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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투자

사례연구형 입문서 - 한국형 가치투자

by Diligejy 2023. 7. 30.

https://link.coupang.com/a/6XWrz

 

한국형 가치투자:이론과 실전을 모두 담아 새로 쓴

COUPANG

www.coupang.com

 

가치투자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다른 가치투자 입문서들과 결을 같이한다.

이미 그레이엄 - 피셔 - 버핏 으로 상징되는 사람들이 이미 체계를 잡아놓으셨고, 체계 자체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랬을 때 차별점은 결국 사례연구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어떤 투자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괜찮은 입문서였다. 입문서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을 보여주진 않지만, 그래도 어떤 사고 흐름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고 수익을 올리거나 손해를 봤는지 서술한다.

 

다만, 책 속에서 언급된 사례가 주로 2000년대 초반의 사례에 집중되어 있어 아쉽다. 물론 주식시장의 본질은 2000년대 초반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겠지만, 저자의 말대로 그 동안에 전자공시 시스템도 발전하고, 경제위기도 겪고, 코로나도 겪으며 시장의 구조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구조 변화가 일어난 이후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는지 조금 더 사례연구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어쩌면 지금 현재도 포트폴리오로 가져가고 있을 수도 있으니 규정상 공개할 수 없어서 그런것일지도 모르겠다. 

 

위 문단처럼 아쉬움을 토로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마치 '라떼'이야기를 듣듯이, 옛날의 기업들이 어떤 비즈니스를 했고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힐끗힐끗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옛날 이야기로만 가득차있다면 마치 '라떼'이야기를 2시간 넘게 듣는게 귀에서 피가 나오는 것처럼 아마 책장을 덮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절히 양념처럼 나오는 사례 이야기는 한국 시장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아주 살포시 '아는체'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제공해서 좋았다. 

 

책 전반적으로는 같은 동아리 출신인 홍진채 대표의 책과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SMIC 출신이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가치투자라는 공통의 방법론을 지향해서 그런건지 몰라도 홍진채 대표가 쓴 책과 비슷했다. 이런 동아리에 활동했다면 금융권에 가지 못/않았더라도 산업과 사업에 대한 이해력이 높았을거라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통제 가능한 영역이 아니니 패스하고 지금이라도 꾸준히 익히는 수밖에.

 

 

밑줄긋기

 

p.15

극단적으로 말해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이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사람을 지배하는 시스템이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서고 싶은가?

 

p.26~27

사람은 위기를 맞닥뜨리게 되면 마음속에서 외치는 "도망쳐!"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맹수가 나타나면 생존하기 위해 일단 도망부터 가고 봐야 했던, 그래서 결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우리 조상 원시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가치투자자는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보단 근현대 역사를 근거로 한 이성을 따라 위기 사태를 바라본다. 바로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는 경험적 사실이다. 이는 다시 말해 인간이 가진 위기 극복 의지와 능력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가치투자자는 단기적으론 어떤 악재도 발생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길게 보면 결국 회복되어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장기적 낙관론을 견지한다.

 

믿음의 대상과 원천은 사람마다 다르다. 예컨대 대공황마저 극복해 세계 최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능력을 신뢰한다면 버핏이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을 사라고 외쳤던 것처럼 위기의 순간에 미국 주식을 살 수 있다. 금 모으기 운동을 해서라도 IMF 위기를 극복해낸 한민족의 저력을 믿는다면 폭락장에서 한국의 대표주를 살 수도 있다. 

 

우리는 기업을 믿고 투자하는 쪽에 속한다. 인간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나다. 그런데 이 능력을 탁월한 경영자의 지휘하에 한 가지 목표를 공유하는 조직으로 묶어내면 그 능력은 배가된다. 우리가 신뢰하는 기업의 힘이 위기의 압박을 넘어설 거라 보는 근거다. 세상과 국가는 넓은 개념이라 기업보다는 잘 와닿지 않는 이유도 있을 테다.

 

"비관론자는 명성을 얻지만 낙관론자는 돈을 번다." 지난 26년간 경험으로 볼 때 오래된 이 격언은 진리에 가깝다고 확신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망으로 미네르바는 지금도 기억될 정도의 유명세를 탔지만 이후 내놓는 예측이 계속 들어맞지 않으면서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반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돈을 번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자가 치유능력을 믿고 끝까지 우량자산을 쥐고 버텼던 우직한 낙관론자들이었다.

 

p.28~29

가치투자자로서 회의주의를 가장 집중적으로 발휘할 때는 역시 새로운 종목을 분석할 때다. 특히 저평가 정도가 크지 않을수록 빡빡한 반론을 제기해 테스트한다. 2021년 6월 에스엠 편입을 고려할 때 우리가 던졌던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 소속 아티스트들과 계약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가? 유지한다 하더라도 재계약 때마다 사측에 불리한 조건으로 바뀌지 않는가? 회사는 아티스트 탈퇴에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가?

- 온라인 콘서트라는 서비스가 처음에는 신기하겠지만 오프라인의 생생한 감동에 미치지 못해 결국 외면 받지 않겠는가? 코로나가 종식되면 앨범 판매가 급감할 가능성이 없을까?

- 전통적으로 높은 일본 의존도를 탈피하기 위해선 아시아 시장을 넘어서야 하는데 하이브와 JYP에 비해 미국 사업 전개 능력이 부족하지 않은가?

- 비관련 자회사를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반대로 자금 확보의 필요성이 크지 않은 알짜 자회사 디어유를 상장해서 지분율을 희석할 필요가 있는가?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에스엠이 케이팝의 원조격 회사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투자자에 따라 동방신기, 소녀시대의 한때 팬으로서 회사에 호감을 갖고 있을 수도 있고 최근 NCT나 에스파에 입덕해 관심이 커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투자대상으로 적격한지를 판단하기 위한 점검은 꼼꼼하게 이뤄져야 한다. 투자의사결정은 낙관론과 회의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p.33~34

가치투자의 창시자이자 워런 버핏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그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에서 주식시장을 한 명의 사람으로 빗댄 미스터마켓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미스터마켓은 매일 투자자를 찾아와 거래를 제안하는데 조울증 환자라 그날의 기분에 따라 가격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레이엄은 그의 감정을 예측하기보단 나에게 유리한 가격을 제시할 때만 거래에 응하라고 투자자들에게 조언한다.

 

2020년 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삼성전자의 주가 변화를 한번 살펴보자. 최저가는 2020년 3월 20일에 기록한 42,300원, 최고가는 그로부터 11개월 후인 2021년 1월 15일 96,800원이었다. 2022년 9월 30일 기준으로는 53,100원이다. 2년간 삼성전자의 기업가치가 2020년 1월 2일 대비 아래로 최대 23%, 위로 최대 75%만큼 변했을까? 삼성전자는 단기적인 기업가치 변동이 크지 않은 거대기업이지만 미스터마켓이 내키는 대로 가격을 그리 불렀을 뿐이다.

 

이 개념을 받아들이면 기업의 소유권 가치가 얼마인지 알아두려 노력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래야 미스터마켓이 나에게 유리한 가격을 던지는지 불리한 가격을 던지는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변동성에 농락 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만약 삼성전자의 가치를 주당 70,000원으로 계산했다면 42,300원이라서 불행할 필요가 없고 96,800원이라고 들뜰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p.37

VIP자산운용은 2003년 설립 때부터 2007년까지 매년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의욕에 가득 차 다양한 종목을 발굴하는 노력도 한몫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국의 늘어나는 수요 덕에 에너지, 원자재, 선박 등의 자산이 귀해진다는 아이디어 하나를 찾아내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영향이 컸다. 문제는 이 추세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란 착각에 있었다. 달은 차면 기운다는 순환론적 사고의 결여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수익률은 처참했다.

 

하지만 이때의 쓰디쓴 경험이 다음 변곡점에서 우리를 살렸다. 2011년엔 자동차X화학X정유의 상승세가 대단했다. 이 업종들이 더 이상 경기순환 종목이 아니라 구조적 성장주라는 논리였다. 관성적 사고를 가진 투자자들은 계속 고를 외쳤지만 순환론적 사고를 가진 가치투자자들은 소위 차화정에 거리를 두는 대신 사이클상 바닥에 있는 음식료X화장품 등의 업종에 주목했다. 차화정 장세는 유럽 재정 위기 발발과 함께 2011년 대단원의 막을 내렸고 직후부터 2014년까지 가치주 장세가 돌아오며 큰 보상을 받았다.

 

놀랍게도 대표적 저평가주였던 음식료X화장품주들은 이후에 버블이 낄 정도로 주가가 치솟았다가 다시 아래로 제자리를 찾았다. 다행히 이 때도 조심성을 발휘한 덕에 급락의 여파를 피해갈 수 있었다. 대신 신약개발주가 주도주로 떠올라 한동안 고생길이 이어졌다. 물론 바이오도 시장의 기대치를 충족하는 결과를 내지 못하며 다시 급격한 하락의 길을 걸었다. 이렇듯 주식시장이 선호하는 산업과 종목 유형은 끊임없이 순환한다.

 

p.40~41

2008년 우리가 완전히 꽂힌 종목이 있었다. 지금은 아난티로 사명이 바뀐 에머슨퍼시픽이었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환상의 커플'이란 드라마에 배경으로 등장한 리조트 덕분에 관심을 갖게 된 상장사였는데 스마트한 창업자를 몇 번 만나고 난 후 완전히 팬이 되어버렸다. 차별화된 기획력에 추진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대기업 중심으로 흘러온 고루한 한국의 레저업계를 뒤엎을 사람이라 확신했다. 얼마나 회사와 경영자가 좋았던지 자발적으로 회원권도 사고 남해힐튼 리조트로 회사 전체 워크숍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7월 이 회사가 보유한 금강산 리조트에서 한국 관광객이 피살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나며 주가는 폭락세를 이어갔다. 불운이 닥친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불행했던 투자 사례는 단지 운의 문제만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금강산은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지만 남북 관계에 따라 관광이 중단될 확률이 존재했다. 또한 피살 사건에 뒤이어 금융위기가 터졌는데 리조트 사업은 프로젝트별 회원권 분양에 의존하므로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면 사업이 위축될 확률이 높았다.

 

결과적으로 운이 없었지만 과정으로 보면 확률 계산의 부재가 가져온 참사였다. 회원권 분양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뜨거웠던 투자 집행 당시의 경기 상황 그리고 혁신적 사고와 강력한 실행력으로 무장한 CEO의 매력에 눈이 멀었던 것이다. 최소한 보수적인 시나리오를 상정해봤다면 매수를 했더라도 비중을 작게 잡았어야 했다. 매수단가에서 주가가 4분의 1 토막이 나면서 우리는 불리한 확률에 베팅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가치투자자는 주가 상승과 연계된 좋은 요소가 주가하락을 촉발할 나쁜 요소보다 더 많은 종목을 선호한다. 여기서 주목할 건 나쁜 요소가 전혀 없는 종목만을 담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나쁜 요소가 발현되더라도 주가가 심하게 떨어지지 않을 수준의 가격이라면 확률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쁜 요소가 없어지기만 해도 주가가 오를 확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흠이 있느냐 없느냐 보다 오를 확률과 떨어질 확률의 비교가 더 중요하다. 미래를 다루는 주식투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확실성에 기초한 흑백논리는 경계해야 한다.

 

p.43

맞는가 틀리는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옳았을 때 얼마를 벌었고 틀렸을 때 얼마를 잃었는가 하는 것이다.

 

- 조지 소로스

 

p.48

비유를 들자면 닭의 내재가치는 평생 낳을 계란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금액(수익가치)과 당장 잡아서(청산) 시장에서 고기로 팔았을 때 받는 금액(내재가치)의 합이다. 닭 벼슬이 멋있고 우렁차게 꼬끼오 운다고 해서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숫자로 환산 가능한 생산물인 계란과 고기를 주인에게 주니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p.60~61

보통 투자자들은 평가손을 손실로 인식하지만 앞서 언급한 영구자본손실이 아닌 한 돈을 잃었다 단정할 순 없다. 돈을 잃지 말라는 말은 "평가손을 내지 말라"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에 철저하라"는 말로 해석함이 옳다. 리턴보단 리스크를 먼저 꼼꼼히 따진 후 투자에 앞서 일단 로우 리스크 상태를 확보하라는 뜻이다.

 

안전마진은 이익 가능성을 손실 가능성보다 높여줄 뿐 손실을 완전히 방지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안전마진을 갖춘 종목의 수가 증가할수록 이익의 합계가 손실의 합계를 초과할 확률이 높아진다. 분산투자를 통해 포트폴리오 전체가 안전마진을 갖게끔 하는 일이 곧 '절대 돈을 잃지 말라'는 금언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p.61

흔히 주식을 속성에 따라 가치주와 성장주로 나눈다. 이때 성장주와 대비되어 가치주는 성장이 없이 싸기만 한 주식을 떠올리게끔 한다. 하지만 가치주(저평가주)의 반대말은 성장주가 아니라 고평가주이며 (고)성장주의 반대말은 저성장주다. 성장주도 저평가된 가격에 사면 얼마든지 가치주에 포함될 수 있다. 

 

p.62

우리는 해류를 예측하지 않는다. 다만 누가 해류를 거슬러 헤엄칠 수 있을지 고민한다.

 

- 찰리 멍거

 

p.67

비즈니스 모델은 웬만해선 바뀌기 힘든 태생적 속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경주마의 품종에 대입해서 얘기할 수 있다. 오래도록 빨리 달릴 수 있는 유전자를 타고난 말이 아니라면 아무리 기수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레이스라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계속 승리를 쟁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말을 구매할 때 혈통을 꼼꼼히 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려견을 입양할 때도 크기와 특징에 대한 선호에 맞춰 품종을 선택하는 것이 순서상 첫 번째다. 시간이 아무리 흐른다 해도 푸들이 골든리트리버가 되지는 못한다.

 

p.68

우리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비즈니스 모델이 좋은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첫째, 반복 구매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둘째, 서비스 기호와 기술에 따른 변화가 크지 않다.

셋째, 고객 숫자가 많고 다변화되어 있다.

넷째, 쉽게 모방하기 힘든 무형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로 한때 잘나갔던 미래산업이 현재 쪼그라든 이유는 반복 구매 상품이 아닐뿐더러 고객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고, 모린스는 휴대전화 터치스크린이 저항막에서 정전용량 방식으로 넘어가는 변화를 이기지 못해  상장폐지됐다. 파티게임즈 등 다수의 모바일 캐주얼 게임 회사들은 경쟁사가 쉽게 모방할 수 있는데다 유저들이 금방 싫증을 내는 바람에 잠깐 반짝한 후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p.72~73

ROE는 기본 공식이 [순이익 / 자기자본]이지만 분해하면 순이익류 * 총자산회전율 * (1 + 부채비율)로 바꿀 수 있다. 즉 주주자본으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려면 마진이 높은 제품을 파는 동시에 기계장치, 재고, 매출채권 등의 자산을 최대한 돌려 써야 한다. 아니, 비즈니스 모델상 태생적으로 그럴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부채비율이 높을수록 ROE도 따라 올라가지만 중간에 과도한 빚으로 인해 망하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를 요한다. 사실 부채비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ROE가 높은 기업이 진짜배기라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료업체는 동서였지만 그만큼이나 농심과 풀무원도 좋은 회사라 여겼다. 농심은 두말할 나위 없이 높은 소비자 충성도를 가진 최고의 라면 회사였고 풀무원은 깨끗한 이미지로 주부들의 사랑을 받는 떠오르는 브랜드였다. 게다가 두부와 콩나물로 시작해 모든 식재료를 하나씩 현대화 해 나간다면 얼마나 매출이 커질 수 있을까 하는 흥분되는 꿈을 투영할 수 있는 투자 대상이었다.

 

2002년 농심과 풀무원의 ROE는 각각 11.9%, 19.2%으로 풀무원이 더 높았다. 하지만 농심의 ROE는 2004년 18%까지 증가한 반면 풀무원은 2003년 15.9%로 하락하더니 2004년에는 5.6%로 급전직하했다. 반복 구매되는 먹거리 제품이어서 총자산회전율에는 큰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제일제당과 두산이 포장두부 시장에 진출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광고 집행과 할인 판매를 하다보니 순이익률이 1%로 떨어져버린 탓이었다. 결국 2013년까지 ROE가 들쑥날쑥했던 풀무원의 주가는 제대로 된 상승 없이 박스권에 갇혀버렸다.

 

p.74~75

버핏의 투자법을 흉내 내 종목을 고르던 초창기 시절에 경쟁우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다. 네브래스카 퍼니처마트와 인터퍼블릭에 투자한 사례를 본 후 가구와 광고대행이 좋은 아이템인 줄 착각해 한국의 가구회사(퍼시스)와 광고대행사(오리콤)에 투자한 것이다. 알고 보니 버핏은 네브래스카 퍼니처마트에서 특정 지역을 지배하는 대형 매장으로서의 경쟁우위를, 인터퍼블릭에서 글로벌 마케팅 캠페인을 전개할 수 있는 전 세게적 네트워크라는 경쟁우위를 발견한 것이었지만, 우리가 고른 국내 회사들에겐 그와 같은 경쟁우위 요소가 없었다. 비즈니스 모델을 잘못 읽으면 이런 참사가 벌어진다.

 

비즈니스 모델 점검에서 중요한 건 업종 자체가 아니다. ROE가 높은지, 높은 ROE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경쟁우위가 존재하는지, 경쟁우위가 유지될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시간을 오래 견딜 수 있는 와인만이 최고의 품질을 보증하는 그랑크뤼 등급을 받듯 내구성과 지속성은 좋은 기업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다.

 

p.78

경제학에 따르면 가격인 P가 높아지면 수요인 Q는 감소한다. 소비자들은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대부분의 회사가 이 법칙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직 두 가지 경우에 해당될 때만 Q를 희생시키지 않고 P를 올릴 수 있다.

 

첫 번째는 경쟁우위가 있어 가격을 편하게 올릴 수 있는 경우다. 버핏이 반복해서 얘기하는 시즈캔디 그리고 에르메스, 샤넬 등 명품회사가 그 예다. 대체재가 마땅치 않으면 소비자는 높아진 가격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한국에서 목격한 대표적인 사례는 동서의 자회사 동서식품이었다. 소비자들이 맥심 커피믹스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는데다가 스틱당 가격이 낮다보니 일이십 원 차이에 민감하지 않은 특징으로 말미암아 제품가격을 거의 매년 올렸음에도 수요와 점유율을 계속 지켜갈 수 있었다. 커피믹스는 가정에서뿐 아니라 사무실 비품으로도 비치되기도 해 구매자의 가격 민감도가 낮은 편이다.

 

두 번째는 무차별한 제품이지만 갑자기 수요가 늘어나거나 경쟁사의 공급이 줄어들어 수급의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국내 철강, 조선 회사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 기간에 포스코는 강판 가격을 아무리 올려도 수요가 충족되지 않아 만드는 대로 팔려나갔고, 현대중공업은 선가가 계속 올라도 배를 지을 도크가 모자라 주문을 더 받을 수 없을 정도의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수요를 미리 당겨 쓴 까닭에 2008년 이후 고난의 행군이 이어졌으니 그 끝이 있다는 점 또한 명심해야 한다.

 

p.79~81

20년 후 20배 이상 올라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오리온(구 동양제과)의 상승 배경을 살펴보자. 2002년 1월부터 2022년 6월까지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4.4배, 8배 증가했다.

 

우선 초코파이, 포카칩 등 충성도 높은 제품을 보유한 덕에 Q 하락 없이 물가 상승에 맞춰 P를 꾸준히 올릴 수 있었다. 그 사이 오감자, 꼬북칩 등 신제품을 히트시키며 제품 확장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핵심적인 Q 증가는 지역 확장에서 나왔다. 전형적인 내수업체였던 오리온은 지금 중국을 필두로 이어 러시아, 베트남에 진출한 겨려과 현재 해외매출 비중이 60%를 넘는다. 현지에 공장을 세우며 공급 확장이 뒷받침되었음은 물론이다. 거기다 현 사령탑 허인철 대표의 치열한 비용 절감 노력은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P와 Q가 늘어난 것만 해도 대단한 데 긴장을 늦추지 않고 C까지 줄인 것이다.

 

이 사례를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는 기업 성장에 산업 성장이 반드시 따라줘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오리온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성장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제과업에 속한 회사다. 중국에서의 성공이 알려지기 전까지 그다지 환호를 받는 곳은 아니었다. 

 

다른 하나는 주식시장은 이익 성장을 장기적인 주가 상승으로 결국 반영해준다는 점이다(단기에 튀어오르지 않는다는 점도 명심하자).

 

특히 우리나라는 내수시장이 제한적이란 인식이 강해 지역 확장에 더 열광하는 경향이 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의류업체 F&F의 주가가 6배가량 오른 이유도 MLB 브랜드를 앞세워 중국 진출을 성공시킨데서 기인했다. 삼양식품도 불닭볶음면으로 해외 시장에서 대박을 치며 2016년부터 주가가 5배 가량 상승했다. 국내 1등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웹툰 등 콘텐츠를 앞세워 해외 진출을 열심히 추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지역 확장이 해외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경남지역 소주 강자였던 무학은 2006년 신제품 '좋은데이'를 개발해 인접지역인 부산 시장으로 진출했다. 부산의 터줏대감인 대선주조와의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결과 2013년에는 급기야 부산 소주 시장 점유율의 70%를 거머쥐게 되었다. 성공적인 지역 확장의 열매는 달콤했다. 우리는 성공 가능성을 믿고 투자를 시작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주가는 4배 상승했다.

 

앞서 ROE 개념을 탑재한 독자 중 "높은 ROE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성장인데 P, Q, C나 시장 확장 같은 다른 개념이 더 필요합니까?"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아주 좋은 질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높은 ROE는 비즈니스 모델의 우수성을 의미하지만, 재투자해서 다시 높은 ROE를 낼 수 있는 사업처를 찾지 못하면 ROE하락을 면치 못하게 된다. 예컨대 1,000억 원의 자기자본으로 200억 원 순이익을 낸 ROE 20%짜리 회사가 있다 치자. 그 다음해에는 순이익 200억 원이 더해져 자기자본이 1,200억이 되므로 ROE 20%를 그대로 유지하려면 240억 원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본시 자본이 필요하지 않은 사업인데다 성장을 도모할 신규 투자처가 없다면 순이익이 전년과 같은 200억 원에 그쳐 ROE는 16%로 하락하게 된다.

 

신용평가회사, 소프트웨어 회사, 단일 점포 백화점 등이 돈을 따박따박 버는 맛은 있지만 자사주매입소각이나 배당 같은 적절한 주주정책이 따라주지 않을 경우 성장이 나타나지 않아 높았던 ROE가 계속 하락해 주가가 재미없어지게 되는 사례를 자주 목격한 바 있다. 반면 피터 린치가 던킨도너츠에 그토록 열광한 건 고유의 레시피와 브랜드를 바탕으로 미국 전역에 계속 매장을 열 수 있으니 재투자에 의한 높은 ROE가 계속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별도의 주주정책이 없는 한 높은 ROE의 지속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선 Q 성장의 다양한 요인들을 따져 대입해볼 필요가 있다. 

 

p.91

투자자마다 경험과 배경지식에 따라 좋은 경영자를 알아보는 안목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 회사의 창립 주주였던 고 김정주 창업자에게 2004년쯤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저희가 보기에 네이버(당시 NHN)는 다소 고평가인 거 같은데 많은 양의 주식을 계속 보유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그의 대답은 이랬다. "난 네이버의 미래를 모르지만 그냥 해진이를 믿어. 뭘 해도 잘할 무서운 친구야. 난 그냥 묻어가면 돼"

 

솔직히 우리는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은 이해진 의장에게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으나 김정주 창업자의 눈에는 품종 좋은 말을 우승까지 시킬 수 있는 기수의 탁월한 능력이 보였던 것이다. 이후 네이버가 보여준 결과가 그의 안목을 입증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우리만이 알아볼 수 있는 경영자를 찾아보려 노력했던 것 같다.

 

p.94

SK텔레콤은 1999년부터 20년간 이익이 12배나 늘었지만 황당하게도 같은 기간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시장 참여자들이 20배 이상 성장을 할 줄 알았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결국 추락으로 끝난 상당수의 주식들은 한때 날개가 있었다.

 

찰리 멍거는 "투자는 패리뮤추얼 시스템에 맞서 베팅하는 것"이며 "투자란 가격이 잘못 매겨진 도박을 찾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승률이 50%이지만 배당률은 3배인 투자 기회만을 노린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선 베팅 가격이 잘못 매겨져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알아야 한다는 조언을 덧붙인다(여담으로 버핏은 어린 시절 경마장에서 바닥에 버려진 마권을 주우며 승부 결과가 정정될 행운을 바랬다고 한다).

 

p.98-99

P, Q, C로 설명하자면 P와 Q의 성장률을 예측한 뒤 예상되는 C를 빼서 숫자를 뽑아낼 수도 있다. 구체적인 숫자보다 기업가치의 방향성이 더 중요하다는 면에서 제품가가 얼마나 올라갈지 판매는 얼마나 늘지 따져보는 일은 투자 의사결정에 있어 매우 유용한 판단 근거를 제공한다. P, Q, C를 각각 구해보는 대신 PXQ가 곧 매출액이니 여기에 과거 이력과 현재 환경을 반영해 적정하게 부여한 영업이익률을 곱해 이익을 구해볼 수도 있겠다.

 

여기서 잠깐 세 가지 포인트를 기억했으면 한다.

첫째, 이익의 변동성이 작은 사업일수록 PER 밸류에이션 적용 시 신뢰도가 높아진다. 

둘째, 빈칸을 보수적인 가정하에 추정해 채울수록 오판에 대한 패널티가 경감될 수 있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큰 법이니까.

셋째, 회사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예상 순이익의 범위를 좁힐 수 있다. 가치투자자들이 철저히 공부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3년 치까지만 예상해보는 건 우리의 경험상 정확도를 비교적 높게 유지할 수 있는 시간 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몇년 치 빈칸을 채워볼 거냐 하는 부분은 개인의 성향이나 능력에 따라 다를 테고 분석 대상 기업의 이익가시성에 따라 다르다. 또한 3년은 우리가 저평가 주식을 샀을 때 재평가를 기대하는 평균적인 시간 길이이기도 하다. 

 

p.102

SK텔레콤은 가입자가 급성장하는 동안에는 PER을 80배까지 받았으나 포화 구간으로 들어갔을 땐 10배로 하향조정되었다. 반면 나이스평가정보는 성장 구간에서는 많게는 30배까지 받다가 성장이 주춤하더라도 웬만해선 15배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방어력을 보였다. 신용평가산업에서 독보적인 1위라는 위치와 재투자가 필요 없는 지식 기반 사업이라는 차별점이 상대적으로 높은 PER 지지선을 구축한 결과다. 

 

p.102-104

PER 밸류에이션은 단순하고 직관적인만큼 한계도 가진다. E가 회계적인 순이익이므로 영업외손익이 개입돼 실질 이익 체력을 반영하지 못하는 오류 가능성을 내포하며 현금흐름과도 괴리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이익 대신 영업이익이나 현금흐름을 사용하는 등 입체적인 접근을 위해 다른 숫자들을 대입해 보완하기도 한다.

 

- 적정 시가총액(1) = 예상 영업이익 X 적정 멀티플

- 적정 시가총액(2) = 예상 EBITDA X 적정 멀티플

 

한 회사 안에도 속성이 다른 여러 사업부가 존재할 수 있고 특히 지주회사라면 각기 다른 사업을 영위하는 자회사를 두고 있으므로 단일한 PER을 적용할 경우 적정 가치가 과대평가되거나 과소평가될 수 있다. 이 때는 각 사업부나 자회사의 적정 가치를 각각 계산해 합치는 SOTP(Sum Of The Parts) 밸류에이션을 쓰는 게 이치에 맞다.

 

예컨대 B라는 교육 회사가 정체된 오프라인 사업과 성장중인 사업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면 오프라인 사업에서 창출되는 순이익 100억에 PER 5배를 곱한 값 500억과 온라인 사업에서 창출되는 50억에 15배를 곱한 값 750억을 더해 전체 적정 가치가 1,250억이 되는 식이다. 순부채를 빼주는 것이 합당하나 예시에선 배제했다. 실제로 우리는 복합 미디어기업 CJ ENM의 적정 가치를 구할 때 미디어, 커머스, 영화, 음악 사업의 가치를 별도로 계산해 합산한 후 지분가치를 더하고 부채를 빼는 SOTP 방식을 사용했다.

 

순이익이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는 철강, 화학 등 소위 경기순환 기업은 PER 밸류에이션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우선 작은 수요 공급의 불일치에도 이익이 크게 춤을 추기 때문에 예측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 숫자에 아무리 고민해서 PER을 부여한다 한들 적정 가치 값이 정확하기 어렵다. 차라리 앞으로 예측되는 상황과 유사했던 과거 시기에 받았던 PBR(주가순자산비율)을 적용하는 편이 대충이라도 맞추는 방법이다.

 

계산에서 자산가치가 배제된다는 점도 PER 밸류에이션의 한계 중 하나다. 사실 수익가치가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다보니 자산가치는 무의미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통상 주가의 상승은 이익이 증가하고 멀티플이 확장되어야 일어난다. 자산가치가 미치는 영향을 제한적이다. 하지만 주가가 하락할 때는 자산가치가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은행이 대출을 내준 후 차주가 돈을 잘 갚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상환 능력이 떨어지면 잡아둔 담보가 중요해지는 것과 동일한 원리다.

 

자산에는 현금, 주식, 채권, 토지, 건물, 자회사 지분 등이 있다. 재무상태표를 뒤져 찾아낸 자산가치를 업사이드로 반영하는 경우 이 중 투자자가 의미 있다고 인정하는 자산을 골라 PER 밸류에이션으로 구한 수익 가치에 더하면 된다.

 

예컨대 우리는 수익가치가 1,000억 자산가치가 500억으로 계산된다면 주가가 1차로는 시가총액 1,000억까지 도달할 수 있고 자산가치까지 반영하면 1,500억까지 도달 가능하다고 본다. 반대 방향인 다운사이드로 보면 주가가 하락해 시가총액이 자산가치 값인 500억에 근접할 경우 주가가 더 빠질 확률은 낮아지리라 기대한다. 수익가치로는 주가의 상방을, 자산가치로는 주가의 하방을 짐작해보는 식이다. 비유하자면 수익가치를 가지고 물의 수위를 잡는 동시에 자산가치라는 돌을 하나 괴어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KT&G는 국내 담배 시장의 독점 기업으로서 큰 성장은 없지만 꾸준한 이익 창출 능력이 돋보이는 회사다. 이런 유형은 PER 적용이 비교적 수월하다. 수출 증대 가능성과 비즈니스 모델을 감안해 보수적으로는 8배, 낙관적으로는 12배를 줄 수 있으나 중간값인 10배를 순이익 1조에 곱하면 10조를 적정 가치로 볼 수 있다. 별도로 3조 원의 현금성 자산을 들고 있으니 이를 더해 13조 원까지 적정 가치를 확장해도 무리가 없다. 반대로 주가가 아무리 빠져도 현금성 자산에 해당하는 3조 원 이하로 떨어질 확률은 매우 낮다.

 

p.106

2000년에 롯데칠성이 무려 PER 0.8배에 거래된 적이 있었다. 시가총액이 1년 순이익에도 못 미칠 정도로 저평가였던 셈이다. 심지어 이익이 IMF 이후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이었고 서초동에 시가총액 이상 가는 부지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런 엽기적인 상황은 당시 극심한 IT주로의 쏠림, 음식료는 저성장 산업이란 편견에서 기인했다.

 

p.108

우리의 경험치로는 기업 이익이 꾸준하다는 가정 하에 PER이 5배 이하면 저평가로 판단해도 무리가 없었던 것 같다. 채권의 일드가 20%까지 치솟는 경우도 드물고 주식시장 전체의 PER이 이만큼 내려올 확률도 낮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책을 쓰고 있는 2022년 말 기준으로 PER 2~5배에 불과한 종목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피터 린치는 PER과 성장률을 비교해 판별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일정 기간의 예상 이익성장률이 PER을 초과한다면 성장 대비 저평가됐다고 보는 식이다. 그가 고안한 PEG(주가수익성장 비율)의 공식은 [PER / 이익성장률]이다. 만약 어떤 기업의 PER이 10배, 이익성장률(G)이 20%라면 PEG는 0.5가 되는데 PER과 이익성장률이 같아지는 값인 1보다 낮아 저평가라 보는 것이다. 성장주의 PER 적정성을 판단하기에 유용하다.

 

비슷한 개념으로 벤저민 그레이엄은 단순한 공식을 통해 가치투자자가 감내할 수 있는 PER의 범위를 제시한다. [PER  8.5 + 예상 이익 성장률 * 2]가 그것으로 이익성장률이 향후 7~10년간 10%가 예상된다면 28.5(=8.5 + 10* 2)배까지 부여가능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현재의 PER값이 감내할 수 있는 상단 숫자와 괴리를 보이면 보일수록 저평가된 셈이다.

 

p.109~110

우리는 2013년 전북은행에 투자를 시작했다. 성장 로드맵의 실현 가능성이 높은 반면 PER 4.9배, PBR 0.36배로 절대 저평가 상태에 놓여 있다 판단해서다. 이후 전북은행은 우리캐피탈, 광주은행, 프놈펜상업은행 등을 연달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 나갔다. 2013년 순이익 659억 원을 내던 회사에서 현재 5,000억 원 수준의 이익 체력을 가진 JB금융지주로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2022년 현재 PER은 2.3배, PBR은 0.29배다. 8년간 이익이 8배 이상 늘었는데 시장의 평가는 거꾸로 간 셈이다. 

 

p.113

주식시장에서는 모두가 흥분해서 달려드는 주식에 프리미엄을 붙인다. 일종의 오락세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따분한 주식은 할인해준다. 이렇게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되는 주식을 많이 사두라.

 

- 랄프 웬저

 

p.113-114

PER 밸류에이션과 마찬가지로 PER만으로는 자산가치 기준 저평가를 판별할 수 없다. 의미 있는 규모의 순현금이 있다면 PER을 보정해 쓰는 방법이 있다. 현금을 회사를 통째로 샀을 때 바로 주머니에 챙길 수 있는 개념이라 봐서 시가총액에서 제하는 것이다. 순현금을 200억 가지고 있고 순이익이 100억 나는 회사의 시가총액이 1,000억인 경우 여기에 순현금 200억을 빼서 PER이 10배가 아니라 8배로 인식하는 식이다.

 

종목들을 많이 보다 보면 숨어 있는 자산가치가 워낙 커서 수익가치에 앞선 투자 아이디어가 되는 떄가 종종 있다. 제지회사, 방직회사처럼 부동산이 많다거나 자회사가 모회사보다 더 알짜인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자산가치를 면밀히 조사해 아예 이것을 시가총액과 비교해 저평가라 판단하는 것도 방법이다. 자산주는 수익력이 약해 고PER로 보여 패스되곤 하는데 놓치고 싶지 않다면 PBR을 기준으로 판별해야 한다.

 

PBR이 0.2라는 건 간단히 말해 회사가 소유한 기계장치가 80% 할인되어 팔리고 있다는 뜻이다. 언제인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수익력이 다시 회복되면 그 원천이 되는 기계장치에 적용되는 할인율도 따라서 축소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저PBR 종목이 지리한 부진을 끝낸 후 ROE가 바닥을 치고 상승하는 국면에 접어들면 느린 거북이도 물을 만나면 빠르게 헤엄쳐 나가듯 무겁게만 보였던 주가가 급격히 상승할 수 있다.

 

장부가치가 아닌 보유현금만으로도 저평가가 명확히 보이는 기업도 존재한다. 예컨대 신도리코는 시가총액이 3,400억 원에 불과한 반면 2022년 3분기 말 기준으로 약 8,000억 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중이다. 회사를 통째로 산다 쳤을 때 인수가를 지불하고도 4,600억 원의 현금이 남는다는 뜻이다. 물론 저평가의 이유는 존재한다. 복사기는 저성장 산업이 맞다. 하지만 금리인상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기예금금리가 1%일 때는 이자수익이 80억이지만 5%로 오르면 400억 원까지 뛰어오른다. 자산가치를 중시하는 투자자에겐 신도리코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과 금리의 방향성이 리서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SR도 저평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지표 중 하나다. 2002년 우리는 오뚜기가 PER 관점에서 동종업계 종목에 비해 크게 저평가되어 있진 않지만 PSR이 지나치게 낮은 점에 주목했다. 시장점유율 획득을 위해 할인 판매와 광고비 집행을 공격적으로 전개하는 바람에 영업이익률이 2.6%에 불과했다. 하지만 매출액이 7,400억 원이나 되니 비용을 줄여 영업이익률이 1만 개선되어도 74억 원의 증분(2001년 대비 37% 증가)을 기대할 수 있었다. PER도 PBR도 아닌 매출액 대비 저평가를 따지는 PSR로 접근했던 예외적인 사례다. 

 

p.115-116

종합해보면 시가배당률 하나마능로도 여러 가지 사실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으니 무척이나 효율적인 잣대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과 전문성이 부족한 개인투자자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은 단연코 고배당주 투자라 생각한다. 

 

진로발효는 고배당에 중점을 두고 투자했던 회사였다. 꾸준한 배당금 증액의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2004년에 한번 들여다 보니 소주 산업 특유의 재미있는 밸류체인이 눈에 들어왔다. 조사 결과 소주 회사들은 법적으로 대한주정판매로부터만 주정을 받아쓰도록 되어 있는데 여기에 납품을 하는 10개 주정회사들은 대한주정판매 보유 지분율에 따라 공급량을 할당받는다는 구조였다. 수요는 꾸준한데다 신규 사업자가 진입할 수 없는 조건하에서 진로발효는 대한주정판매의 최대 주주로서 가장 많은 양을 납품하니 이익도 꾸준하고 제품이 불변하여 재투자가 필요 없어 배당 여력도 풍부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2004년 83원이었던 주당배당금은 2008년에 이른 후 2011년을 제외하곤 5년 간 유지되었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보유했다면 수령한 배당금으로만 원금의 2배 이상을 회수할 수 있었다. 시가배당률이 높았던 덕에 2008년 금융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가 하락은 제한적이었다.

 

p.128-129

손쉽게 투자 아이디어로 연결할 만한 공시로는 내부자 매매 동향을 꼽겠다. 회사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주체가 자기 돈을 들여 주식을 샀다는 건 저평가에 대한 유의미한 신호일 확률이 높다. 자기주식 취득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소각까지 더해지면 베스트다). 개인 재산이나 연봉 대비 유의미한 금액의 내부자 매수이거나 시가총액 대비 높은 비중의 자기주식 취득일수록 더 무게가 실리는 투자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자산 양수도 또한 단기간에 사업 내용이 크게 바뀌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봐야 한다. 기업 인수를 의미하는 타법인 주식 양수 공시도 유사한 파급력을 가지므로 함께 챙겨보면 좋겠다. 이 역시 기존 자산 대비 양수도 규모가 크거나  타기업 인수 대금이 클수록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이슈로 해석이 가능하다.

 

p.139-140

원래 드라마 제작은 돈 벌기 힘든 사업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중파 방송국이 제작비 대부분을 대는 동시에 판권을 가져갔으므로 제작사는 단순 외주 대가로 1~2% 마진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설사 제작사가 투자를 통해 판권을 획득한다 해도 한국 드라마의 수출 성사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종편, 케이블 등 다매체 시대로 접어드는 동시에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 다수의 OTT가 등장하며 비즈니스 모델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드라마 수요가 그만큼 커졌으니 제작 편수도 확대할 수 있었고 방송국으로부터 제작비의 50%를, OTT로부터 50~65%를 보전 받으니 이미 제작 단계에서 마진을 확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자 특히 아시아를 중심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p.145-146

능력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스스로 알아볼 수 있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악재가 터졌을 때 그것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지 적은지 금방 파악할 수 있고 나의 의견에 확신이 있다면 잘 아는 분야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해당 산업에서 누가 가장 잘 하는 회사인지 이미 아는 경우다. 시가총액을 보고선 직관적으로 그 가격이 적당한지 아닌지를 금방 파악하는 것도 하나의 증거다.

 

셋째, 누구에게나 산업 현황과 해당 기업의 경쟁력에 대해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다면 능력의 범위 안에 있는 상태다.

 

p.188-189

2004년부터 건설주 투자로 워낙 높은 수익을 거뒀던 터라 우리가 찍으면 다 올라간다는 망상을 갖고 있던 시기가 2007년이었다. 신흥국 경기가 워낙 좋았고 원자재 가격도 상승일로에 있을 때라 베트남에서 부동산 개발을 하는 동시에 해외 광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경남기업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유망해 보이던 프로젝트들은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설상가상으로 부채비율도 높아 엄중한 상황이 이어질 경우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다. 2008년 주가는 하락일로를 달려 급기야 고점 대비 6분의 1토막이 나버렸다.

 

고객들 항의가 빗발쳤지만 신흥국 경제와 원자재 시장이 다시 회복될 거란 기대와 주가가 이미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는 논리로 고집스레 맞섰다. 그러던 중 한 고객이 이런 조언을 들려줬다. "최대표 김대표, 기업이 경기 호황기에 짠 계획은 불황기에 들어갔을 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져요."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었다. 결국 2009년 초 주가가 반등하던 시기에 전량 매도했다. 결국 경남기업은 쇠락의 길을 걷다 2015년에 사라졌다.

 

p.192-193

SK가스는 원래 그룹 내 따박따박 돈 잘 버는 공기업스러운 작은 계열사였지만 2011년 최창원 부회장이 최대주주에 올라선 이후 환골탈태를 경험했다. 2012년에는 LPG 저장기지 지상부지에 탱크터미널을 지어 연 200억 원의 추가적인 이익을 창출했으며 2016년에는 프로판으로 프로필렌을 제조하는 PDH 사업에 진출해 다시 체급을 올렸다. 다만 당진에 석탄발전소를 세우려던 계획은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2022년 현재 SK가스에서 예상할 수 있는 앞으로의 이어달리기 요소는 두 가지다. 하나는 2023년 사우디에 PDH 해외 공장을 준공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이즈가 더 큰데 20225년에 울산에 LNG 터미널과 LNG와 LPG를 동시에 사용하는 발전소를 동시에 완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LPG 1위 사업자로서 LNG까지 취급할 수 있어 사업 다변화를 이루는 것은 물론 수소와 암모니아 같은 신에너지 분야로까지 진출이 가능하다. 

 

p.224

강세장 대처법은 세 가지료 요약 가능하다.

 

첫째, 지나치게 비싼 주식을 멀리해야 한다. 얼음판에 많은 사람이 올라가 있으면 겉으로는 안전해 보이지만 실상은 얼음판이 깨질 확률이 높아져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리스크가 없어 보일 때가 사실은 리스크가 가장 높을 때다.

 

둘째, 신조어가 탄생하는 업종을 경계해야 한다. 당대 주도주임을 나타내는 트로이카, 브릭스, 차화정, 7공주, 바카라, BBIG, FAANG, 십만전자 같은 신조어는 투자를 만만하게 보이게끔 해 이성을 마비시킨다. 여지없이 끝이 좋지 않았다.

 

셋째, 과열을 드러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자. 카페에 갔는데 모두가 열광적으로 주식 얘기를 하고 있다면 나쁜 징후다. 우리의 씁쓸한 경험으로는 아마추어가 프로를 한 수 가르치려 들 때 시장이 최고조에 다다른 경우가 많았다.

 

p.227-228

2010년 아모레G(당시 태평양)는 시가총액이 1조원을 밑돌아 1등 화장품 회사인 자회사 아모레퍼시픽 지분 가치의 절반도 반영하지 못한 상태였다. 심지어 에뛰드, 이니스프리 등 다른 연관 자회사가 강남 요지에 건물까지 소유하고 있었고 보유 현금만 해도 시가총액의 3분의 1에 해당했는데 지주회사라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있었다.

 

차화정 테마가 득세를 하던 시기라 자동차, 화학, 정유 업종이 아니면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우리라고 시장 트렌드를 모를리 없었지만 가치투자자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기회라는 생각에 소외를 각오하고 매수했다. 당시에 서경배라는 경영자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컸던 부분도 매수의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회사 주가 역시 우리가 샀다고 바로 오르지 않았다. 조금 상승하는 듯하더니 다시 제자리로의 복귀도 여러 차례 이어졌다(역시 능멸의 대가다). 본격적인 상승세를 탄 시기는 차화정 열풍이 사그라 든 2011년 중순부터였다. 마침 중국에서의 한국 화장품 인기 열풍까지 더해졌다. 2012년 말까지 주가는 우리 매수 단가의 3배로 올랐다.

 

이후 2012년 주가에서 2016년까지 5배가 더 올랐는데 한때 찬밥이었던 아모레G가 주도주로 변신해 모든 투자자를 열광하게 하고 다른 주식을 소외시키는 모습은, 보는 우리의 기분을 참 묘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p.230

물린 주식 앞에서 먼저 인정해야 하는 현실은 시장은 내가 지불한 가격에 대해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매수 단가는 깨끗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내가 이 주식에 투자한 돈이 다시 현금으로 주어지더라도 같은 주식을 그만큼 다시 사겠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것을 권유한다. '예스'라면 물린 상태가 아니고 '노'라면 물린 상태다. 이 질문을 소홀히 하면 '비자발적 장기투자'가 되고 만다.

 

p.241

우리는 부정적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지주회사가 너무 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가장 불편하게 다가오는 부분은 최대주주는 대체로 상속세 절감을 위해 지주회사 주가가 오르길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상속이 이미 완료되었거나 상속 욕구가 낮은 지주회사로 선별해야 투자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더불어 지배구조 개편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지주회사의 경우 자회사 주식을 지주회사 주식으로 바꾸는 스왑 과정에서 생각지 못했던 기업가치의 왜곡 현상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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