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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정치평론

뭐라도 합시다

by Diligejy 2017. 6. 23.

p.17

진보가 다시 제대로 서려면 싸움의 주제를 적극적으로 바꿔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수 세력은 어떻게 해서든 사회경제적인 이슈로 선거를 치르려고 하지 않는다. 언제나 정치 이슈나 도덕적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것이 그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미국을 예로 들어보자. 보수가 미국판 복지국가인 뉴딜 체제를 허물 수 있었던 것은 인종갈등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과 동성결혼 반대를 이슈로 선거를 치렀고 로널드 레이건도 문화전쟁culture war으로 판을 짜곤 했다. 유럽과 미국의 보수들은 주로 인종문제를 꺼낸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사회경제적인 이슈가 전면에 나서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그러니 진보세력은 어떻게 해서든 먹고사는 문제로 선거를 치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진보를 지지할 사람들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8

진보가 버려야 하는 또 다른 하나는 선거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심판의 장으로 삼는 버릇이다. 유권자들은 선거를 통해 그저 자기에게 와닿는 사람을 선택할 뿐이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시비를 재단하게 되면 상대를 부정해야 한다. 이는 곧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정치를 사라지게 만든다. 미국의 정치학자 E.E 샤츠슈나이더 E.E Shattschneider는 "민주주의란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체제"라고 말했다. 정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이뤄지는 것이다.


p.19

진보는 자신이 옳은 쪽, 선한 쪽이라는 믿음이 교조로 굳어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러한 사고방식이 진보 진영에 팽배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선거 때마다 '어떻게 박근혜에게 표를 줄 수 있느냐'는 식의 얘기를 꺼내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유권자에게 투표는 가치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선이고 악이냐를 따지는 관점이 아닌 누가 현실적인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까를 가리는 관점에서 '왜 박근혜를 좋아할까' 라는 질문을 던져야 했다. 박근헤는 독재자의 딸이라 얕보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대중을 욕할 게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탓해야 한다. 독재자의 딸에게 표를 던질 정도로 진보가 못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대중의 무지함을 원망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본질은 유권자들이 각성해서 자신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데 있지 않다. 미국 정치사회학자 시모어 마틴 립셋Seymour M. Lipset이 한 말처럼 바람직한 민주주의는 '유권자 앞에 정당이라는 대안이 존재'할 때 이뤄지는 것이다.


p.47

정치인이 해선 안 될 가장 나쁜 일 중 하나가 지지연합을 해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참혹한 결과를 노무현이 보여줬다. 반면 김대중은 대중적인 인기가 떨어졌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지지연합을 스스로 해체하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 덕분에 노무현은 김대중의 지지기반에 플러스 알파를 더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김대중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노무현을 낙점해 대통령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지만 김대중이 정권 재창출에 기여한 바는 대단히 컸다.


p.49

미국에서 지미 카터Jimmy Carter나 버락 오바마 등 무명인사가 당의 대통령 후보직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오픈 프라이머리의 순회방식 덕분이었다. 말하자면 초반 3~4개 지역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모두 쏟아부어 초반 3~4개 지역에서 이기면 이른바 모멘텀Momentum, 즉 추진력이 생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언론은 새로운 얼굴에 환호한다. 여기에는 강자를 꺾은 다크호스가 출연했다는 반전의 재미까지 더해진다. 역전극만큼 재미있는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게 되고 결국 승리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픈 프라이머리의 제도적 특성이다. 이렇게 초반에 선전해 강력한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을 한 정치학자는 '빅 모멘텀Big Momentum이라는 뜻의 '빅모'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만약 당내 경선을 한날한시에 했더라면 2008년 오바마는 힐러리 클린턴Hilary Clinton에게 절대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p.53~54

노무현은 2002년 대선에서 국민통합21의 정몽준 대표와 단일화에 성공해 더욱 세를 확대한다. 그런데 김대중의 DJP 연합이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정당연합이었던 반면,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는 정당연합이 아닌 개인들 간의 연합이었다. 여기에 노무현이 애초 후보가 된 국민경선제도 정당의 울타리를 넘어선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두 번의 고비를 넘어오는 동안 노무현이 보여준 것은 정당이 아닌 대중과 함께 간다는 메시지였다. 이것을 정치학적인 개념으로 말하면 '정당정치'가 아니라 후보 중심의 '운동정치'다.


이렇게 집권한 노무현은 자연스럽게 당정 분리를 선언하게 된다. 명분은 당무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당에 신세를 진 것이 없으니 당을 배제하고 정당보다는 운동정치로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결정이 엄청난 패착이었다. 선거는 운동방식으로 치렀더라도 집권은 운동방식으로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정당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가야 했다.


루스벨트가 그렇게 했다. 1929년 대공황을 부른 공화당은 정권을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1932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루스벨트는 어부지리로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민주당은 집권당으로서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지역 정당이었다. 그래도 루스벨트는 집권과 함께 민주당과 함께 움직였다. 이것이 노무현과 다른 점이다. 루스벨트의 대표적인 업적인 뉴딜정책은 1932년 생겨난 '뉴딜 코얼리션New Deal Coalition', 즉 뉴딜연합의 지지를 통해 전개된다. 이 지지연합을 바탕으로 루스벨트는 1936년 재선 때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여기서 그 뉴딜연합을 조직하는 것이 바로 정당이었다. 세력을 담는 그릇은 정당이라는 얘기다. 루스벨트는 미국의 민주당에게 세력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역할을 허락한 것이고 노무현은 한국의 민주당에게 그 역할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노무현은 당정을 분리시키고 당을 약화시켰다. 당이 약화되면 운동정치의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여러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인기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은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의 4대 개혁법을 내걸었다. 지지자는 결속이 안 되고 있는 상황에서 4대 개혁법으로 자극받은 반대파는 결속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운동정치로 대선에 당선됐고 운동정치로 통치를 해야 하는데, 실제 선택한 수단이 어긋나면서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p.56

선거연합은 최대치를 모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고스란히 정치연합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를 재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미국의 빌 클린턴은 이 문제를 잘 풀어냈다. 1992년 무명인사였던 클린턴이 대통령이 됐다. 클린턴과 조지 H. 부시(조지 W. 부시의 아버지), 그리고 공화당 성향의 무당파 로스 페로Ross Perot가 삼파전을 벌인 덕분이다. 로스 페로가 부시의 표를 나눠먹은 것은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고 난 후 그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과제는 로스 페로의 지지자를 흡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클린턴은 버리는 쪽은 선택했고 1994년 중간선거에서 그의 인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1996년 재선에서 클린턴은 기존의 노선을 수정해 로스 페로를 지지했던 19.9%의 표를 흡수하는 전략으로 전환해 다시 한 번 승리한다. 선거연합에서 소수파였던 것을 정치연합에서 다수파로 개편한 것이다.

또한 선거연합이 다수파였다면 정치연합에서는 그 세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은 안정적인 다수연합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p.58~59
조광조의 개혁 모델에서 발견되는 전략적 무리함과 성급함이 노무현에게도 발견된다. 노무현은 2004년 총선에서 여대야소를 만들어낸 다음 더욱 신속한 개혁을 원했다. 사실 2004년 총선도 어부지리나 마찬가지였다.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한 보수는 노무현의 존재를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고 열린우리당과 어긋난 잔류 민주당의 표를 얻어 탄핵을 감행한다. 이런 것이 대선불복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반대에 부딪히는 역풍을 맞아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는 열린우리당 스스로, 순수한 실력을 가지고 과반이 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노무현은 현실적인 힘의 관계를 냉정하게 타산해서 무리한 싸움에 나서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총선 이후 바로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을 내세운 4대 개혁법을 내걸었다. 이는 보수를 만만하게 본 전략이었다. 아무리 불리한 조건에서도 호락호락하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 보수다. 오죽하면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말이 있을까. 생각보다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보수는 진보보다 훨씬 세다. 그런데 노무현은 조광조처럼 민생개혁보다는 이념개혁을 들고 나와 싸움을 건 것이다. 이는 상대방을 분산시키기는커녕 더 결속하게 만들었다.

또한 조광조의 실패가 시사하는 것처럼 어떤 개혁 조치든 민생개혁을 먼저 하지 않고는 성공하기 어렵다. 먹고사는 삶에 변화가 생겨야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고 그래야 권력이 안정되는 것이다. 비로소 자신의 체제가 자리를 잡았을 때 이념적인 투쟁으로 가야 한다.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이 정권을 잡자마자 마오쪄둥毛澤東(모택동) 격하格下 운동을 시작한 게 아니다. 구 소련의 니키타 흐루시초프Khrushchyov도 이오시프 스탈린Iosif Stalin을 처음부터 비판하지 않았다. 최소한 2~3년 내에는 원래의 기성체제에 뿌리내린 사람들에게 싸움을 걸면 불리해진다. 그런데 덩샤오핑과 흐루시초프도 처음부터 시도하지 않았던 싸움을 노무현은 너무 일찍 시작해버린 것이다. 노무현의 이런 태도는 탄핵 이전에도 있었다. 선거법으로 시비가 있는데도 강공법으로 돌파한 것이다. 게다가 총선에서 이겼으니 더욱 거세게 밀어 부쳤다. 이는 보수가 결속할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을 계속 제공했고, 일치단결한 보수가 밀고 들어오니 어쩔 도리 없이 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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