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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정치평론

정치의 몰락(1)

by Diligejy 2016. 10. 28.

p.7~8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변화를 이끄는 사람, 변화를 좇는 사람, 변화에 둔감한 사람, 그리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역사는 변화를 이끈 사람들의 기록이다. 지도자는 '혁신'을 이끌거나 '혁명'을 이룬 사람이다. '혁명'을 통해 기존의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비주류와 '혁신'을 통해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주류의 싸움이 2012년 대한민국에서 충돌하고 있다.


p.8

혁신은 혁명보다 더 어려운 것이다. 역경을 이기는 사람은 있어도 풍요를 이기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p.9

누가 정치를 죽였는가? 죽음의 원인은 다섯 가지다. 늙어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사고로 죽거나, 누가 죽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정치를 죽인 범인은 누구인가?


p.13

"새로운 가능성은 ... 운이 좋다고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원해야 이뤄진다.

... 그것은, 우리 자신이 책임을 지고,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입증해야만 하는 것이다."


-레이먼드 윌리엄스


p.22

인텔리들은 늘 뒤늦게 흥분하고 먼저 절망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늘 '대중의 저력'에 뒤늦게 흥분하고 '대중의 반동'에 먼저 절망하는 발작과 패닉의 끝없는 반복 상태를 보입니다. 대중이 그저 묵묵히 흐르는 강물이라면 그들은 그 강물의 굽이굽이 변화무쌍한 속도에 시시각각 깡총거리는 송사리들입니다.


-김규항, [나는 왜 불온한가] (돌베개, 2005) 94쪽 재인용


p.22~23

저는 10 26 보궐선거 후의 분위기를 보면서 소설가 이문열 씨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이 생각났어요. 축제의 전야제는 활기 차면서 절도가 있어요. 하지만 마지막 밤의 폐회식은 흥청망청하기 마련입니다.


이 소설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이 난리법석은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는 전야인가, 아니면 길을 잃고 자포자기하는 마지막 밤인가?" 방금 던진 질문은 놓고 이문열 씨는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외환 위기 직후의 변화를 '전야'가 아니라 '시대의 마지막 밤'이라고 본 듯해요.


"내가 보기에는 어둠의 밤이 새로운 시대의 전날 밤이 아니라 아직 덜 끝난 시대의 마지막 밤 같다니까. 진짜 어둠은 아직 남은."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 中 재인용


p.36

어떤 이유와 목적으로 20~40대가 동맹(?)을 맺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동맹을 통해 새로운 체제를 준비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 '비가역적인 변화'를 위한 준비가 없다면 아무리 몰려다니고 요란하게 외쳐 봐야 몇 사람에게 부와 명예와 권력만 안겨 주고 끝나게 될 겁니다.


p.37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죠.


p.48

이탈리아의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했었죠. "옛것은 죽어 가고 있으나, 아직 새것은 태어나지 않았다."


p.49

이제 지상으로 내려온 정치의 등에 올라타서 그것이 올바른 쪽으로 갈 수 있도록 고삐를 쥐는 게 필요합니다. 과연 그 역할을 누가 할 수 있을까요? 위기의 시대를 극복할 지도자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p.52

반세기 이상 군림하던 보수 권력에 균열이 일어났다. 첫째, 보수 진영의 물적 토대가 약화되었고, 둘째, 시대정신이 변했으며, 셋째, 대중의 정체성도 변했다. 이 세 가지 변화 속에서 보수와 진보가 전략적 대치 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또한 보수를 지탱하는 일곱 기둥이 흔들리고 있다. 1. 담론을 형성하는 지식인, 2. 여론을 장악하던 언론, 3. 풀뿌리 보수를 지탱하던 교회 권력, 4. 사회적 파장이 큰 문화 권력, 5. 국민의 자부심이었던 기업, 6. 완력을 휘두르던 권력기관, 7. 엘리트 집합소였던 정당이 모두 영향력을 잃었거나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p.89

김영삼 정부가 1995년에 법을 개정하여 1996년 일제 시대 때부터 내려오던 '국민학교'의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꿉니다. 교육이 '국민의 의무'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로 인식되는 변화를 상징합니다.


이 시기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가 만개한 것도 기억해 둡시다.


p.94

정치의 본질은 '갈등 해소'다. 법과 제도의 개선을 통해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정치 선진화란 시스템 개선을 통해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서 모두가 수긍하는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 역사에서 반대파의 승복이 가능했던 정치 지형은 75:25였다. 따라서 다수 표를 얻은 대통령이 나올 수 있도록 결선투표제를 두고, 국회의원의 경우 유권자의 75퍼센트가 당선자에게 투표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불확실한 선거결과를 미리 예상해서 '결과를 위한 연대'를 이끌어 내는 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각자가 최선을 다한 다음에 그 결과를 가지고 '결과에 의한 연대'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p.101

사실 51퍼센트를 확보하면 모든 것을 다 장악하는 방식은 정치보다는 시장, 엄밀히 말하면 '주주 자본주의'의 원리에 더 부합해요.. 기업에서는 51퍼센트의 주식을 가지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합니다. CEO 출신들이 정치에서 실패하는 이유 중에 그런 문화 차이도 있을  거에요. 그들은 결론을 내리는 과정을 못 견뎌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바로 '정치'에요!


51퍼센트만 확보하면 모든 게 용인되는 식이라면 정치의 존재 이유도 정치인들의 존재 이유도 없습니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다수자와 소수자의 이해관계는 대립하기 마련이고, 그것을 각각 대변하는 정치인이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이야말로 바로 정치의 본질이에요.


p.103

애초에 국회를 자기의 이해관계와 관계가 없는, 아니 오히려 자기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곳이라고 보는 이들로서는,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볼 테니까요.


p. 104

여기서 확실히 강조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절대로 진보는 '박멸'되지 않아요! 또 절대로 보수는 '타도'되지 않습니다! 지금 양자의 입장은 '박멸'하자, '타도'하자인데.... 보수는 '망국적 포퓰리즘'을 말하고 진보는 '민생 파탄'을 얘기합니다만, 나라가 그렇게 쉽게 망합니까? 민생이 정말로 파탄 났습니까? 이제 이런 언어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야 할 때입니다.


p.113

문제의 해결 방법을 사람에게서 찾지 말고 법과 제도와 같은 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정치가 해야 할 일이에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온갖 것에 '선진화'를 붙여 놓았는데 진짜 선진화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법과 제도를 통해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서 모두가 수긍하는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죠.


p.148

당신이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 존재한 기술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으로 세상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다. 당신이 열다섯 살부터 서른다섯 살 사이에 등장한 기술은 새롭고 놀랍고 혁명적인 것이다. 당신은 아마도 그것과 친해질 수 있다. 당신이 서른다섯 살 이후에 등장한 모든 기술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부담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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