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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

가상은 현실이다

by Diligejy 2020. 10. 19.

새로운 기술과 그로 인한 변화를 해석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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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은 현실이다:페이스북 알파고 비트코인이 만든 새로운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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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

가상은 실재만큼 견고하고, 실재는 가상만큼 유령스럽다. -빌렌 플루셔

 

p.8

가상 기술이란 가상현실 기술이 아니다. 가상기술은 실재를 변형시키고 증강시키는 모든 종류의 초실재 기술을 뜻한다.

 

p.8~9

가상은 실재를 빨아들이며 발전한다. 소셜미디어는 인간의 데이터를 흡수하며 성장한다. 인공지능은 인류의 지식을 흡수하며 진화한다. 암호화폐는 실물화폐를 흡수하며 번성한다. 가상은 실재가 쪼그라들 때까지 실재를 빨아들이고 결국 실재를 위협할 정도로 자라난다. 그렇게 커진 가상은 실재에 기생하지 않고 오히려 실재가 가상에 기생하게 된다. 실재는 위축되고 권력은 가상으로 이동한다. 실재를 집어삼킨 가상은 마치 독립된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가상을 만들어낸 것은 인간이지만, 가상에는 인간도 어찌할 수 없는 주체성이 있다.

 

p.9~10

모든 혁명적인 기술은 언제나 기술을 넘어선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변화가 기술의 도구적 속성보다도 더 기술의 본질을 자세히 밝혀왔다. 철도는 고철로 이루어진 궤도일 뿐이지만 근대적 시간 개념을 낳았다. 세탁기는 빨래 기계일 뿐이지만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을 낳았다. TV는 영상을 송신하는 도구일 뿐이지만 소비사회를 낳았다. 철도, 세탁기, TV는 모두 단순한 도구인 동시에 문명을 바꾼 혁명적 기술이었다. 가상기술은 이들이 가진 도구적 속성(소통, 계산, 거래)보다 문명에 더 깊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다.

 

p.28

카메라는 구글 렌즈처럼 현실을 '읽는'도구가 된다. 카메라를 통해 우리는 현실을 주어진 그대로가 아니라, 현실을 더 풍부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현실의 사물과 연결된 디지털 정보는 더 이상 웹상에 머물러 있지 않고, 카메라를 통해 현실에서 실시간으로 열람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와 함께 카메라는 '카메라'라는 과거의 용어가 충분히 정의하지 못하는 새로운 도구적 본질을 갖게 될 것이다. 마치 스마트폰이 전화기라기보다 컴퓨터인 것처럼, 카메라는 이제 촬영 장비라기보다는 센서다. 센서는 현실을 가상의 맥락에서 읽어낼 뿐만 아니라 현실에 가상의 정보를 추가하는 기능도 함께 갖게 될 것이다. 아울러 스마트폰이 더 이상 수화기의 형태가 아닌 것처럼, 카메라 역시 지금의 하드웨어 형태가 아닐 것이다. 카메라는 스마트 글래스의 형태에서 더 나아가 생체 이식이 가능한 육안 렌즈로 재탄생할지도 모른다.

 

p.33~34

필터링이 난무하는 인스타그램 세계에서 #nofilter는 필터링하지 않은 현실의 자연스러움, 순수성을 과시하는 맥락을 담고 있다. '진짜 현실'이 조작적 이미지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현실'이 필터링의 반대항으로 표현된다는 것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현실은 현실에 기준점을 둔 방식, 즉 '진짜 현실Real Reality'로 표현되지 않는다. 현실은 필터링을 거치지 않았다는 '부정형No Filter'로 표현되고 이해된다. 우리는 이로부터 다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필터링한 현실이 더욱 기준이 되는 현실Normal Reality이며, 실재의 현실은 오직 가상에 대한 안티테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헤겔의 말하기를 빌리자면, 실재의 현실은 즉자적An Sich 현실이 아니라, '필터 없는'모드로서 필터링된 현실에 대한 대자적Fur Sich 현실로서 존재한다. 현실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필터링이 디폴트인 현실이기 때문에 비로소 필터 없는 모드가 가능하다. #nofilter는 오늘날 현실이 당면한 상태를 은연중에 폭로하는 단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진짜 현실이라 믿는 '필터 없는 모드'조차 스마트폰 카메라의 내장 필터에 의해 한번 걸러진, 또 다른 필터링된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nofilter조차 실은 가상적인 것이다. #nofilter 현실이 다른 필터링된 현실에 대해 갖는 유일한 차이점은 사람들이 #nofilter를 진짜 현실이라고 굳게 믿는다는 점뿐이다. 즉 허위의식뿐이다.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본의 현실Ground Truth, 어떠한 필터도 적용되지 않은 필터 이전의 현실, 진짜 현실이 있다는 관념은 허구임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필터링되지 않은 현실은 없다.

 

p.38

아마존 고를 단순히 '무인화' 또는 '자동화'로 받아들이는 것은 좁은 해석이다. 아마존 고는 그보다 더 큰 함의를 가진다. 아마존 고는 인간 노동을 자동화했다기보다는, 인간 노동이 개입할 여지 자체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계산대에 인간 대신 기계를 앉힌 것이 아니다. 계산대에 의존하는 쇼핑 프로세스 자체를 없애버렸다. 물건을 집어든 순간(장바구니 담기)과 매장을 나가는 순간(결제하기)이라는 온라인 쇼핑의 방식을 오프라인 매장에 그대로 구현했다. 이는 온라인의 방식이 오프라인의 방식을 완전히 대체한, 실재의 '가상화'다. 계산대뿐만이 아니라 아마존 고의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이 점이 더 분명해진다.

 

아마존 고는 온라인에 존재하는 아마존닷컴에 접속하기 위한 오프라인 창구다. 실제 거래를 처리하는 공간은 아마존 고 매장과 연동된 클라우드 서버다. 매장은 고객이 가상환경에 접속하기 위한 단말기와 같다.

 

p.50

소셜미디어는 현실의 연장이라기보다는 현실의 왜곡이다. 현실은 소셜미디어를 거칠 때 그대로 반영되지 않고 굴절된다. 현실의 사건은 소셜미디어에서 가짜 뉴스로 재탄생한다. 그뿐 아니다. 우리의 자아도 소셜미디어에서 새로운 가상 자아로 재탄생한다. 소셜미디어는 실재와 이어지기보다는 실재와 모순되는 가상세계인 것이다.

 

p.60

수백만 개의 복제품은 원본이 가진 맥락을 넘어 다양한 맥락으로 소비되며, 작품에 전에 없던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 본질을 완전히 왜곡하기도 한다. 양적인 증가가 본질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광고에 등장하는 모나리자와 루브르의 모나리자는 전혀 다른 모나리자다. 그리고 현대인은 절대로 다빈치 시대의 살맏르이 바라보는 것처럼 모나리자를 바라볼 수 없다. 우리는 각 시대의 문화라는 필터로 걸러진 모나리자를 볼 수 있을 뿐이다.

 

p.67

인스타그램을 의식해 만들어진 알록달록한 배경과 키치한 전시가 주를 이루는 미술관,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의 촬영만을 위해 만들어진 홈 스튜디오는 오늘날 '실재'가 당면한 위기를 폭로하며 시대의 비밀을 드러낸다. 물리적 실재가 공간의 본질이 아니라, 공간은 인스타그램 가상세계에 의해서만 비로소 본질을 부여받는다. 인스타그램을 위해 만들어진 미술관에 방문하는 것은 전시를 감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술관을 배경으로 찍는 내 인스타그램 사진을 위해서다. 이러한 공간이 궁극적으로 전시하는 것은 작품이 아니라 그곳을 방문한 나이고, 전시가 이뤄지는 실제 공간은 갤러리가 아니라 인스타그램의 뉴스피드다. 현실은 가상을 위해 복무하는 껍데기가 되어버렸다. 

 

p.72

현대사회가 파편화되었다는 통념과는 달리, 현대인들은 어느 때보다 서로의 사소한 취향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무한 시청 상태에 빠진 우리는 타인의 일상, 취향, 식사, 휴가, 주거, 직장, 사교, 연애, 신념, 행복, 상실 등 모든 것을 속속들이 어느 때보다 많이 알고 있다. 그 정보가 피상적이고 연출된 것일지라도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이 많은 정보이며, 그러한 정보가 '주입된다'. 우리는 이렇게 밀려오는 정보를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없으므로, 타인에 의해 알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깊게 알게 된다. 직장 동료의 기이한 취미부터 친척의 극단적인 정치 성향까지, 우리는 타인의 과잉 정보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p.77~78

인간의 몸은 항상 드러나 있는 얼굴과 달리, 더욱 은밀한 프라이버시다. 인스타그램 시대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노출증은 프라이버시의 죽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게으른 비평가들의 판에 박힌 평론과 달리, 프라이버시를 실제로 죽이고 있는 것은 기술기업만이 아니다. 오늘날 인류에게 프라이버시보다 중요한 문제는 관심이며,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관심과 프라이버시를 교환하고 있다. 사람들은 CCTV가 증가하는 것을 우려하는 척하지만 자신의 삶을 전부 사진으로 남겨 항상 관찰당하는 상태로 내버려두는 것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다. 프라이버시를 공개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고, 디지털 가치 서열을 결정하는 경쟁에서 우위를 설 수 있다.

 

p.80

사진 촬영은 본질적으로 폭력을 잉태하고 있다. 촬영자는 피사체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반면, 피사체는 촬영자에게 아무런 권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그뿐 아니라 촬영자는 피사체의 순간을 기록함과 동시에 피사체의 과거를 소유하게 되므로 촬영자와 피사체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권력 관계다. 그렇기에 촬영에는 유리가 요청된다. 그렇지만 스마트폰 덕분에 촬영 윤리에 신경쓸 필요가 없어졌다. 현대인들은 피사체의 주권에 민감해 하지 않고, 사진으로 타자를 착취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특히 아기와 동물에 대해 현대인은 대상의 주체성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며 그들을 대상화하고 그들의 사진을 마음대로 전시한다. 이것은 사진을 통한 이미지 착취라 부를 수 있다. 만약 누군가 당신의 일상을 동의 없이 촬영하고, 그것을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

 

p.102~103

로봇을 의인화시켜 바라보면 현실에서 작동하는 로봇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즉 로봇을 페퍼로 인식하는 좁은 시야로는 알렉사가 바꾸는 구체적 현실을 파악할 수 없다. 로봇은 단지 인간과 닮은 외관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수행하던 역할을 인간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수행하거나 인간이 할 수 없는 규모의 일을 수행하는 기계다.

 

중요한 것은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할 때 그 방식이 전혀 인간의 것과 닮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탁기, 자판기, ATM은 모두 로봇이다. 이들은 인간의 외관을 지니지는 않았으나 인간이 수행하던 일을 인간보다 더 많이, 더 낮은 비용으로 수행한다. 이들은 24시간 동안 옷을 세탁하거나 물건을 내주거나 돈을 세도 인간처럼 지치지 않고, 명령에 맞춰 높은 정확도로 업무를 수행한다. 일상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실체가 정확히 이해되지 않을 뿐, 이들은 모두 로직에 따라 작동하는 로봇이다. 꼭 음성 명령을 알아듣거나 사람의 감정을 읽어야만 로봇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협소한 시각을 버리고 넓은 개념으로서의 로봇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로봇의 실제 역할과 영향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이미 우리는 다양한 로봇과 함께 살고 있다. 그뿐 아니라 로봇은 인간이 인지하는 것보다 더 강하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우리 삶에 행사하고 있다.

 

p.142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교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방해를 받은 뒤 원래의 집중력을 복구하는 데 23분이 걸린다고 한다. 업무 도중 페이스북 알림을 확인하려고 1분을 쓴다면, 사실상 우리는 1분이 아니라 24분을 소모하게 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인간은 이러한 외부적 방해를 받으면 받을수록, 스스로 집중력을 흐트러트리려는 경향 역시 강해진다. 같은 연구에 따르면 3분에 한 번씩 우리는 딴짓을 한다. 온전한 집중력을 유지하기란 점점 힘들어진다.

 

p.197

바둑과 단백질 접힘이 각각 돌의 조합, 아미노산 조합의 문제이고, 본질적으로 무수한 조합의 시나리오를 찾아내는 구조화 문제라면, 지구상 얼마나 더 많은 지적인 문제가 이러한 유형에 해당하는가, 또는 그에 해당하지 않는가? 혹은 구조화되지 않은 형태의 문제란 실제로 존재하는가? 구조화되지 않은 문제라고 여겨졌던 문제들은 사실 그 안에 선명한 규칙과 조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지능이 단지 그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뿐이라면? 예를 들어 우리가 창의성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오직 인간만이 가능한, 규칙을 깨는 임의성이 아니라 일정한 방식의 패턴 왜곡이라면, 기계는 오히려 인간보다 더욱 다양한 형태의 창의성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기계는 이미 그러한 창의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인간의 지능이 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알파폴드는 현실세계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던 이유가 실은 인간 지능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음을, 나아가 그것을 해결하는 주체가 딥러닝과 같은 기계 지능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발견된 '새로운 지식'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 지능에 의해 더 많이 발견될 것이다. 기계 지능은 더 많은 새로운 지식을 발굴하고, 기계 지능이 단지 자동화나 추천 알고리즘이 아닌 인간을 압도하는 지능으로서 받아들여질 것이다.

 

p.205

이미 23앤드미처럼 개인 유전자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는 기업과 유전체 과학자들은 개인의 DNA에서 보이는 변화와 개인적 특징 사이 상관관계를 분석해 지능, 성향, 질병이 어떤 단일염기 다형성SNP 패턴과 관련이 있는지를 조금씩 밝혀내고 있다. 특히 DNA와 지능 및 IQ 사이의 연구는 가장 큰 논란이 있는 동시에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2018년 8월 미국 텍사스 대학교와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공동 연구진은 쌍둥이 6000쌍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고교까지의 학업 성취도는 70퍼센트가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고 발표했다. 그에 앞서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 연구팀은 2만 명의 DNA를 분석한 결과 유전적 요인이 IQ 점수에 50퍼센트 이상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여기서 나아가 미국의 유전자 검사 업체 지노믹 프리딕션은 체외수정된 배아의 지능을 수정란 단계에서 측정해, 평균 IQ에 미달하는 배아를 폐기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 업체는 지능뿐만 아니라 심장병이나 당뇨병, 정신 질환도 수정란 단계에서 유전자 검사로 가려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p.223~224

인공지능에 대해 사람들은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강인공지능은 과대평가하고 동시에 약인공지능을 과소평가한다. 약인공지능 앞에 붙은 약이라는 글자가 오히려 잘못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은 기술의 파괴력을 과소평가하는 잘못된 명명이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미래 인공지능과 대비되는 맥락에서 약인공지능이라고 과소평가될 이유가 없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그 자체로 파괴적이며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대단히 걱정하는 한편,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충분히 걱정하고 있지 않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깊이 일상에 개입하며 인공지능을 활용한 감시 시스템의 등장, 알고리즘의 마인드 해킹(정치적 편향부터 감정 조작까지), 현실과 구분이 불가능한 가짜의 생성 등 이미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중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 도래한 문제들이다. 인류는 인공지능의 위협과 이미 마주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위협이 오지 않았다는 착각에 깊게 빠져 있다. 인공지능 맥거핀에 속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인류는 인공지능과의 싸움에서 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인류가 지금 스스로 싸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점이다.

 

p.233~234

우리가 대규모 데이터 감시 문제에서 진짜 걱정해야 할 대상은 페이스북이 아니라 팔란티어와 같이 국가와 협력하는 빅데이터 기업일 수도 있다. 오히려 페이스북의 데이터 스캔들은 팔란티어의 대규모 감시 문제를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지게 하는 측면마저 있다. 팔란티어가 수집하는 정보의 양은 페이스북보다 많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더욱 은밀하고 중요한 것들이다. 소셜미디어 정보는 팔란티어가 수집하는 방대한 데이터 중 한 축에 불과할 정도다. 페이스북은 누가 범죄자인지, 누가 어떠한 금융거래 기록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어떤 의료 혜택을 신청했는지 모르지만 팔란티어는 페이스북에서 크롤링한 프로필 데이터와 각 정보기관에서 얻은 개인 데이터를 합해 감시 대상에 대한 더 깊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데이터 감시 시스템이 얻어내려는 개인 데이터의 범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다. 팔란티어의 범죄 예측 프로그램을 사용했던 미국 로스앤젤레스 경찰청은 부동산 거래 내역, 유료 도료 통행 정보, 주차장 사용 기록, 병원, 주차장, 대학교 내 CCTV 기록, 심지어 파파존스와 피자헛에서의 주문 내역까지를 데이터 감시에 포함하려 했었다. 

 

다양한 차원에 흩어져 있는 개인 데이터를 하나의 데이터베이스 위에 통합하는 작업 자체도 위험하지만, 그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소유와 운영을 국가와 그 협력 기업이 맡는다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팔란티어가 더 많은 정부 기관, 아울러 더 많은 민간 기업과 협력할수록 그들은 수많은 개인에 대한 360도 프로필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이 데이터로 할 수 있는 일은 팔란티어가 주장하는 긍정적인 일들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일들도 많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감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이러한 감시에 대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팔란티어 소프트웨어와 시민의 관계는 파놉티콘 감시탑과 죄수의 관계보다도 불평등하다.

 

p.240~241

안면인식 기술은 매우 뚜렷한 활용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감시'다.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안면인식 기술은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가장 억압할 수 있는 기술이다. 아시아 10대들이 애용하는 카메라 어플리케이션 '스노우'에 쓰이는 안면인식 기술은 중국 인공지능 스타트업 센스타임이 개발했다. 센스타임의 주요 고객 중 하나는 중국 정부다. 중국 정부가 신장 위구르 지역에 설치한 CCTV에는 센스타임의 기술이 들어가 있고 여기서 안면인식 기술은 주민 감시에 쓰인다. 이때 안면인식은 더 이상 유쾌하기만 한 기술이 아니다. 안면인식 기술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영국 해리 왕자 결혼식 생중계 방송에서 카메라가 유명 하객을 비출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자동으로 화면에 띄울 수 있었던 것은 아마존의 안면인식 기술 레코그니션 덕분이다. 레코그니션은 미국 올랜도, 플로리다, 워싱턴 카운티 경찰에게 판매됐었다. 이들 경찰은 용의자 추적과 다양한 용도의 신원 확인을 위해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하려 했다. 이 사실이 미국의 시민자유연맹에 의해 밝혀지면서 안면인식 기술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논란이 일었고 곧 사용이 중단되었다. 

 

p.246~247

이 기술적 진화는 보다 철학적인 의미를 갖는다. 안면인식 카메라를 통해 가상세계는 현실세계를 그 안으로 더 깊게 빨아들인다. 안면인식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로질러 인간 추적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열쇠다. 인간을 디지털 세계에서 더 오래 살도록 끌어당기는 것을 넘어, 인간의 현실 활동 자체를 가상세계 안으로 완전히 흡수하는 것이다. 인간의 디지털 활동만 볼 수 있었던 가상은 카메라-눈을 통해 인간 활동의 다른 반쪽, 즉 현실세계까지 시청할 수 있게 된다. 이제 가상은 가상 안에 이미 반영된 현실과, 카메라로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현실을조합해 인간의 활동을 전방위적으로 관찰하고 이해하게 된다. 온라인 유저를 추적하는 것과 동일한 형태의 애널리틱스 알고리즘이 현실 위에 펼쳐지며 인간은 완벽히 가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가상은 초기 인터넷 시절에는 현실을 잘 알지 못했다. 인간을 인간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익명의 유저1로 파악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가상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은 자신의 인격과 현실을 가상화 시키는 소셜미디어를 만들어냈고, 가상은 유저의 프로필 데이터를 폭넓게 얻게 되었다. 스마트폰 카메라 빅뱅과 함께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업로드하는 사진을 통해, 가상은 그 개개인의 생활, 추억, 관계에 대해 더 많이 파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가상은 유저가 넘겨주는 데이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안면인식 카메라를 통해 가상은 사람들의 현실 행동을 적극적으로 관찰한다. 가상이 인류 관찰에서의 해상도를 점점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인간은 스스로가 어떻게 가상에 의해 추적되고, 자신의 정보가 수집되고, 또 분석되는지 거의 모른다. 스마트폰 카메라 빅뱅의 다음 단계는 모든 사물과 장소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이다. 이 카메라들은 인공지능과 안면인식 기능이 내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카메라들과 클라우드로 연결되어 하나의 방대한 카메라 네트워크를 형성할 것이다. 집, 건물, 매장, 공원, 자동차, 신호등까지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는 우리의 얼굴-바코드를 훑으며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고, 인터넷의 여러 기록을 실시간으로 조회할 것이다.

 

우리는 얼굴을 판독당하지 않는 것만이 가상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이란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일상을 둘러싼 수천 대의 안면인식 카메라로 인해 프라이버시는 멸종 직전에 가까운, 희소한 것이 되었다. 어쩌면 다가올 미래에 가면은 추적당하지 않을 자유를 지키는 동시에, 기계에 읽히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새로운 럭셔리 상품으로 부활하게 될지도 모른다.

 

p.252~253

데이터 신분제가 가능한 이유는 개인 데이터의 축적과 집중 때문이다. 그리고 데이터의 축적과 집중은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중국에서 데이터가 정부에 집중된다면, 서구권 인터넷에서 데이터는 기술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데이터 신분제는 아직 중국만의 일처럼 보이지만, 데이터의 과도한 축적과 집중으로 인한 왜곡은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난다. 서구에서는 기술기업이 막대한 데이터 축적과 집중을 통해 만든 알고리즘이 개인의 의슥을 조종하거나 선거 결과를 바꾸기도 한다. 중국과 서구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다른 형태지만 본질은 같다. 데이터의 축저고가 집중이 개인의 운명과 사회의 향방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인류가 마주한 여러 위기가 근본적으로 같은 뿌리에 기원해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기록될 때, 데이터는 운명을 결정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데이터에 대한 막대한 접근 권한을 가진 이들이 모든 것의 운명을 결정한다. 우리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얼마나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지 물을 필요가 있다.

 

p.334~336

언어적으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미래는 현재와 뚜렷하게 분리된 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 즉 미래는 현재와 구분된 '도래하지 않은' 시점이 아니라, 현재와 함께 동시 발생하고 있는 시간일 가능성이 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만 사고할 수 있기 때문에 미래를 현재와 나뉜 단계로서 인지하지만, 순수 물리적 실체로서 미래는 사실 인간종의 개별적인 인지와 무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가 이미 일어났다"는 말은 언어적으로 틀렸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사건으로서 미래, 혹은 현재와 동시에 발생하는 미래는 물리적으로 진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이 가설을 완벽하게 기각하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으로서가 아니라, 어딘가에서 지금 동시 발생 중인 시간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우리는 역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주로 우리는 역사를 정방향으로 읽는다. 즉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역사를 읽는다. 이것은 미래가 '아직 없는 시간'이라는 전제 위에 기초한 이해다. 그런데 만약 미래가 '이미 있는 시간'이라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이미 어떤 일이 벌어진 미래를 기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역사를 역방향으로 읽어낼 수도 있다. 정방향으로 역사를 읽을 때 현재는 과거를 바탕으로 한, 과거에 주로 영향을 받고 과거가 앞으로의 향방을 결정하는 시간이다. 역방향으로 역사를 읽으면 현재는 미래가 규정하는, 미래로 이어지기 위한 단계적 시간이 된다. 1만 년 후가 이미 지나간 시간이라면, 그곳에는 고도로 발달된 미래 문명이 있을 것이다. 그곳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가상화 혁명이 이미 완료되어, 모든 실재가 가상에 완벽히 편입된 세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현재'는 가상화된 세계가 테스트하는 또 다른 시간-시뮬레이션이거나, 예정된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 거치는 단계일 것이다. 

 

오늘날의 가상화 혁명은 이미 가상화된 미래로 현재를 끌어가기 위한 역사 운동일 수도 있다. 기술 발전은 랜덤워크를 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 분명한 목적성을 갖고 전개되는 필연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셜미디어(가상현실), 인공지능, 가상화폐는 단언컨대 오늘날 가장 근본적인 기술이다. 이 기술들은 서로 무관하고 무작위로 주어진 기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미 미래에 일어났을 완전 가상화 단계로 향하기 위한 블록들일 수도 있다. 이들 가상기술은 가상과 실재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무너뜨리며, 공통적으로 실재에 대한 가상의 우위를 목표하고 있다. 실재의 삶과 가상의 삶, 실재의 뇌와 가상의 뇌, 실재의 돈과 가상의 돈 사이에서 후자는 전자를 압도하고자 한다. 마치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생물같이, 가상기술은 미래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루론 기술에는 목적의식이 없다. 좀 더 정확히는, 아직까지는 보고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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