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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국제정세론

배틀그라운드

by Diligejy 2022. 5. 29.

p.19

환상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는 순간 그 어떤 지식이나 지성도 다 무용지물이 된다.

 

- 솔 벨로

 

p.20

직업군인이면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역사학자인 나는 "군은 언제든 마지막으로 치렀던 전쟁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라는 오래된 속담은 이제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야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대강 살펴보는 군대는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나는 미군이 잠재적인 적들에 대한 경쟁우위를 유지하려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p.38

21세기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미 중앙정보국 CIA의 국장인 제임스 울지 제독이 1993년에 했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우리는 커다란 용을 한 마리 쓰러뜨렸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독사들이 가득한 밀림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새로운 세기에 세계의 자유롭고 개방된 국가들은 용과 독사 모두를 상대하게 될 것 같았다.

 

p.46

통합된 전력을 개발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다양한 위험 요소들을 이렇게 구분해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특별히 우리의 역량을 개선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였다. 우리는 역사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는데, 역사를 잘 모르거나 잘못 이해하는 경우, 어렵게 얻은 교훈을 무시하게 되거나 혹은 정책이나 전략의 결함을 감추기 위해 그저 지나치게 단순한 추론만 하게 된다. 우리를 위협하는 어려움들이 어떻게 진화해가는지에 대한 역사를 이해하게 되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올바른 질문을 던지며, "상대방"이 어떻게 대응하게 될지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미래에 대한 가정은 과거가 어떻게 현재를 만들어냈는지 이해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정책과 전략은 경쟁자와 적이 미래에 벌어질 사건들에 미칠 영향을 먼저 인지한 후 이를 바탕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상대방"이 보이는 반응은 어느 정도는 역사에 대한 그들 자신의 해석에 따라 좌우되기도 한다. 미국의 국무부 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했던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국가는 스스로를 역사의 중심에 놓고 생각하곤 한다 ...... 이들에게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보다는 일어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건이 더 중요하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중국의 전략가인 손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안 다면 백 번 싸워도 두려움을 느낄 이유가 없다." 따라서 전략적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은 물론 경쟁자들의 역사관에 대해서도 반드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p.71

러시아 경제를 무너뜨린 마지막 결정타는 1998년의 금융위기였다. 러시아의 루블화는 3분의 1로 그 가치가 폭락했다. 시장경제 개혁의 실패와 올리가르히들의 등장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체제는 그 자체만으로 보면 대단히 취약했지만 동시에 소비에트연방 붕괴 이후의 과도기를 지나며 거머쥔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려던 푸틴과 정치 세력들에게는 아주 이상적인 상황이기도 했다. 언론인 출신으로 훗날 캐나다의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게 되는 크리스티아 프릴랜드는 러시아가 "KGB 요원 출신들의 새로운 천국"이 되었다고 말했다. 푸틴 이전인 보리스 옐친이 대통령이던 시절만 해도 이른바 "실로비크", 즉 소비에트연방 시절의 고관이나 강경파 군 출신, 그리고 KGB 출신들이 정부 요직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퍼센트에 불과했었다. 그러던 것이 푸틴이 대통령이 되자 58.3퍼센트까지 치솟았다. 새로운 경제체제와 사회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진 이들 실크비크들은 더욱 권력을 탐했다. 그리고 푸틴과 파트루셰프, 실로비크 동료들은 러시아가 다시 한번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를 바랐다.

 

p.102~104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을 통한 경제적 압박은 푸틴의 또다른 강력한 도구이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재래식무기와 핵무기, 그리고 사이버 무기를 통한 위협을 더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르샤바조약이 폐기되고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후 연방에서 새롭게 독립을 한 국가들의 교통 및 에너지 관련 기반 시설들은 모두 예전 그대로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 타지키스탄, 그리고 키르기스스탄에서 에너지 공급을 제한하거나 에너지 가격 책정 전술을 사용하는 식으로 상대방 국가들을 압박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010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크림반도에 있는 흑해 함대 기지에 대한 임대 기간을 25년 연장하도록 강요한다. 이 해군 기지는 러시아가 몇 년 후 크림반도를 강제로 합병하는 데 요긴하게 이용된 기지들 중 하나이다. 러시아는 경제적 압박을 통해 키르기스스탄과 아르메니아에 과거 소비에트연방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유럽연합과 경쟁하기 위해 고안된 조직인 유라시아경제연합에 가입하도록 강요했다.

 

심지어 독일조차도 러시아 천연가스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 자원 공급을 포기하는 정책적 선택을 취함으로써 자기들 스스로 약점을 만들고 말았다. 여기에는 뻔뻔스러운 부정부패도 한몫을 했는데, 총리로서 마지막 임기를 보내던 2005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러시아 국영 가스 회사인 가즈프롬과 함께 수십억 달러 규모의 노르트 스트림 가스관 건설 계획에 대한 승인을 독일 정부로부터 얻어 독일에 러시아의 천연가스가 공급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총리에서 퇴임한 후에는 가스관주주위원회의 의장으로 취임한다. 2017년 4월 가스관 건설 업체인 노르트 스트림 2는 발트해를 통해 러시아에서 독일로 공급되는 천연가스의 양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도록 노르트 스트림 2라는 두 번째 가스관 계약을 체결했다. 이 가스관 덕분에 독일은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더 심화되었고, 우크라이나는 전체 국가 GDP의 1.5퍼센트에 해당하는 20억 달러의 통관 수수료를 잃게되는 타격을 입었다. 또한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그리고 헝가리를 포함한 다른 NATO 및 유럽연합 회원국들 역시 자국 영토를 지나가지 않는 이 새로운 가스관 때문에 수수료 수입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폴란드 정부는 이 가스관 건설 계획을 러시아가 유럽연합과 NATO를 분열시킬 의도로 만들어낸 새로운 "하이브리드무기"로 규정했다. 2020년 초, 미국 의회는 "건설 중단"을 위해 노르트 스트림 2를 시공하는 기업에 대해 제재 조치를 가했다. 그렇지만 가스관 시설의 완공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조치는 너무 늦었고 결국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제재 조치는 결국 미국과 독일 사이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드는 효과만 가져왔을 뿐이다.

 

p.104

외교관이자 역사가인 조지 케넌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이른바 전간기에 대해 연구하며 소비에트연방의 외교는 "그들 공산주의 이념의 강점"이 아닌 "서방 공동체 자체의 약점, 즉 서방측 사람들의 정신적 소진"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p.128

소프 AI는 인공지능이 다양한 관점에서 검증을 거쳐 제공하는 정보들을 분류하는 "정리 주기scrub cycle"기술을 사용한다. 소프 AI는 사건이나 이야기 등에 대해 여러 다얗나 의견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용자는 올바른 정보를 기반으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푸틴의 각본에 따른 거짓정보에 대한 공격과 방어, 선제 공격 등을 역동적으로 조합을 해 크렘린궁을 비롯한 다른 독재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약점, 즉 미국 고유의 분권화 정치와 중앙의 권윙에 대한 저항의식을 오히려 강점으로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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