 있을까. 상황에 휩쓸려 놓치고 만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잘못 짚고 있는 것은 아닐까.

 

p.269

사람은 자기만의 별을 붙잡아야만 한다. 설령 그 어떠한 흉성이라 할지라도

 

p.274

정략과 전략의 게임은 국가와 인간의 운명을 무형의 칩으로 삼아 이루어지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흥분은 술과 여자에 비할 바가 아니다. 

 

권모술수도 세련되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루빈스키는 생각했다. 무력으로 위협하는 짓 따위 하류 중에서도 하류라고 해야 한다.

 

p.285

인간이 누구나 늙는 것처럼, 어느 국가나 타락과 퇴폐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선거에 이겨 앞으로 4년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3000만 명의 장병을 전장으로 보내겠다는 발상은 이해의 범주를 넘어섰다. 3000만 명의 인간, 3000만인의 인생, 3000만의 운명, 3000만의 가능성, 3000만의 희로애락을 죽음의 땅으로 보내 희생자의 대열에 끼워 넣고, 안전한 곳에 있는 작자들은 이익을 독점하는 것이다.

 

전쟁을 하는 자와 시키는 자의 이 지극한 부조리한 상관관계는 문명이 발생한 이래 수많은 시대를 거쳤으면서도 도무지 개선될 여지가 없었다. 오히려 고대의 패왕들은 진두에 서서 직접 위험을 무릅썼던 만큼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 전쟁을 시키는 자의 윤리성은 날이 갈수록 하락하는 것이 아닐까.

 

p.292~293

애당초 상상을 초월하는 신병기란 것은 없다. 적대하는 양 진영의 한 쪽에서 발명되어 실용화를 거친 병기는 다른 진영에서도 최소한 이론적 실현까지 이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차, 잠수함, 핵분열병기, 광선병기 등이 모두 그랬으며, 한 발 늦은 진영의 패배감은 '설마'보다도 '역시'라는 형태로 표현되었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개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집단의 총합을 내 보면 근소한 차이만을 보일 뿐이다. 하물며 신병기의 출현은 기술력과 경제력이 축적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석기시대에 비행기가 등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신병기로 말미암아 승패가 결정된 것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를 침략했을 때를 간신히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나마 그것도 잉카에서 전해져 오던 전설에 편승한 사기의 측면이 농후하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시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는 수많은 과학병기를 고안했으나 로마 제국의 침공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상상을 초월한다는 표현은 오히려 용병사상의 전환기에서 자주 보인다. 물론 신병기의 발명 내지 도입으로 용병사상의 전환이 촉발된 경우도 분명 있다. 화기의 대량 사용, 항공전력에 의한 해상 지배, 전차와 항공기의 조합을 이용한 고속기동전술 등이 모두 그렇지만, 한니발의 포위섬멸전법, 나폴레옹의 각개격파, 마오쩌둥의 게릴라 전법, 칭기즈 칸의 기병집단전법, 손자의 심리정보전략, 에파미논다스의 중장보병 사선진 등은 신병기와는 무관하게 고안, 창조된 것이었다.

 

양은 제국군의 신병기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두려운 것은 로엔그람 백작이라는 군사의 천재와 동맹군의 착오, 다시 말해 제국 국민이 현실의 평화와 생활 안정보다도 공상 속의 자유와 평등을 바란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기대일 뿐 예측이 아니다. 그러한 요소를 계산에 넣고서 과연 제대로 된 작전계획을 입안할 수 있을까.

 

p.296~297

저는 권력이나 무력을 경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사실은 두렵습니다. 권력이나 무력을 손에 넣었을 때 대부분의 인간이 추악하게 변모한 사례를 얼마든지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변하지 않을 거란 자신도 없습니다.

 

p.369

나는 이래 봬도 역사를 좀 공부했네. 그래서 알지만, 인간 사회에 흐르는 사상의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 생명 이상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생각과,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야. 인간은 전쟁을 시작할 때는 전자를 구실로 삼고, 전쟁을 끝낼 때는 후자를 이유로 들어. 그걸 수백 년, 수천 년 동안이나 계속했단 말이지.

 

p.395

인간은 이기는 것만 생각하다 보면 한없이 비열해진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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