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한국소설

한국이 싫어서

by Diligejy 2018. 3. 3.

p.12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p.25

젊은 남자들이 「고해」노랫말에 빠지는 이유는 알 것 같아. 예쁜 여자들이 자기한테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니까 좌절감이 들 거 아냐. 그 좌절감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다가 자뻑의 길을 택하는 거지. 그게 된장녀 어쩌고 하며 못 먹는 감에 돌 던지는 못된 심보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중년 남자들이 「빙고」를 부르는 이유는 다들 너무 힘들어서 아닐까. 다들 이 땅이 너무 싫어서 몰래 이민을 고민하는거지. 그걸 억지로 부정하고 자기 자신한테 최면을 걸고 싶은 거야.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어."라고,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라고. 그런데 이민을 가면 왜 안 되지?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


p.120~121

걔들은 아마 앞으로 몇 년 뒤에도 여전히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 거야. 솔직히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는 거지. 걔들이 원하는 건 내가 "와, 무슨 그럴 쳐 죽일 년이 다 있대? 회사 진짜 거지 같다, 한국은 왜 이렇게 후지냐."라며 공감해 주는 거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냐.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이 들고, 실행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니까. 회사 상사에게 "이건 잘못됐다."라고, 시어머니에게 "그건 싫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무서운 거야. 걔들한테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소중해


p.124~125

"예나야, 너 비행기에서 낙하산 메고 떨어지는 거랑, 빌딩꼭대기에서 낙하산 메고 떨어지는 거랑, 어느 게 더 위험한지 알아?"


"어느 게 더 위험한데?"


내 동생은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뜨악한 표정이었지.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게 훨씬 더 위험해.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바닥에 닿기 전에 몸을 추스르고 자세를 잡을 시간이 있거든. 그런데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그럴 여유가 없어. 아차, 하는 사이에 이미 몸이 땅에 부딪쳐 박살이 나 있는 거야.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예비 낙하산을 펴면 되지만,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한테는 그럴 시간도 없어.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그걸로 끝이야. 그러니까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해."


p.160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문학 > 한국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행운  (0) 2018.03.20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0) 2018.03.20
사랑의 생애  (0) 2017.12.09
디 마이너스  (0) 2017.08.14
스파링  (0) 2017.07.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