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에 있어 사도세자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소현세자의 의문사.
이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스토리에서 유니크함을 발견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하지만 연기력과 고증에 기반한 상상력으로 이를 극복해나가는 영화였다.
영화 맨 처음에 나오는 인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鮮血)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幎目)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 빛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藥物)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외인(外人)들은 아는 자가 없었고, 상도 알지 못하였다.
국사 교과서에서도 본 내용인데, 끔찍한 내용이지만 이 내용만 보면 특별히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감독은 경수라는 인물을 만들어냈고 권력투쟁의 깊숙한 곳에 경수를 밀어넣는다.
경수는 자신의 주제를 아는 인물이다.
경수는 이렇게 말한다.
저같이 미천한 것들은 보고도 못 본 척해야 살 수 있습니다.
경수를 소경으로 설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리적으로 볼 수 없는 경수나, 왕에 의해 세자를 독살하는 어의나 그저 높으신 분들의 권력투쟁 속에서 하나의 장기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적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하나의 장기말.
믿었던 최대감도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왕과 정치적 딜을 마치면서 그저 모든 건 그들이 짜놓은 판일 뿐이라는 걸 보여준다.
경수가 참수 당하지 않고 살아나는 장면, 영화 마지막에 경수가 침을 놓고 사인이 학질이라는 말을 하는 장면으로 복수를 하는 듯 보이지만, 이 장면들은 판타지로 느껴진다. 그렇기에 더 절망적이다.
이룰 수 없는 판타지로 희망을 보여주는 건 희망이 없다는 걸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역사적으로 분석한 글
http://www.koreanhistory.org/9965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D-13, 절벽 끝의 협상 (0) | 2023.04.02 |
---|---|
길복순 - 모순 속의 세상 그리고 인간 (0) | 2023.04.02 |
시저는 죽어야 한다 (0) | 2023.03.26 |
데블스 더블 (0) | 2023.03.26 |
블랙머니 (0) | 2023.03.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