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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전략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by Diligejy 2023. 3. 11.

 

p.5

교과서에서 묘사하는 것과 달리, 현실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가격) 경쟁이 아니라 새로운 상품, 신기술, 공급원, 새로운 유형의 조직과 벌이는 경쟁이다. (...) 경ㅈ애은 기존 기업의 주변 부가 아니라 그들의 토대와 그들의 삶 자체를 강타한다.

 

- 조지프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p.30

나는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다른 사람들의 공격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구성원들에게 그런 경계 마인드를 심어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p.35

슬픈 이야기지만 아무도 당신의 커리어를 보장하지 않는다. 당신의 커리어는 말 그대로 '당신의 비즈니스'다. 당신 자신이 유일한 고용주이면서 직원인 셈이다. 당신과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당신의 경쟁자다. 당신 스스로 커리어와 스킬, 이직 시기 등에 책임을 져야 한다. 당신의 개인 비즈니스를 위기로부터 보호하고 환경변화로부터 이득을 얻도록 새로운 위치를 잡는 것은 당신 자신의 몫이다. 누구도 이를 대신할 수 없다. 

 

p.55-57

업계에서 중간 관리자 위치에 있다면, 회사 전체 또는 고위 경영자보다 먼저 상황 변화의 조짐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중간 관리자, 특히 영업직처럼 바깥세상을 상대로 일하는 중간 관리자는 예전에 잘 작동하던 것이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것, 즉 규칙이 바뀌었다는 것을 제일 먼저 인식한다. 그들은 보통 고위 경영자에게 그런 변화를 편하게 설명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렇기에 고위 경영자는 세계가 변화하고 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리더는 흔히 가장 나중에 아는 사람이 되고 만다.

 

예를 들어 보자. 최근에 나는 우리 거래처 중 한 곳이 개발한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큰 호평을 얻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텔의 IT책임자는 우리가 이 신규 소프트웨어를 도입해 사용하면 예상치 못한 장애를 겪게 될 것이라며 해당 소프트웨어의 다음 버전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게다가 인텔의 마케팅 책임자는 다른 기업들 역시 그리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나는 그 소프트웨어 회사 CEO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보고받은 이야기를 들려준 후 이렇게 물었다. "전략을 변경해 곧장 새 버전을 개발할 의향이 있습니까?" 그는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라고 잘라 말하며 지금껏 해오던 대로 고수할 것이라고 답했다. 아무도 자신들의 전략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서 말이다.

 

내가 이 통화 내용을 전하자 우리 IT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그 분은 항상 제일 나중에 아는 사람이잖아요." 대부분의 CEO들처럼 그는 여러 직위의 직원들에게 겹겹이 에워싸인 채 바깥세상 소식이 침투하기 어려운 요새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 인텔의 IT 책임자와 마케팅 책임자는 바깥세상을 상대로 뛰는 사람들이다.

 

나는 펜티엄 칩 사태의 영향력을 나중에 가서야 깨달은 사람 중 하나였다. 가차없는 비난 세례를 경험하고 나서야 무엇인가가 변했다는 것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누구나 아는 소비 제품 업계의 거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기존의 방식을 변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고객 관계를 정립할 기회가 사라져가고 기업의 평판과 안정성이 무너져 가는데도 옛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변화의 바람에 스스로를 노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고객들, 기존 고객들 뿐 아니라 과거에 집착하느라 놓쳐 버릴 수 있는 고개들에게 우리 스스로를 열어 두어야 한다. 우리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선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언론인과 금융 커뮤니티의 사람들처럼 우리를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코멘트를 언제나 환영해야 한다. 입장을 바꿔 그들에게 물어보라. 경쟁사, 업계 트렌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 등을 말이다. 변화 앞에 스스로를 적나라하게 노출할 때, 사업 감각과 본능은 다시 빠르게 예리함을 찾을 것이다.

 

p.65

 

 

p.66-67

'10배 힘'에 맞닥뜨리면 사업을 운영하기가 '아주, 아주, 아주' 어렵다. 지금껏 해오던 대로 조치를 취하면 사업은 전혀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에 통제력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결국 산업은 새로운 평형 상태에 이르게 된다. 몇몇 업체들이 강력해지고 다른 업체들은 약해질 것이다. 전환기 중에는 특히 혼란스럽고 위험할 것이다.

 

아무도 당신이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경고해주지 않는다. 이런 전환은 어떤 힘들이 점점 커지면서 그에 따라 사업의 특성들이 변화하기 시작하는 '점진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오직 시작점과 끝점만이 명확하고, 그 사이의 전환 과정은 점진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뒤늦게 알아채고 당황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가 사업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사업의 미래를 결정한다.

 

p.69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도 정확히 언제 전략적 변곡점이 발생했는지 말하기 어렵다면, 통과하는 동안에도 언제가 정확히 변곡점인지 파악할 도리는 없을 것이다. 하이킹을 하는 친구들이 서로 다른 지점에서 길을 잃었다고 의심하듯, 전략적 변곡점을 지나온 사람들은 서로 다른 시점이 변곡점이었다고 주장한다.

 

변곡점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사람들 사이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우리 제품을 좀 더 개선하고 비용을 좀 더 줄인다면 문제가 사라질 겁니다"라고 누군가 말한다. 그의 말은 부분적으로 옳다. 또 다른 사람이 "단지 경기가 침체돼서 그래요. 설비 투자가 반등하면 우린 다시 성장할 겁니다"라고 한다면 이 말 역시 어느 정도는 맞다. 

 

그런데 무역 박람회를 다녀온 사람이 혼란스럽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요즘 사람들이 컴퓨터를 왜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 일견 일리가 있다 하더라도 이 의견은 다른 이들에게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p.70-72

어떤 상황이 전략적 변곡점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전략적 변곡점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다음과 같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무엇인가가 바뀌었다는, 막연하지만 불편한 느낌이 들게 된다. 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 고객들의 태도가 변화했다. 성공작을 내던 개발팀은 더 이상 이렇다 할 제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거나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경쟁자들이 우리 사업을 빼앗아 간다. 무역 박람회의 출품작들은 이상한 것들 뿐이다.

 

그 다음 우리 회사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조직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 사이에 부조화가 점점 커진다. 기업 정책과 실제 운영 사이의 엇박자가 익숙하던 수준을 넘어섰음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체계, 새로운 통찰, 새로운 행동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길을 잃은 무리가 다시 방향을 잡듯이 말이다(이렇게 되기까지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보통은 새로운 경영진이 마침내 새로운 기업 정책을 수립한다.

 

전략적 변곡점을 잘 통과해 가는 것은 하이킹을 하다가 길을 잃지 않는 것 이상으로 큰 모험이다. 마치 사업의 옛 방식과 새 방식 사이에 놓인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 것과 같다. 하지만 동료 중 일부는 그 계곡을 건너지 못할 것임을 잘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고위 경영자의 책무는 희생에도 불구하고 어렴풋이 감지되는 목표를 향해 전진하도록 구성원들을 독려하는 것이며, 중간 관리자의 책임은 그러한 결정을 따르고 지원하는 것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모두가 위기의 심각성을 크게 인식하지만 올바른 방향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같은 팀 내에서도 의견이 갈릴 것이다. 다양한 관점을 둘러싸고 흉흉한 갈등, 굽히지 않는 결의, 진지한 태도가 갈수록 도를 더할 것이고, 마치 종교 교리처럼 각자 의견을 고집하며 팽팽하게 맞설 것이다. 한때 합의를 이루며 건설적으로 운영되던 조직 내에서 '성전'이 벌어지면서 오랫동안 친구처럼 일한 동료들끼리 서로 반목할 것이다. 이럴 때 고위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은 방향을 설정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팀워크를 독려하고, 직원들의 사리를 높이는 것이지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그리고 중간 관리자가 해야 할 일은 정책을 실행하고, 고객을 잘 관리하고, 직원들을 훈련시키는 것이지만, 역시나 힘든 일이 되고 만다.

 

이처럼 확실한 실체를 가늠할 수 없는 변곡점과 맞닥뜨린 상황에서, 회사를 살리거나 일자리를 지킬 변화를 도모하고 적절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 정확한 시점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타이밍이 전부'기 때문이다. 회사가 아직 건실하고 현재 운영 중인 사업이 안전망의 보호를 받고 있을 때 새로운 사업 방식을 실험할 수 있다면, 회사 자원을 아끼고 직원들의 전략적 위치를 상당 부분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실험은 지식과 데이터가 충분치 않을 때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과학적 경영 방식을 신봉하는 사람이라 해도 본능과 개인적 판단에 의존해야만 한다. 전략적 변곡점이라는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면, 애석하게도 본능과 개인적 판단만이 가야할 방향을 안내해 주는 수단이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자신의 판단 때문에 곤경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 판단 덕에 힘든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달라진 여러 신호를 파악할 수 있도록 본능적 감각을 단련하는 일이 관건이다. 안 그러면 그런 신호들이 존재하는데 그냥 지나칠지 모른다. 깨어 주시하고 귀 기울여야 할 시점, 그때가 바로 전략적 변곡점이다.

 

p.84-85

수직적 산업 구조에서 수평적 산업 구조로 탈바꿈한 것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메인프레임컴퓨터 기업이었던 IBM을 예를 들어 살펴보자. 과거의 컴퓨터 산업에서 IBM은 최강자였다. 그런 최강자에게 산업 구조의 탈바꿈은 어떤 충격을 주었을까?

 

무엇보다 컴퓨터 사용이 메인프레임컴퓨터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기반의 PC로 전환하면서 IBM의 성장은 둔화되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IBM은 수직적 산업 구조 아래 전투에서 수십 년간 계속 승리했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IBM의 경영자들은 그런 세계에서 성장했다. 그들은 제품의 우수성과 수직적 구조 아래 시장 경쟁력 덕에 고객에게 선택되었다. 그들의 오랜 성공은 수직적 산업 구조에서 자신들을 승리로 이끈 사고 과정과 직감을 더욱 강화하고 심화했다. 그렇기에 산업이 변화하는 조짐이 나타났어도 그들은 제품 개발과 경쟁력에 관해 과거에나 먹혔던 사고방식으로 대처하고 말았다.

 

심지어 'OS/2' 라는 단순한 이름을 붙인 것만 봐도 IBM이 얼마나 수평적 산업 구조의 중요성을 간과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새로운 PC 운영 체제였던 OS/2는 IBM이 'PS/2'라고 불리는 새로운 PC 제품을 선보임과 동시에 등장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이름 때문에 OS2는 PS/2 PC에서만 작동하는 것으로 오해받았다. 이런 오해가 커다란 무제가 되는 건 PC 대부분을 IBM이 아니라 IBM의 경쟁 업체들이 생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IBM이 다른 업체들의 컴퓨터에 OS/2가 호환되도록 수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OS/2를 컴퓨터 제조업체들(즉, 자신들의 경쟁자들)에 마케팅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OS/2를 탑재할 수 있었을 때는 이미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도스와 윈도에 익숙해진 후였다.

 

p.90

노벨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 하나가 있다. 하드웨어 제조업체로서 노벨은 경쟁사들과 맞설 만한 규모를 갖추지 못해 자신들에게 '어울리지 않는'일을 하고 있었다. 이에 그들은 PC용 네트워킹 소프트웨어를 대중화하는 일에 과감히 뛰어들어 큰 몫을 차지함으로써 떠오르는 네트워킹 시장의 선두 기업이 되었다. 자신들의 규모에 '어울리는' 사업으로 재빨리 전환한 것, 이것이 패자였던 그들이 승자로 우뚝 선 요인이었다.

 

사실 2가지 교훈이 더 있다.

 

첫째, 전략적 변곡점이 산업 전체를 휩쓸 때 기존 산업 구조에서 성공을 구가하던 기업일수록 변화에 더 큰 위협을 받고 변화를 수용하는 데 더 강하게 저항한다는 점이다.

 

둘째,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기업들을 뚫고 기존 산업에 진입하기 위한 비용은 매우 높을 수 있지만, 그 구조가 무너지면 진입 비용은 하찮은 수주능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컴팩, 델, 노벨 같은 기업들이 실제로 아무것도 아닌 수준에서 선두 기업으로 부상했듯이 말이다.

 

p.91-93

수평적 산업에서 흥망은 대량 생산과 대중 마케팅에 좌우된다. 수평적 산업에는 자체 규칙들이 존재한다. 경쟁이 치열한 수평적 컴퓨터 산업에서 성공을 거둔 기업들은 그러한 암묵적 규칙들을 학습했다. 규칙을 준수하면서 경쟁의 기회와 성공의 기회가 동시에 생긴다. 반면에 규칙을 거부하면 제품이 얼마나 우수하든, 얼마나 계획을 훌륭히 실행하든 힘든 길을 걷게 된다. 

 

그렇다면 그 규칙들은 과연 무엇일까?

 

첫째, 범용성 없이 차별화하지 마라.

고객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주지 못한 채 그저 경쟁자보다 더 뛰어나 보이려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라면 개선된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지 마라. PC 산업의 연대기에는 '더 좋은 PC'를 만들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제조업체들이 업계의 대세인 표준을 이탈해 결국 실패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PC의 우수성을 논할 때는 호환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다른 PC들과 차별화된 '더 좋은 PC'는 기술적인 관점에서 모순이라 말할 수 있다.

 

둘째, 먼저 움직여라.

경쟁이 극심한 수평적 산업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거나 근본적인 변화가 불어닥칠 때 기회가 찾아온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마라. 다른 기업들이 주저할 때 먼저 행동하는 '퍼스트 무버'만이 경쟁사보다 시간적 우위를 점할 기회를 잡는다. 시간적 우위는 수평적 비즈니스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일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반면에 새로운 기술의 흐름에 저항하는 기업은 아무리 기를 써봤자 귀중한 시간만 허비한 채 실패하고 만다.

 

셋째, 시장과 생산량에 근거해 가격을 결정하라

시장이 수용할 만한 금액인지 그리고 생산량은 얼마나 될지에 따라 가격을 책정하고, 그 가격으로 비용을 충당하고 이익을 내도록 악착같이 일하라. 그렇게 해야 규모의 경제에 도달할 것이고, 규모의 경제 아래서만 대규모 투자가 효과를 발휘하고 생산적일 수 있다. 또한 대량 생산업체가 되어야 비용을 분산시키고 충당할 수 있다. 반면에 비용을 근거로 가격을 책정하면, 대량 생산 기반 산업에서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틈새시장만 점유하고 말 것이다.

 

나는 이러한 규칙들이 수평적 기반 산업에서는 아주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산업과 상거래의 많은 부분이 수평적 기반 구조로 전환되는 트렌드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산업에서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기업들은 자신들의 강점을 더욱 전문화하려고 한다. 자신들이 차지하려는 분야가 무엇이든 간에 거기에서 세계 수준의 강자가 되기 위해서다.

 

왜 그럴까?

 

우리가 든 예에서 수직적 컴퓨터 기업은 컴퓨터 플랫폼,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를 모두 생산해야 했다. 그러나 수평적 컴퓨터 기업은 하나의 제품, 즉 컴퓨터 플랫폼, 운영 체제, 소프트웨어 중 하나만을 생산한다. 기능적 전문화가 확산된 덕에 수평적 산업은 수직적 산업에 비해 더욱 비용효과적인 경향을 나타낸다. 간단히 말해 한 분야가 아닌 여러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건 훨씬 어렵다.

 

산업이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전환할 때 각 기업은 전략적 변곡점을 뚫고 지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기업이 이런 수평적 산업의 규칙들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p.97

'10배'라는 렌즈를 통해 일간지를 읽으면 잠재 전략적 변곡점을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다. 요즘 미국을 휩쓰는 은행 간 인수 합병의 물결은 '10배' 변화와 관계가 있을까? 디즈니가 ABC 방송사를 인수하거나 타임 위너가 TBS에 합병을 제안한 것은? 그리고 AT&T의 자진 해체는?

 

p.99-100

월등한 경쟁자가 등장하면 당연히 변화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 잘 들어맞던 것들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월마트에 맞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화가 한 방법이다.

 

홈 디포, 오피스 디포, 토이저러스 등과 같은 카테고리 킬러들처럼 특정 시장 분야에 집중하는 전략은 규모의 불균형을 만회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따. 스테이플스가 치밀하게 전산화된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듯이, 고객 맞춤 서비스 역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아니면 월마트 스타일의 경쟁 우위를 지닌 서점 체인에 맞서기 위해 '책이 있는 카페'로 변모한 독립 서점처럼, 제품보다는 사람들이 가치를 느끼는 환경을 제공하는 쪽으로 사업을 재정의하는 것 역시 방법이 될 수 있다.

 

p.100-104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대단히 성공적이고 매우 수직적인 구조를 갖춘 컴퓨터 기업으로 일구어 냈다. 애플은 자체 하드웨어를 생산할 뿐 아니라, 자체 운영 체제를 설계하고, 자체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만들었다. 그들은 또한 독자적인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려고 노력했다.

 

1985년에 쫓겨나다시피 애플을 나온 잡스는 사실상 동일한 성공 스토리를 재창조하고자 했다. 아니, 더 성공적인 스토리를 꿈꿨다. 넥스트라는 새로 창업한 회사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진 '차세대' 하드웨어, 애플의 매킨토시 인터페이스보다 훨씬 좋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맥보다 훨씬 고도화된 작업을 수행하는 운영 체제를 창조하고자 했다. 또한 그는 고객이 처음부터 일일이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기보다 컴퓨터에 이미 탑재된 소프트웨어들을 자신의 용도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추구했다.

 

잡스는 하드웨어, 기본 소프트웨어,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이 모두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컴퓨터를 원했다. 몇 년이 걸리긴 했지만 그는 자신의 의도에 근접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넥스트의 컴퓨터와 운영 체제는 추구했던 모든 목적을 기본적으로 달성했다. 

 

야심에 찬 잡스가 복잡한 개발 과제에 몰두하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그런 노력  대부분을 헛되이 만들 수 있는 경쟁 제품 하나를 간과하고 말았다. 그가 직원들과 함께 최고 수준의 멋진 컴퓨터를 개발하려고 밤낮을 잊은 채 매진하고 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춘 범용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인 윈도를 출시했다. 윈도의 수준은 넥스트의 인터페이스는 고사하고 매킨토시보다 못했고, 컴퓨터나 애플리케이션에 매끄럽게 통합되지도 못했다. 그러나 윈도의 가격은 저렴했고, 무엇보다 1980년대 말에 이르러 수백 개의 PC 제조업체들이 쏟아내는 값싸고 성능도 점차 강력해지는 PC에서 잘 돌아갔다.

 

잡스가 넥스트 내부에서 밤새워 일하는 동안 바깥세상에서는 무엇인가가 변화했던 것이다.

 

잡스가 넥스트 개발을 시작하면서 마음속에 두었던 경쟁 제품은 매킨토시였다. PC는 그의 관심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 무엇보다 당시의 PC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조차 탑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3년이 지나 넥스트 컴퓨터 시스템이 출시되는 시점에 이르자 윈도에 쏟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노력은 PC 환경을 뒤바꿔 놓기 시작했다. 윈도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맥의 특성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업체가 생산한 컴퓨터에서 잘 돌아간다는 점에서 PC의 근본 특성을 유지했다. PC를 공급하는 수많은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결과로 PC 가격은 맥에 비해 훨씬 저렴해졌다.

 

넥스트의 설립과 동시에 잡스는 마치 타임캡슐로 들어간 꼴이 되었다. 몇 년 동안 경쟁 상대라고 생각했던 제품(매킨토시)을 이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타임캡슐을 열고 세상에 나오자 경쟁 구도는 바뀌었고, 경쟁 상대(윈도)는 생각보다 더 강력해졌으니 말이다. 의식하지는 못했겠지만, 넥스트는 전략적 변곡점 한 가운데에 처하고 말았다.

 

넥스트의 컴퓨터는 날아오르기는커녕 주저앉아 버렸다. 투자자들의 계속된 자금 지원에도 불구하고 넥스트의 자본은 고갈되어갔다. 그들은 고가의 컴퓨터와 최신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 그리고 대량으로 넥스트 컴퓨터를 생산하는 '완전 자동화 공장'을 추구했지만 대량 생산은 한 번도 실현되지 못했다. 설립 6년째인 1991년 넥스트는 재정적으로 곤경에 처했다. 

 

회사 내 일부 경영자들은 하드웨어를 포기하고 자신들의 핵심 기술을 대량 생산하는 PC에 적용하자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잡스는 이런 요구를 오랫동안 거부했다. 그는 PC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PC가 우아하지 못하고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통일성'에 조금이라도 도달하는 기업은 없을 거라고 단정했다. 간단히 말해 잡스는 PC를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의 말이 옳다. 그러나 당시 잡스가 놓친 것은 자신이 경멸한 바로 그 '쓰레기스러움'이 PC 산업의 힘이 낳은 결과라는 점이었다. 즉 더 많은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기업이 경ㅈ애했던 것이다.

 

몇몇 경영자가 좌절을 맛보고 회사를 나갔지만, 그들의 생각은 점점 힘을 얻어갔다. 넥스트의 자금 사정이 계속 나빠지자 결국 잡스는 우아하지도 않고 쓰레기 같은 PC산업을 자신이 처한 환경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반대했던 제안에 굴복한 것이다. 그는 모든 하드웨어 부문과 자동화 공장의 문을 닫고 직원 절반을 해고했다. PC 산업의 '10배' 힘에 굴복하면서 넥스트는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분명 스티브 잡스는 20세의 나이에 이미 PC 산업이 다음 세기에는 세계적으로 10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던 천재다. 하지만 10년이 지나고 30세가 된 잡스는 본인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에는 그가 즐겨 사용했던 "미치도록 뛰어난 컴퓨터"란 문구가 시장에서 통했다.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는 PC 소프트웨어가 투박했기 때문에 내세울 수 있는 강력한 차별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변했고 그와 함께 일하던 경영자들이 변화를 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자신이 열정적이고 의욕에 찬 개척자로 이끌어 주었던 신념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그 결과 오랫동안 고수해 온 신념을 버리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p.109-110

DEC는 메인프레임컴퓨터가 지배하던 1960년대에 설계가 단순하고 가격이 저렴한 미니컴퓨터를 가지고 컴퓨터 세계에 뛰어들었고, 이 전략 덕분에 매우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환경을 변화시키는 상황에 직면하자 한때 메인프레임 세계를 공략했던 혁명적 기업 DEC가 메인프레임 시대의 기업들처럼 이런 변화에 강하게 저항했다.

 

또 한 사례로 IBM을 들 수 있다. 이 회사의 경영진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IBM이 겪은 부진의 원인을 세계 경제의 불황 탓으로 돌렸고, PC가 컴퓨터 산업의 얼굴을 계속해 변화시키는 와중에도 오랫동안 그렇게 변명했다.

 

커리어를 쌓아가며 똑똑한 경영자로 인정받던 컴퓨터 기업의 임원들이 왜 기술이 몰고 온 전략적 변곡점을 현실에서 직면했을 때는 그토록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을까?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막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새로운 기술이 무엇을 야기하든 간에 과거의 성공에 도움이 됐던 스킬이 역시나 유용할 거라고 과신했기 때문이었을까? 또는 새로운 컴퓨터 세상을 수용하면 엄청난 인력 감축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이 수반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 3가지 이유 모두가 어느 정도 일조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중에서 마지막 이유(새로운 세계가 야기할 고통을 회피하려 한 것)가 가장 핵심이었다고 본다.

 

p.111-112

미국의 모든 젊은 세대는 컴퓨터 소유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그들에게 마우스 조작은 부모가 '전원' 버튼을 눌러 TV를 켜는 것처럼 더 이상 신비로운 행위가 아니다. 그들은 컴퓨터 사용을 매우 편안하게 여기고 컴퓨터가 다운되더라도 부모가 추운 겨울 아침에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보다 덜 당황한다. 그들은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뭔가를 중얼거리다가 컴퓨터를 재부팅한다. 대학에 진학하면 네트워크로 연결된 학교 컴퓨터를 사용해 과제를 하고, 인터넷으로 자료를 조사하며, 이메일로 주말 활동을 계획한다.

 

이런 젊은이들을 미래의 고객으로 설정한 소비재 기업들은 젊은이들이 정보를 취합하고 도출하는 방식과 사업을 하고 개인 생활을 영위하는 방식에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고객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질지 모른다. 

 

p.113-114

때때로 고객 기반 변화는 태도 변화로 나타나는데, 겉으로는 미미해 보이지만 '10배' 힘을 가져올 수 있을만큼 강력하다. 돌이켜 보면 1994년에 펜티엄 프로세스의 부동 소수점 결함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그러한 변화의 단적인 예다. 인텔의 핵심 고객 기반은 시간이 흐르면서 컴퓨터 제조업체에서 컴퓨터 사용자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1991년 시작된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은 비록 우리(인텔)에게서 직접 물건을 구입하지는 않지만 컴픃터 사용자의 마음속에 자신들이 사실상 인텔의 고객이라는 생각을 각인시켜 놓았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고무시킨 태도의 변화였지만 우리는 그 영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펜티엄 프로세스의 부동 소수점 결함은 흔히 발생하는 독립적인 문제, 즉 전자업계의 용어를 빌리자면 '잡음'에 해당하는 문제인가? 아니면 우리가 판매하고 서비스하는 대상(고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신호'일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산업은 제품 구입을 위해 재량껏 돈을 지출하고 다른 가전 제품과 동일한 기대를 하는 소비자들에게 서비스하는 쪽으로 크게 변화했다. 인텔은 이러한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야 했고, 컴퓨터 산업 내 다른 기업들 역시 그러했다. 모든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예전과 달라졌다. 좋은 소식은 시장이 더 커졌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예전보다 경쟁이 훨씬 치열해졌다는 것이다.

 

요컨대 소비재 기업들이 안고 있는 '인구학적 시한폭탄'은 컴퓨터 업계에서 일하는 우리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컴퓨터에 익숙한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이 컴퓨터를 삶의 일부분으로 여기며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컴퓨터로부터 더 많은 걸 요구할 것이고 컴퓨터의 단점을 더 많이 지적할 것이다. 컴퓨터 산업에 종사하는 우리 모두는 이토록 미묘한 변화에 잘 대비하고 있는가? 나는 확실하게 "그렇다"라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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