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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정해진미래(2)

by Diligejy 2016. 10. 29.

p.83

은퇴가 있는 노동시장은 윗세대가 꾸준히 빠져나가면서 신규 세대가 진입할 수 있는데, 의사나 변호사처럼 은퇴가 없는 노동시장은 빈자리가 나지 않는 한 신규세대가 들어갈 길이 없다. 게다가 기존 세대에는 신참이 가질 수 없는 경험과 암묵지가 풍부하다. 세월과 함께 떨어지는 정보력은 인공지능의 힘을 빌리면 된다. 어쩌면 인공지능의 등장은 젊은이들보다는 기성세대에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힘들고 귀찮은 일은 인공지능이 다 처리해줄 테니. 의사가 나이 들어 진찰이 어렵다면, 인공지능이 환자의 데이터를 대신 분석해주면 된다. 그 데이터를 보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처방을 내려주면 된다. 미국의 법률회사들은 기존에 발생한 유사 사건의 판례를 모두 찾아서 자동으로 분석해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발로 뛰며 일일이 판례를 뒤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변호사직을 유지한다면 젊은 변호사들에게 돌아갈 자리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p.95~96

군 병력을 추산하는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비단 충분한 병력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에 못지않게, 군대에 징집된 인구집단의 크기가 사회에 남아 있는 인구의 크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제 기능을 수행하며 정상적으로 유지되려면 적정 인구가 사회에 있어야 한다. 예컨대 20세 남성이 100명 있다고 가정하고 이 중 30%인 30명이 징집되었다면, 남아 있는 70명이 대학도 가고, 직장에서 일도 하고, 소비도 하는 등 사회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만일 20세 남성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15명이 군대에 가고 나머지 35명이 사회를 유지하게 된다. 만약 15명으로는 국방이 위태로워진다며 기존대로 30명을 징집한다면 사회에 남게 되는 인구는 20명밖에 되지 않는다. 사회를 유지하는데 당연히 심각한 차질이 빚어진다.


다행히 군의 현대화, 자동화 추세에 맞춰 국방부는 2022년까지 국군의 규모를 63만 명에서 52만 명으로 축소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으므로 앞에서 제시한 예상치가 그대로 들어맞을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한 가지 짚어봐야 할 점이 있다. 사병의 연령분포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구는 만21세다. 군 입대자의 46%가 20세에 입대해서 21세에도 여전히 군복무를 하는 데다, 21세 입대자 비중도 크기 때문이다. 2022년은 저출산 세대가 최초로 입대하는 시점이므로, 인구가 줄어들어 군 병력에 차질이 빚어지는 실질적인 시점은 저출산 세대가 21세를 맞는 2023년부터다. 따라서 계획대로 국군을 감축한다 해도 2023년 이후 20~25세 남성 중 군복무자의 비율은 별로 낮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점을 감안하면 국방부가 초저출산 현실의 심각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감축안을 마련한 것은 아니라는 아쉬움이 든다. 이때가 되면 징집대상 인구가 급감해 징집인원을 늘릴 수도 없기 때문에 군 제도를 전반적으로 수정하는 변화가 불가피해진다.


p.143~144

인구학적 시각에 대해 알고 나서 사보험도 국민의 건강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건강이 나빠져서 보험금 지급받을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러면 보험회사 경영이 어려워질 터이므로 회사를 위해서라도 고객들의 건강을 회사가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보험회사가 자체적으로 고객들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관리사를 두거나, 건강관리용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개발해 보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p.151

인구학에 '이스털린-프레스턴 이론'이 있다.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과 프레스턴Samuel Preston은 매우 저명한 미국의 인구학자들인데, 그들이 각기 다른 연구에서 코호트의 크기가 자살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한마디로 코호트의 사이즈로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사람이 자살하는 행위까지 포함된다는 것이다.


베이비부머처럼 코호트 크기가 큰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입시, 취업, 결혼 등 경쟁해야 하는 시기에 자살률이 높았다. 그러다 은퇴해서 경쟁에서 벗어난 후에는 다른 코호트보다 자살률이 낮았다. 왜냐하면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노인이 나밖에 없으면 외롭고 힘이 없으니 자살률이 높은데, 나 같은 노인이 많으면 외롭지도 않고 정치적 힘도 세서 요구할 것도 많아진다.


p.166

예전에는 최적인구를 뽑는 것이 '규모'만 가지고도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규모만 가지고 말하지 않는다. 인구학에서는 인구 크기보다는 구성composition을 더욱 중요시한다. 인구의 구성요소는 연령, 인종, 교육수준, 고용상태, 가구구조, 지리적 분포 등 다양하다. 같은 규모의 인구라도 어떻게 조합되었느냐에 따라서 사회가 발전할 수도 있고 쇠퇴할 수도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인구구조의 다양한 요소 중에서도 '인종'이 특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무엇이 중요할까? 그렇다, '나이'다. 위계질서가 강한 문화적 특성에도 기인하지만, 지금의 인구문제는 결국 연령구조의 왜곡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 인구는 지금도 늘고 있다. 그런데 왜 얼마 못 가 나라가 사라질 것처럼 야단인가 하면, 고령화된 인구만 급속도로 커지기 때문이다. 생산인구가 많아져야 하는데 고령인구가 커져봐야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


p.200

해외투자를 계획한다면 먼저 투자할 국가의 잠재적 발전가능성을 면밀히 따져야 할 것이다. 이때에도 인구학적 관점은 유용하다. 현재 많은 기업이 해외 OEM 방식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데, 그 나라의 노동시장은 10년 뒤에도 지금처럼 유지될지 생각해볼 일이다. 과거에는 '중국은 저임금'이라는 통념 하나만 믿고 중국에 가도 괜찮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은 더 이상 저임금 노동시장이 아닐뿐더러 중국도 지난 30년간 시행했던 한 자녀 정책 때문에 젊은 층이 줄어서 인구정책을 바꾼 형편이다. 이런 점들을 예측하면 기업의 중요한 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아가 해외에 진추하면서 비단 OEM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시장규모가 급속히 줄어들 것으로 예껸되는 지금은 해외진출의 의미를 OEM보다는 시장개척에서 찾아야 한다. 즉 그곳에서 생산한 제품을 그곳에서 소비할 수 있는 시장을 발굴하고 판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에도 그 나라의 인구를 알아야 한다. 우리 상품을 사줄 만큼 구매력을 갖춘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시장을 넓힐 수 있다.


p.200~201

베트남은 중위연령이 27세일 정도로 일단 매우 젊다. 우리나라도 저런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은 젊다. 인구도 9400만 명으로 많다.


p.202~204

현재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83%가 도시에 살고 있다. 반면 베트남은 전체 인구의 65%가 농촌에 산다. 베트남 정부는 중국의 젊은이들이 도시로 몰리는 현상을 보고, 자국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농촌붕괴를 막으려는 시도 자체는 높이 평가해야 한다.


또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인 데다, 대외적으로 인도차이나반도의 중심국이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인접국인 미얀마는 베트남보다 경제는 물론 사회발전 수준이 10년 이상 뒤처져 있고, 라오스는 공무원 연수를 베트남으로 보내 벤치마킹하고 있다. 또한 베트남은 1978년 캄보디아를 공격해 당시 악명을 떨쳤던 크메르 루즈 정권을 무너뜨리고 1989년까찌 군대를 주둔시켰다. 그 지역에서는 베트남이 맹주인 셈이다.


이 말은 곧 베트남 시장은 베트남만이 아니라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이다. 현재 이 지역의 인구는 베트남 9400만, 미얀마 5400만, 캄보디아 1600만, 라오스 700만으로 모두 합하면 1억 7000만 명이나 된다. 이 지역의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10년쯤 후면 가뿐히 2억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다. 기술적으로도 베트남은 ICT 인프라가 매우 좋다. 2016년 현재 LTE시범사업 중이고 어디를 가도 3G는 다 되며, 시골 상점에서도 와이파이가 다 터진다.


이렇게 쓰고 나니 베트남은 기회의 땅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좋은 조건만 있는 선택지는 세상에 없다. 베트남에 진출하거나 주식투자를 할 생각이라면 그들의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도 함께 살펴야 한다. 경제전문가가 아닌 내가 섣불리 조언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눈에 띄는 몇 가지만 말해보겠다.


첫째, 일단 자국기업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1980년대에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국내기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대기업은 해외기업 일색이다.


둘째,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이동 가능성이 희박하다. 사회주의 체제임에도 인맥과 출신성분과 재력에 따라 승진속도가 다르다. 고위공무원이나 사업가의 자녀들은 아예 처음부터 미국이나 유럽에서 공부하고 정착하는 등 인재의 해외 유출 문제도 심각하다. 이는 수준 높은 대학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나의 캠퍼스에 여러 개의 단과대학이 공존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베트남의 대학은 대부분 단과대학이다.


셋째, 교육열이 높지만 자국기업이 거의 없으므로 이들을 흡수할 일자리가 많지 않다. 우리나라가 1980~1990년대에 높은 교육열을 소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대학이 많았던 것 뿐 아니라 우리 자본으로 세운 기업이 적지 않았고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많은 대졸자들의 취업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베트남은 교육열도 높고 양질은 아니어도 대학의 수도 적지 않음에도 자국기업이 많지 않기 때문에 대졸자의 취업기회가 매우 제한적이다. 해외기업은 대졸자보다는 제조업에서 필요한 단순노동 인력을 더 선호한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산업을 견인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러기가 여의치 않은 구조다.


넷째, 앞서 말한 대로 베트남에서도 고령인구가 급성장하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는 어느 사회에서든 건강관리를 위한 사회적 비용증가를 의미하므로 경제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나마 고령자에 대한 부양과 건강관리의 책임이 사회보다는 가족에 있기 때문에 세금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출산율 또한 지난 12년간 2.1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어 연령구조의 왜곡이 심하지 않은 편이다.


현재 베트남의 1인당 GDP는 약 2100달러 수준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해결되지 않더라도 베트남의 인구구조와 해외자본투자, 그리고 점진적인 사회발전을 통해 아마도 1인당 GDP 5000달러까지는 어렵지 않게 도달할 것 같다. 그때까지 교육 인프라 및 자국기업의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이상의 성장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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