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일본소설

1Q84 BOOK 2

by Diligejy 2018. 5. 11.

p.36

"체호프가 말했어." 다마루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야기 속에 권총이 나왔다면 그건 반드시 발사되어야만 한다, 고"


"무슨 뜻이죠?"


다마루는 아오마메를 정면으로 마주하듯이 서서 말했다. 그가 아주 조금 몇 센티미터쯤 키가 컸다. "이야기 속에 필연성이 없는 소도구를 끌어들이지 말라는 거지. 만일 거기에 권총이 등장했다면 그건 이야기의 어딘가에서 발사될 필요가 있어. 체호프는 쓸데없는 장식을 최대한 걷어낸 소설 쓰기를 좋아했어."


아오마메는 원피스 소매를 바로잡고 숄더백을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당신은 그걸 걱정하는 거군요. 만일 권총이 등장한다면 그건 반드시 어딘가에서 발포되는 결과를 낳고 말거라고."


"체호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래."


"그래서 가능하다면 내게 권총을 건네주고 싶지 않은 거고."


"위험하기도 하고 불법이기도 해. 게다가 체호프는 믿을 수 있는 작가야."


"하지만 이건 이야기가 아니에요. 현실세계의 일이지."


다마루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하고 아오마메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러고는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그걸 누가 알지?"


p.50

시간은 자꾸자꾸 흘러갑니다. 기회는 사라져갑니다. 그리고 돈이 있으면 그걸로 시간을 살 수 있어요. 사려고 마음먹으면 자유까지도 살 수 있습니다. 시간과 자유, 그건 인간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지요.


p.87

사람이 자기 목숨을 끊는다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야. 영화와는 달라. 영화에서는 다들 깨끗이 죽지. 아픔도 느끼지 않고 덜컥 죽어버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깨끗이 죽지 못하고 침대에 누운 채 오줌이니 뭐니 십 년 동안 흘리게 된다고.


p.113

과거를 아무리 열심히, 면밀하게 다시 바꿔 쓴다 해도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의 큰 줄거리가 변하는 일은 없다. 시간이라는 건 인위적인 변경은 모조리 취소시켜버릴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미 가해진 수정에 다시금 새로운 수정을 덧칠하여 흐름을 원래대로 고쳐갈 게 틀림없다. 다소의 세세한 사실이 변경되는 일은 있다 해도, 결국 덴고라는 인간은 어디까지나 덴고일 수밖에 없다.


덴고가 해야 할 일은 아마도 현재라는 교차로에 서서 과거를 성실히 응시하고, 그 과거를 바꿔 쓸 수 있는 미래를 차곡차곡 써나가는 것이리라. 그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p.124

나 자신보다 룰을 우선한다. 그것이 중요하다.


p.133

나라는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은 무無가 아니다. 황폐하고 메마른 사막도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랑이다. 나는 변함없이 덴고라는 열 살 소년을 그리워한다. 그의 강함과 총명함과 다정함을 그리워한다. 그는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육체는 멸하지 않고, 서로 나누지 않는 약속은 깨지는 일이 없다.


p.137~138

신문은 '일어난'일은 적극적으로 다루지만 '진행중인'일에는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매체다.


p.252

설명을 듣지 않으면 모른다는 건 설명을 들어도 모르는 것이다.


p.276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실증 가능한 진실 따위는 원하지 않아. 진실이란 대개의 경우, 자네가 말했듯이 강한 아픔이 따르는 것이야.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은 아픔이 따르는 진실 따윈 원치 않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건 자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의미있게 느끼게 해주는 아름답고 기분 좋은 이야기야. 그러니 종교가 성립되는 거지.


p.289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도 없고 절대적인 악도 없어." 남자는 말했다. "선악이란 정지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장소와 입장을 바꿔가는 것이지. 하나의 선이 다음 순간에 악으로 전환할지도 모르는 거야.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 도스토옙스키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묘사한 것도 그러한 세계의 양상이야. 중요한 것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선과 악에 대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지.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면 현실적인 모럴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돼. 그래, 균형 그 자체가 선인 게야.


p.325~326

빛이 있는 곳에는 그림자가 없어서는 안 되고, 그림자가 있는 곳에는 빛이 없어서는 안 되지. 빛이 없는 그림자는 없고, 또한 그림자가 없는 빛은 없어. 카를 융은 어느 책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어.


'그림자는 우리 인간이 전향적인 존재인 것과 똑같은 만큼 비뚤어진 존재이다. 우리가 선량하고 우수하며 완벽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림자 쪽에서는 어둡고 비뚤어지고 파괴적으로 되어가려는 의지가 뚜렷해진다. 인간이 스스로의 용량을 뛰어넘어 완전해지고자 할 때, 그림자는 지옥에 내려가 악마가 된다. 왜냐하면 이 자연계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 이하의 존재가 된다는 것과 똑같은 만큼 깊은 죄악이기 때문이다.'


p.393

주의 깊고 참을성 강한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위기는 방심한 단 한 순간에 찾아온다.


p.440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것이 필요해. 말로는 잘 설명이 안 되지만, 의미를 가진 그런 풍경. 우리는 그 뭔가에 제대로 설명을 달기 위해 살아가는 그런 면이 있어. 난 그렇게 생각해.


p.443~444

인간의 생명은 고독한 것이기는 하지만 고립된 것은 아니다. 그 생명은 어딘가의 또다른 생명과 이어져 있다. 


p.592

만일 그 안에 있는 것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이곳을 떠난다면 분명 나는 평생 그것을 후회하리라. 그 무언가에서 눈을 돌려버린 것에 대해 언제까지고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리라.


p.593

이대로 도망칠 수는 없다. 언제까지고 겁에 질린 어린애처럼 내 앞에 닥친 일들에서 눈을 돌리고 살아갈 수는 없다. 진실을 아는 것만이 인간에게 올바른 힘을 부여해준다. 그것이 설령 어떤 모습의 진실이라 해도.


p.597

이제부터 이 세계를 살아가는 거야. 덴고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것이 어떤 구조를 가진 세계인지, 어떤 원리를 바탕으로 움직이는지, 그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곳에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지 예측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거기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건 그는 달이 두 개 있는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찾아낼 것이다. 이 온기를 잊지 않는다면, 이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문학 > 일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딧불이  (0) 2018.06.08
1Q84 BOOK 3  (0) 2018.05.13
1Q84 BOOK1  (0) 2018.04.30
은하영웅전설1  (0) 2018.04.30
스푸트니크의 연인  (0) 2018.03.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