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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투자

의사결정 개론 - 주식하는 마음

by Diligejy 2023. 7. 15.

https://link.coupang.com/a/6XXfm

 

[유영]주식하는 마음 : 주식투자의 운과 실력 결국은 마음이다!

COUP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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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너무 '주식'에만 촛점이 맞춰져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 중 다수는 주식이라는 소재를 활용해서 의사결정을 할 때 적절한 질문을 하는 방법, 설계된 질문에 따라서 분석하는 방법, 이 두 가지를 주로 다루는 분석과 의사결정 개론서라고 보는게 더 적합할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꼭 주식을 하지 않더라도 이 책을 보면, 약간 무서울(?!) 정도로 분석하는 덕력(?!)을 볼 수 있다. 주식 대신 비즈니스, 마케팅을 대신 대입하더라도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계속해서 질문과 근거 그리고 시나리오 3가지를 강조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가설을 세우고 더 나은 방향으로 틀리면서 의사결정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가장 먼저 질문을 적절히 설계해야, 해당 프레임에 맞춰 분석이 들어갈 수 있는데, 여기서 프레임이 잘못 맞춰진 경우 마치 동그라미에 네모 조각을 집어넣듯 아무리 열심히 분석해봐야 부분최적화에 그칠 수 있다.

 

그리고 근거는 단순히 이번년도 이익이 얼마더라, 판매량이 얼마더라 수준을 넘어 맥락을 통찰할 수 있을정도의 분석을 요구한다.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설계하되, 여기서도 추론을 통해 확률을 추측해보고, 어느정도까지 내가 잃을 수 있는지, 어느정도까지 딸지, 비율을 측정해서 이것 또한 가설에 포함시키고 의사결정에 반영한다.

 

그리고 틀리면 가설에서 어떤 부분이 틀렸고,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스스로 체크해보는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야구나 스포츠의 경우에는 원칙을 몸에 익힐 수 있지만, 복잡적응계에서는 누구도 도와줄 수 없기에 이 훈련은 스스로 해야한다는 것이고 공격적 투자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삶의 윤택을 어느정도 포기하고 이 가설 수립과 분석 작업에 모든 것을 걸 수 있겠냐는 물음을 던진다. 

 

당연히 나는 그럴 자신은 없다. 다만, 추론과 분석 그리고 확률을 이용한 의사결정 사고 프로세스는 다른 곳에도 사용할 수 있을거 같으니 내 기대수익률은 채운 셈이다. 

 

주식을 하건 아니건 상관없이 추천할만한 책이다. 

 

밑줄긋기

p.30

마이클 모부신은 어떤 시스템에 '실력'이 존재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간단한 질문 하나를 제시합니다. '일부러 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일부러 질 수 있는 게임이라면 노력해서 이길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p.35

아까 세금과 수수료를 합한 0.28%가 누적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셨지요? 거기에 슬리피지를 (그때그때 다르지만) 0.3%만 더해볼까요? 매주 한 바퀴를 회전시키면 투자금의 30.16%(0.58% * 52)를 연간 거래 비용으로 내게 됩니다. 으, 제가 계산하고도 소름이 돋네요. 연 30% 이상 수익을 확정적으로 낼 수 있는 금융상품이 있다면 아마도 사기일 확률이 높겠지요. 그런데 매주 포트폴리오 전체를 갈아치우는 분들은, 연 30% 이상을 확정적으로 누군가에게 지급하고 있는 겁니다.

 

주식투자에서 손해를 봤다면 그 이유는 원칙 없는 부화뇌동 매매를 해서도, 잘못된 정보를 들어서도 아닙니다. 투자가 아닌 투기를 해서도 아닙니다(애초에 투자와 투기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매매를 지나치게 많이 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사악한 누군가가 내 주머니를 약탈한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증권사에, 나라에, 거래 상대방에게 상납한 것입니다. 매일매일 충동적으로 잦은 매매를 반복하다 보면 확실히 돈을 잃습니다.

 

p.37

원칙이라는 건 우리가 진리로 떠받들어야 하는 법칙이 아닙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좀 더 확률 높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개별 시행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실패하고 나서 무언가를 배워 다음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피드백 루프'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드백 루프가 없다면, 아무리 시행을 많이 하고 경험을 쌓아도 성공 확률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p.38~39

'테슬라가 잘될 것 같다'라는 명제는 아주 많은 세부 논리 조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테슬라 차량의 판매량이 늘어야겠지요. 그게 이익으로 이어져야 할 테고, 이익 증가가 주가에 반영되어야 하고요. 테슬라 차량의 판매량이 늘어난다는 건 다음과 같은 가정이 바탕이 되겠지요. 

 

1) 친환경 트렌드가 앞으로 지속될 것이다

2) 친환경 트렌드의 솔루션으로 전기차(HEV나 FCEV가 아닌) 가 대두할 것이다

3)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사(벤츠나 GM 등) 대비 독보적인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4) 충분한 생산성을 확보하여 판매량이 늘어나는 만큼 이익이 늘어날 것이다

5) 늘어난 이익의 크기가 시장의 기대치보다 큰 폭일 것이다

6) 기타 주가 상승을 저해할(또는 주가를 하락시킬) 요소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대충만 생각해봐도 여섯 가지 가정이 들어가 있네요.

 

집중하세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언급한 요소들은 테슬라 주식에 대한 각론이고요, 투자 전반에 걸쳐서 원칙을 만들려면 이 가정들을 일반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투자자들은 기업의 이익에 주목한다

2) 기업의 순이익이 예상치를 넘어서면 주가가 상승한다

3) 이익 증가에 따른 주가 상승은 다른 요소에 의한 주가 하락보다 우선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주가가 오르건 내리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만약 자동차 판매 예약은 늘어났는데 생산에 차질이 생겨서 실제 판매량은 늘어나지 않는다면, 제조업에서는 생산 라인을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겠지요. 갑자기 무역 분쟁이 터져서 주가가 하락했다면, 기업 자체의 이슈만 볼 게 아니라 기업이 대외 변수에 얼마나 민감한지도 잘 파악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을 것입니다.

 

이제, 주식시장에 뛰어들 때 무엇을 조심하고 무엇에 신경 써야 할지 어렴풋이 감을 잡으셨을 겁니다. 정갈하게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에 따라 필요한 경우에만 매매를 하여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고, 매매의 결과(좋건 나쁘건)에 따라 무언가를 배워서 원칙을 계속 가다듬어가면 됩니다.

 

p.65

의사결정을 반드시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p.66~67

기록을 하지 않으면 과거의 의사결정을 왜곡하게 되고,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현재를 평가하면 잘못된 결론을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평가로부터 나온 원칙을 아무리 시장에 적용해봤자 잘못된 학습밖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복잡적응계가 아닌 곳에서라면 기록의 중요성이 그렇게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명시적인 원칙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원칙을 따르는 훈련을 많이 하여 좋은 원칙이 '몸에 기억되도록' 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성공을 위한 확실한 원칙이 존재하기 어려운 복잡적응계에서는 확률론적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고, 확률론적 사고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은 확실하지 않은 가설들을 쌓아 올리다가 어느 순간 방아쇠를 당기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언제나 '틀릴 수 있음'을 전제해야 하고, '틀린 이후에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기록의 중요성을 이해헀다면, 다음 질문은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단락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우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반증 가능성'입니다. 의사결정에 포함되는 가설은 반증 가능한 형태여야 합니다.

 

반증 가능성은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칼 포퍼가 제시한, 과학적 사고의 기본 원칙입니다. 어떤 명제가 과학적이기 위해서는 그 명제가 '틀릴 수 있는', 즉 '거짓임을 입증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틀릴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명제는 반증 불가능한 명제이며, 비과학적입니다. 반증 불가능한 명제를 바탕으로 쌓아 올린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 미신에 가깝습니다.

 

p.68~69

반증 가능성 개념을 투자 의사결정에 접목해봅시다.

 

"A라는 주식의 가격이 현재 1만 원인데, 앞으로 2만 원이 될거야."

 

이 명제는 반증 불가능합니다. 가격이 실제로 2만 원에 도달하여 명제가 옳았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격이 8,000원으로 하락했다면, 이 명제는 틀린 것일까요? 아직 오르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요. 가격이 1만 5,000원으로 오른 이후에 다시 하락했다면요? 마찬가지로, 아직 오르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떤 경우에도 이 명제가 '틀렸음'을 입증할 수 없습니다. 투자자가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달성되지 않는 경우 무한히 기다릴 뿐이며, 어떤 유의미한 지식도 축적할 수 없습니다.

 

이 예시를 반증 가능한 명제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라는 주식의 가격이 현재 1만 원인데, A회사가 신규로 추진하는 사업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와서 다음 분기 실적에 반영될 예정이고, 신사업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던 투자자들의 시각이 바뀌면 주가가 2만 원까지 상승할 수 있어. 실적발표까지 2개월이 남았고, 투자자들은 발표된 실적을 그 즉시 또는 늦어도 1개월 이내에 인지할 거야."

 

예상 시나리오를 이렇게 바꾼다면, 이 명제는 다양한 경로로 틀릴 수 있습니다. 일단 신사업의 성과가 부진하게 나올 수 있지요. 사업이 지연되거나 취소되어 매출이 아예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고, 매출은 발생했지만 비용이 커서 이익이 예상보다 적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익이 잘 나오더라도 주가가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죠. 여기에는 다른 투자자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실적을 좋게 전망하고 있었거나, 실적이 잘 나오건 말건 A 주식에 관심이 전혀 없거나, 예상치 못한 새로운 악재가 터졌거나 등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경로로 틀리건 간에, 반증 불가능한 형태의 시나리오를 제시했을 때보다 더 세밀하게 내가 틀린 이유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업이 전망대로 되지 않는 여러 경우를 배우거나, 다른 투자자의 시각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는 등 새로운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교훈을 다음번 의사결정에 반영할 수 있지요.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복잡적응계에서 좋은 원칙이란 '여러 번 시행했을 때'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원칙입니다. 앞의 사례처럼 반증 가능한 명제들로 투자 의사결정을 조립해나가면, 한 번의 시행에서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원칙을 꾸준히 개선할 수 있습니다.

 

p.72

시간의 압박은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정보를 차분히 수집하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나쁜 의사결정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잘못된 정보 처리를 막기 위해서 정보 수집을 막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시장으로부터 아예 눈과 귀를 막아버리는 것은 당장의 성급한 의사결정과 잦은 매매를 방지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인 성장에는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의사결정을 하는 시간과 그 의사결정을 집행(매매)하는 시간을 분리하는 것이 나쁜 매매를 방지하면서 장기적으로 의사결정의 질을 높여가는 길입니다.

 

p.76~77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여기서 더 사야 하나' 또는 '지금쯤 팔아야 하나'라는 두 가지 고민을 늘 하게 됩니다. 질문을 이런 식으로 하면 경로 의존성에 노출됩니다. '내가 이미 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니까요. 앞으로의 주가 변동은 내가 주식을 보유했느냐 아니냐와 상관이 없습니다. 주가 변동과 상관없는 요소가 사고의 한 축이 되어버리면 잘못된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질문을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내가 현재 이 금액을 100%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다면, 오늘 이 주식을 신규로 얼마나 매수할 것인가.'

 

이렇게 질문을 던졌을 때 나오는 대답과 나의 실제 포지션(보유 비중 또는 보유량)이 크게 차이가 난다면, 포지션을 바꿔야 할 시점입니다.

 

원점에서 다시 고민하는 사고에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이렇게 응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주식을 처음 발견해서 매수할까 말까를 고민할 때, 반대로 이렇게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내가 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지금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주식을 신규로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기꺼이 팔아버릴 것인가, 아니면 무시하고 계속 가져갈 것인가?'

 

거래의 기본은 상대방의 생각을 읽는 것입니다. 어떤 주식을 볼 때 현재의 상태만 보는 것보다 주식이 걸어온 경로를 봐야 합니다. 그러면 과거에 이 주식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즉 이 주식을 바라보고 있는(또는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진 경로 의존성 또는 앵커링 이펙트로는 무엇이 있을까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지나치게 높은(낮은) 가격'의 이유 한 가지를 댈 수 있습니다.

 

p.79~80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글로벌 제약사들은 대규모 특허 만료에 노출됐습니다. 매년 150억~200억 달러의 매출액을 일으키던 약품들이 특허가 만료될 위기에 처한 겁니다. 신약을 개발하려면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데,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자 대형 제약사들은 긴급하게 다른 회사의 파이프라인(개발 중인 약품)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들어서 글로벌 제약사들은 파이프라인을 왠만큼 확보했기에 더는 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 제약사들의 기술수출 건수는 2016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헀고, 계약금액도 줄었습니다. 심지어 이미 계약됐던 프로젝트가 반환되기도 했습니다. 거래에서는 항상 급한 쪽이 불리한 조건을 걸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인지만 분석해서는 잘해봤자 절반의 진실밖에 볼 수 없습니다.

 

p.81

결과를 평가할 때는 신중한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결과가 잘 나왔더라도 내가 잘한 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내가 무엇을 잘했는가에만 집착하는 일은, 모래성을 무너뜨린 마지막 모래알만을 유심히 관찰하며 붕괴의 이유를 찾는 일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딱히 내가 잘못해서 결과가 나쁘게 나온 게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일관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결과를 평가할 때 외부 요인(내가 통제할 수 없었던 요인)과 내부 요인(내가 통제할 수 있었던 요인)을 함께 봐야 합니다. 결과가 잘 나왔을 때는 '내가 잘해서'라고 하고, 잘못 나왔을 때는 '운이 없어서'라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남 탓을 하려면 잘됐을 때도 남 덕분이라고 하고, 내 덕분이라고 하려면 잘못됐을 때도 내 탓을 해야 합니다.

 

p.93~94

의사결정에 대해 훈련받지 않은 사람들은 틀 짓기를 무시하고 바로 정보 수집 단계로 뛰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정의 틀을 짓는다는 것은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일입니다.

 

p.96

단순히 'A 주식의 주가가 오를까?'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질문을 '주가는 EPS * PER인데, A 주식의 앞으로 1년간 EPS는 ~% 증가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이 전망이 실현됐을 경우 PER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식으로 바꾼다면 좀 더 답변하기가 수월합니다.

 

p.98~99

막연히 '넷플릭스의 내년 주가는 얼마가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는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의 크기, 시장점유율, 수익성 등으로 차근차근 나눠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대답을 찾아나가기 편한 방법입니다.

 

p.100~101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연구 결과는 비단 주식시장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심리, 과학기술, 역사 등에 대해서도 끝없이 많은 연구가 존재합니다. 이런 연구를 접하면 접할수록 질문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애플의 주가는 얼마가 적정할까?'라고 물었다가도, 고민을 깊이 하다보면 '애플은 제조업에서 미디어 회사로 변모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과정에서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은 얼마나 확장될 수 있을까? 미디어 회사에 대해서 높은 프리미엄을 부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으로 질문을 바꿀 수 있습니다.

 

p.101

투자 의사결정은 다분히 개인적인 결정입니다. 누구도 정답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대답이냐 아니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나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나의 여유 자산은 얼마인지, 감당할 수 있는 손실의 폭은 얼마인지, 언제까지 일할 수 있는지, 내년과 내후년 또는 은퇴 전까지 나의 재테크 수익률은 어느 정도이기를 바라는지, 투자에 투입할 시간과 열정은 얼마나 되는지, 투자자로서 다른 사람보다 나는 무엇을 더 잘 할 수 있고,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 등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매우 많습니다.

 

'지금이 주식에 투자하기 좋은 때인가?'라는 질문은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주식에 투자하기 좋은 때'라는 건 원래 없거든요. 이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됩니다. "저의 예상 노동 가능 기간과 연봉 상승률, 은퇴 후 필요한 월간 비용을 고려했을 때 재테크를 통한 기대수익률은 6.5%입니다. 그러면 현재 저의 재산에서 주식에 얼마의 비중을 배분해야 할까요?"

 

p.109~110

투자를 시작할 때는 '내가 이 게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즉, '얼마의 기간에 유의미한 수익률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가'에 대해 먼저 대답해야 합니다. 인생에서 투자에 나서는 전체 기간을 의미할 수도 있고, 개별 투자 건의 유효기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투자 기간이 1년이라면, 내가 신경 써야 할 주가의 측정자는 대부분의 일간 변동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오늘 하루 동안 단기 매매를 통해 수익을 내겠다고 한다면 본 단위, 심지어 초 단위의 주가 변동까지 모두 중요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어떤 타임라인의 주가 변동을 예측하여 수익을 내고자 하는가' 또는 '내가 맞힐 수 있는 주가 변동의 타임라인은 어떤 단위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기업 실적의 변화와 그에 따른 주가 변동에 베팅하고자 한다면 측정 단위는 최소한 3개월 이상이어야 할 것입니다(실적이 3개월에 한 번 발표되니까요). 어떤 질병의 확산 추이에 따라서 매매를 하고자 한다면 매일매일 발표되는 확진자 수에 초점을 맞춰야 할 테니 측정 단위는 하루 정도로 짧게 잡아야 할 것ㅇ비니다. 

 

주식시장은 하나의 시장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게임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마치 일반 승용차와 레이싱카가 공공도로에서 함께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어서 차를 가지고 도로에 나왔다면,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하는 것이 나의 미션 아닐까요?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레이싱카를 만났다고 해서, 그 차를 추월해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안전한 운전을 위해서는 그 차를 무시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어떤 게임을 하느냐는 내가 스스로 정의해야만 합니다.

 

p.114

"경기가 좋아질까요?" 또는 "지금 주식투자를 해도 될까요?"라는 질문은 좋은 대답을 얻기 어렵습니다. 좋은 질문은 "다수의 사람이 경기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요?", "새로이 투자에 나서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연간 수익률은 얼마인가요? 앞으로의 성과를 얼마나 낙관하고 있나요?" 등입니다.

 

p.115

마켓 타이밍을 추구할 수 없다면 매수 매도의 판단을 어떻게 할까요?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볼 수 있습니다.

 

- 현재의 가격대는 얼마나 편안한가?

- 현 가격대에서 3년간 보유할 경우 연평균 기대수익률은 얼마인가?

- 만약 상승한다면 얼마나 상승할 수 있고, 하락한다면 얼마나 하락할 수 있는가?

 

p.119

시장이 오를지 내릴지는 모릅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시장이 일단 하락했다고 가정하고 왜 하락했는지를 물어봅시다. 다음으로는 시장이 일단 상승했다고 가정하고 왜 상승했는지를 물어봅시다. 딱히 대답이 떠오르지 않나요? 그럼 아직 경험이 부족한 것입니다. 한쪽으로만 대답이 떠오르나요? 그럼 편향된 생각을 갖고 계신 겁니다.

 

p.123

장세에 대한 질문은 수익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최소한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시장의 변동을 이기고 좋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주식을 어떻게 골라낼 것인가?'

 

p.125

종목 추천만 듣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은, 좋은 재료만 있으면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발상과 같습니다.

 

p.126

우리는 언제나 불완전합니다. 그리고 링에 올라가서 얻어터지는 경험을 해봐야만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발전할 수 있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아주 조금이라도 나의 언어로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 한 줄이라도, 내일 어떤 매매를 하고자 할 때 왜 이 매매를 하는지 적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애초에 아무 생각이 없다면,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 생각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p.131-132

아이디어가 소진되어서 주식을 팔았는데, 손해를 본 상태에서 팔았으면 나는 '손절 원칙을 엄격히 지키는 사람'이 됩니다. 이익을 본 상태에서 팔았으면 '익절을 철저히 하는 사람'이 됩니다.

 

원점에서 다시 고민해봤더니 과거보다 더 매력적이라 주식을 더 샀는데, 그때 과거 매수 시점보다 주가가 하락해 있는 상태였다면 나는 '저가에 추가 매수를 하는 물타기 전문가'가 됩니다. 주가가 오른 상태에서 그 결정을 했다면 나는 '달리는 말에 올라타는 추세 추종자'가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 머릿속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현상만을 보고 일반론을 추측하려 할 뿐이지요. 그런 관찰에서 나온 격언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다만 분할 매수와 분할 매도는 꽤 유익합니다. 목표 비중이 10%일 때, 3%가량씩 세 번에 걸쳐서 비중을 채워나가는 식의 매매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단기적인 주가 변화는 예측하기가 지극히 어려운데, 매수 시점을 분산하면 "어제 하루 만에 비중을 다 채웠는데 오늘 주가가 급락했어"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매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이 주식을 아예 쳐다도 보지 않을 생각이 아니라면, 한 번에 다 팔지 말고 야금야금 파는 게 신상에 이롭습니다. 앞서 언급한 행동의 후회와 비행동의 후회 사이 어디엔가 위치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마음이 흔들릴 때면 3분의 1을 매도합니다. 저에게는 일종의 매직 넘버입니다. 3분의 1을 매도하고 나면, 주가가 오르더라도 기존 수량의 절반 이상이 남아있기 때문에 수익을 충분히 누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3분의 1만큼은 높은 가격에서 팔았기 때문에 마음이 덜 아픕니다. 하하.

 

p.135-138

중요한 질문은 수급의 독립변수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누가 더 조급하게 또는 일관성 있게, 다른 변수에 영향을 덜 받으면서 강력하게 매수 또는 매도를 할까요? 대부분의 경우 자금의 집중도가 높은 외국인이겠지요. 그 다음은 국내 기관 투자자, 개인 투자자 순입니다. 

 

기관 투자자(외국인 포함)가 사고 개인 투자자가 파는데 가격이 상승했다면, 이 현상에 대한 해석은 '기관이 개인으로부터 물량을 뺏어오고 있다'가 아니라 '기관이 조급하게 매수에 나서고 있다'입니다. 기관이 팔고 개인이 사는데 가격이 상승한다면, '기관은 급하게 팔고 싶어 하지 않는 상황이다'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기관이 매수하고 개인이 매도하는데 주가가 내려가면 '기관이 조금씩 매수에 나서고 있지만 급하지 않다'라는 뜻이고, 기관이 매도하고 개인이 매수하는데 주가가 내려가면 '기관이 급하게 팔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2020년 3월을 해석해볼까요? 외국인 투자자는 3월 23일 저점까지 코스피에서 10.7조 원을 순매도했습니다. 이후 주가가 반등하는 와중에도 1.8조 원을 추가로 매도하여, 월간 총 12.5조 원을 매도했습니다. 연초부터 4월 말까지는 19.6조 원을 매도했습니다. 금융위기 때보다 더한 기록적인 매도였습니다. 같은 기간에 기관 투자자는 7.2조 원을 매도했습니다. 그리고 개인 투자자는 24.2조 원을 매수했습니다. (합이 0이 안 되는 건 기타법인, 기타외국인 때문입니다).

 

던져야 할 질문은 '기관과 외국인이 팔고 있는데 멍청한 개인 투자자만 매수에 나서고 있으니 위험하지 않은가?'가 아닙니다. '외국인 투자자가 3월에 강하게 매도하고, 4월에도 여전히 매도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입니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한국 주식은 국내 기관 및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의 한국 주식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국내 투자자에게 한국 주식은 웬만하면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 보유해야 하는 자산입니다.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 주식'은 한국 기업들의 펀더멘털이 특별히 좋을 때 또는 신흥국(선진국 대비) 주식(채권 대비)을 사야 할 때 가끔 보유해서 초과수익을 내는 용도의 자산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2020년 3월은 코로나19가 미국과 유럽으로 확산되던 시기입니다. 이 시점에 전 세계 주식시장이 급락했고, 채권가격이 급등했습니다. 한국 주식시장의 펀더멘털을 보자면, 한국은 중국에 이어 빠르게 질병 확산을 저지했고 신규 확진자 수가 안정세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물론 경제활동 정상화는 멀었고 앞으로 전 세계 경기가 위축된다면 한국 기업들의 실적도 타격을 입겠지만, 이미 주가는 금융위기 때 이상의 경기 충격을 반영한 수준으로 하락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경기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중앙은행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정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점은 시장에 전혀 반영이 안 되고 있었지요.

 

당시 저는 '패닉의 역설'이라는 아이디어로, 시장은 곧 반등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사람들이 패닉에 빠졌기 때문에 주가가 곤두박질쳤지만, 패닉 탓에 대인 접촉을 꺼리며 극도로 조심하고 있기 떄문에 바이러스의 확산은 저지될 것이고, 정책 당국자들 또한 패닉을 우려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정책을 내놓을 것이다'라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즉 가격과 펀더멘털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겁니다.

 

'펀더멘털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게 볼 여지가 있다, 주식가격은 급락했다, 전 세계 주식시장이 모두 하락했다, 채권 가격이 급등했다' 등에서 추론할 수 있는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 이유는 유동성 확보 또는 안전자산 선호입니다. 한국 시장은 신흥국 중에서 가장 유동성이 좋은 시장입니다(코스피가 아직도 선진국 주가지수에 편입되지 못한 이유도 한국이 후진국이어서가 아니라, 신흥국 주가지수에서 한국이 빠져나갈 경우 그 벤치마크를 추종하는 펀드들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기 떄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 위기가 올 것 같을 때는 일단 베팅 금액을 축소해야겠고,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은 빠르게 현금화를 해야겠고, 그런 상황에서 한국 주식은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는 대상이지요(코스피가 현금인출기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정부에서 내놓는 위기 대응책이 채권 매입 위주였으니, 채권은 '최종 대부자'인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사준다는 믿음 덕에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자산이 됐습니다.

 

그리고 3월 하순부터는 금 가격이 급등했지요. 금은 위기 때마다 선호되는 안전자산입니다. 코스피의 반등은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유 불문하고 팔고 나와야 할 시장에서 그나마 손해를 덜 보고 나올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상황이었던 거죠. 한국 시장의 펀더멘털을 운운할 겨를이 없는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이 상황은, '외국인 투자자라는 거대한 수급 주체가 펀더멘털과 관련 없는 이유로 헐값에 주식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투자 기회다'라고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점에 개인 투자자가 강하게 매수를 하고 말고는 판단에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던 거죠. 만약 '개인 투자자의 매수세가 어떤 의미인가?'를 따지고 있었더라면 이런 판단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p.150-151

아이디어에는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아니, 있어야만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반증 불가능한 아이디어를 무한정 붙들고 있느라 손해를 보게 되니까요(한국전력에 장기투자한답시고 그 주식을 20년간 보유한 투자자는 어떻게 됐을까요?)

 

3장에서 반증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타임라인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매수매도는 반드시 이 타임라인을 고려하여 실행하여야 합니다. 3개월 이내에 어떤 이벤트가 벌어질 것으로 생각해서 주식을 샀다면, 다음 날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주식을 팔아서는 안 됩니다. 얼마 후 그 이벤트가 벌어졌고 주가가 올랐는데도, 왠지 좀 더 갈 것 같다는 이유로 주식을 보유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 의사결정을 하고 싶다면 3장에서 말씀드린 대로 원점에서 다시 고민하여 보유한다면 보유하는 이유를, 매도한다면 매도하는 이유를 다시 작성해야 합니다.

 

현대차에서 새로이 내놓은 차량이 연간 30만 대 정도 판매량을 증가시켜줄 것 같다는 생각으로 현대차 주식을 샀고, 실제로 그 일이 벌어졌다고 해봅시다. 그 이후에도 주식을 계속 가지고 있으려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어야 합니다. 원래의 예상을 초과하여 50만 대 정도 팔릴 것 같다거나, 그 차량에서 나올 이익이 생각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거나, 이번 차량의 디자인 콘셉트를 보니 앞으로 나올 다른 신차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거나 하는 식으로요(물론 이 모든 새 아이디어도 '반증 가능한' 형태여야 합니다).

 

장기투자 전략이 유명해진 데에는 워런 버핏의 발언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주식을 10년간 보유할 생각이 없다면, 단 10분도 보유하지 마라"라는 발언은 장기투자를 권하는 발언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기로 이 말은 무조건 10년간 보유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주식을 볼 때, 그 회사의 앞으로 10년간의 미래를 그려볼 정도로 회사와 산업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투자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뜼입니다. 주식투자를 바라보는 버핏의 기본적인 관점은 기업이 성장하여 벌어들이는 이익이 투자자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의 원천이므로, 기업의 장기적인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p.154~155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펀더멘털을 공부하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심리를 해석하기 위해 근거를 확보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던져야 할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 심리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 심리의 변곡점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p.157

지진이나 테러, 지정학적 변수 등에 대해서도 유사하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여행주 매수를 고려하는 중이라면, 예측 싸움을 하려는 사람은 테러 때문에 여행 수요가 감소할 확률을 예측하려 하겠지요. 반면 노출을 조절하려는 사람은 '테러 때문에 수요가 급감한다고 했을 때 최대한 내려갈 수 있는 가격 그리고 테러가 발생하지 않고 사업이 잘 진행됐을 때 최대한 올라갈 수 있는 가격이 현재 가격 대비 매력적인 수준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테러로 인한 손실을 회피하고 싶다면, 오히려 이득을 볼 수 있는 방위산업 주식을 패키지로 매수할 수도 있겠지요.

 

던져야 할 질문은 '지금 공포감이 최대치인가, 아닌가?'가 아닙니다. 최대 최소는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습니다. 던져야 할 질문은 '사람들이 더 공포감에 빠진다면 가격이 얼마나 더 하락할 수 있는가? 어느 정도의 가격이면 거저먹는 가격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등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질문은 '예측을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p.160~162

기아차는 2010년 4월 K5라는 중형 세단 차량을 출시하며 대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자동차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차량이 동일 세그먼트의 전작 포르테와는 디자인이나 성능에서 일취월장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고, 타사 동일 세그먼트의 차량에 비해서도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판매량이 좋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투자자는 기아차를 불신하고 있었습니다. K5가 출시된 이후 기아차 주식을 샀다면 2012년 4월까지 주가가 약 3배로 오르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K 시리즈의 포문을 열었던 K7이 출시된 2009년 11월에 기아차 주식을 샀다면 4배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었고요.

 

어떤 투자자가 이렇게 큰 수익을 거두고 다시 비슷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고 합시다. 현대차는 2017년 6월 코나라는 차량을 출시합니다. 괜찮은 디자인과 성능으로 높은 판매량을 기대할 수 있었고, 후속 버전으로 현대차 최초의 순수 전기차인 코나 EV도 가세할 예정이었습니다. 코나의 흥행을 기대하고 2017년 6월에 현대차 주식을 산 투자자는 이후 3년간 내리막길을 걷는 주가에 쓴맛을 봐야 했을 것입니다.

 

생활 속 아이디어로 투자했을 뿐인데, 무엇이 잘못됐을까요? 코나는 2017년 연말까지 2.3만 대를 판매하며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2019년에는 무려 30만 대를 팔면서 베스트셀링카 대열에 올랐습니다. 생활 속 아이디어가 적중했는데도 주가는 하락했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무엇이 잘못됐을까요?

 

2009년 시점 기아차를 보는 투자자들의 우려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의 여파도 문제지만, 그 직전 수 년간 해외 공장을 공격적으로 늘려오면서 여러 고충이 쌓여 있었습니다. 우선, 차량이 판매가 안 되니까 재고가 많이 쌓여 있었고요. 재고를 털어내기 위해서 판매촉진비, 즉 인센티브를 경쟁사 대비 과다하게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해외에 공장을 짓기 위해서 외화차입금은 잔뜩 늘어났는데, 금융위기 탓에 원화 환율이 급격히 약세로 돌아섰기 떄문에 부담이 이중, 삼중으로 커졌습니다. 

 

K7을 필두로 한 새로운 라인업은 이 모든 부담을 차례차례 다 털어버리는 기폭제였습니다. 상품성이 갖춰지니까 판매량이 늘어나고, 차가 잘 팔리니까 재고 부담도 줄고 인센티브도 줄여갈 수 있었습니다. 공장의 가동률이 올라가니까 해외 공장들은 자체적으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차입금을 빠르게 갚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높은 환율은 더 낮은 가격에 차량을 팔아도 원화 기준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도구가 됐고요. 차를 잘 팔아서 매출액이 30% 늘어났다면, 이익은 50% 급증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2017년의 현대차는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한 해 450만 대의 자동차를 전 세계에 팔고 있는, 나름대로 세계 톱클래스로 인정받는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런 현대차에 연간 30만 대가 추가되어봤자 전체 판매량에 대한 기여도가 7%에 불과합니다(그것도 기존 라인업을 잠식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한 계산입니다). 당시 투자자들이 현대차에 대해 가지는 우려는 한전 부지에 대한 과도한 투자, 환경 규제 대응, 가업 승계 등이었습니다. 근본적인 기업 운영 철학에 의문을 품고 있는 와중에 신차 하나가 흥행했다고 하여 이런 우려가 해소될 수는 없었지요.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인과관계를 구성하려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3장 '겸손함'에서 인과관계를 쉽게 믿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주가를 움직이는 요소는 다양합니다. 언제 어떤 요소가 작용하여 주가가 견인할지 파악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계속 부딪치고 깨져가며 경험이 쌓여야만 이런 요소들을 파악할 수 있지요.

 

생활 속에서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투자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격이란 무엇인지, 기업 분석은 어떻게 하는지, 투자 의사결정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어야만 생활 속 아이디어가 매수 결정을 내리는 '방아쇠'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p.164

대부분의 사람은 회사에 대해서 피상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고민은 '나만 알고 있는 이 회사의 가치가 있는가?'를 넘어서서, '나만 파악하고 있는 이 가치를 남들이 언제 어떤 경로로 알게 될 것인가?'입니다. 만약 회사의 자회사가 알짜배기 땅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회사의 시가총액과 맞먹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것만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언제 어떤 이유로 남들이 그 땅의 가치에 대해서 주목할 이벤트가 발생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6개월 이내에 그 땅을 매각한다거나, 개발 계획을 발표한다거나, 자회사를 모회사와 합병한다거나, 자산 재평가를 통해 시가로 장부에 올린다거나 등의 이벤트가 있겠지요. 이때 그 땅이 정확히 얼마인지보다는 남들이 언제 어떻게 알아봐 줄 것이냐가 수익을 거두는 데 훨씬 중요합니다.

 

p.166

모든 걸 사전에 완전히 준비한 채로 세상에 나설 수는 없습니다. 틀릴 것을 각오하고 틀렸을 때 어떻게 배워나갈 것인가를 염두에 두었다면, 얼른 밖으로 나가서 다양한 상처를 겪어보는 것이 빠르게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길입니다. 이런 태도를 <이기는 결정>에서는 다음과 같이 우아하게 표현합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엄격함은 정확한 단일 수치 예상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추정치를 정확하게 정의할 때 가능하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단 하나의 올바른 비전을 선택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미래를 예상하고 그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엄격한 과정을 통해 얻어진다.

 

p.172

그렇다고 가치평가 기법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드시 공부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현란한 숫자를 늘어놓는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이 주식을 평가할 것인지를 추론할 때 중요한 힌트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네이버, 카카오 주식이 급등하고 있다면 단순히 'PER이라는 지표가 이제 무의미해진 것 같아'가 아니라, '현재 이 주식들의 PER에 내재된 이익 성장률과 할인율을 역산해봤더니 의외로 받아들일 만한 값이 나왔어' 또는 '아무리 낙관적인 가정을 넣어봐도 도저히 이 수치를 정당화할 수 없어'등의 구체적인 추론을 할 수 있습니다.

 

p.176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역사가 반복되는가?'가 아닙니다. '과거에 유사한 시기는 언제였으며, 당시와 지금의 유사성과 차이점은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사안으로부터 보편성과 특수성을 발라내야 합니다.

 

p.179

투자를 잘하기 위해서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을 연구하고 인간의 인지적 한계와 편향된 사고를 연구하지만, 그 귀결점은 늘 남들의 잘못으로부터 내가 이득을 취하는 것입니다. 나의 행동을 철학으로 포장하려는 시도는, 이 냉정한 진실로부터 눈을 가리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진실에서 눈을 돌리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투자 철학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는 현실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투자 철학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는 투자자들은 대개 자신의 저조한 성과를 그 단어로 감싸려 합니다. 일테면 이런 식으로 말하죠. "지금은 일시적으로 시장이 왜곡되어 있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나는 투자 철학을 지켜야 한다. 시장의 변화에 흔들리며 철학을 그때그때 바꾸는 것은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다."

 

참으로 난감한 말입니다. 투자의 기본은 불확실성입니다. 누가 무엇을 정확히 알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의 고정된 철학으로 모든 시대를 극복할 수 있나요? 유연함이 결여된,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철학은 그냥 '고집'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철학'이라는 그럴싸하고 듣기 좋은 행동강령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원칙의 집합'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행여나 투자 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일이 있다면, 이 정의를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p.182~183

투자의 세계에 존재하는 지식은 어떤 것이든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우선 그 지식의 유효기간을 파악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감정에 휩쓸리기 마련이어서 탐욕과 공포 사이를 오간다'라는 지식은, 우리의 유전자 구조가 바뀌거나 호르몬을 통제하는 약물을 전 세계인에게 강제로 투여하지 않는 한은 유효할 것입니다. 반면 '지금 사람들이 공포에 빠져있다'라는 지식은 당장 내일이라도 폐기될 수 있습니다.

 

유효기간이 긴 지식을 토대로, 유효기간이 짧은 지식들이 어떻게 변화해갈지를 추론하는 것은 좋은 시도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은 자본환원율(투입한 자본 대비 회수되는 비율)이 낮다'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한국 기업에는 투자하면 안 돼'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투자자는 높은 자본환원율을 선호한다 -> 자본환원율이 낮았다가 높아지면 주가가 상승할 수 있다 -> 한국 기업은 자본환원율이 낮은데, 그동안은 자본환원율을 높일 유인이 없었다. -> 최근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본환원율이 높아질 기미가 보인다. -> 그렇다면 한국 기업은 좋은 투자 대상일 수 있다'라는 식으로 추론해야 합니다.

 

또는 반대로, '한국 기업의 자본환원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주가가 상승했다 -> 최근 자본환원율을 높이라는 정치적 압박이 거세지고 있어서, 투자자들이 거기에 주목한 것 같다 -> 그러나 한국 기업의 자본환원율이 낮은 데에는 뿌리 깊은 이유가 있어서 규제를 적용하더라도 높아지지 않을 수 있고, 정치 로비를 통해 규제 자체를 못 하게 막을 수 있다 -> 그러니 지금은 자본환원율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승한 주식은 매도하자. 그리고 매수 예정이었던 주식은 이 이슈가 지나간 이후에 매수하자'라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자본환원율이 높은 기업이 좋다'라는 건 단순한 취향입니다. 취향을 취향으로만 남겨두면 투자의 기회는 상당히 제한됩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그 밖의 각종 지식과 결합하면, 그 취향을 변주하여 다양한 투자 기회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p.194

호가와 체결가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집을 매매하러 부동산에 가거나 도매상에서 어떤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해본 경험이 있다면, 호가와 체결가의 차이를 피부로 느껴봤을 것입니다. 어떤 아파트가 10억 원에 매물로 나와 있다가도, 모종의 이유로 인기가 많아지는 것 같으면 매도자가 매물을 거두어들였다가 다시 더 높은 가격에 내놓기도 하지요. 도매상에서는 물건을 얼마나 대량으로 구매할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거래 관계를 발전시켜나갈지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서 가격을 흥정합니다. 호가는 이 정도 가격에서 흥정을 시작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체결가는 실제로 교환에 응했다, 즉 양자가 그 가격에 합의를 봤다는 뜻입니다. 호가와 체결가는 양쪽의 '합의되지 않은 의견'과 '합의된 의견'이라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p.199

가치는 주관적인 환상'이고, 가격은 '합의된 환상'입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주관적인 환상들 사이에 가끔은 접점이 생기고 그때 거래가 성사됩니다. 거래가 성사될 때의 접점을 '가격'이라고 부르지요. 가격의 흐름, 오르내림은 다시 말하자면 '정당하게 받아야 할 가격'이라는 것에 대하여 거래 참여자들이 합의하는 지점이 변해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p.200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 오일 쇼크는 전 세계 경기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두 차례 오일 쇼크가 진행 중이던 당시 공급량은 그다지 크게 줄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1973년 9월 아랍의 총생산은 하루 1,940만 배럴이었고, 감산이 가장 심했던 11월에는 하루 1,540만 배럴이었습니다. 즉 하루 400만 배럴이 감소했는데, 다른 나라의 증산과 수출로 90만 배럴이 충당댔고 순감소폭인 310만 배럴은 세계 소비의 약 5.5%에 불과했습니다. 이를 두고 (극단적이긴 하지만) 모리스 아델만 교수는 이렇게 평했습니다.

 

- 가격이 상승하는 이유는 실제적인 공급 감소가 아니라 공급 감소가 생길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석유가 부족하고 중동 국가들의 석유 무기화가 성공하면 에너지 안보를 위협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이후 광범위한 상식이 됐습니다. 2003년 제2차 걸프 위기 이후 석유 가격에는 양을 표시하기 어려운 '두려움'이라는 요인이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부시 행정부는 에너지 안보, 즉 에너지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주권을 침해당할 수 있음을 상당히 강조했는데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집안은 오래전부터 석유 사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p.201-202

가격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개념으로 '뻬따 꼼쁠리'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앙드레 코스톨라니가 강조하는 용어입니다. 프랑스어 'fati accompli'는 영어로 'accomplished fact', 한국어로는 '기정사실'이라고 번역합니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던 일, 즉 '이미 일어난 사실로 간주하고 있던 일'은 실제로 일어나봤자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역으로, 사람들의 기대와 어긋난 일이 발생해야 가격이 변동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코스톨라니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증시반응을 뻬따 꼼쁠리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합니다. 그는 1939년 리벤트로프 조약(독 소 불가침 조약)을 보고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약세장을 예상했지만, 막상 전쟁이 일어나자 주가는 6개월 동안 급등했습니다. 프랑스 군대가 독일 군대에 완패한 이후에야 시장은 약세로 돌아섰습니다.

 

1990년 걸프전쟁 또한 뻬따 꼼쁠리의 사례입니다.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원유 생산 저하에 대한 우려로 유가는 배럴 당 20달러에서 40달러로 급등했고 주가는 급락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전쟁의 두려움 속에서 주식을 팔아댔지만, 막상 미국이 참전하자 주가는 급등하고 유가는 오히려 반토막이 났습니다.

 

가격을 전망해야 할 때, 가격이 명확한 객관적 가치를 반영한다는 가정은 틀릴 가능성이 큽니다. 객관적인 가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격은 가치에 대한 각자의 주장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합의된 환상'입니다. 객관적인 가치를 계산해내려고 시도하기보다는 이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각각의 참여자들은 어떤 가격대를 불편해하고 어떤 가격대를 편안해할 것인가로 나누어서 대답을 구해보는 것이 가격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훨씬 유익합니다.

 

p.211-212

투자자는 각자의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의 의사결정을 합니다. 이 의사결정은 합리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각 투자자는 (대부분 잘못된 학습으로 이루어진) 원칙을 토대로 (턱없이 부족한 또는 쓸데없이 많은) 정보를 조합하여 의사결정을 합니다. 의사결정 이후 좋건 나쁘건 어떤 결과를 얻게 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또다시 잘못된) 새로운 학습을 하고 새로운 의사결정을 합니다. 

 

이런 각 투자자가 만나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가격입니다. 가격에 대한 이런 관점을 저는 '제한적 합리성 모델'이라고 합니다. 이 모델의 작동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 가정 1: 각 투자자는 각자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 가정 2 : 각 투자자가 입수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 가정 3 : 각 투자자는 제한된 정보와 불완전한 원칙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 가정 4 : 각 투자자의 의사결정 결과는 다른 투자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 행동지침 1 : 다른 투자자가 입수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를 추측한다

- 행동지침 2 : 다른 투자자가 사용하는 의사결정 원칙을 추측한다

- 행동지침 3 : 현재 이 주식을 관찰하는 사람들(오늘 매수한 사람, 오늘 매도한 사람, 과거에 매수해서 보유하고 있는사람, 관심있게 보지만 매수하지 않은 사람)의 의사결정 근거를 추론한다

- 행동지침 4 : 시장 참여자들이 지금보다 더 낙관적으로 변했을 때 얼마나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도 주식을 사려고 할지, 반대로 더 비관적으로 변했을 때 얼마나 더 낮은 가격에도 주식을 팔려고 할지 추론한다

- 행동지침 5 : 현재 가격 대비 위 4번의 상승 잠재력이 하락 잠재력보다 클 경우 매수하고 보유한다

- 행동지침 6 : 위 1~4번을 계속 업데이트한다. 5번을 만족하지 못 할 경우 비중을 줄이거나 매도한다.

 

사람들은 떄떄로 세상을 과도하게 비관적으로 바라보거나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런 현상을 단순히 비합리적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는 나름의 '제한적인' 합리성을 가지고 의사결정에 나섭니다. 그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추론하고 앞으로의 모습을 예상하는 것이 가격 예측의 핵심입니다.

 

p.217

남보다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다음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내 생각과 남들의 생각은 무엇이 다른가?

- 그 차이는 언제, 어떻게 메꿔지는가?

- 내가 틀렸음을 어너제,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내가 틀렸을 때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p.218

내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3장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내 생각을 글로 적어야 자신을 타자화하고 객관화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 맞는데 왜 남들은 이걸 수긍하지 못하는거지?'라고 생각하다가도, 그 생각을 글로 적어 다시 읽어보면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p.223

앞으로 벌어질 이벤트에 남들이 어떻게 반응할까를 추론하기 위해서는 지금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넘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또한 파악해야 합니다. '내 생각과 남들의 생각에 차이가 있는데, 왜 남들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 걸까?'에 답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답변하기 위해서 사람의 두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공부해야 합니다.

 

p.224-225

시나리오별 잠재적인 다운사이드와 업사이드의 폭은 어떨까요? 2월 말 (1,987.01포인트)을 기준으로 계산해봅시다. 2월 말 기준 코스피의 PBR은 0.81배였습니다. 2019년 일본과의 무역 분쟁 때 0.81배까지 내려갔고, 금융위기 때 최저점이 0.77배였습니다. 금융위기 때는 금융시스템이 붕괴한다는 우려가 컸습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당연히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었고요. 이번 사태도 시스템 리스크가 우려될 정도로 사태가 확산된다면 0.77배까지 내려갈 수 있겠지요. 그래봤자 4.9%의 추가 하락입니다.

 

업사이드를 보자면, 코스피의 ROE는 8% 수준으로 글로벌보다 자본효율성이 낮습니다. 한국은 반도체가 이끄는 시장인데, 반도체는 1년여의 다운 사이클을 거치고 상승 사이클에 진입하던 중이었습니다.

 

1) 반도체 상승 사이클에서 ROE 10%를 기대할 수는 있으니, 시장이 안정되어 PBR 1배까지 반등한다면 23.4%(2,453포인트)의 업사이드가 있다.

 

2) 코로나19로 인하여 당장 경기가 회복되기는 어려우니, 그냥 전고점 수준만 회복한다면, 2,250포인트까지 13.2%의 업사이드가 있다.

 

시나리오 1에서 업사이드와 다운사이드의 비율은 4.77배(23.4/4.9)입니다. 시나리오 2에서는 2.69배(13.2/4.9)입니다. 경험적으로 이 값이 3배 이상이면 베팅해볼 만합니다.

 

이번에는 현재의 가격에서 승리 확률을 역산해볼까요? 1, 2번 시나리오의 평균 수익률인 18.4%와 안 좋은 시나리오에서의 수익률인 -4.9%를 중화해서 기대수익률이 0%가 나오게 하는 승리 확률은 21.2%입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코로나 19가 진정되고 시장이 원상 복구될 가능성을 21% 수준으로 매우 낮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직관적으로 그 확률이 대략 반반은 될 것 같으니, 시장이 상당히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

 

p.227-228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투자 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뭐, 틀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이는 것과 '언제, 어떤 경로로 틀렸음을 인지할 수 있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대단히 다릅니다. 틀릴 수 있으려면, 틀릴 수 있도록 시나리오를 설계해야 합니다.

 

'이 주식은 원래 2만 원짜리인데 1만 원으로 저평가되고 있는 거야'라는 식의 명제가 대표적으로 반증 불가능한 명제입니다. 반증 가능한 형태의 명제는 이렇습니다.

 

'이 회사는 자동차를 판매한다. 이번에 신차를 출시했고, 다음 분기 판매량이 30만 대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 경우 영업이익에 1,000억 원 가량을 기여할 수 있고, 전사 영업이익은 8,000억 가량이 될 것 같다. 현재 컨센서스는 7,300억 원이니 내가 시장보다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나의 판단이 맞을 경우 9.6% 어닝서프라이즈가 나오는 것이며, 이 회사는 과거 경험상 5월 말에 실적발표를 하기 때문에 5월 초인 현재 시점에서 1개월 이내에 실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구성한다면, 특정 시점에 특정 형태로 내가 '틀릴' 수 있게 됩니다. 판매량이 생각보다 적을 수도 있고, 판매량이 나왔지만 이익 기여도가 낮을 수도 있고, 신차가 동사 다른 차종의 판매량을 잡아먹어서 전사적으로 볼 때는 이익이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주가가 오르지 않는 이유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실제 전망치가 컨센서스 수치보다 높았거나, 네이버, 카카오 등 소프트웨어 회사들에 주목하느라 자동차라는 전통 제조업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2분기는 잘 나왔지만 3분기 실적이 저조할 것이라는 새로운 전망이 등장해서일 수도 있지요.

 

p.234-235

다운사이드와 업사이드의 폭을 다시 계산해봅시다. 일단 3월 19일 기준 코스피 PBR은 0.59배까지 하락했습니다. 앞에서 금융위기 수준인 0.81배가 하방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깨졌습니다. 0.59배는 2001년 9/11 테러와 2003년 카드채 사태 때의 0.6배보다도 더 낮은 수준입니다. 시장은 이 사건을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넘어선, 인류의 존속에 영향을 주는 사태로 인지하는 듯합니다.

 

이제 더는 하방을 논하는 것은 의미 없는 지경이 됐습니다. 이대로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고 자본주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면 주식의 가치는 그냥 0원이 될 것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사태가 진정된다면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겠지요. 업사이드의 폭은 앞서의 계산과 동일한 가정을 넣을 수 있습니다.

 

1) PBR 1배까지 회복될 경우 : 69.5%(1/0.59) 업사이드

2) 전고점 2,200포인트까지 회복될 경우 : 50.1%(2,200/1,457.64) 업사이드

 

이제 남은 건 인류가 멸망할 가능성이죠. 인류 멸망 가능성을 10%로 잡는다면, 3월 19일 시점에서 코스피를 매수하는 베팅의 기대수익률은 43.8%[(69.5% + 50.1%)/2 * 0.9]입니다. 인류 멸망 가능성이 1%라면, 이 베팅의 기대수익률은 58.2%[(69.5%+50.1%)/2 * 0.99]입니다. 시장 전체에 대해서 이 정도로 높은 기대수익률이 나오는 경우는 일생에 몇 번 보기 힘듭니다. 이제는 다 함께 죽더라도 베팅에 나서야 하는 시기가 됐습니다.

 

p.242

주식투자로 돈 벌기 쉽다고 말하는 사람은 두 부류입니다. 세월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초보자이거나, 사람들을 주식시장으로 꾀어내서 자기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지고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때 시장은 위험해집니다.

 

p.250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주식으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이냐'가 아니라, '주식으로 남들이 다 돈을 벌 때 내가 상대적으로 가난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주식으로 무언가 큰 일을 해보려는 소수의 공격적 투자자가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모두가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난 주식에 관심 없어"하고 가만히 있다가, 상승장이 지속되면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가난해졌음을 깨닫고 그제야 부랴부랴ㅑ 주식시장에 뛰어들어서는 이른바 '막차'를 타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고요.

 

p.253

현명한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비트코인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곘어. 근데 만약 진짜로 옹호하는 쪽의 주장이 맞아서 세상이 바뀐다면, 그리고 코인의 가격이 지금보다 10배 이상 오른다면, 코인을 하나도 들고 있지 않은 나는 어떻게 되지? 그때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면 얼마의 현금을 코인으로 바꾸어야 할까? 근데 만약에 반대하는 쪽의 주장이 맞아서, 진짜로 코인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 코인의 가격이 0원이 될 수도 있잖아? 그렇다면 코인으로 바꾸어놓을 돈은 0원이 되어도 내 생계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금액이어야 하겠지?"

 

이렇게 질문한 사람은 적당한 금액의 코인을 보유하고 이 논쟁에서 손을 뗄 수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중립 포지션입니다. 이 사람이 코인을 샀을 때의 가격 대비 코인 가격이 올랐건 내렸건 당사자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립 포지션이니까요. 중요한 건 스트레스가 줄었다는 것입니다.

 

p.267

예측은 각자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의 수많은 예측은 그저 참고 자료일 뿐입니다. 그들의 '예측'을 따라갈 게 아니라, 예측의 '근거'를 검토하고 자신만의 예측을 해야 합니다. 어차피 예측은 틀립니다. 자신만의 예측이 있어야 틀린 다음에 배울 점이 생깁니다.

 

p.275

"1년 후에 주가가 어떻게 될까요?"라는 질문은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봅시다. "1년 후에 주가가 올라 있다면 어떤 이유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 가격대면 사람들이 비싸서 부담스러운 주가라고 느낄까요? 반대로, 1년 후에 주가가 내려가 있다면 어떤 이유로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 가격대면 사람들이 '이건 너무 싼 거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런 종류의 질문에는 어느 정도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제가 계속 이야기하는 반증 가능성이 있는 형태의 대답을 제시할 수도 있고요.

 

물론 이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 등에 출연해서 낙관론과 비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누가 맞히느냐'가 아니라 '각각의 근거가 무엇이냐'입니다.

 

인간의 사고 과정에는 확증편향이 개입됩니다. 먼저 정답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는 근거를 끼워 맞추는 거죠. 3장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확증 편향은 역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격이 오를 것으로 생각한다면 반대로 하락할 것이라고 답을 정해놓고 그 근거를 찾아보고,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생각한다면 상승했다고 일단 답을 정해놓고 그 근거를 찾아보는 방법이지요. 이 과정에서 상승론자와 하락론자의 근거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p.276

누군가가 어떤 전망을 했을 때 그 근거를 '내가' 기록해두지 않았다면, '나에게' 쌓이는 역량은 없습니다. 그저 다른 '예언가'를 계속 추종할 뿐이지요. 예언이 늘 맞을 수는 없습니다. 특정 예언가를 쫓아다니다가 그 사람이 틀리면 그 다음에는 어떡할 건가요? 다른 예언가를 또 쫓아다니나요? 그런 식으로는 영원히 성장하지 못합니다.

 

p.281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하면 운의 영향을 줄일 수 있을까?'나 '운이 좋아지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운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 영역에서 실력이란 무엇인가?'입니다.

 

p.284

최악의 경우가 발생했을 때 내 인생에 지장이 생긴다면, 즉 '다시는 게임에 참여할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는다면' 그 게임에는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p.287-288

운과 실력은 상충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실력이 기댓값이고 운이 편차라는 정의는, 노력해서 단일시행의 기댓값과 편차를 바꿀 수 있는 경우에만 유용합니다. 의사가 병을 치료하고 농구선수가 골을 넣는 것 등이 그런 영역입니다. 단일시행의 기댓값과 편차를 바꾸기 어려운 주식시장에서는 쉽사리 통하지 않습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전문적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런 영역에서의 실력은 확률분포를 추론할 수 있으냐, 베팅 금액을 유연하게 조정하여 다수시행을 통해 확률분포대로 기댓값을 실제 결괏값으로 끌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영역에서는 모든 단일시행에서 무작위성이 작동합니다. 즉 결괏값이 언제나 운이 좋거나 나쁘거나에 영향을 받습니다. 운은 여러 번의 시행으로 상쇄되어 사라집니다. 여기서 실력이란, 운이 좋아지게 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운이 상쇄되는 구조를 짜는 일입니다.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이미 실력은 결정되어 있습니다. 내가 확률분포를 추론하고 리스크관리를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주사위를 던진다면, 나는 실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확률분포를 고민하지도 않고 리스크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주사위를 던지는 사람은, 이미 실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주사위의 눈금이 1이 나오건 6이 나오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포커 게임의 권위자 데이비드 스클란스키는 <포커 이론(The Theory of Poker)>에서 이런 명제를 다음과 같이 우아하게 표현했습니다.

 

유리한 확률에서 베팅에 나선다면, 그 베팅의 결과로 이겼건 졌건 무언가를 얻었다. 마찬가지로, 불리한 확률에서 베팅에 나선다면, 그 베팅의 결과로 이겼건 졌건 무언가를 잃었다.

 

p.300

탈레브의 바벨 전략을 좀 더 구체적인 포트폴리오로 이야기해보자면, 극단적인 안전자산으로써 미국 국채를 매입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자를 활용하여 극단적인 위험자산으로서 주식시장의 '외가격 풋옵션'을 매수하는 전략입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국채는 모든 채권 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한 자산일 것입니다. 그리고 있을 법하지 않은 주식시장의 급락에 꾸준히 베팅하다 보면 옵션 프리미엄만큼의 손실을 일상적으로 보겠지만, 긴 시간에 한 번 예측불허의 큰 충격, 즉 '블랙 스완'이 터졌을 때 큰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실행을 하려면 각 파생상품의 프리미엄이 적절한지 계산을 해야 하므로 실제로 각 투자자가 이것을 그대로 따라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미래가 불확실하다 하여 그 앞에 굴복하거나 외면하는 것만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확률분포를 추론할 수 있는 경우에는 베팅 비율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확률의 기댓값을 실제 값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확률을 추론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시스템의 볼록성과 오목성에 따라서 극단값을 취하거나 회피하는 식으로 나에게 유리한 구조를 짤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은 시스템의 특징일 뿐입니다. 우리는 불확실성을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는 악마의 손짓으로 여길 수도 있고, 불길을 더욱더 타오르게 하는 바람으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p.302-304

교육은 볼록한 시스템입니다. 교육비와 시간을 들이는 것 이외에 잃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 배워놓은 지식과 기술이 언제 어떻게 쓰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닌다. 긴박한 상황에서 아주 큰 일을 해낼 수도 있습니다.

 

커뮤니티 활동은 대표적인 볼록한 시스템입니다. 나심 탈레브는 파티에 가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라고 했습니다. 들여야 하는 것은 택시비 정도이고,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죠. 재미가 없다면 금방 빠져나오면 그만이고요. 한국에서도 여가 활용을 장려하면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폐쇄적인 문화로 인한 폐단이 참 많다고 생각해왔는데, 다양한 커뮤니티가 증가하는 것은 아주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여행도 볼록한 시스템입니다. 여행 경비와 시간은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인 반면, 만족도의 상한은 상당히 높습니다. 다만, 여행자보험은 반드시 드는 게 좋습니다. 한순간의 실수로 사고가 발생해 즐거움을 모조리 상쇄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직장 생활은 어떨까요? 직장의 특징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을 겁니다. 편안하게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직장은 오목합니다. 다니는 동안은 큰 걱정은 없지만 극단적인 상황, 즉 해고를 당하거나 직장이 망해버리는 상황이 벌어지면 큰 충격에 빠집니다. 편안하게 직장을 다녔기에 쌓아놓은 업무 능력도 부족할 테니 재취업의 가능성도 작고, 생활 수준을 상당히 낮추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급여가 낮고 업무 강도가 높지만 성과에 대한 보상이 철저하고 승진 가능성이 큰 직장이라면 볼록합니다. 열심히 노력하고도 좋은 성과가 안 나올 수 있지만, 성실함이나 열정을 알아본 다른 사람으로부터 또 다른 좋은 자리를 소개받을 수도 있습니다.

 

탈레브의 전략을 곧이곧대로 따르자면, 최저생계만 보장받을 수 있는 수준에서 가능한 한 업사이드의 최대폭이 큰 직장을 선택하는 게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선택이 쉽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한 다음에 여가를 최대한 활용하여 업사이드가 큰 다른 취미 생활이나 부업을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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