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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국제정세론

전략과 비극 - 카플란의 현명한 정치가

by Diligejy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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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북스]카플란의 현명한 정치가 : 비극으로부터 배우는 정치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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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들었는지 가물하지만, 전략가에겐 비관주의적 사고가 필수적이라고 배웠습니다. 

 

전략이라는 말이 범람하고 있지만, 본래 전략이라는 말이 전쟁에서 나왔고, 전쟁은 비정하며 냉혹하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잘될거라는 희망을 잃진 않아야 하지만,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할 때만큼은 잘 될거라는 희망적 사고(Wishiful Thinking)보다는 세웠던 전략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그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즉 모든 걸 대비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전략과 행복을 모두 추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건 제드 러벤펠드가 [살인의 해석]이란 소설 맨 첫 장에서 정갈한 문장으로 묘사해두었습니다. 제드 러벤펠드는 의미라는 말을 썼지만, 전략이라고 치환하더라도 무리가 없습니다.

행복해지는 방법과 의미를 얻는 방법은 다르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순간을 살아야 한다. 단지 순간을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의미를, 꿈과 비밀과 인생에 대한 의미를 얻고 싶다면, 아무리 어둡더라도 과거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하며, 아무리 불확실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연은 행복과 의미를 우리 앞에 대롱대롱 흔들어대며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다그친다.

제드 러벤펠드, [살인의 해석]

 

전략은 본질적으로 생존을 위한 방법론이지 행복을 위한 방법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전략을 통해 행복을 찾겠다는 말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다는 것보다 제정신이 아닌 말입니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사람은 그저 자기 혼자 바보가 되면 될 뿐이지만, 전략을 통해 행복을 찾는다는 사람은 자신이 책임지는 사람들을 파멸로 이끌 수 있습니다. 

 

이 책이 탁월한 이유는 타의추종을 불허할 지식과 경험을 가진 저자가 자신 또한 우물가에서 숭늉찾는 바보짓을 벌였음을 고백하는데 있습니다.

나는 내가 작성하는 기사에 제대로 거리를 두지 못한 언론인이었다. 냉정한 객관적 분석보다 감정이 앞서도 개의치 않았다. 2004년 4월 1차 팔루자전투 때 미국 해병대에 끼여 이라크로 돌아왔을 때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곳에서 나는 1980년대의 이라크보다 훨씬 참혹한 상황을 경험했다. 사담 정권하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잔인하게 탄압받았던 모든 세력이 서로 피를 흘리며 싸우는 무정부 상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이라크전쟁에 관해 오판하는 바람에 그 후 몇 년간 우울증을 겪었기 때문이다. 나는 현실주의자 시험에서 탈락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커다란 문제에서 실패를 맛본 것이다! 그 후로 중세 페르시아 철학자 아부 하미드 알가잘리의 말이 계속 귓전에 울렸다. 무정부 상태 1년이 폭정 100년보다 더 나쁘다는 그의 말이.

로버트 카플란, [현명한 정치가]

 

냉철한 전략의 세계에서 주어진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저자의 자기 고백은 얇은 이 책을 숭고하게 만듭니다.

 

이 책은 이렇게 자기고백을 하는 저자가 그리스 고전과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숙독하며 내놓은 반성문입니다. 그리고 워싱턴의 의사결정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이 지점에서 마치 마키아벨리가 떠오릅니다. 마키아벨리는 1513년 초겨울의 어느 날 메디치 가 왕조에게 자신이 그동안 고전을 숙독하고 외교 활동을 하며 얻은 체험을 바탕으로 만든 [군주론]을 헌정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죽을 때까지 메디치 가에서는 그의 책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과연 마키아벨리처럼 되지 않고 워싱턴의 의사결정자들에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네요. 

 

이 책에서 저자는 계속해서 비극에서 배울 것을 강조합니다. 많은 비극 작품 중에서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고른 이유가 여기 있을겁니다. 비극은 이 세상이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고 (오셀로 제외) 선과 선의 대결(대표적으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략을 세우는데 있어서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정의'만을 위해 돌진하면 그건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음을 그는 많은 고전과 역사 사례를 들며 논증합니다.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전략은 행복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기술이기 때문에 선과 악을 넘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대표적으로 예시로 드는 사례는 FDR로 유명한 프랭클린 D 루즈벨트입니다. 현재 뉴스에 빠지지 않는 푸틴보다 몇 백배는 악행을 저지른 독재자임에도 히틀러라는 적을 이기기 위해 루즈벨트는 소련과 손을 잡았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바탕으로 바이든 정부와 그 후임 정부는 언젠가 시진핑이나 푸틴같은 지도자들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푸틴의 경우 최근 쿠테타로 인해 저자가 책 전반에 걸쳐 극도로 경계하는 무정부상태로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인 만큼 예측이 더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비록 국제정치에 관한 책이지만, 사업전략을 구상하는 사람에게도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전략'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이 좋은 안내서가 되줄거라고 생각합니다. 전략적 사고라는 이름의 경영학 용어든 비극적 사고라는 저자의 용어든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밑줄긋기

p.21

현명한 지도자들은 비극을 피하기 위해서는 비극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다.

 

p.21-22

진정한 비극은 풍경이 아무리 광대하더라도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사실에 대한 혹독한 인식으로 특정지어진다. 이 세계는 온갖 제약으로 가득하다. 지각한다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은 종종 너무 늦게 이루어져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고위직에 있는 사람의 비애와 역설은 그에게 권한이 있다 하더라도 그의 선택지가 정말로 끔찍할 수 있다는 것이다. 

 

p.30

헤로도토스가 인용한 페르시아인의 말처럼, "우리는 필연성의 속박을 따른다. 이는 인류에게 쓰디쓴 고통이다. 많은 것을 알지만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니". 그렇다 해도 계속 나아가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분석이란 우리가 어려운 선택을 내리는 과정이다.

 

p.40-41

모겐소가 말하듯,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의 가장 비열한 힘들에 "맞서는 게 아니라 그것들과 협력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인류를 진전시키려는 시도와 아무 관계 없는 냉소주의도, 비관주의도 아니다. 세계에는 치유할 수 없는 잘못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영웅은 온갖 간계를 자유자재로 구사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비극적 감성이다. 물론 마키아벨리는 이런 견해를 서구 정치사상에 처음 들여온 인물 가운데 하나다.

 

p.62

운명은 언제나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주기적으로 우리 삶을 결정하지만, 약하고 부정직한 이들만 자신의 불행을 운명 탓으로 돌린다.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우리의 잘못이 단지 일부일지라도(또는 전혀 없더라도) 우리는 도덕적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p.81-82

1917년 러시아 대중 또한 무정부 상태와 그 결과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들은 차르 니콜라이 2세의 폐위와 더불어 혁명이 승리로 끝났다고 믿었고, 중세적이고 폭압적인 로마노프왕조가 러시아에 존재하는 유일한 질서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왕조가 무너지자 국가와 사회제도는 완전히 붕괴했고, 결국 몇 달 뒤 볼셰비키 쿠데타가 일어나 수십 년간 수천만 명이 살해되고 노예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로 질서가 자유보다 앞선다. 질서가 없으면 누구도 자유나 자유권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와 이후 세대들은 이런 발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신체적 경제적 안전을 두루 누리면서 성장한 첫 번째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험이 부족해 안전히 담보되지 않는 삶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 질서를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 질서를 덜 억압적으로 만드는 데에만 관심을 보인다. 다시 말해, 현재 우리 세대는 비극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이전의 모든 세대는 질서에 집착했다. 질서가 없으면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도 없고, 죄인과 무고한 사람을 구별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자유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홉스의 유명한 말처럼, 정의도 있을 수 없다. 셰익스피어가 군주정을 가장 자연스러운 정부 형태로 여긴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아랍 세계에서 가장 안정되고 문명화된 체제는 전통적 군주정이다. 민주주의를 만들려는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하고 세속적 독재가 역사적 정당성의 부재를 극단적인 형태의 잔인함으로 보충한 것을 감안하면 그렇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바트당 정권,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을 보라.

 

p.100-101

비극은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에만 끝난다. 그리스인들은 가차 없이 이 점을 못 박는다. 그들은 "현대인의 감성이 움찔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묘사한다."

 

우리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는 것은 패배주의나 비겁함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런 위대한 성과를 낳지 못해도 행동하는 것, 용감하게 행동하는 것은 인간의 장엄함에서 궁극을 이루며 비극이 어떤 것인지를 상기시켜준다. 

 

p.119

권력의 역설은 책임지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p.120~121

국가가 폭력 사용을 독점해야 한다는 사실은 최악의 운명, 즉 무정부 상태로부터 우리를 구해준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가 피에 굶주려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터무니 없는 짓까지 벌여가며 국가 권력을 잡은 나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이라는 20세기의 저 유명한 산업화된 폭정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보다 일상적인 이야기다. 즉 원시적 형태의 국가나 제국이 추구하는 가치는 그 체제가 억누르고자 한 홉스적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다. 국가에 대한 충성과 가족에 대한 충성 사이의 긴장은, 비록 그 자체는 해결할 수 없지만, 국가를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범위 안에 묶어두는 데 도움이 된다.

 

p.125

인간은 선택지가 극히 제한된 가운데서도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생존을 위한 투쟁을 조정해나간다. 모든 행동을 생존의 필요성으로 환원하는 것은 타락을 낳지만, 생존을 아예 무시하고 오직 더 큰 선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생존을 당연시 하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 또는 대다수 나라들은 그런 사치를 누리지 못한다.

 

p.139

문학과 예술, 언론의 엘리트들은 반역자를 사랑한다. 반역자는 어떤 잘못도 저지를 수 없다. 관료적 책임이라는 짐을 떠안지 않은 채 이상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관료적 책임은 언제나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내키지 않는 타협을 필요로 하며,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 자유의 투사는 협상하거나 양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이상을 순수하게 유지할 수 있다. 반면에 폭군은 제우스든 현대의 독재자든, 또는 심지어 민주적으로 선출된 미국 대통령이든 한 선 대신 다른 선을 선택함으로써 통치하고 고통을 야기해야 하는 점을 떠안은 채 분투한다. 따라서 선한 폭군이라 하더라도 사랑받는 경우는 드물다. 

 

p.141

폭군은 인간 본성을 억누를 수 없으며, 바로 그 본성에서 반역이 일어난다. 인간은 경이로운 존재다. 자연 세계를 극복할 수 있다면, 폭정도 이겨낼 수 있따. 저 유명한 <인간에게 바치는 송가>에서 [안티고네]의 합창단은 낭랑하게 읊는다. "인간은 모든 역경에 대항할 수 있으며, 아무 대비 없이 미래를 맞이하는 일도 결코 없다네." 비록 셀 수 없이 많ㅇ느 대중의 야심이 충돌하고 뒤얽히는 탓에 운명을 해독할 수는 없지만 운명을 만드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바로 이것이 실존의 난제다.

 

p.149

전쟁은, 민간인 사상자가 거의 또는 전혀 없고 명예를 아는 사람들끼리 싸워서 비교적 깔끔한 경우라고 해도, 그야말로 지옥이다. 전쟁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이들만이 순수한 양심으로 전쟁을 지지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전쟁을 명예와 동일시하는 것에 관해 말하자면,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 1부에서 폴스타프가 그 특유의 유머를 곁들인 진지한 어조로 그런 망상을 일축한 말이 유명하다.

 

명예가 잘린 다리를 붙일 줄 알아? 아니. 팔은? 아니. 상처의 통증을 없앨 줄 알아? 아니. 그러면 수술을 할 줄 모른단 말이지? 그래. 명예가 뭐야? 말이지. 명예란 말 속에 뭐가 있어? 명예가 뭐야? 바람. 계산은 깔끔하군! 누구한테 명예가 있지? 수요일에 죽은 사람. 그 사람이 명예를 느끼나? 명예를 들어? 아니. 

 

p.161

셰익스피어의 카이사르는 용기의 본질을 압축해 말해준다.

 

겁쟁이는 여러 차례 죽음을 맞이하나
용감한 사람은 단 한 번 죽음을 맛본다.

 

 

p.162~163

아가멤논과 햄릿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지식이 있지만, 트로이아와의 대결을 눈앞에 둔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행동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신속하게. 반면 햄릿은 심사숙고할 여유가 있다. 간혹 지도자는 자기를 속여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지 않으면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도자는 어떤 길을 택하든 자신이 하려는 행동이 어떤 피해를 야기할지 낱낱이 살피면서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도자는 멀리 떨어진 현장의 현실이 흑과 백으로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으며, 상황이 수수께끼투성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흑과 백이 분명히 존재하고 수수께끼 따위는 없다는 듯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 정의를 살펴보더라도 행동은 세부적인 지적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도자는 훗날 평가를 받을 뿐, 행동하는 바로 그 순간에는 자신 앞에 놓인 사실들만 알 수 있다. 증거는 기껏해야 부분적인 반면, 그 증거를 가지고 내려야 하는 결정은 돌이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는 지도력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는 것이다. 

 

p.194

고대 그리스인들은 알았던 교훈을 우리는 전혀 배우지 못헀다.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는 없기 때문에 세계의 많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교훈을.

 

p.210

조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후임자들은 푸틴이나 중국의 시진핑같이 도덕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다른 지도자들에 대해 또 다른 숙명적인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것이다. 문화대혁명의 파괴 행위가 여전히 진행 중이었는데도 소련에 맞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 닉슨과 키신저가 중국과 휴전을 맺고 소련과 데탕트를 달성한 사실을 기억하자. 이로써 유리한 힘의 균형을 통해 냉전이 열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다는 냉전의 지고한 도덕적 목표를 달성했다. 이번에도 역시 선과 선의 싸움은 어느 정도의 악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로움은 아무리 도덕적으로 만족스러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현명한 국가 통치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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