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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전략

전쟁을 읽으며 인생을 깨우다

by Diligejy 2022. 1. 5.

p.7

보르자 가문 통치하의 30년 동안,

이탈리아에서는 전쟁과 테러, 살인, 유혈 사태가 일어났다네.

그러나 동시에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리고 르네상스도 낳았지.

그런데 동포애와 함께 5백년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누린 스위스는 무엇을 낳았는가? 뻐꾸기시계뿐일세.

 

영화 [제3의 사나이](1949) 중 해리 라임의 대사

 

p.19

전략은 전쟁과 평화 양쪽에 필요한 것이다. 전쟁이 평시의 상황에서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평화도 전쟁에 뒤이어 찾아온다. 따라서 전략가는 늘 상황전개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만일 전쟁이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고 한다면, 정치 역시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인 셈이다.

 

p.24~25

전쟁의 7가지 맥락이란 정치, 사회문화, 경제, 테크놀로지, 군사전략, 지정학 지정전략, 그리고 역사를 말한다. 모든 전쟁, 즉 모든 시대, 모든 종류의 전쟁은 이 7가지 맥락에 의해 분석 가능하며, 나아가 특정 무력분쟁의 본질적 특질을 부각시킨다.

 

p.31

전략가는 미래의 전쟁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평시에도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p.31~32

전략가에게 최우선 과제는 최종적인 결과를 두 단계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간략히 말하자면, 전략가는 자신들의 행동 결과의 추이나 그런 결과의 결말까지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또한 격언16에서도 주장하겠지만, '적에게도 결정권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전략가는 전시에 이런저런 분쟁에 말려드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흔히들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전시에 군사력을 최대한 또는 즉각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운용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무척 벅찬 일이다. 그러나 전략적 효과를 추구하는 한편 그것을 실행 가능한 계획으로 만들어 정치적으로도 허용될 수 있는 범위의 전후 질서를 확보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벅찬 작업이다.

 

p.61~62

미국을 비롯해서 여러 나라의 전략이론가들은 모두가 똑같이 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논리가 전략적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자민족중심주의라는 인종 차별의 덫에 빠지고 만다. 누구나 똑같이 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논리는 우리의 논리다. 우리가 예견하는 합리적 선택은 우리의 합리적 선택일 뿐이다. 합리성과 이성 사이에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p.64

미국의 전략과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반드시 미국 사회의 특징을 반영한다는 것이 내가 말하는 기본 요지다. 앞서 나는 미국 사회의 고유한 특징과 일치하지 않는 전략을 채택하라고 촉구하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새뮤얼 헌팅턴 1986년

 

p.73 

어느 나라가 전쟁을 전투행위로만 생각해서 접근하는 경우, 전쟁을 전투행위로만 보지 않고 좀 더 지혜롭게 싸우는 적을 맞았을 때 그들의 전술에 걸려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예컨대 아일랜드공화국군은 1919년 1월부터 1921년 7월 휴전할 때까지 영국 군대에 맞서 전쟁을 벌였다. 그것은 군사적 목적이 아니라 전적으로 정치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 벌인 전쟁이었다.

 

p.74

정책결정자들은 크든 작든 정치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들의 대중문화와 전략문화가 지지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쉽다. 특별히 어떤 문화, 대표적인 예로 미국인들은 전략적 문제들을 일면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서 한 번에 한 가지 방법만 고려한다. 전쟁과 평화, 전쟁과 외교, 전쟁과 정치는 대개 서로 연속적으로 보충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이것 아니면 저것, 둘 중의 하나인 문제로 생각된다.

 

p.78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쟁은 정책의 도구다. 따라서 전쟁은 반드시 기본적으로 정책과 평가 기준의 특징을 그 안에 담고 있어야 한다. 아주 개략적으로 말해서 전쟁의 수행은 정책 그 자체다. 그것은 펜 대신에 검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지만, 그 때문에 정책의 원칙에 따라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는다. 

 

칼 폰 클라우제비츠 1832년

 

p.83

따라서 정치적 목적 - 전쟁을 하게 된 근본 동기 - 은 달성해야 할 군사적 목표와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노력의 양을 결정한다.

 

칼 폰 클라우제비츠 1832년

 

p.85

전쟁은 우연성이 지배한다. 그것이 전쟁의 본질이다. 그 이유는 전쟁의 복잡한 성질 때문이다. 전쟁은 매우 다양한 영역들이 있고 관계가 복잡해서 위험성을 줄이려고 애쓰는 전략가라도 도박판처럼 상황을 자신 있게 통제할 수 없다. 판돈이 커질수록 그 돈을 따기 위한 노력 또한 점점 더 치열해지지만, 돈을 딸 확률은 점점 더 낮아지기 마련이다. 위험이 따르지 않는 전투행위는 세상에 없다.

 

불확실성이 생기는 근원은 크게 세 군데다. 적, 아군, 그리고 더 고상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저 예기치 못한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물론 유능한 군부라면 그러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겠지만, 이 격언은 전쟁에 대한 필연적 진리를 지적한다. 전략가들이 전쟁에서 가장 예측하기 힘든 부분은 물론 적의 독자적인 의지다. 우리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적과 처음 대면하는 시점까지다. 그때를 넘어서면 이전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이 모두 추측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p.90

그러나 불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는 완벽한 계획은 모든 군사적 실수 가운데 최악의 것이다.

 

와일리 1989년

 

p.97

당신이 반란군을 격퇴하는 전쟁을 수행 중일 때, 당신의 전략은 옳은데 전술은 틀릴 수 있다. 그런 경우는 마침내 전술을 올바르게 수정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전략이 틀리고 전술만 옳다면, 전술은 끊임없이 수정되겠지만 결국에는 전쟁에서 지고 말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과오다.

 

- 로버트 킬리브루 2006년

 

p.102

그러나 전략은 전쟁의 최종 심판자가 아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전쟁터다.

 

- 찰스 콜웰

 

p.121

어떤 작전 계획도 적의 주력 부대와 처음으로 맞부딪친 이후까지 상정해서 계획을 확정하는 경우는 없다. 전쟁을 모르는 문외한만이 처음에 여러 상황을 예상해서 매우 세부적으로 수립한 계획대로 끝까지 작전을 일관되게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

 

- 헬무트 그라프 폰 몰트케

 

p.123~124

기본적으로 적의 역할과 중요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 적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적에게 경의를 표할 때 신중하게 행동하지 않고 그냥 정신을 놓고 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그 경계선은 아주 불분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군사지도자들이 <적도 전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에서 말하는 것에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그 좋은 예가 미국 남북전쟁 때 조지 매클렐런 소장이다. 클라우제비츠가 지적한 것처럼, 군대의 최고지휘자는 매우 다양한 품성과 의지, 지식을 필요로 한다. 두려움을 먼저 고민하는 장군은 누구든 병사들을 지휘하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적이 자신의 의도를 알아챌 때까지 넋 놓고 기다리며 주저하는 지도자들은 전투도 하기 전에 이미 반 이상 진거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어떤 군대든 병사들의 사기는 전투력과 군사적 효율성을 가늠하는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지휘부의 결단력 부족이나 자신감 결여는 전염병처럼 부대 전체로 퍼져나간다. 스스로 판단하고 믿는 것을 단호하게 명령하지 못하는 장군은 휘하의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게 용기를 복돋을 수 없다.

 

p.127~128

시간은 전략의 다른 차원들과 질적으로 완전히 차별되는 고유한 특성이 있다. 전쟁, 평화, 전략의 세계에서 시간을 잘못 쓰면 그것은 되돌릴 수 없다. 이 말은 너무 당연해서 평범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전략의 역사는 전쟁에서 시간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것이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확실하게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사실은 물리학의 기초다. 따라서 많은 기회들을 놓치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시도하려 했던 새로운 선택들이 실행에 옮겨지지 못한 채 끝나고 만다. 실제로 모든 종류의 전투행위들을 시간적 차원에서 면밀히 검토하면 할수록 시간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시간의 불가변성이라는 고유한 특징 때문에 전략을 짤 때는 시간이라는 요소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전략에서 시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차원들은 잘못되었을 경우 원칙적으로 잘못을 고치거나 개선할 수 있다. 실제로 교전 당사자들 입장에서 전투행위를 하나의 체험 학습으로 생각하는 것은 유익할 수 있다.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고 그것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심신이 건강하지 못하고 판단력이 부족한 지휘관들은 갈아치우면 된다. 그러나 잃어버린 시간은 영원히 되찾아올 수 없다. 아무리 신비한 방법을 써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평시에 군인들은 가상 작전 계획에 따라 죽어라 군사 훈련을 반복한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시간의 흐름을 타는 것은 딱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 독일군은 1914년 8~9월에 프랑스 침공을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은 다시 시도할 수 없는 단 한 번의 기회였다. 

 

p.161~162

전쟁에서 군대가 추구하는 목적은 적을 물리치는 게 아니다. 물론 대개 이것이 수단적인 목적임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진짜 목적은 적에게 그들이 패배했음을 납득시키는 것이다. 거의 모든 경우에 적의 군대를 파괴하는 것, 즉 적의 부대를 몰살시키는 것은 군사적인 면이나 다른 면에서 그 자체로 전혀 목적으로서 가치가 없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몇 차례 인용한 것처럼, "전쟁은 이와 같이 적에게 우리의 의지를 따르도록 강요하는 무력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떤 적 조직은 순전히 상징적인 저항을 보인 뒤에 항복할 것이고, 운이 없다면 적이 나치 독일의 공군과 같은 낙하산 부대를 구성할지도 모른다. 이 부대는 전사율이 아무리 높아도 카시노에서 항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극단적인 경우 모두 똑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p.164

무장하지 않은 부자는 가난한 군인의 전리품이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p.185~186

비정규전이 군사적 결정에 따라 종결되는 일이 드물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비정규전은 정치적 의지와 인내력의 싸움이며, 일반 대중의 충성도가 진짜 전투 공간을 이룬다.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그런 것처럼, 외국이 개입하는 경우에 현지의 충성도뿐만 아니라 개입하는 국가의 국민들의 인내력도 정치적 전투 공간에 포함된다. 개입하는 측과 관련하여 전투의 경과가 국민의 지지수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상자 수와 관련된 문제가 특히 그러하다.

 

p.189

적을 한 무더기의 표적으로 보는 것은 근본적인 오류이다. 전쟁에서 적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그중 일부는 죽여야만 한다. 나머지는 생포하거나 숨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압도적 다수는 설득해야 한다. 단순히 미국의 가공할 힘만이 아니라 미국이 바라는 정책을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깨달음만으로도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 프레드릭 W. 케이건

 

p.200

전쟁을 접하면 접할수록 전쟁이 얼마나 행정과 수송에 의존하는지를 더욱 더 깨닫는다. 언제, 어디서 적을 만나고 싶어 하는지를 아는 데는 별다른 기술이나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다. 반면 우리 군대를 어디에 배치해야 하며 그곳에서 군대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아는 데는 많은 지식과 힘든 노동이 필요하다. 공급과 이동 요소에 관한 실질적인 지식이야말로 지도자가 세우는 모든 계획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이런 바탕 위에서만 지도자는 언제, 어떻게, 이런 요소들로 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으며, 전투와 전쟁은 위험을 무릅써야만 이길 수 있다.

 

- 아치볼드 웨이벌 

 

p.204~206

좋지 않은 시기는 결국 언제나 다시 온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고 우리 인간의 본성은 2,500년 동안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테네의 장군 투키디데스가 기원전 400년 무렵에 확인한 3가지 주요한 동기에 따라 싸우도록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다. 인간은 공포, 명예, 이익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동기로 싸우는 것이다. 정규전이든 비정규전이든, 첨단 기술 전쟁이든 저급 기술 전쟁이든, 모름지기 모든 전쟁은 이 세 동기와 관련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안전보장 문제는 개인적인 것이든 공동체의 집단적인 것이든 간에, 당연히 인간이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 말이 너무 간단하게 들린다면, 실제로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모든 충돌은 투키디데스의 3요소를 가지고 분석해볼 수 있다. 자비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제도를 건설하고 더 나은 행동규범을 확립하려는 시도에 시간과 노력을 덜 기울여야 한다. 그 대신 투키디데스의 심오하면서도 간단해보이는 통찰을 가지고 "좋은 시기 - 좋지 않은 시기"의 순환을 저지하기 위한 지속적인 시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실제적인 사고는 세계 질서에 대해서 일정하게 유용한 성과를 기록할 수 있다.

 

전략가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안보 문제에서 지속적인 진보의 실현 가능성을 불신한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회의적이라는 점에서 정의상 거의 비관주의자이며, 적어도 현실주의자이다. 그러나 시야를 낮춰서 "좋은 시기 - 좋지 않은 시기"의 역사적 순환에 실제적으로 접근해 보면, 2종류의 성공이 달성 가능하다.

 

전략가는 우선 다음에 극심하게 힘든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늦출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일 수 있으며 실제로도 낙관적이어야 한다. 둘째, 다음의 좋지 않은 시기가 그렇게 나쁘지 않을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어야만 한다. 변화론을 확신하는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이런 목표가 지나치게 온건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측면에서의 성공은 실제로 대단히 자비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물론 이 접근법의 근본적인 약점은 좋지 않은 시기가 다시 온다는 가정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우리 전략가들은 <좋지 않은 시기는 다시 온다>를 달갑지 않지만 헤아릴 수 없이 중요한 입증된 사실로 받아들이며, 그렇기 떄문에 정전집의 한 항목으로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 역사와 논리와 예측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사람은 사실상 전략적 사고와 그에 따른 2,500년의 인간 경험 해독을 거부하는 셈이다.

 

p.209

모름지기 전략가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다뤄야 한다. 전략가는 실행하기 어렵고, 또 우리의 안보에 별 가치가 없거나 있어봐야 부정적인 가치만 있는 임무는 거부해야 한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유명한 냉소적인 말을 빌자면, 이 격언의 설명에 어울리는 이들은 "우리의 흉악범과 악당과 깡패와 바보들"인 게 당연하다. 도덕론자들은 윤리적으로 혐오스러운 외국 정치체와 협력하는 것을 비난하겠지만, 우리로서는 활용 가능한 인저거 자원으로 안보를 위해 일하는 것 말고는 다른 현실적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즉 우리는 편의에 따른 우리의 우방과 동맹국이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는 것과는 다소 다른 여러 동기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p.218

신중하다는 것은 일정한 체계에 맞추거나 어떤 규범이나 유사 규범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상황과 구체적인 자료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또한 유죄로 추정되는 당사자의 처벌이나 이른바 절대적인 정의보다 폭력의 제한을 선호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안전한 세계"나 "힘의 정치가 사라지는 세계"같은 무제한적이고 어쩌면 무의미한 목표가 아니라 국제 관계의 세속적인 법률에 순응하는 구체적이고 접근 가능한 목표를 확립하는 것이다.

 

- 레몽 아롱

 

p.223

전략 연구에서는 도덕과 무관한 군사 문제 분석을 추구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도덕적 존재인 우리의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행동이나 개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전략 문제에서 최선의 실천을 추구하면서 우리는 도덕적 판단을 전략적 판단과 분리할 수 있으며 분리해야 한다.

 

- 데이비드 J. 론스테일

 

p.224~225

정치는, 국내 정치든 국제 정치든 간에, 교훈극이 아니다. 정치는 권력의 문제이다. 누가 권력을 가지고, 어떻게 권력을 얻고 유지하며, 권력으로 무엇을 하는가가 정치의 전부이다. 정치는 어떤 윤리적인 의미에서 좋은 일을 하거나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도덕적인 이유에서 전쟁을 벌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치인에게는 자기 공동체의 중요한 이익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당연히 문화에 따라 결정되는 정의의 집행이나 악의 처벌은 이런 이익에 포함되지 않는다. 세계에는 불의가 넘쳐난다. 야만적인 정권은 도처에 널려 있으며 앞으로도 언제나 있을 것이다. 1997년에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신노동당 정부가 집권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어떤 정부가 윤리적인 대외정책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한다면, 순진하게 들릴 뿐만 아니라 위선적이라는 낙인이 찍힐 게 분명하다.

 

윤리적인 대외정책이 아무리 탈전략을 추구한다 할지라도 선행하려는 고귀한 열망이 효과적인 행동으로 실현되려면 전략을 통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정책의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전략은 정책과 군사력을 잇는 필수적인 다릳이다. 전략은 현실적인 계획이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가 아니라 할지라도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선의라고 옹호할 수 있는 게 있다. 그러나 이런 의도는 전략적 평가가 내려지기 전까지는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도덕을 길잡이로 삼은 정책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바람직한 것에 관한 내용 없는 선언에서 실행 가능성 분석이라는 훨씬 더 어려운 영역, 즉 목적을 의도적으로 수단과 연결시키는 영역으로 내려오면, 전략가의 손에 맡겨지는 셈이다. 적어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국가는 전략적 계산과 상관없이 자신이 정의하는 가치를 위해 충분히 돈키호테 같은 모험, 즉 십자군 운동을 벌일 수 있다.

 

p.228

도덕적 충동, 윤리적 정언명령, 가치를 확산시키겠다는 약속, 이런 것들은 위험한 현상이다. 전략적 계산과 행동으로 제어되지 않는다면 이것들은 재앙으로 이어질 게 거의 확실하다. 되풀이해 말하지만, 국가 운영과 전략은 교훈극이 아니다. 정의가 옳다고 해서 힘을 이기는 것은 아니다. 정의가 이겨야 마땅하지만, 우리가 아는 2,500년의 역사는 명백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역사는 또한 십자군이 자신들의 도덕적 사명과 그것을 추구하는 자신들의 가치에 깊이 감동한 나머지 어떤 수단을 사용하는지에 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다고 우리에게 말해 준다. 목적이 탁월하게 바람직하다면 어떤 수단이든 그 목적에 의해 정당화 된다. 이른바 신념의 정치인들은 안정과 때로는 부당하지만 순조로운 질서를 위협하며, 따라서 평화를 위협한다.

 

p.238

군비 통제와 평화를 혼동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커다란 실수이다. 평화를 이루면 군비 통제는 따라온다.

 

- 윈스턴 처칠

 

p.240

"현대"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의 위기가 가파른 파도로 닥쳐오면, 우리 지도자들은 세계가 "현대적"이거나 "탈현대적"인 게 아니라 고대의 연속일 뿐임을 깨달을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가 아무리 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중국과 그리스, 로마의 훌륭한 철학자들은 이 세계를 이해하고 어떻게 조종하는 지를 알았을 것이다.

 

p.246

사람들이 전쟁을 어떻게 수행하며 전쟁의 스트레스 아래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관해 우리가 가진 유일한 경험적 데이터는 과거의 전쟁 경험뿐이다. 이후의 변화된 상황에 맞게 많은 조정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 버나드 브로디

 

p.251

현재와 미래를 분석하기 위한 역사의 주된 효용은 교훈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들을 골라내는 능력에 있다. 역사는 해답이 아니라 통찰과 질문을 제공한다.

 

- 제프리 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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