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한국소설

종의기원(1)

by Diligejy 2016. 7. 21.

p.67

"행복한 이야기는 대부분 진실이 아니에요."

해진은 잠시 틈을 두었다가 대꾸했다.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려 해진을 봤다.

"희망을 가진다고 절망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요. 세상은 사칙연산처럼 분명하지 않아요. 인간은 연산보다 더 복잡하니까요."


p.139

운명은 제 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 한쪽 눈을 감아줄 때도 있겠지만 그건 한 번 정도일 것이다. 올 것은 결국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불시에 형을 집행하듯, 운명이 내게 자객을 보낸 것이었다. 그것도 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p.171

세상에는 외면하거나 거부해봐야 소용없는 일들이 있다. 세상에 태어난 일이 그렇고, 누군가의 자식이 된 일이 그러하며, 이미 일어나버린 일이 그렇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추측항법으로 날아가는 제트기는 되고 싶지 않았다. 나에 대한 마지막 주권 정도는 되찾고 싶었다. 이 빌어먹을 상황이 어떤 식으로 끝나든, 내 삶은 내가 결정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남은 힘을 끌어모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둠 속에 갇힌 2시간 30분을 내 앞으로 끌어내야 했다.

'문학 > 한국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각본살인사건  (0) 2016.08.25
핑퐁  (0) 2016.07.28
바람이 분다, 가라  (0) 2016.06.19
희랍어시간  (0) 2016.06.14
천국보다 낯선  (0) 2016.06.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