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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글

오만과 반성

by Diligejy 2018. 5. 27.

조언을 멈췄다.

친구 A가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떤 친구에 대한 서운함과 성격이 어긋남을 비난했다. 처음엔 그에게 조언을 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조언을 구했기에 조언을 조금씩 시작했다. "A야 ~~" 


말한지 5초도 안되서 A가 말을 잘랐다. "니가 그렇게 말할 권한은 없고."

숨이 턱 막혔다. 당황스러움을 넘어 모욕감을 느꼈다. 

그의 성격을 대충은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인줄은 몰랐다.

그는 그저 자신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잘했다고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내색하지 않았다. 내색한다 해도 A는 어떤 이유를 잡아서든 합리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조절하며 A가 말하는걸 들은 뒤 생각했다. 

오만함이 이 친구의 발목을 잡겠구나.


그러면서 뜨끔했다. 혹시 나는 이렇게 모욕감 주진 않았을까?

인간이라는게 대개 비슷하고 모자란 사람들이다.

A가 그랬다면 나도 그럴 가능성이 있을거다.


특히나 이런 오만은 단순히 판단의 실수를 넘어 불필요한 적을 만들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태도를 듣는 척도 안하고 그저 자신이 똑똑하다는 걸 강조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를 2~3번 경험한 뒤 A가 공감을 요청하거나 조언을 요청해도 

형식적으로 하거나 애둘러 조언을 거절한다. 나는 그의 말에 끄덕거리기만 하는 인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 B는 개별주를 좋아하는 친구다. 그 친구는 자신의 직감에 의한 트레이딩을 통해 쾌감을 얻고 싶어한다. 그에게 돈을 모으고 싶으면 그런 행동을 중단하고, 패시브투자를 하거나, 자산배분을 하라고 조언을 귀에 박히도록 했지만, B는 자신의 신념이 뚜렷했다. 


신념이 뚜렷했다기보다는 군대보다도 더 수직적인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B는 입사때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내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다. 

1달 전 정도였다. 감기 기운이 있어 쉬고 있는데 B에게 전화가 왔다.

"통화 가능해?"

"응, 가능하지. 근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B는 나에게 힘들었던 것을 토로했다. 자신이 개선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괴롭히자 참고 참았던 B가 폭발해서 사무실에서 소리를 질렀다는 얘기였다. 아차 싶었다. 군대보다도 더 수직적인 B의 회사는 B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듣는 순간 내 일도 아니었지만 등골이 서늘해졌다. 우선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냉정하게 수습할 방안을 세워보자고 제안하며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그렇지만 그의 목소리와 성격으로 보아 이미 감정을 통제하기 힘들어보였다.

그래서 그에게 말했다.

"너 지금 감정적으로 접근하면 너만 손해야. 그리고 서운한거 알겠고, 들어보니

너희 회사 선임들이 작정하고 괴롭히는 거 같아. 그래서 숙이고 들어가는게 싫겠지. 

근데 너 지금 대학생활 하는게 아니라 사회생활 하는거잖아. 

사회생활하다보면 잘못이 없더라도 전략상 숙이고 들어가야 할 때도 있지 않겠어?


B야 그리고 나도 취준생 백수야. 직장생활 경험이 없어. 

우리 같이 노는 친구들 대부분 취준생이잖아. 

그런 친구들에게 조언 구하지 말고 경험 많은 분들에게 조언을 구해.

그래야 너에게 이득이 되는 조언을 받을 수 있을거야"


그는 동의했다. 숙이기 싫지만 사과하겠다고 했다.

경험이 많으신분에게 도움을 구하라고 한 조언엔 그는 얼버무렸다.


또 무슨 일이 생기거든 전화하라고 했다.


몇 일 뒤 그에게 전화가 왔다.

"상황이 좋지 않아. 사과를 했는데, 사과를 받아주지 않아. 표정도 욕하는 표정이고."

당연했다. 이유도 없이 괴롭히고 미워했는데, 사과한다고 쉽게 받아줄까?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억울하고 힘들다며 고통을 토로했다.

그의 고통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 공감을 잘라냈다.

공감으로 해결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동법을 잘 모르지만, B의 회사문화로 보아 B를 징계해고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B의 성격은 아무런 전략적 대응 없이 감정적 대응을 할걸로 보였다.

그래서 오지랖을 부렸다.

"너 이대로 가다간 징계위원회 올라가겠다. 아는 노무사님이 계셔. 전문가이시니까, 그 분께 연락을 해보고 조언을 구하는게 좋을거 같아."


몇 번을 생각한 끝에 오지랖을 부렸지만, B는 그 오지랖을 듣지 않았다.

그 뒤, B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기 바랬지만 짜증과 분노가 차올랐다. 그래서 노무사님께 연락을 드려봤냐고 물었다. 안했다고 물었다. 왜 안했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의 어투에서 서운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대학 팀과제도 아니고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하는 사람으로서 태도가 보이지 않는 것에 화가났다. 그래서 연락하고 대응방안을 조언받으라고 잔소리했다. 얼마 뒤 이렇게까지 했는데 했겠지 하고 전화해봤다. 안했다고 했다. B에게 다시 오지랖을 부렸다. 

그제야 연락을 하고 조언을 받았다고 했다.


화가났을 때는 B가 너무나 감정적이고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오만했다. 같이 학교다닐때 그는 나에게 자격증취득과 취직준비를 계속해서 권했다. 그 밖에도 지혜로운 조언을 해줬다. 그의 조언에 따라 미리미리 준비했다면 나는 직장에 취직했거나, 혹은 높은 연봉을 받는 기업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식대로 준비하지 않았고 엄마의 사고가 터지고 정신이 없다가 작년말부터에서야 자격증 취득, 스펙 쌓기 등을 시작했다. 당연히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수밖에 없었다. 오만함의 댓가는 너무나 컸다.


그리스 비극을 보면 다들 hubris(오만)을 경계한다. 필연적으로 죽을 운명인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신들과 동등하려 하지 말라는 경고다. 그동안 아무 느낌이 없다가 오늘 그 말을 읽다가 든 느낌은 자신의 지식, 경험, 시간 등 모든게 한계가 있는 인간이 마치 무한한 신인 것처럼 아는체 하지 말고 한계를 가진 사람으로서 경청하라는 뜻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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