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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글

[일상의 관찰]

by Diligejy 2018. 3. 16.
취업성공패키지 1단계에 참여하고 있다. 거기선 참여도에 따라 3분류로 나눠 15만원에서 25만원을 지급하고 있는데, 의무상담만 할 경우 15만원, 의무상담에 고용센터에서 여는 단기강좌 2강을 들으면 20만원, 4일짜리 장기프로그램을 들으면 25만원을 준다고 했다. 왔다갔다 하기만 해도 왕복 4시간 이상이 걸리고, 체력이 빠지는 지라 단기강좌 2강만 더 듣겠다고 했다.

아침 10시 반에 강의가 시작되고, 10분전에는 도착해있어야 한다고 해서, 나는 순진하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꼭 일찍 도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7시에 일어나 씻고, 학교 셔틀버스에 탑승했다.
그리고 나이 지긋한 교수님이 탑승하셨는데, 기사님은 교수님을 아시는지 "안녕하세요 교수님, 어디가시나요?"라고 하시며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 분들은 곧장 정치얘기를 시작했다. 처음은 안희정 얘기였다. 안희정이 지저분하게 해서 그렇다는 등 어떻다는 등, 충남 정치판도가 예상하기 힘들다는 등, 이 나라의 정치인이 문제라는 등 나는 그런 내용보다는 그분들의 대화흐름이 관심있었다. 그 분들은 친한듯 공감하는 듯 태도를 보였지만, 내가 관찰하기에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어떠한 면도 공개하지 않았다. 와이프에 대한 얘기도, 자식들에 대한 얘기도, 최근 밥을 무엇을 먹었는지에 대한 얘기도 없었다. 아마 언제까지라도 없을거라는 무언가 근거를 댈순 없지만 그럴거란 느낌을 받았다.

이분들에게 필요했던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만났을 때 인사하며 대화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길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이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던걸로 보였다. 그리고 정치라는 대화소재는 그 목적에 적합했다. 타인에 대한 얘기였으며, 자신은 올바른 사람인 척 할 수 있고, 같이 분노하기 좋은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시라. 이분들의 삶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갑자기 그분들의 삶을 관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거기엔 선도 악도 없고, 그저 현상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0여분이 흐른 뒤 교수님의 목적지에 도착하자, 교수님은 안녕히 가시라 말한 뒤 하차하셨다. 기사님도 안녕히 가시라 말한뒤 다시 차를 운행하셨다.

보통 이 정도 글을 쓰면 나이먹고 정치얘기만 하는 빈곤한 꼰대는 되지 말아야지, 혹은 조금 더 깊이있는 친구를 사귀어놓아야지 라고 교훈을 뽑아내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마치 삶이 삶으로 흘러가듯 그저 나는 관찰을 했을 뿐이고, 그분들은 그분들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거기엔 어떠한 교훈도, 악행도, 평가도 없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거기에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평가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 나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도착한 고용센터.
순진하게 일찍도착해야겠다고 생각해서 20분 전에 도착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강의를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많이 계셨다. 이분들은 실업급여를 지급받기 위해 구직활동으로 이 강의를 들으러 오신거라 했다.
강의장에 들어가려 하자, 담당 직원이 30분 되면 들어오라고 했다. 특별히 나쁜 말을 쓰진 않았지만, 상당히 권위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 날 강의주제는 '고용차별과 권리구제'였다.

30분이 지나도 사람들은 들어왔다. 그제서야 내가 순진했다는 걸 느꼈다. 대학교 강의에서 좀 늦어도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눈감아주시듯, 그 강의 또한 그랬다.

강사는 충남노사발전재단 소장이라고 했다. 그의 인상은 서글한 편이었으나, 왠지 그 속에는 다른 것이 있을 거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강의를 들으러 오신분들은 나이가 많고,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많았기에 핸드폰은 진동으로 해달라는 부탁에도 벨소리를 종종 울렸고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는데, 이 사람은 벌금 100원이라며 나름대로 집중시켰다.

나는 원래 강의를 열심히 들을 생각이 없었기에 맨 뒷자리에서 책 한권을 펼치며, 책보면서 빨리 시간이 가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강사의 강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반응을 관찰하다보니 재미있어서 그걸 관찰하기로 했다. 강사는 근로기준법과 기간제법의 개정내용을 알려주고, 사례를 보여주며, 사용자가 근로자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월급분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열심히 강조했다. 그리고 차별을 받았을 경우 기간제법에 따라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받을수 있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한 사례가 없다며, 꼭 하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노동법은 아무리 일이 힘들더라도 잘 아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감독관이 있더라도 그들의 물리적 한계로 권리가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공감하는 듯이 끄덕거리며 강사가 농담하면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데 호호호 웃기도 하고, 야간수당 계산문제를 풀어보라면 마치 학생으로 돌아간듯 틀린답이라도 열심히 외치셨다.

강사는 웃으며 그렇게 수당을 적게 얘기하면 나머지는 자신이 가져도 되겠냐며 농담을 했고, 틀린답을 외친 사람들은 얼마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민했다.

1시간 반 안에 뭔가 계속 전달하려는 강사의 말 중에 "안주려는 사용자보다 더 나쁜 사람은 요구할 줄 모르는 근로자"라는 말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노동청에 신고를 해도, 소송을 해도, 그리 신속하게 처리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근로자와 사용자끼리의 내부합의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근로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법은 알아야 한다고 강의 내내 강조했다.

하지만, 야근까지 마치고 나면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오는 근로자들에게 그 말은 얼마나 실효성있게 다가왔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강사도 그 생각을 했던지 일하고 나시면 시간도 없고 힘드시겠지만 알아야 한다며 계속해서 강조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알아야지 하는 태도를 보인 듯 했지만, 실제 그분들이 다시 직장에 돌아가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현실은 당위를 따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그 강사가 당위만 쫓고 있다며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 강사는 노사발전재단의 소장으로서 자기가 보아온 마음아픈 사연들을 얘기하고, 그걸 개선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개선은 힘들고, 결국 개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주장을 하고 찾아야 하기에 그렇게 주장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2개의 현상을 관찰하기만 했을 뿐인데 힘이 들었다. 어떠한 교훈을 얻거나 평가를 내리지 못했다. 그냥 관찰만 했을 뿐이다. 배가 고팠다. 그런데 학교 점심시간은 훌쩍 지나갔고, 자취방에 쌀이 떨어진 상태에 식비에 많은 돈을 쓰고 싶지 않던 나는 라면 2개를 사서 끓여먹고 잠시 누워 그 장면들을 다시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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