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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를 조작하는 사람들(3)

by Diligejy 2016. 11. 14.

p.110~111

프로이트가 목표했듯이, 자립한 주체로서 문제와 마주 서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지라도 세상에는 그런 일이 가능한 사람만 있지 않다. 현실의 인간은 좀 더 나약하고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살고 있다. 무언가에 매달려서라도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한다. 완전히 자립해서 살아가지 못하더라도 살아가는 어떤 의미를 손에 넣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본래 추구해야 할 인생이 아닐지라도 좀 더 강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한층 큰 뜻을 지니고 있는 존재와 자신을 동일시해서 보잘것없고 약한 자신에게도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고 느끼고 싶어한다. 이런 바람이 융의 애인이 되어서라도 곁에 있겠다는 선택을 하게 했을 터이며, 컬트 종교와 반사회적인 집단, 파시즘 등 정치운동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배출해왔을 것이다.

 

p.130~131

최면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알렌은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면 상태에 놓인 사람은 평소와는 달리 기억력이 뛰어나다는 점이었다. 최면 상태에 놓이면 복잡한 지시나 방대한 자료를 별 어려움 없이 기억하고 한 자 한 자 모두 뚜렷하게 떠올렸다. 게다가 꽤 오랜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만 본인은 자신이 그런 기억을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다시 최면 상태에 빠졌을 때만 그 기억을 꺼낼 수 있었다. 암호를 정해서 자물쇠를 잠가놓으면, 암호를 아는 사람만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암호를 말하는 사람이 꼭 알렌일 필요는 없었다. 실제 알렌은 누군가가 암호를 속삭이면 자물쇠가 열리도록 지시했고, 그 방법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하나 알렌은 중요한 발견을 했다. 최면 상태라도 언뜻 보면 평소와 전혀 다름없이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소수이긴 하지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최면이 걸린 상태임에도 평소와 똑같이 말을 주고받고 별 다르지 않게 행동할 수 있었다. 그렇기 떄문에 그 사람이 트랜스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알렌은 이런 유형의 사람을 이용하면 '인간 카메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p.136

에릭슨이 사용한 기법 중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기법 중 하나가 더블 바인드다.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랄 때, 그 일을 할 생각이냐 아니냐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선택지를 준비해 질문하는 방법이다. 복수의 선택지가 제시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해도 결국 같은 결과로 유도된다.

 

이 기법은 영업이나 판매 등에서 응용되고 있다. 자동차를 살까 말까 갈등하는 고객에게 "이 장치를 달아놓을까요?" 아니면 "자동차 색깔은 흰색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검은색을 좋아하세요?"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법이다.

 

p.137

더블바인드는 함의(implication)이라고 불리는 기법 중 하나다. 인간의 마음은 불가사의해서 뭔가를 하도록 직접적으로 말하면, 명령받았다고 받아들여 마음속에서 저항이 생긴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넌지시 말하거나, 하는 것을 전제로 말하면 저항이 생기기 어렵다.

 

가령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인 아들이 공부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있다고 하자. 그럴 때 아무리 공부를 하라고 독촉해도 소용없다. 하지만 "내년 이맘때에는 이렇게 가족이 모두 모여 한가하게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없겠네. 대학교는 1학년 때가 가장 바쁘다고 하니 말이야."와 같이 말해보자.

 

p.141

가령 "공부하지 않으면 대학에 떨어진다"라고 위협하는 것보다 "열심히 하면 A대학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이 조심스럽게 중얼거리는 편이 말 자체에 대한 저항이나 반발이 훨씬 적다.

 

p.142~143

그렇다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저항하는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소 거리감이 있는 사람인 경우에는 저항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서 대화의 실마리를 붙잡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말하고 싶지 않다고 .... 꽤 분명하게 말해주는구나. 의지가 강해서 좋아. 예전부터 이렇게 단호한 성격이었어?"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가까운 사이라면 "말하고 싶지 않다"는 저항에 공감해주면서 돌파구를 열 수 있다. "말하고 싶지 않다고..... 네가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당연하지. 너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잘못했어."와 같은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p.150~151

이런 조건 형성을 적절하게 이용하면 기분이나 의욕을 조절할 수 있다. 성공 등 좋은 결과를 낸 조건을 일상생활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가령 일일이 행동을 기록해두었다가 일이 잘 풀렸을 때 했던 동작을 찾아내고, 필요할 때 그 동작은 한다. 일이 제대로 진행되었을 때 듣던 음악을 기억해두었다가 필요할 때 다시 듣는다. 기분이 좋아지는 복장이나 결과가 좋았던 필기도구 등도 기억해두었다가 활용한다.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아무 생각 없는 방법이나 생활습관을 바꾼 탓에 성공하는 방법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 원리를 응용해서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심리 상태를 조절할 수 있다. 생활과 행동을 유형별로 분류해놓고, 다음 행동이나 생각으로 전환시킬 때 신호가 되는 자극을 주는 것이다. 정해놓은 음악을 틀거나 벨을 울리는 행위가 널리 이용되고 있다.

 

조건형성을 안정제로서 이용할 수도 있다. 가령 일이 원활하게 진행될 때 정해진 말을 해주거나 웃는 얼굴로 가볍게 몸에 손을 댄다. 이런 말이나 동작은 일이 잘 될것 같은 자신감과 안심감을 주는 조건형성이 된다. 본인이 낙담해 있을 때나 마음이 약해졌을 때 정해진 말을 해주거나 웃는 얼굴로 몸에 손을 대면 마음이 안정될 수 있다.

 

p.152~153

역설적 단계는 혼란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전의 규칙이나 틀을 믿을 수 없게 되며, 진행해야 할 방향이나 믿어야 할 기준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즉 기존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을 뒤흔드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세뇌에서는 의도적으로 역설적 단계에 놓아두고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정해진 규칙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아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예측된 사건이 안정제로서 작용하는 것과는 반대로 예상치 못한 사건은 불안감을 높인다. 일단 안정제로 의존하게 만들어놓고, 그것을 갑자기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불안감에 휩싸이게 한다.

 

갑자기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되면, 본인은 혼란스럽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신을 돌이켜보고 자책하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보기 위해 두려움에 떨며 안색을 살펴보게 된다.

 

그런 심리 상태에 놓이게 해서 긴장이 높아졌을 때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를 넌지시 알려준다. 불안한 심리 상태에 놓여 있었기에 불안한 상태를 해소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타협하고 상대가 말하는 대로 따라하게 된다.

 

p.168~170

리프턴은 사상 개조를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를 여덟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로 환경을 조절한다. 사상 개조를 방해하는 외부의 정보나 사람의 접촉을 차단할 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생각까지 규제한다. 유일하고 절대적인 정치적 도그마만이 진실이며 그 외는 모두 부정된다.

 

두 번째로 신비성을 조작한다. 사회주의 사상과 신비성이란 말은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지만, 리프턴에 의하면 당이나 지도자는 특별히 선택된 존재로서 일종의 신비성을 띠고, 엄숙한 아우라를 두르고 사상이 개조된 사람 앞에 나타난다고 한다. 신비성은 위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사명을 다하고 있다는 강한 신념에서 생긴다. 종교적인 교주와 같은 영향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순수성을 요구한다.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에서는 완전히 순수하든지 아니면 불순하든지 이 둘 중에 하나밖에 없다. 절대적인 선 아니면 절대적인 악만 존재한다. 또한 전체주의에서 불순한 존재는 부끄러운 존재이며 죄 많은 존재이다. 세뇌를 받은 사람은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시달려서 자신의 불순성을 스스로 비판하게 된다. 자기비판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순화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 자신을 순화시키기 위해 자아비판을 하게 한다. 경쟁하듯이 자신의 죄를 밝혀내고, 자기폭로와 자아비판을 하면 할수록 순화되고 또한 동료끼리 서로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연대감을 높이게 된다.

 

다섯 번째로 성스런 과학으로서 이념을 자리잡게 한다. 사회주의의 기본적인 전제인 이념 그 자체를 의심하는 일은 일체 허용하지 않으며 이것은 경외해야 할 신성하고 절대적인 것이며, 동시에 그 밖의 일에는 엄밀한 과학성이 요구된다. 이념은 종교이면서 동시에 과학인 '성스런 과학'인 셈이다. 그렇기 떄문에 이념을 의심하는 것은 신을 의심하는 것과 같은 죄다.

 

여섯 번째로 교조주의적인 정해진 표현을 사용한다. 자유롭게 언어를 사용할 수 없으며, 완전한 선을 나타내는 '해방', '인민', '프롤레타리아적 견해'와 완전한 악을 뜻하는 '자본가', '부르주아', '제국주의'와 같은 이분법적인 표현만 사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치관이나 사고가 조종된다.

 

일곱 번째로 이념이 개인보다도 높은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것은 전체주의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며, 동시에 컬트 종교에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이념은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개인의 경험이나 삶보다 우선된다. 개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각자의 특성에 따른 성장이 아니라 획일적인 교리에 완전하게 합치되는 것이다.

 

여덟 번째는 '생존 불허'라는 사고방식이다. 전체주의적 가치관에서는 존재를 허락받은 사람과 그 밖의 사람 외에는 없다. 이념에 일치한 완전하게 선한 존재만이 생존하는 것이 허락되고, 그 밖의 존재는 생존이 불허된다. 요컨대 처형되는 것이다. 생존을 이어가는 유일한 희망은 이념에 완전히 합치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중국에서 집행유예가 달린 사형 판결이 내려지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다. '사형, 집행유예 2년'의 의미는 2년 사이에 사상 개조에 의해 아무 결점 없는 사회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생존이 불허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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