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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인간사색

by Diligejy 2017. 7. 13.

p.20

프롬은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p.28~29

사랑은 때로 굴레일 뿐만 아니라 원수다. 사랑이 대중문화의 영원한 소재가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환희, 맹세, 음모, 질투, 배신, 절망, 상처, 복수, 죽음, 환생 등등이 사랑에 따라붙는 끼워팔기용 상품이기 때문이다. 굴레이거나 원수인 줄 알면서도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것엔 마약 도박 사랑 등이 있지만, 이중에 합법적인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그래서 사랑은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마케팅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p.30

"남자는 욕망하는 상대를 사랑하고 여자는 사랑하는 상대를 욕망한다"는 말도 있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걸 가진 사람을 사랑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은 상당 부분 정치경제학이다.


p.41~42

한국 남성은 다른 방식으로 뻔뻔하다. 이승재는 남자가 바람을 피워 신경정신과를 찾은 위기의 부부 중 80%는 아내가 어림잡아 물어보거나 심지어 묻지 않았는데도 남편이 순순히 고백한 케이스라며, 알고 보면 남자는 '고백의 동물'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남자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의존성'때문이다. 어린이가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일부러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처럼, 남자들은 '나 바람 피웠어. 나쁜 짓 했어. 그래도 당신은 날 사랑해줄 거지?' 하며 아내에게 기대는 동시에 아내의 사랑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려는 충동을 갖고 있는 것.


그러나 그런 무의식 속의 '의존성' 이면엔 바람은 피워도 가정은 절대 깨지 않는다는 남자들의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강자의 여유가 어리광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고나 할까?


p.42

불륜은 사랑 감정의 순수성을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비아냥대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 자신을 희생하고 타인의 이익을 꾀하므로 사랑은 이타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타인을 소유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감정 중에서 가장 이기적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배신당할 때 사람들은 가장 잔혹해지는 것이다.


p.64

섹스가 스포츠가 되더라도 '정신 스포츠'를 겸하면 좋겠다. 그래야 계급과 지위를 앞세워 '황제 골프'를 치고 '황제 테니스'를 치는 불공정 행위를 어느 정도라마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p.83~84

프로이트는 마르크시즘에 반대하면서 재산의 공유가 인간을 평등하고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며, 그 이전에 인간에게는 숙명적인 적대감이 있고, 이 적대감은 삶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타인에 대한 부러움, 이상적 자아에 대한 적대감과 파괴적인 충동이 에로스의 본질이므로 재산의 균등이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라캉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균등한 사회란 우리가 믿고 싶은 생각속에서만 존재하며, 그런 사회는 욕망을 제거한 사회이기에 죽음의 세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은 차별받을 때 평등을 원하지만 인간이 가장 참지 못하는 것이 평등이기 때문에 그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언제나 더 나은 것을 얻으려 하고 더 많이 얻으려 하는 것이 욕망의 본질이므로 평등이란 갖지 못했을 때의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와서 프로이트나 라캉이 제시했던 '결여로서의 욕망'을 비판하며, 욕망을 '생산'으로 정의하려는 전통이 질 들뢰즈에 의해 수립되었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욕망이 무의식에서 나온다는 입장을 단호히 거부하면서 욕망은 한편으로 자연의 문제이며, 다른 한편으로 사회의 문제라고 보았다. 그들에 의하면, 인간의 육체는 욕망을 생산하는 기계다.


그래서 던져진 질문이 "금욕에 기초하지 않은 혁명, 반대로 욕망에 기초한 혁명은 불가능한가?"라는 것이었다.


p.85

욕심 없이 미친 듯 일할 리 없다. 그건 아주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만족은 욕망의 불행이며, 욕망은 만족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이 시사하는 것처럼, '욕구' '욕망' '욕심'이 우리 자신을 지배하는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다.


p.86~87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는 어떤 일을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함정에 빠져 다른 것들을 희생해가면서까지 그 일을 밀어붙인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적으로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변절의 역사를 워낙 오랫동안 지켜본 탓인지 한국인들은 '신념'과 '소신'을 사랑하지만 그 이면의 '욕망'에 대해선 비교적 무관심한 것 같다. 물론 '욕망'없는 인간은 없다는 점에서 욕망 자체는 전혀 문제삼을 게 못 된다. 문제는 과잉 욕망이다. '과잉'인지 아닌지 그걸 판별하는 게 쉽지 않다 하더라도 말이다.


한국은 대표적인 '욕망공화국'이다. 욕망에 두 얼굴이 있듯, 좋은 의미도 나쁜 의미도 아니다. 나쁜 건 이중잣대다. 보통사람들의 욕망은 '평등주의'라고 꾸짖으면서도 자신의 욕망은 무한대를 추구하는 엘리트들의 이중잣대 말이다. 엘리트건 보통사람이건 이제 거국적 수준으로 욕망의 '열관리'가 필요한 시점은 아닐까?


p.90~91

윌 듀란트는 니체의 사상에 대한 해설을 하면서 "권력을 향한 열망 앞에서는 이성도 도덕도 무력하다. 이성과 도덕은 이 열망의 손아귀에 든 무기이고, 이 열망의 꼭두각시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우리들의 욕망의 반영이다"고 했다.


우리의 사고를 규정하는 것은 이런 잠재적 욕망, 권력에의 의지의 이런 맥박이다. 사실 의식의 역할은 너무나 과대평가되어 왔다. 우리들의 활동은 대부분 무의식적인 것이고 따라서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것이고 따라서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무의식이 미력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의식적 사고가 가장 미약한 사고이다.


열정과 탐욕은 나쁜가? 우문愚問이다. 그야말로 극소수를 제외하곤 그건 인간 본성으로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문제는 열정과 탐욕은 뒤섞여 분리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남들은 물론 열정을 가진 엘리트 자신도 잘 모른다. 권력욕이라는 자신의 탐욕 충족을 위해 뛰면서도 그걸 대의명분을 위한 열정으로만 생각한다. 세상을 자기 뜻대로 개조해 보겠다는 열정도 권력욕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에게 권력은 열정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 '목적'은 아니라는 생각이 그런 착각을 지속시킨다. 윤리와 염치가 실종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을 진리와 정의로 간주하기 때문에 모든 걸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모든 혁명의 타락은 바로 그 착각에서 연유한다. 중앙집권적 조직 자체를 부정하는 아나키즘과 자율주의라는 정치사상의 등장은 권력의 그런 속성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딜레마다. 열정은 '보다 높은 곳'을 향할 때에만 발동하고, 열정 없이 대중을 '선동'하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p.95

열정 다음에 오는 건 환멸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환멸에서 배울 게 있기 때문이다. 조지 산타야나는 "환멸에서 지혜가 생긴다"고 했다. 설사 배우는 게 없다 하더라도, '열정과 환멸'은 일종의 사이클일 수 있기 때문이다.


p.96~97

우리의 여론 형성 구조와 관행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 한국 정치는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것 같지만, 실은 유권자들의 '쏠림놀이'에 정치인들이 놀아나는 형국이다. 유권자들이 즐기는 게임의 이름은 '공중에 띄웠다가 땅바닥에 떨어뜨리기'다.


한국 유권자들을 움직이는 최대 동력은 반감이다. 균형은 없다. 반감의 대상을 응징하는 데에 목숨을 건다. 그 반사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공중에 뜨게 된다. 자기들 잘나서 공중에 뜬 줄 안다. 그들의 간이 부으면 어쩔 것인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책임은 없다. 그냥 띄워놓고 뒤돌아서서 제 갈 길 가면 그뿐이다. 그래놓고 땅바닥에 쿵 하고 떨어지면 '그럴 줄 몰랐다'고 오히려 호통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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