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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과학, 철학을 만나다

by Diligejy 2023. 8. 30.

 

 

p.10

인간의 감각기관이나 인간이 만든 기구로 하는 관측부터, 인간이 만든 수학으로 추론하고 인간의 직관을 만족시키는 설명을 해주는 이론까지, 과학연구의 모든 과정은 그 대목 하나하나가 모두 인간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은 인간을 초월하는 진리의 추구가 아니라 인간들이 인간적으로 자연을 깨쳐가는 문화적 과정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과학은 자연 앞에서 겸허해집니다. 조그마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한계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루어내는 과학적 성공담은 더 놀라운 것으로 여겨져 아끼게 되고, 우리가 조금만 더 있으면 자연의 가장 깊은 신비를 간단하게 해명하리라는 식의 오만은 삼가게 됩니다.

 

p.18

인식론에서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회의론입니다. 우리가 안다고 자신하는 내용을 하나하나 잘 뜯어보면 사실 의심할 여지가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 눈으로 봤다고 고집하는 것도 잘못 본 것일 수 있고, 확실히 기억한다고 생각하는 일도 기록을 찾아보면 아닌 경우가 창피할 정도로 많습니다. 일상생활 수준에서의 지식도 그렇게 의심이 되지만, 과학지식을 생각해보면 사실 의심의 여지는 더 많습니다. 정밀한 과학적 관측이란 복잡한 측정기기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그 기기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보장은 또 어디 있습니까? 또, 과학이론을 보면 전혀 관측이 불가능한 내용을 많이 다루는데 어떻게 그에 대해 확실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p.22-23

외국에서도 과하교육이 왜 필요하고 과학연구에 왜 투자해야 하는가 하는 논쟁이 벌어지면, 항상 경제발전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원자폭탄이나 인터넷, 유전공학, 우주탐험 등 과학이 없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경이로운 혜택을 과학 덕분에 누리고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특히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그런 맥락에서 생각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기술입니다. 물론 많은 경우, 기술은 과학을 응용한 결과이긴 하지만 과학 자체와는 다릅니다. 기술 때문에 과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보면 순수과학의 의미와 중요성은 실종되어 버립니다. 과학의 문화적 가치도 파악하지 못하게 되지요. 그리고 정말 기술적 응용을 위해 과학이 필요하다면 소수의 전문가만 과학을 알면 됩니다. 기술적 전문가가 될 사람들을 국가대표가 될 운동선수 양성하듯 어려서부터 뽑아서 잘 훈련시키고, 그 사람들이 좋은 기술을 발달시켜 우리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면 됩니다. 과학교육을 한답시고 온 국민을 미적분이나 유기화학 등으로 고문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p.25-26

1950년대에 서양식 점성술을 통계적으로 시험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프랑스의 고클랭인데, 그는 '화성 효과'라는 것을 탐지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유럽에서는 화성을 전쟁의 신 마르스의 이름을 따서 Mars라고 불렀는데, 조사를 해보니 성공한 운동선수나 군인들 중 화성이 떠오를 때 출생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리 대단한 결과는 아니지만 아주 의미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고클랭의 연구방법이 좀 주먹구구식이기는 했지만 아주 과학적이 아니라고는 단언하기 힘들고, 적어도 과학적 방법으로 그런 연구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우길 수는 없습니다. 즉 점성술이 옳다, 그르다 하는 문제가 아니라 천체의 위치가 인간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왜 비과학적인지 확실하게 이야기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과학적'이라는 것과 '옳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p.29

과학은 뭔가 새로운 것을 새로 배워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던 이론을 포기하고 더 좋은 새로운 이론을 얻는 것은 중요하고 유익한 일입니다. 반면 종교적 교리는 불변하며, 신앙이란 어떤 일이 있어도 (정말 죽인다고 해도) 믿음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포퍼는 그런 경건하고 독단적인 태도를 과학적 태도의 정반대로 보았습니다.

 

p.33-34

포퍼는 아인슈타인이 아들러 같은 인물들과 달리 자기 이론을 당당하게 엄격한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 모습을 보고 반했던 것입니다. 시험해서 예측대로 나오지 않으면 그 이론은 틀린 것으로 밝혀질 것이고, 그러면 미련 없이 포기하겠다는 태도 말입니다. 포퍼는 그런 위험을 각오하고 틀리기 쉬울 듯한 예측을 끌어내서 이론을 엄격하게 시험하는 것이 진정한 과학적 태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p.43-44

모든 현상을 기존의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해석해내는 것은 정상과학의 중요한 과업입니다. 예상된 것을 찾아내는 작업이나 예상치 않게 발견된 것을 틀에 끼워 맞추는 것이나, 모두 퍼즐을 푸는 것과 같은 작업이고 그것이 정상과학의 본업이라고 쿤은 강조했습니다. 퍼즐은 자기 멋대로가 아니라 규칙에 따라서 풀어야 하고, 기존의 패러다임이 그런 규칙도 마련해준다고 했습니다. 정상과학은 처음 성공해서 보여준 패러다임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실현하는 작업입니다. 어떤 패러다임이 처음 새로 나왔을 때는 아직 이룩해 놓은 업적이 별로 없고, 성공할 수 있다는 약속은 많습니다. 그 약속을 실현하는 것이 정상과학자의 임무입니다. 그런데 그 작업은 대개 수월하지가 않고 계속 막히기도 하고 일이 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상과학자들은 끈질기게 자기들의 패러다임을 포기하지 않고 기지를 발휘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갑니다. 쿤은 그런 사례들을 많이 보고 나서, 정상과학 연구의 대부분은 그렇게 새 패러다임이 멋지게 벌려놓은 일의 뒤치다꺼리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p.47

'ad hoc'은 '이것에 대응해서'라는 의미의 라틴어 구절이다. 미리 정해진 어떤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대응책을 정한다는 의미다.

 

p.50~51

포퍼 자신도 이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제목은 [정상과학과 그 위험성]이었습니다. 그 논문에서 포퍼는 과학자들이 실제로 쿤이 말하는 정상과학을 실행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과학의 진보를 저해할 뿐 아니라 우리 문명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라고 기염을 토했습니다. 너무 과장된 비판 같지만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미국에서 편히 자란 쿤과 달리 패전 후의 혼란 속에 자라난 포퍼는 항상 사회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협을 생생히 느끼고 있었고, 1930년대 후반에는 망명길에까지 올랐습니다. 포퍼는 유태인이었고(쿤도 그랬지만), 오스트리아가 나치 통치를 받게 되자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피신했던 것입니다. 그런 뼈저린 경험을 기반으로 포퍼는 사람들이 권위에 맞서 저항하지 않으면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지배할 큰 위험이 있다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맥락에서 과학과 과학자는 비판적 정신을 보여줌으로써 사회를 선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20세기 초중반에 포퍼뿐 아니라 다른 많은 유럽의 지식인들이 그런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포퍼는 이렇듯 과학을 자유사회의 보루로 보았기 때문에 쿤의 정상과학 개념은 과학의 사회적 가치를 철저히 저버린 것이라고 반박한 것입니다.

 

p.57~58

결국 데카르트는 신은 자애롭고 선하시기 때문에 인간을 속이지 않는다고 믿음으로써 이러한 인식론적 절망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런 신이 버티고 계신다면 우리가 명확히 갖는 생각은 옳은 것이라 간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그토록 잘 의심하던 데카르트가 그러한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요?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더 옛날부터 있던 궤변에 가까운 허망한 논법을 되풀이했습니다. '신은 절대적으로 완벽하다. 그런데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더 완벽하다. 고로 신은 존재한다.' 그러니까 천박하게 이야기하자면 '존재하지도 않는 그런 시시한 것은 신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런 말입니다.

 

이것은 제가 느끼기에는 과학적인 지식의 토대를 마련해주기는커녕, 합리주의 철학의 한계를 극명하게 내보이는 예일 뿐입니다. 후대의 철학자 칸트는 합리주의 철학의 이러한 과잉을 방지하기 위해 그 유명한 책 [순수이성비판]을 썼습니다. 이 제목을 대개들 별 생각 없이 외워대는데, 이는 글자 그대로 순수한 이성만으로 무엇을 알아내겠다는 시도를 비판한 것입니다. 신의 존재와 본성 등 인간의 경험을 넘어서는 주제를 이성적 추론으로 알아내려고 하는 시도는 덧없다는 경고입니다.

 

p.68

어떤 실험기구에 의존해서 하는 관측이라면 그 기구의 작동원리 안에 이미 이론이 들어가 있습니다. 현대과학에서 사용하는 실험기구는 대개 엄청나게 복잡한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자 현미경이나 전파 망원경이라든지, 또 요즘 일반인에게도 친숙해진 의학 진단기술인 MRI, CT 스캔, PET 스캔 등 생각해보십시오. 그 기구의 작동이론이 틀리다면 그것을 이용한 관측의 결과를 어떻게 믿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그러한 기구를 철석같이 신용하는 것도 좀 생각해보면 겸연쩍은 일이지요. 그 원리는 알지도 못하면서 결과를 덥석 믿습니다(그것이 바로 과학의 권위입니다).

 

p.68-69

우리는 이론에 맞지 않는 관측사실은 아예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합니다. 텔레파시로 누가 뭘 알아냈다든지, 인도에서 승려들이 앉아서 명상을 하다가 공중으로 붕 떠오른다든지, 음식도 물도 전혀 먹지 않고 숨만 쉬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든지, 갑자기 몸 자체에서 불꽃이 터져 나오면서 사람이 타 죽었다든지...... 그런 현상이 여기저기서 굉장히 많이 보고되는데, 이렇게 기본 과학이론에 어긋나는 것을 그냥 믿을 수는 없습니다. 1장에서 말했던, 중성미자가 광속보다 빠르면 자기 팬티를 먹겠다고 말한 물리학자도, 실험결과가 이론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거부한 것뿐입니다. 이렇게 이론적으로 경험을 걸러내는 과정이 없으면 관측과 환각도 구분할 수 없고, 무엇이 제대로 된 관측인지 알 수도 없을 것입니다. 포퍼도 이런 논의를 했습니다. 가장 간단한 예로, 우리가 여기 물 한 컵이 있다는 관측을 했다고 합시다. 포퍼는 그 단순한 관측에도 이론이 들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물을 오늘 밤에 밖에 놔둔다고 생각해봅시다. 밤새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내려갔는데 아침에 나가보니 이것이 안 얼어 있다면 '아, 그게 물이 아니었네'하고 관측을 수정합니다. 영하 10도인데 얼지 않으면 물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물'이라고 할 때는 여러가지 이론적 함의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0도면 얼고 100도면 끓고, 먹어도 죽지 않고 등등. 포퍼는 우리가 아무리 관측한 사실이라고 우기는 것도 이론이 포함된 가설일 수밖에 없고, 그러므로 나중에 폐기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관측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점점 걱정이 깊어집니다.

 

p.92

측정이 왜 철학적으로 관심을 끌 만한 주제일까요? 현대인들은 측정광일 뿐만 아니라 자연이 수량화되어 있다는 것을 아무 생각도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철학자가 해줄 말은, 자연을 무작정 관찰하면 숫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숫자는 인간이 힘을 써서 가져다 붙이는 것이고(물론 제멋대로 붙일 수는 없지만), 자연 자체에 숫자가 이미 포함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과학이 자연에 숫자를 갖다 붙이는 '수량화' 과정에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하는데, 그 목적은 수량화가 당연한 것도 아니고 쉬운 것도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p.93

과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정말 우리가 상식적으로 수량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처음에는 수량이 아니었고, 어떤 식으로 수량화되었는지 그 과정이 명확히 보입니다. 예를 들어서 속도는 당연히 수량이라고 생각하는데, 중세 유럽의 물리학자들은 속도가 수량이냐 아니냐를 두고 많은 논란을 벌였습니다. 우리가 감각만으로 물체의 운동을 관찰할 때, 빠르다거나 느리다고 느끼는 것은 질적인 개념이지 양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스피드건이 나오기 전에 투수가 던지는 야구공이나 테니스 선수의 서브를 보는 관객의 경험을 생각해보십시오) 측정방법을 떠나서 개념의 정의 자체를 본다면 우리 현대인의 생각으로는 그냥 지나간 거리를 지나가는 데 걸린 시간으로 나누면 속도가 나오지 않느냐 하는데, 이 중세의 물리학자들은 거리와 시간이 서로 전혀 다른 양인데 그 중 하나로 다른 하나를 '나눈다'는 것을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의미 없는 일로 여겼습니다. 고대 그리스나 이집트 때부터 기하학을 하면서 '길이와 길이 간의 비율이 얼마인가' 등은 잘 생각했는데, 길이와 시간처럼 서로 전혀 다른 성질의 수량 간에 비율을 낸다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갈릴레오도 속도나 가속도 같은 개념을 어떻게 수학적으로 다룰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p.96

자연현상에 숫자를 갖다 붙이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한 가지 사례를 통해 더 차근차근 생각해봅시다. 뭐가 몇 개인지 하나, 둘, 셋, 넷 ... 세는 것은 간단하고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학에서 측정하는 수량은 대개 그렇게 셀 수 없는 것들, 즉 문법에서 말하는 불가산명사들입니다. 온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시다. 이 방의 온도가 지금 17도라고 할 때, 뭐가 도대체 열일곱 개라는 말인가요?

 

그것은 온도계 속에 든 액체가 0이라고 표시된 곳에서부터 눈금이 열일곱 개가 지난 점까지 올라갔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보면 이제 측정이 왜 철학적 문제가 되는지 확실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그 0점을 어떻게 잡았나, 또 '1도'를 정의하는 눈금 사이의 크기는 어떻게 정했나, 또 이 유리관에 넣은 액체의 팽창이 온도를 정확히 나타내준다고 어떻게 알 수 있나...... 이렇게 측정기준의 정립에 대한 의문이 등장합니다. 뭐든지 성공적으로 수량화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에 대한 측정기준을 설득력 있게 정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p.108~109

원래 프랑스 혁명기에 미터법을 만들 때에는 순수한 물 1리터가 온도 0도에서 가지는 질량을 1킬로그램으로 하자고 했었는데, 그 기준을 정확히 실현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1리터라고 쉽게 말하지만 아주 정확히 1리터가 들어가는 그릇을 만든다고 한번 생각해봅시다. 18세기 기술로는 절대 해낼 수 없었고, 지금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결국 나온 해결책이 1889년도에 제작된 킬로그램 원기인데, 오랜 세월 잘 써왔지만 근래에 일관성이 상실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 귀중한 것을 만들어놓고 만지면 변하니까, 이중으로 보호된 진공 속에 넣어놓고 전혀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용을 하긴 해야 하니까, 킬로그램원기를 만들 때 아주 똑같은 복제품, 소위 '증인' 추 여섯 개를 만들었습니다. 그 증인조차도 만지기가 겁이 나서 실제로는 그 증인을 또 복제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가끔씩 증인들을 불러모아 원기와 비교합니다(지금까지 역사상 세 번 이렇게 비교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비교한 결과 이놈의 킬로그램원기가 증인들보다 약간(지금보다 0.00005그램) 가벼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위에서 가상으로 미터원기가 줄거나 늘거나 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질문을 던졌었는데, 바로 그런 상황이 킬로그램원기에 닥쳐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최근에 측정 전문가들, 즉 도량형학자들은 국제회의를 통해 이 킬로그램원기를 폐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새로 결정된 킬로그램의 정의는, 양자역학을 써서 플랑크 상수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런데 그 옛날 프랑스 혁명 떄의 상황처럼 실험의 정밀성이 아직 이론적 정의의 정밀성을 따라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실험을 더 정확히 하기 위해 현재 여러 나라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p.111

과학자들은 결국 추시계를 선택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주 화를 낸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시간은 태양이 정의해주는 것인데, 무슨 이상한 기계를 발명해서 그것을 기준으로 태양이 틀렸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느낀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무식하다고 일축해버릴 수도 있지만, 그들의 반응을 좀 동정적으로 받아들여보면, 거기서 깊은 인식론적 질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추시계가 해시계보다 훌륭하다고 할 때, 과연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판단할 수 있을까?'

 

p.113-114

측정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기준을 만들어내려면 순환논리에서 빠져나올 수 없으리라는 걱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기준이 아예 없는 데서 과학적 탐구가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경험을 토대로 지식을 쌓아갈 때 처음에는 감각에 의존해 시작합니다. 일단 감각이 옳다고 가정하고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감각을 기반으로 얻은 지식으로 측정기구를 만들고 나서는, 그 기구를 사용해서 감각 자체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온도의 예로 돌아가봅시다. 겨울에 추운 바깥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집 안이 아주 덥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온도계를 보면 실내온도는 내가 나가기 전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면 나의 체감이 왜곡되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래 왜 온도계를 믿고 사용하게 되었나를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체감과 대강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날이 확실히 더워지는데 온도계에 넣은 액체가 팽창하지 않는다면, 그런 '온도계'는 엉터리라고 판단해서 아예 쓰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체감과 대부분 일치하면서 더 정밀하게 온도를 나타내주는 온도계가 있어서 채택을 하고 나면, 그것을 체감보다 더 신용합니다. 가끔씩은 온도계를 믿으며 체감을 무시하고 수정합니다. 예를 들어서 날은 정말 춥지 않은데 내가 열이 나기 때문에 으슬으슬 떨리는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이때 날이 정말 춥지 않다는 것은 온도계에 의지해서 판단하고, 내가 열이 난다는 것도 온도계(체온계)를 써서 판단합니다. 이것이 역설적이면서 아주 중요한 인식과정입니다. 처음에 어떤 기준을 기반으로 탐구를 시작하여, 그 탐구의 결과를 기반으로 원래 채택했던 기준 자체를 수정하고 개선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발달은 몇 단계에 걸쳐 계속될 수 있습니다. 감각을 넘어서게 해준 그 측정기구로 연구를 해서 지식을 더 쌓아 더 훌륭한 이론을 세우고, 그 이론을 이용하여 측정기구를 수정하거나 더 훌륭한 새로운 측정기구를 만듭니다. 그렇게 개선된 측정기구가 생기면 또 개선된 연구를 하여 더 배우고, 그 새로운 지시을 이용해 또 측정기구를 개선합니다.

 

p.116

기준 자체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개선할 수 있고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완벽한 기준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면 아무 일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불완전하리라는 것은 알면서도, 이미 갖추어진 기준에 의존하여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탐구를 시작하여 결과가 잘 나오면, 그 탐구의 시발점이 된 기준도 재검토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원래의 기준을 수정하고 정제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물려받은 기준을 존중하고 사용하되 거기에 절대적으로 복종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또 그런 과정을 계속 반복할 수 있습니다. 인식적 반복이란 처음에 믿고 시작한 전제들을 단순히 유지하고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매 단계에서 재검토하며 지식을 쌓고 개선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는 뜻입니다.

 

p.123-124

쿤은 과학혁명을 정말 의식적으로 정치적 혁명에다 비유했습니다. 혁명기의 과학은 신-구 패러다임의 경쟁과 투쟁 관계로 표현했고, 그 싸움을 중립적 입장에서 조절해주거나 평가해주는 심판도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논증이나 검증을 통해 결판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결판이 나느냐는 물음에, 그건 설득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과학에서 증명이 아니라 설득으로 논쟁이 결판난다고 하니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쿤은 과학사를 잘 들여다보면 그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쿤은 과학혁명을 '개종 conversion'에 비유했습니다. 패러다임을 갈아치우겠다는 과학자의 결심은 어떤 종교를 믿던 사람이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마치 사울이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갑자기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처럼, 과학자도 어느 순간 영감을 받아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과학적 세계관을 바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용한 '전향'이라는 표현도 정치적인 비유입니다. 그렇게 전향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혁명이 이루어지는데, 그렇더라도 전향을 거부하고 옛날의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다 죽어야 비로소 혁명이 완수되겠지요. 이는 양자 개념을 만들었던 독일의 저명한 물리학자 플랑크가 했던 말입니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의 승리는 반대파를 설득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반대파가 다 죽고 나면 새로운 것에 익숙해진 새 세대가 자라나면서 이루어진다고요.

 

p.129-130

데카르트 파는 뉴튼이 신비주의적인 중세의 관념으로 되돌아갔다고 비판했습니다. 자연에 신비로운 숨은 힘이 내재해 있고,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작용으로 지구와 태양이 서로를 끌어들인다는 말은 비과학적이라고 거부한 것입니다. 이 '원격 작용' 문제는 오랫동안 과학적으로 중요한 쟁점으로 논의되었습니다. 2장에서 논의했듯 갈릴레오가 어떻게 달이 바닷물을 끌어당길 수 있느냐며 케플러의 조수이론에 반대했을 때와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이 예를 보면, 같은 과학 분야에서도 패러다임이 다르면 어떤 것이 훌륭한 지식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뉴튼역학 패러다임의 기준으로는, 정확히 개념을 정리해서 단순한 법칙을 세우고 그것을 수학적으로 표현하여 공식을 푸는 것이 최고입니다. 그렇게 해서 계산해낸 내용이 관측과 일치하면 된 것이고, 더 이상 '깊은' 설명 같은 것은 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반면 데카르트의 역학 패러다임에서는 자연현상이 어떤 작동원리로 일어나는지를 말해주는 기계적인 설명이 가장 중요합니다. 수학으로 풀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지만 그것은 주목적은 아닙니다. 이렇게 판단기준이 달라져버리니까 모두들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평가를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p.139

코페르니쿠스 혁명 전 유럽의 천문학 관측기록을 보면 신성(nova)이 없습니다. 신성이란, 원래 아주 멀어서 지구에서 보이지 않던 별이 엄청난 폭발로 확 밝아지면서 갑자기 우리에게 새로이 보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중 규모가 큰 것은 초신성(supernova)이라 합니다. 그런데 옛날 유럽의 천문학 기록을 보면 이 신성이나 초신성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 반면 동시대 중국의 기록에는 많이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2장에서 살펴보았듯, 유럽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체계에 따라 달부터 그 위로 천상에 있는 것들은 다 완벽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완벽하기 때문에 변하는 것도 없고, 새로 생기거나 사라질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신성 같은 것을 보았을 때, 달 밑쪽에 있는 지구 대기 안에서 일어나는 기상현상으로 처리해버리고 천문기록에 넣지 않았던 것입니다.

 

혜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천계의 불변성 개념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 반대로 하늘에서 자꾸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새로운 별이 나오는 것을 두고 흉조니, 길조니 하며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새로운 별이 나오기만 하면 기를 쓰고 기록을 했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동서양은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p.140-141

똑같은 물건을 보더라도 두 패러다임에서 전혀 다른 관측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쿤은 패러당미이 바뀌면 관측되는 현상 자체가 바뀐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같은 내용을 관측하여 그것을 증거로 삼아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패러다임들을 비교 검증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맙니다. 쿤은 이 상황을 조금 과장해서 "혁명 이후의 과학자들은 아주 딴 세상에서 사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렇게 말해놓고 보니까 좀 미안했는지, 적어도 그 비슷한 생각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물론 쿤도 패러다임이 바뀐다고 해서 자연 자체가 변한다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자연은 자연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패러다임은 우리 머릿속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세상'이라는 것은 패러다임을 통해서 걸러져 나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짜 '자연' 그 자체를 인간은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은 관측을 통해 자연을 알게 되는데, 그 관측은 특정한 패러다임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있는 자연은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지요.

 

p.150

과학혁명에 대해 쿤은 혁명을 겪으면서도 과학은 진보하지만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커지는 것이지,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도구적인' 과학의 진보를 이야기하는 데 그친 것입니다. 

 

p.151

순수과학자들, 또 많은 과학철학자들은 '실재론'적인 입장을 많이 표명합니다. 과학적 실재론 아니면 짧게 그냥 실재론이란, 과학의 궁극적 목표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과학이론은 관측된 사실을 기술하고 새로운 현상도 예측하는 등 경험적 유효성을 가질 뿐 아니라, 이론이 말하는 모든 내용은 관측 불가능한 부분까지 글자 그대로 정말 옳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실재론자들 중에서 낙관적인 사람들은 현대과학이 자연에 대한 진리를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성공적으로 파악했다고 봅니다. 그보다 비관적인 실재론자들은 진리를 알아낸다는 그 목표를 뚜렷이 달성하진 못하고 있지만, 이루지 못하더라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서 포퍼가 그렇습니다. 포퍼의 입장에 의하면 과학자들은 가설을 내세워서 반증하고, 또 다른 가설을 내세워서 반증하고, 그러면서도 끝없이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진리를 겨냥한 가설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p.163

과학의 진보를 희망한다면, 우리가 지금 안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어디서라도 수정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실재론에서 가장 아끼는 과학의 성공이라는 명제가 흐릿해집니다.

 

p.164-165

뉴튼도 천문학이나 물리학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주를 창조한 신의 섭리를 알아내고자 했고, 신학 연구 자체도 정말 많이 했습니다. 물리적 운동량이 보존된다는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의 주장 역시 신이 창조한 것이니 더 이상 늘지도 파괴될 수도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통상적인 의미에서 종교를 열심히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인슈타인도 물리학의 기본원리는 신이 정해주신 것으로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단순하고 아름답고 완벽한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는 양자역학을 확률적으로 이해하는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에 반대할 때도,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저는 학생 때 그 이야기를 듣고 아인슈타인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신이 뭘 하고 노는지 그가 어떻게 안다는 것입니까? 그리고 보어는 왜 신과 연락이 안 되고 자신은 된다고 하는지 굉장히 교만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아인슈타인을 정말 존경하면서 자랐는데 '이 사람이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배반감을 느꼈습니다. 아인슈타인 이후에도 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은 대통일이론 등을 추구하며 우주를 움직이는 기본적 원리는 궁극적 진리를 표현하는 단 한 가지 이론에 들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는 일신교의 종교적 태도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p.170-171

우리가 실재론자들의 주장 중 보존해야 할 것은, 과학지신은 제멋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인간에게 가르쳐주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는 태도입니다. 과학은 인간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를 따라가는 것이라는 게 기본 입장이고, 그런 입장이 없다면 과학은 전혀 의미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실재'란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실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나오는데, 이런 해석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판 위키백과를 보면 조금 더 명확한 정의가 나옵니다. '인식 주체로부터 독립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것', 그것을 좀 더 쉽게 말하면 실재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을 지칭한다고 봅니다. 자연은 우리의 허튼 수작을 허용하지 않고 저항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발명한다고 해도 자연이 협조를 해야 가능합니다. 자연이 협조한다든지 저항한다는 것은 은유적 표현인데, 그런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실재인 자연, 그 자연이 정말 어떤 본질을 가지고 있는지를 표현할 언어가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은유적으로 자연을 의인화해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제가 볼 때 과학적 실재론은 실재에 대한 것을 최대한 배운다는 우리 자신과의 약속 또는 결심(commitment)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포퍼의 반증주의나, 쿤의 정상과학 논의나, 반프라센의 반실재론에도 있습니다. 그런 태도는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살아야 하겠다는 일종의 이념, 이데올로기입니다. 과학을 추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주 기본적인 것입니다. 과학을 하지 않았던 우리 조산들은, 자연에서 뭔가를 계속 배워나가겠다는 태도가 약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의 학문은 고전을 공부하거나 사회질서를 잡는 데 집중했지, 자연을 파헤치고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 다 들어가서 배우고 하는 태도는 약했던 것 같습니다. 서양의 학문도 중세까지는 그런 점에서 별로 큰 차이가 없었는데, 이런 실재론적인 태도가 새로이 자리를 잡으면서 근대과학이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p.172

제가 가진 실재주의의 입장은 능동적인 것으로, 과학은 가능한 한 실재에 대해 최대한 연구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반대할 사람이 없겠지요. 세상에 누가 배우는 것을 나쁘다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실재주의에 의하면, 과학은 실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모든 길을 우리 능력이 닿는 대로 추구하면서, 그 과정에 도움이 된다면 서로 상충하는 이론체계들도 동시에 허용하고 유지해야 합니다. 

 

p.173

이론이 실재를 표상한다는 개념과 잘 통하는 것은 철학자들이 '진리'의 의미를 정의하고자 할 때 가장 상식적으로 나오는 대응론(correspondence theory)입니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그 내용이 실재와 대응하면 참이고 아니면 거짓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아리송합니다. 우리가 실재라고 하는 것을 정말 알 수도 없는 상태에서, 그 실재와 우리의 이론이 대응하는지 어떻게 판단한다는 말입니까?

 

p.174~175

대응론이 상식적인 개념인 것 같아도 사실 이렇게 난해하기 때문에, 거기에 반대하는 정합론(coherence theory)이 등장합니다. 정합론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어떤 말이 참이라는 것은 우리가 믿고 있는 모든 다른 말들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의미일 뿐이라고 합니다. 이 정합론은 제가 위에서 내놓은 실재주의와 잘 연결됩니다. 다시한 번 '진리'를 떠나서 생각하려는 노력을 기울여봅시다. '진상'을 생각합니다. 어떤 과학이론이 말해주는 내용이 관측결과와 일치할 때, 그 이론이 진상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측결과를 우리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 결과를 우리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관측결과와 이론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실재에 대해 뭔가를 잘못 알고 있다는 증거로 보는 것입니다. 이론과 관측 간의 정합을 어떻게 해서든 이루어내야만 우리가 진상을 파악하고 있다고 주장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정합을 '이루어낸다'는 것은 쿤이 말하는 정상과학에서 하는 과업입니다.

 

그러나 정합을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이론을 수정할 수도 있지만, 관측기구나 해석을 조정해서 다른 관측내용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관측결과를 단순히 실재의 표현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진상'은 어떤 패러다임 내부에서 성립됩니다. 여기서 2장에서 논의했던 관측의 이론적재성을 다시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관측은 실재 그 자체의 순수한 표현이 아니라, 이론에 의해 매개된 것입니다. 귀납적 실증도, 포퍼의 반증도,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진리의 대응론은 무슨 의미인지 잘 알 수가 없고, 정합론은 이해는 되지만 이론과 실재의 관계를 이야기해주지는 못합니다.

 

p.176~177

과학이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는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을 쓰고, 우리가 잘 다루는 수학으로 풀고, 여러 가지 현상을 이상적으로 단순화하기도 하는 식으로 아주 깨끗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엿볼 수 있는 자연의 모습은 사실 굉장히 복잡하고 지저분한 것 같기도 하고 좀 이해하기도 힘들고 참 오묘하게도 복잡합니다. 즉, 여러가지 실험이나 관측을 해보면 결과는 그렇게 단순하고 깨끗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전통적 실재론적 입장에서는 실험기구가 부정확하거나 혼선을 일으키는 다른 요인들이 작용했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로 우리가 관측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해서 관측결과가 깔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실재 그 자체는 궁극적으로 단순하고 깨끗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저는 그것 또한 일신론적인 종교적 관념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이 왜 자연을 그렇게 지저분하게 창조했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신이 어떤 마음으로 자연을 창조하셨는지 인간이 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p.184~185

'토대' 비유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널리 쓰이고 있지만 다시 잘 생각해보면 문제가 있습니다. 지식의 토대를 찾으려는 작업에서 인식론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장에서 본 데카르트의 회의론적 고민, 3장에서 본 측정기준 설립의 어려움, 또 4장에서 본 패러다임의 붕괴 가능성 등은 모두 지식의 튼튼한 토대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토대라는 개념은 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견고하다는 이미지입니다. 좋은 토대는 단단하기 때문에 아무리 충격을 주고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고 그 위에 믿고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철학 연구를 조금이라도 하다 보면 과학에 그런 토대는 없다는 것이 금방 드러납니다. 이론도 관측도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과학지식은 근거가 없고 정당화되지 않는 것이라고 비관적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까요? 그러한 회의주의적인 몰락이 토대주의의 가장 큰 위험입니다. 

 

포퍼는 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 토대주의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조금 다른 비유를 했습니다. 기초 위에 건물을 쌓는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강바닥에 교각을 꽂고 다리를 놓는 일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강바닥은 물컹물컹해서 단단한 토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압니다. 그렇지만 교각을 어느 정도 깊숙이 꽂으면 다리는 충분히 안정됩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완벽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식의 정당화도 완전히 확실한 명제들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p.187

우리에게 아주 생생하고 멋진 대안이 되는 이미지를 제시해 준 사람이 있는데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며 혁명가였던 노이랏입니다. 그는 우리 인간이 지식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를 타고 있는 항해자들과 같다. 배에 물이 새는데 육지로 올라가서 선박 건조대에서 배를 해체하고 최상의 부품으로 다시 건조할 수 없고, 바다 한 가운데 떠서 자신들의 배를 고쳐야 하는 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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