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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외교학

외교의 시대(3)

by Diligejy 2015. 12. 16.

p.76~79

'미국의 하강'과 '중국의 상승'은 겉보기로는 꽤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한 국가의 상대적 권력을 측정하는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경제력 차원에서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상승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이 있다. 특히 미국 경제력의 상대적 하강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보다 조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의료보험 개혁법안에 이어 2010년 7월에 금융 부문 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던 재정 적자의 규모도 2009년 GDP 대비 9.8%에서 2103년에 4.1%, 2014년에는 2.8%로 감소했다. 만약 미국 정부가 이와 같은 국내 개혁을 앞으로도 계속 성공시켜 나가면 미국의 상대적 하강은 그 속도가 늦춰질 수도, 혹은 중단될 수도 있다.

 

또한 최근에 미국이 이른바 '셰일 가스 혁명' 또는 '에너지 르네상스' 시대를 맞았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기술 개발을 통해 그동안 경제성이 없던 셰일 가스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원래 미국에서 천연가스 생산량은 2005년까지만 하더라도 감소 추세였고 2020년에는 국내 소비량의 26%에 달하는 7조 8900억 세제곱피트의 천연가스를 수입에 의존해야 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셰일 가스 생산량은 2007년 1조 3천억 세제곱피트에서 2012년 8조 5천억 세제곱피트로 증가했고, 2013년 시점에 천연가스 가격은 2008년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로써 미국은 에너지를 해외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고 상대적으로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대단히 높은 중국에 비해 유리한 상황을 맞았다. 덧붙여 러시아의 경우 천연가스의 가격 하락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저유가 정책으로 경제 전체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국제 정치에서 미국의 전략적 입지가 셰일 가스 혁명으로 불과 수 년 만에 개선된 것이다.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상승도 무조건 보장된 것은 아니다. 중국이 앞으로도 최근 수년 전까지와 같은 두 자리 수 퍼센트의 고성장을 이어가기는 힘들 것이다. 한편으로 중국의 입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내 정치의 안정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런데 현재 중국 정치는 공산당이 지배하는 폐쇄 체제인 반면, 중국 경제는 시장 원리를 도입한 개방 체제다. 과연 중국은 정치 체제와 경제 체제 사이의 이러한 괴리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이는 중국의 국내 정치 안정에 있어 중요한 관건이 아닐 수 없다. 고속 경제 성장의 결과로 중국 국민들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는 높아지고 있고, 또 그 이면에서 점증하는 빈부 격차와 부패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만약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들의 정치적 욕구나 불만을 해소하면서 정치 체제를 개방적인 방향으로 서서히 연착륙시킬 수 있다면, 중국의 고속 성장은 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에 실패하여 공산당 정부와 국민이 충돌하게 된다면 그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이 중국의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강한 리더십으로 국민의 정치적 욕구를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밑으로부터 올라와 누적되는 국민의 정치적 욕구를 지금처럼 통제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 외에도 중국에는 환경 오염, 부패, 빈부 격차, 소수 민족 문제 등 난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국력의 순탄한 부상이 힘들어질 수 있다. 2013년 이래 미국 경제는 서서히 호전되는데 비해,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2013년에 7.7%, 2014년에는 7.4%까지 하락하며 성장이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중국은 2015년 7월 중국 증시가 폭락한 데 이어 8월에는 1997년 동아시아 위기와 2008년 금융 위기 때에도 자제했던 위안화의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이는 세계 경제의 판도가 상당히 유동적임을 보여주고 있고, 심지어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의 경착륙과 그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둘째, 세계의 권력 구조를 분석할 때 경제력뿐만 아니라 군사력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분명 경제력 면에서는 권력이 분산되면서 다극 체제로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권력을 구성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인 군사력 면에서는 여전히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 군사력 평가에 있어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고, 미국의 군비 지출은 전 세계에서 지출되는 군비 중 약 41%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군사 부문에 대한 미국의 연구개발비는 미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국가들의 연구개발비 총합보다도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도 군사력에 관한 한 미국의 절대적 우위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대 국가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 국력을 생각할 때 연성 권력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 국제 사회의 많은 국가와 시민들을 공감하고 따라오게 만드는 보편적 가치와 문화의 측면에서, 미국이 지향하는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 등의 가치는 아직도 상당한 호소력이 있다. 또한 경제 발전의 기반이 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그것을 과학기술 발전과 신산업의 창출로 연결해내는 능력의 측면에서도 미국의 대학 및 고등교육은 아직도 중국이나 다른 모든 국가들에 비해 탁월하다. 다시 말해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상승'은 결코 필연적인 결론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p.87

미국의 입장에서 동아시아는 결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미국은 세계의 패권국으로 군림하기 훨씬 전인 20세기 초부터 동아시아에 깊숙이 개입해 왔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기본적으로 이 지역이 어느 한 국가의 지배적 영향력 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한 예로 1905년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러일 전쟁의 종결을 중재했는데, 이는 승전국인 일본 세력이 만주까지 지배할 정도로 너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세력균형 정책의 일환이었다. 그 후에도 미국은 1930년대에 일본의 세력이 너무 커지자 중국 편에 서서 일본을 견제했고, 1949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공산당 정부가 중국 대륙을 지배하게 된 시기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인 일본과 동맹을 맺어 중국을 견제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는 미중 수교를 통해 중국을 끌어당기며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포용했다.

 

p.89~90

중국은 세계의 공장 역할을 담당하면서 동아시아의 주변 국가들을 중국 경제와 구조적으로 연결시키고 이들의 대(對)중국 의존도를 높여 왔다. 무엇보다 중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주변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 추진하였다. 중국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2002년부터 협의해온 중국-아세안 FTA(CAFTA)가 2010년 마침내 발효되어 이 지역에 세계 3대 자유무역지대가 탄생했고, 같은 해 중국은 대만과도 사실상의 자유무역협정이라 할 수 있는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하였다.

 

중국은 또한 신속한 경제 성장과 과소 소비, 과잉 저축으로 누적된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에 힘입어 동아시아 지역에 적극적으로 투자와 경제 지원을 실시했고 개도국에 대해 차관이나 인프라 지원을 확대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개발은행이 중심 역할을 했는데, 그 활약상을 보면 2009년까지 141개국에 관여해 활동을 펼쳤고 2008~2009년 단 2년 동안 에너지 부문에서만 개도국 정부와 기업들을 대상으로 650억 달러를 투자했다. 같은 기간에 중국수출입은행을 포함한 중국 정부의 개도국에 대한 장기 대부 액수는 세계은행보다 많은 1100억 달러 이상이었다. 이러한 중국의 자본 대부는 에너지 및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들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을 중국 경제에 연결하고 통합하는 방향으로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러시아, 카자흐스탄, 미얀마로 연결되는 원유 파이프라인들이 건설 중이거나 가동 중이며 또 중국 남서부와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를 잇는 철도가 건설 중이다.

 

사실 '차세안(ChAsean)'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중국 경제권에 상당히 통합된 상태이다. 중국 남부의 경제 발전이 가속화됨에 따라 그 지역과 국경을 맞댄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북부 국경 지역이 그 나라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 내륙에서부터 시작된 잘 닦인 도로와 철도 등의 인프라가 점차 이 국경 지역으로 연결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중국 경제력의 이와 같은 '남하(南下)' 혹은 동남아시아 진출은 크게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하나는 중국 원난 성-미얀마 내륙-방글라데시-인도로 이어지는 이른바 '미얀마 통로(BCIM Economic Corridor)'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동남부-베트남 북부(통킹 만)-메콩 강 유역개발 지역(GMS)으로 이어지는 루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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