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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국제정세론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by Diligejy 2022. 7. 17.

 

p.17

미어셰이머 교수가 '고전적 현실주의'(인간본능 현실주의) 및 '신현실주의'(방어적 현실주의) 이론을 모두 초월하는 새로운 현실주의 이론을 제시하고, 역사적 사례를 들어 자신의 이론을 증명해 보이고자 시도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미어셰이머 교수는 제3세대 현실주의 이론인 자신의 이론을 '공격적 현실주의' (Offensive Realism)라 부르고 있다. 국가들이 힘을 추구하는 이유를 인간의 본능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국제정치의 구조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이론은 신현실주의와 유사하다. 그러나 미어셰이머 교수는 국가들이 단지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가능한 한 막강한 힘을 추구하려고 노력한다고 보는 점에서, 특히 상대적 측면에서 다른 나라를 완전히 압도하기를 원한다고 보는 점에서 신현실주의의 분석과 다르다.

 

p.21

혹자는 -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 20세기는 평화적으로 종결되었으며 21세기가 시작되는 지금 강대국들이 상당히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저자의 비관적 관점을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분명히 타당성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미래를 예측함에 있어 단순히 현재에 기반해 추론(extrapolate)하는 방법을 취하는 경우 훌륭한 분석을 기대할 수 없다.

 

이 같은 방법을 택할 경우 지난 두 세기가 시작될 무렵 유럽의 관찰자들은 다가올 세기가 어떠한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언급해야 했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800년의 유럽은 프랑스 혁명전쟁가 나폴레옹 전쟁의 와중에 있었다. 이 전쟁들은 23년이나 지속되었으며(1792~1815) 당대의 모든 강대국들이 참전했었다. 당시 이 같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상황에 기반해 추론한다면 19세기는 강대국들의 분쟁으로 점철될 시기라고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는 역사상 전쟁과 갈등이 가장 적었던 세기였다. 반면 1900년의 유럽은 강대국들이 참전한 전쟁이 없었으며 머지않아 전쟁이 발발하리라는 징조도 없었다. 1900년처럼 조용한 해를 기준으로 미래를 예측한다면 유럽의 20세기는 전쟁이 없는 세기가 되어야만 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역사는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했음을 말해준다.

 

p.36

강대국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바로 국제체제의 구조 때문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행동하는 경우라도, 상대방이 보기에는 공격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 국제정치체제다. 국제체제의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이 국가들이 서로를 두려워하도록 만든다.

 

1. 국가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국가보다 상위에 있는 권위를 가진 조직이 없다.

2. 국가들은 항상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군사력을 어느 수준 이상 보유하고 있다.

3. 국가들은 결코 상대방의 의도에 대해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이처럼 국가들이 서로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주어진 것으로 가정할 때 공포가 완전히 해소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인다. 국가들은 자신이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강할 경우에만 자신들이 생존할 확률도 높아진다고 인식하게 된다. 실제로 생존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안은 패권국(hegemon)이 되는 것이다. 패권국에 대해서는 어떤 나라도 심각하게 도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p.37~38

1860년대 초반 프러시아의 정치가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는 이런 딜레마를 처절하며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표현했다. 비스마르크는 당시 독립국이 아니었던 폴란드가 주권을 회복할 것처럼 보였던 시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형태든 관계없이 폴란드 왕국이 재건된다는 것은 우리를 공격하기로 작정한 어떤 강대국과도 동맹을 맺을 수 있는 국가가 건설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프러시아인들은 반드시 폴란드 사람들이 모든 희망을 잃고 주저앉아 죽을 때까지 폴란드인들을 격멸해야 한다. 나는 그들의 처지를 많이 동정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폴란드를 없애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강대국들이 이처럼 생각하고 행동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비통한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야 할 의무가 있다.

 

p.41-42

저자가 조명을 해보려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퍼즐들은 다음과 같다.

 

1. 근대 역사상 가장 길고 잔인한, 그리고 당대 국제체제의 모든 강대국이 참전국이 되었던 세 차례의 전쟁시기 - 프랑스 혁명전쟁 및 나폴레옹 전쟁시대(1792 - 1815), 1차 세계대전(1914 - 1918)과 2차 세계대전(1939 - 1945) - 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2. 1816년부터 1852년, 1871년부터 1913년, 특히 냉전기간인 1945년에서 1990년에 이르는 장기적이고 상대적인 평화의 시대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3. 19세기 중 단연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던 영국은 왜 강력한 군사력을 건설하여 유럽을 지배하지 않았을까? 왜 영국은 나폴레옹의 프랑스, 빌헬름의 독일, 나치 독일, 소련 등 자신의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시켜 유럽의 패권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 나라들과 다른 행동을 보였을까?

 

4. 왜 비스마르크의 독일(1862 - 1890)은 1862년부터 187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그렇게도 공격적이었는가? 이 기간 중 독일은 강대국과 상대에 대한 두 개의 전쟁과 약소국을 상대한 하나의 전쟁을 치렀다. 그런 독일은 왜 1871년부터 1890년까지는 전혀 공격적 행태를 보이지 않았는가? 이 기간 중 독일은 아무런 전쟁도 치르지 않았고 유럽의 현상유지 추구에 몰두했다.

 

5.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1차 세계대전 이전, 빌헬름의 독일제국에 대항하는 균형연합(Balancing Coalition)의 결성에는 성공했는데, 왜 나치 독일을 봉쇄하기 위한 연합형성에는 실패했는가?

 

6.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경제적으로 가장 막강하고 핵무기를 독점한 나라는 미국인데, 왜 냉전초기 일본과 서유럽 국가들은 미국과 연합하여 소련에 대항했을까?

 

7. 20세기 동안 미국이 동북아시아와 유럽에 개입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은 왜 1914년 8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1917년 4월까지 기다리다가 전쟁에 개입했을까? 마찬가지로 왜 미국은 1930년대에 나치 독일에 대항하는 균형정책을 취하지 않았는가? 2차 세계대전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은 왜 1939년 9월 이전에 유럽에 군대를 파병하지 않았는가?

8. 왜 미국과 소련은 상대방에 대한 핵 보복력을 확보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핵 군사력을 증강시켰는가? 양국이 모두 "확실한 파괴" 능력을 보유한 경우 그런 상태는 안정된 상태라 여겨지며 핵균형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데 두 초강대국은 "선제공격력"을 갖추려는 목표 아래 수십억 달러, 수십억 루블의 막대한 금액을 소비했다.

 

p.44~45

우리는 상황을 단순화시키는 이론이 없는 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세계를 이해할 도리가 없다.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정책 논리를 예로 들어보자. 그들의 논리는 국제관계에 대한 중요한 자유주의 이론 세 가지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1. 번영되고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적인 국가들은 서로 싸울 가능성이 적다.

2. 민주주의 국가들끼리는 서로 전쟁하지 않을 것이다.

3. 국제제도(조직)는 국가들이 전쟁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하며 협력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할 수 있다.

 

클린턴과 그의 정책결정팀이 1990년대 중반 NATO의 회원국을 확대하던 과정을 어떻게 정당화시켰는지 생각해보자. 클린턴 대통령은 NATO를 확대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중부유럽의 민주국가들을 잡아두려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민주국가들이란 그들의 차이점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개방된 무역체제를 확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국가안보는 다른 나라들이 자유를 유지하고, 개방적이며 함께 일하는 데 있지, 그들과 상호 적대적인 데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클린턴과 옥스퍼드 대학에서 같이 공부한 스트로브 탈보트 미국 국무차관보는 NATO의 확대에 관해 마찬가지로 말했다.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개방사회, 개방시장에 관한 신념의 공유를 통해 점차 단결된 유럽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는 NATO의 경계선을 동쪽으로 이동시키는 일은 이미 헝가리와 폴란드에 존재하던 "민주주의와 시장개혁에 관한 국가적 동의를 더욱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그 결과 이 지역의 평화에 관한 전망을 밝게 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p.46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과 배치되는 몇 가지 사례 중 한 가지는 1905년 독일의 경우이다. 당시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나라였다. 유럽대륙에서 독일의 중요한 경쟁국은 프랑스와 러시아였고 두 나라는 약 15년 전 독일을 봉쇄하기 위한 동맹을 체결한 바 있었다. 영국은 당시 아주 소규모의 육군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영국은 프랑스와 러시아가 독일을 견제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1904년과 1905년 일본이 예상외로 러시아를 패퇴시킨 후 러시아는 당분간 지리멸렬한 상태가 되어 유럽의 세력균형 체제 밖으로 밀려나 버렸고 프랑스 홀로 막강한 독일에 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시기는 독일이 프랑스를 격파하고 유럽에서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독일에게는 1905년에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1914년에 전쟁을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일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독일은 1905년에는 전쟁을 해야 할 것이냐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는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의 예측과 배치되는 것이다.

 

p.56

현실주의자들은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일이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다만 그들은 국가들 간의 안보 경쟁과 전쟁이라는 처절한 모습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쉬운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평화적 세상을 창조하는 일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지만 현실적인 일은 아니다. E.H 카가 말하듯 "현실주의란 국제정치를 움직이는 저항하기 어려운 기존의 힘과 국제정치가 나아가는 불가피한 기존의 경향을 강조하고, 이와 같은 힘과 경향을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하려는 것이다."

 

p.77

국가들은 자기나라가 위험하며 홀로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결과 자신의 생존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목적을 세운다. 국제사회에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러나 국가들이 스스로 안전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동맹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맹이란 편의상 체결하는 임시적 결혼일 뿐이다. 오늘의 동맹국은 내일의 적국이 될 수 있고 오늘의 적국은 내일의 동맹국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일본에 대항하여 싸운 중국과 소련의 동맹국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마자 동맹국과 적국이 뒤바뀌었다. 미국은 서독과 일본과 동맹을 맺고 냉전 시대 동안 중국과 소련에 대항했던 것이다.

 

스스로 도와야만 하는 세상에 존재하는 국가들은 항상 자국의 이익에 입각해서 행동해야 하며, 자국 국가이익을 다른 나라의 국가이익 혹은 이른바 국제 공동사회라 불리는 조직의 이익에 종속시킬 수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 도와야 하는 세상에서는 이기주의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물론 장기적으로 보아도 그렇다. 국가들이 단기적으로 손해를 볼 경우, 그것을 해소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의도에 대해 우려하고, 그들도 스스로 도와야 하는 세상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국가들은,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 스스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는 일이라는 것을 곧 알아차릴 것이다. 잠재적인 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강한 국가일수록 상대방이 자신을 공격하고 생존을 위협할 가능성을 덜 느낄 것이다. 약한 나라는 군사적 패배 때문에 고통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강한 나라와 싸우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국가간의 국력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를 공격할 가능성은 작아진다. 이를테면 캐나다나 멕시코는 미국을 공격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p.87~88

내가 주장하려는 바는, 다음 장들에서 길게 논의될 예정이지만, 어느 강대국이 분명한 핵 우위를 확보하는 비현실적 상황이 도래하지 않는 한, 어느 나라라도 세계 패권국의 지위에 도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이다. 세계지배에 제일 큰 장애요인은 세계의 바다를 가로질러서 상대방 강대국의 영토에 자신의 군사력을 투입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오늘날 지구에서 가장 강한 나라이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과 동북아시아를 미국이 남북아메리카를 지배하듯이 지배할 수는 없으며, 주로 큰 바다가 야기하는 지리적 장애요인 때문에, 이처럼 먼 지역을 정복하고 통치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실제로 유럽과 동북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은 향후 10년 이내에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요약컨대 세계 패권국의 존재는 불가능하며 향후 가까운 시일 내에 세계 패권국이 출현할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강대국이 현실적으로 희망할 수 있는 것은 지역 패권국이 되는 것, 가능하다면 육지를 통해 접속된 인접지역을 지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많은 강대국들이 지역 패권을 쟁취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지만 진정한 지역 패권국의 지위에 오른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제국이 패권을 추구했고, 나폴레옹의 프랑스, 빌헬름 황제의 독일, 나치 독일 등은 유럽에서의 패권을 추구헀지만 어느 누구도 성공할 수 없었다. 유럽과 동북아시아에 걸쳐있는 소련은 냉전기간 동안 이 두 지역 모두를 지배하려고 시도했다. 소련은 소련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석유가 풍부한 페르시아만 지역을 정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소련이 동북아시아, 유럽, 페르시아만 지역을 지배할 수 있다고 해도 - 결코 이 수준에 도달한 적도 없지만 - 소련은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여 진정한 세계 패권국이 될 수 없었다.

 

p.93

한 나라가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살펴보려는 경우, 그 나라는 잠재적인 적국의 의도보다도 현실적 공격능력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앞에서도 강조한 바처럼 국가의 의도는 궁극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국의 생존을 우려하는 국가는 적대국의 의도에 대해 최악의 가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측정이 가능한 것은 능력이며 이는 적대국이 심각한 위협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알려주는 요소다. 요약하면, 강대국들은 상대방의 능력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지 상대방의 의도에 균형을 맞추는 것은 아니다.

 

p.130~131

영국은 대규모의 영국 육군을 건설함으로써 유럽을 정복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영국의 힘을 유럽대륙에 투사하려는 경우 영국해협을 건너는 일이 너무나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음 장에서 논의할 예정이지만 큰 바다는 육군력의 공격능력을 앗아간다. 마찬가지로 바다의 위력은 어떤 막강한 군사력이라도 바다가 건너 영국을 침략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도록 하였다. 그래서 영국은 공격에도 별로 유용하지 못하고 또 조국을 방어하는 데도 필요할 것 같지 않은 막강한 육군을 보유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적절치 못한 일이라고 현명하게 판단했던 것이다.

 

미국 역시 19세기의 부유한 나라였지만 약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던 한 예가 된다. 미국은 1850년 강대국으로 인정받기 충분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강대국으로 인정받은 것은 1989년 이후부터라는 사실이 일반적 견해다. 1898년 미국은 비로소 유럽의 강대국과 겨룰 수 있는 수준의 군사력을 건설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p.141

육군은 전쟁에서 제일 중요하다. 왜냐하면 육군이야말로 땅을 정복하고 통치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땅을 점령하고 통치한다는 것은 영토국가들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최고의 정치적 목표가 된다. 영국의 유명한 해양전략 이론가인 줄리안 코벳은 육군과 해군의 관계를 언급하여 이 점을 잘 지적했다. 

 

"인간은 땅 위에서 살지 바다 위에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전쟁 중인 국가들의 중요한 갈등이슈는 한 나라의 육군이 적국의 영토에서, 혹은 적국의 국민생활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혹은 한 나라의 해군이 그 나라의 육군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p.150

1945년 8월 야기된 두 가지 사건은 일본의 정책결정자들이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했다. 히로시마(8월 6일)와 나가사키(8월 9일)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와 앞으로 더 많은 원자폭탄이 투하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은 히로히토와 같은 중요한 인물들에게 빨리 전쟁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마음을 갖도록 했다. 다른 사건은 1945년 8월 8일 소련의 일본에 대한 참전결정과 그 다음 날 소련군이 만주의 관동군을 공격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태의 진전은 일본이 소련을 중재자로 하는 평화협정을 맺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지워버렸으며, 일본은 미국과 소련 두 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관동군이 소련 적군(Red army)의 공격에 의해 신속하게 붕괴됐다는 사실은 본토를 지키는 일본 육군도 미국의 본토 침공이 있을 시, 쉽게 붕괴될 것이라고 예측하도록 했다. 요약컨대 조건부 항복으로 전쟁을 끝내려던 일본의 전략은 1945년 8월 9일 거의 가능성이 없게 되었다. 일본군부, 특히 전쟁의 종식을 결정하는 데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일본 육군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p.153

정부 엘리트들이 자국 국민이 처참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전쟁을 그만두곘다고 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실은, 국민들이 더욱 처절하게 고통을 당할 경우 그 나라 지도자가 전쟁을 그만둘 가능성은 오히려 더욱 줄어들게 된다. 이처럼 반 직관적 논리의 근본은 전쟁이 처절하게 패배로 끝날 경우 국민들이 지도자에게 복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자국 국민들이 당하는 고통을 무시하고 끝까지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는 강력한 동기를 가지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최후의 승리를 쟁취할 수 있고 자신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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