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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인자를 만든 2인자들

by Diligejy 2022. 3. 7.

p.5

2인자, 누구인가?

 

조직에서 두 번째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2인자다. 이런 이해는, 거두절미하고 잘못된 것이다. 무지 혹은 오해, 그것도 아니라면 왜곡이다. 총리가 2인자인가. 아니다. 2인자는 지위 개념이 아니라 역할 개념이다. 2인자는 1인자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참모다. 비록 사장 바로 밑의 부사장이 아닌 과장일지라도 그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면, 그 사람이 2인자다. 따라서 2인자라 함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가장 질적으로 기여하는 참모를 말한다. 2인자란 넘버 투가 아니다. 비유하자면, 롤 투다. 퀄리티 투다. 게다가 2인자는 한 사람이 아니다. 유방을 보자. 전략에선 장량이 2인자다. 행정에선 소하가 2인자다. 야전에선 한신이 2인자다. 이처럼 2인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기능에 따라, 사안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p.26

노심하면 기미가 보인다. 초사하면 징후가 느껴지기 마련이다. 1995년 무렵부터 이 회장은 자주 위기감을 표출했다. "2000년이 오기 전에 뭔가가 있을 것 같다." 거품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심상은 고대 중국의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다. 심은 여덟 자 길이를, 상은 열여섯 자를 뜻한다. 우후죽순처럼 많은 나라가 각축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제후들은 심상의 땅을 가지고 다퉜다. 평수로 따지면 한 평 남짓한 땅을 빼앗으려고 싸웠다는 뜻이다. 이렇듯 심상은 짧은 길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것이 곧 작고 보잘것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면서 '심상치 않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p.44~45

삼성을 발렌베리처럼 바꾸는 것은 그의 재량사항이 아니었다. 그는 오너가 아니었다. 삼성이 발렌베리로 가는 것은 경천동지의 일대 혁신이다. 오너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그 책임은 오너에게 가해지는 게 옳다. 또 하나, 발렌베리라고 해서 잘못이 없는 기업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발렌베리는 히틀러에게 협력해 경제적 이득을 취했따. 소위 '보쉬 스캔들'이다.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지금도 지울 수 없는 허물로 남아 있다. 발렌베리는 선이고, 삼성이 악은 아니다. 삼성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우리 사회가 풀어가는 방법은 삼성에 대한 찬반을 묻는 게 아니다. 옹호나 매도가 아니다. 차분한 토론 속에 합리적으로 차근차근 풀어가야 한다. 삼성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압박할 게 아니다. 미국 클린턴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의 지적처럼, 법으로 가이드하고, 정책으로 유도해가야 한다.

 

후광 효과란 게 있다. 현혹 효과라고도 한다. 한 가지를 좋게 보면 다른 면도 좋게 보인다는 것이다. 여자가 예쁘면 다른 흠도 좋게 보이는 것처럼 이런 게 인지상정인지 모른다. 반대 측면도 있다. 나쁘게 보기 시작하면 한없이 나쁜 점만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후광 효과다. 싫고 좋고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평가는 공정해야 한다. 공과는 한 묶음이다. 잘잘못은 동전의 양면이다. 잘한 것은 잘한 대로, 못한 것은 못한 대로 가려서 봐야 한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위해서는 그의 단점을 지적하기 전에 그의 장점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유익하고도 필수적이라는 격언을 우리는 굳게 믿는다." 칼라일의 명언이다. 내가 서정주를 싫어하는 건 자유다. 그러나 그가 시 대통령이란 소릴 들을 정도로 시를 잘 쓴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신이 서정주를 좋아하는 건 자유다. 그러나 그가 또 친일하고 독재 정권에 굴종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p.87

사람은 슬플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분노하면 변화를 초래한다.

 

p.95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바로 극기다. 리더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옵션을 따지는 참모라면 감정의 포로가 되는 건 금물이다. 이 에피소드가 주는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컨트롤하고 불편함을 견뎌내는 냉정함, 이것을 가져야만 최고의 참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p.283~284

[삼국지]는 세 나라가 비등비등한 수준에서 천하의 주인이 되기 위해 싸운 이야기가 아니다. 절대 강자 조조에게 미련한 유비와 겁 많은 손권이 깐죽대다 실패한 이야기다. 216년 조조가 위왕이 됐다. 221년 유비가 왕으로 자처했고, 229년 손권도 칭제했다. 삼국이 정립한 것이다. 그 후 263년 촉이 망하고, 280년 오가 망함으로써 삼국 시대는 끝나고, 천하 통일은 완전하게 이뤄졌다. 이때 이미 조조 천하의 건설자 순욱은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따라서 소설 [삼국지]를 삼국이 정립해서 싸운 시기의 이야기, 즉 '삼국지'로 읽는다면 순욱은 주인공이 아니다. 허나 [삼국지]를 황건적의 난부터 시작되는 군웅할거의 이야기, 즉 '군웅지'로 읽는다면 순욱이 주인공이다. 조조를 최종 승자로 만들어낸 참모가 순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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