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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어른은 어떻게 돼 - 가족을 통해 본 일본 사회

by Diligejy 2019. 6. 26.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에 이어 박철현님의 책을 읽었다. 두 책의 공통점은 얇고 문장이 가독성이 좋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지하철에서도 잠시 볼 수 있고 방에 뒹굴면서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편안했다.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었다. 부담없이 볼 수 있다는 점, 그게 좋았다.

 

이 책의 제목은 어른이 되는 32가지 방법과 같은 비법을 전수해줄 듯한 인상을 주지만, 전혀 그런 요소는 없었다. 낚였다. 출판사에 전화해서 낚인것에 대해 책임지라고 할 수도 없고... 아... 낚시란 무엇인가.... 라고 잠시 멍해졌다. 아무래도 저자에게 쪽지를 보내서 따져야겠다.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를 받다]는 직렬형으로 박철현이라는 사람의 인생이야기를 중점으로 하나의 스토리를 쭉 풀어낸 느낌이었다. 반면 [어른은 어떻게 돼]는 병렬형으로 박철현이라는 사람의 가족이야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일본 사회를 저자의 관점에서 잠시 관찰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약간 아쉬움과 좋았던 점이 공존한다. 직렬로 풀어냈던 전작에서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아무래도 개인에 집중하고 하나의 스토리가 완결되는 느낌이다보니, 깊이 들어가는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반면 이 책은 다양한 생활 속 이야기를 풀어내다보니, 조금 감질나는 느낌이 난다. 아쉽다. (괜찮다. 저자가 쫓아오진 못할 것이다. 동해안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 읍읍)

 

그렇지만 이 책은 굳이 학술서가 아닌 에세이를 통해 일본사회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물론 저자가 경험한 일본은 일본사회의 일부일 수 있고, 저자의 프레임일 뿐이다. 그렇지만, 하나의 사회에서 공유하는 상식이 있을 거기 때문에 어느정도 일본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다보면 일본사회에 대해 호의적으로 바라봄을 알 수 있다. 당연하다. 일본사회에 호의적이지 않았다면 짐싸들고 한국으로 귀환했거나 아니면 다른 나라를 알아봤을테니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아내 분의 덕이라고 생각한다. 읽어보면 알 수 있듯 저자의 삶은 쉽지 않았다. 저출산, 청소년 정책이 잘 정비되어 있는(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일본이지만, 4명의 아이를 키우기란 극한직업에 가깝다. 굳이 책으로 이걸 표현할 필요가 없다. 잠시 꼬마 아이들과 놀아주는 자원봉사 또는 아르바이트를 해보면 알 수 있다. 아이를 돌본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아이들 놀아주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다들 말하기 힘들겠지만, 아무래도 다문화 가정이다보니 하나하나 신경쓰이는 점들도 얼마나 많았을지 솔직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럼에도 존버 정신을 발휘해 열심히 존버를 해왔다. 대단하다. 일본 사회의 지원과 대단한 아내분, 그리고 긍정적 태도의 저자, 생각 깊은 아이들 이 4가지 요소가 다 맞아들어갔다.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일본사회가 무조건 다 지원해주고 그런거인걸로 오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글의 중간중간마다 한국인으로서 낯을 가리는 저자의 태도가 조금씩 보인다.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태어나고 자란 곳은 한국이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특히나 아이들 문제에 있어선 더더욱 그렇다. 오히려 아이들이 더 당당하다. 뭉클하다.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음... 잘 모르겠다.

 

생활력이 엄청 강한 저자도 죽고싶었던 적이 있었나보다. 66페이지에 "풀리지 않은 일은 없다.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의 문제다. 그래서 별로 걱정을 안 한다. 어차피 덤으로 사는 삶,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살면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겠지. 죽었다 살아난 인생, 마음이 흔들릴 일이 없지 않겠는가."라는 문장이 나와있다. 하도 죽고 싶어서 열차쪽으로 다가간 저자에게 우연히 그 자살을 막은 사람이 있었고,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한다. 

이 문장에서 감촉이 왔다. 요새 나도 '죽고싶다'는 생각이 자주 올라온다. '올라온다'는 의미는 내가 스스로 생각한게 아니라 자동적으로 떠올랐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존버, 또 존버할 뿐이다. 

 

무튼 전작처럼 직렬형으로 깊이 들어가는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에겐 약간 아쉬울 수 있겠지만 무거운 학술서 대신 에세이를 통해 잠시 일본사회를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에겐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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