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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흐름이해

친절한 입문서 - 반도체 애널리스트의 리서치 습관

by Diligejy 2023.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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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애널리스트의 리서치 습관:세상에서 가장 쉬운 반도체 시장 읽기

COUP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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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를 말하려면 반도체 시장을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산업을 얘기하든 주가를 얘기하든 어떤걸 얘기하든 마찬가지다. 좋든 싫든 한국경제의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게 반도체 관련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첨단 기술인 반도체에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다. 설령 반도체를 전공했다고 해도 반도체에 관해 모든 걸 알 수 있는 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최적의 접근인지 가이드를 제공한다. 기술자의 관점이 아닌 투자자의 관점으로 보라는 것이다. 어쩌면 기술자라고 해도 한번쯤은 저자가 제시하는 관점으로 바라봐도 괜찮을 듯 하다. 거시적인 가치사슬 구조를 보라는 의미니까. 

 

거시적 가치사슬 구조를 보다보면 정보를 해석하는 폭이 넓어지고 달라진다. 예를 들어, 2023년 2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6천억 원으로 95.7% 감소했다는 정보를 봤다고 하자. '어휴. 힘들겠네.'라고 하는 정도에서 멈출 수도 있지만, 구조를 이해하고 나면, 'DRAM 가격이 폭락한건가? 그럼 하이닉스는 어떻게 된걸까? 마이크론은 어떨까? 비메모리는 영향이 없는걸까? TSMC는 괜찮은걸까?' 이런 식으로 확장해볼 수 있다. 

 

SK하이닉스도 23년 2분기 실적이 좋지 않네?를 파악한 다음 TSMC를 검색해보면 TSMC도 좋진 않지만, 23%정도 다운된 정도네 라고 생각한 다음 삼성전자는 왜? 라고 생각해보고 각 요인을 분석한 다음 이후 시나리오까지 연결지어서 생각해볼 수 있다.

 

단순히 이걸 사면 오를까 내릴까보다 이렇게 대조하고 비교하면서 분석해보는 재미를 책을 읽으면서 배울 수 있다. 

 

다만, 저자는 업으로서 애널리스트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힘들 수 있다는 얘기를 건넨다. 매번 미래예측을 담당해야하는 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예측이 틀리거나 할 때 스트레스를 감내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힘들 땐 불면증으로 4시간을 못자는 경우도 있다 하니 쉬운 일은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해도 이 책은 꽤 괜찮은 책이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관찰한 사람의 시선을 베껴올 수 있기 때문이다. 

 

 

p.13~14

저 같은 경우 질문의 내용을 쪼개서 검색하고 그런 다음 검색 결과를 하나로 엮어서 답을 내는 방식을 씁니다. 예를 들어 자산운용사에 근무하는 기관투자자가 2022년 TSMC의 설비투자 금액이 2010년 대비 얼마나 늘어났는지 애널리스트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제가 사무실에 있고 블룸버그 터미널 앞에 앉아 있다면 설비투자 금액을 금방 검색해서 답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기업 탐방을 위해 평택이나 부산에서 외근 중이라면 금방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그럴 때는 구글 크롬에서 "2010 TSMC capital expenditure"라는 키워드를 검색합니다. 그러고 나서 앞부분의 숫자만 바꿔서 "2022 TSMC capital expenditure"라는 키워드로 다시 검색해봅니다. 그러면 2022년 440~450억 달러, 2010년에는 59.4억달러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설비투자 금액이 12년 동안 얼마나 증가했는지 답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연습을 몇 번 해본다면 굳이 반도체 애널리스트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반도체와 관련해서 궁금한 것들을 금방 찾아내는 실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긴 문장으로 된 질문을 정확한 검색이 가능하도록 키워드별로 쪼개서 찾아보는 훈련, 한글이 아니라 영어 키워드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훈련 등은 필수입니다. 특히 신기술과 관련된 기업을 검색하거나 국산화가 제한적인 분야, 특정 업종과 관련된 한국 기업이 적은 경우 영어 키워드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 웨이퍼와 관련된 내용을 검색할 때는 주로 영어 키워드로 검색하는데 글로벌 Top 5 웨이퍼 공급사 중에 1곳만 한국 기업이고, 나머지 4곳이 국외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p.19-23

반도체 8대 공정

 

1. 웨이퍼(Wafer) 제조: 웨이퍼는 실리콘(Si) 등을 활용해 만든 기둥을 적당한 두께로 얇게 썬 원판입니다. 이 원판 위에 반도체 집적회로를 만듭니다. 반도체 집적회로란 연산과 저장 등의 기능을 처리하기 위해 여러 가지 소자를 하나의 칩 안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웨이퍼 위에서 전개하는 이 과정은 피자를 만드는 것과 유사합니다. 웨이퍼는 빵(피자 반죽)이고 집적회로는 피자 토핑과 같은 역할을 담당합니다.

 

2. 산화(Oxidation): 실리콘을 주요 소재로 삼아서 만들어진 웨이퍼는 차가운 돌판입니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입니다. 그래서 필요할 때만 정해진 통로로 전기가 흐르도록 하기 위해 웨이퍼 표면 위에 여러 종류의 얇은 막을 입히는 작업을 합니다. 산화 공정은 산화막을 입히는 공정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산화막은 일종의 보호막 역할도 하게 되어 아주 작은 불순물이 집적회로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합니다.

 

3. 포토(Photo): 포토 공정은 웨이퍼 위에 반도체 회로를 그려 넣을 때 빛의 힘을 이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필름 카메라처럼 사진을 찍고 필름에 찍힌 것을 인화지에 인화하는 것과 유사한 공정이 전개됩니다. 이때 집적회로의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미세한 공정을 거치게 되므로 이전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요구합니다. 복잡한 직접회로를 그린 다음 이를 일종의 석영 기판 위에 그려 필름 같은 걸 만듭니다. 그럼 그 위에 빛을 쏘아 웨이퍼 위에 동일한 모양의 집적회로를 찍어냅니다. 즉, 인화지 위에 사진을 현상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이 과정을 노광(Exposure)이라고 부릅니다.

 

4. 식각(Etching): 웨이퍼 위에 설계도대로 존재해야 하는 집적회로 패턴 외에 불필요한 나머지 부분을 제거하는 공정입니다. 이 공정은 미술 시간에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에칭(부식 작용을 이용한 판화) 기법과 유사합니다. 식각 공정에는 건식 식각과 습식 식각이 있습니다. 습식 식각(Wet Etching)은 용액을 이용해 화학적인 반응을 이용해 불필요한 물질을 제거하는 방법입니다. 건식 식각(Dry Etching)은 반응성 기체, 이온 등을 이용해 특정 부위를 제거하는 방법입니다. 식각 공정을 할 때에는 불필요한 물질을 얼마나 정교하고 빠르게 제거하는지가 무척 중요합니다. 

 

5. 증착(Deposition)과 이온 주입(Ion Implantation): 웨이퍼 위의 집적회로는 아파트 층이 하나씩 올라가는 것처럼 차곡차곡 형성됩니다. 집적회로 간의 구분과 연결 그리고 보호 역할을 하는 얇은 막을 박막(Thin film)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박막을 만드는 공정을 증착 공정이라고 부릅니다. 증착 공정을 통해 형성된 박막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회로 사이에 전기적인 신호를 연결해주는 전도성막과 내부 연결 층을 전기적으로 분리하거나 오염원으로부터 차단해주는 절연막입니다. 아울러 집적회로가 그려지는 원판(웨이퍼)은 원래 부도체인데 여기에 필요할 때만 전기가 흐를 수 있도록 전기적 성질을 형성하는 과정이 이온 주입 공정입니다. 이온을 미세한 입자로 만들어 웨이퍼 전면에 균일하게 심어줍니다.

 

6. 금속 배선: 포토, 식각, 증착, 이온 주입이라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웨이퍼 위에 수많은 집적회로가 만들어집니다. 이 집적회로가 외부의 전기 신호에 반응하기 위해서는 집적회로를 따라 전기로 된 길(금속선)을 연결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이 작업이 금속 배선입니다. 반도체 금속 배선에는 알루미늄(Al),  텅스텐(W), 티타늄(Ti), 구리(Cu) 등 다양한 재질이 사용됩니다.

 

7. EDS(Electrical Die Sorting): 반도체를 만드는 공정은 전공정과 후공정으로 나뉩니다. EDS 공정은 전공정의 마지막 단계이자 후공정의 첫 단추에 해당합니다. 웨이퍼를 개별 칩 단위로 잘라내기 전에 웨이퍼 위에 회로가 잘 그려지고 금속 배선이 잘 입혀졌는지 등을 테스트합니다. 전기적 검사를 ㅌ오해 개별 칩들이 원하는 품ㅈ리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확인합니다. 합격품 비율을 높이는 데 필요한 과정입니다.

 

8. 패키징(Packaging): EDS 공정이 끝난 이후 웨이퍼 상태에서 개별 단위로 분리된 칩을 베어칩(bare chip) 또는 다이(die)라고 합니다. 이런 칩에 옷을 입히고 연결 단자를 붙여주는 공정이 패키징 공정입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금속선의 연결 단자를 붙여주는 것은 와이어본딩(Wire bonding)이라고 합니다. 와이어본딩이 끝난 개별 칩을 화학 수지로 밀봉하는 과정은 옷을 입히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옷을 입은 반도체의 최종 불량 유무를 검사하는 것을 파이널 테스트라고 합니다.

 

p.38

최근에는 인텔보다 엔비디아의 기업 가치가 훨씬 더 높습니다. 나중에 설명해 드리겠지만 엔비디아가 데이터센터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이며 데이터센터용 제품이 전사 매출 성장을 견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전까지는 엔비디아의 주력 제품은 게임기와 PC에 탑재하는 그래픽 처리 반도체였는데, 최근 수년 동안 데이터센터용 제품의 매출 비중이 10% 남짓에서 40% 내외까지 올라가며 기업 가치 상승을 견인했습니다.

 

p.39-40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 중에서는 어느 기업의 가치가 가장 높을까요?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대만의 TSMC가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반도체의 설계와 제조를 모두 담당하는 종합반도체 기업(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이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것 같지만, 반도체 위탁 제조만 하는 TSMC의 시가총액이 더 높습니다. 그 이유는 TSMC만이 생산할 수 있는 고성능 반도체의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점점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일을 채굴하는 데에 필요한 고성능 반도체는 TSMC의 선단(맨 앞의 끝 즉, 첨단을 뜻함) 공정 생산 설비에서만 제조되고 있습니다(최신 뉴스에 의하면 삼성전자도 생산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선단 공정은 반도체의 선폭이 10나노미터 이하로 아주 좁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선폭이 좁은 회로를 형성해서 반도체를 만들려면 특수한 장비와 부품이 필요합니다. 이런 종류의 장비와 부품은 기존 제품과 달리 천문학적인 가격에 판매됩니다.

 

 TSMC의 성장과 발전은 스마트폰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스마트폰에 적용되는 이동 통신 기술이 4세대에서 5세대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반도체의 종류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TSMC의 전체 매출에서 40% 이상이 스마트폰과 관련된 분야에서 발생합니다. 이동 통신 기술 중 5세대 기술이 TSMC의 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시기는 2019년 6월부터입니다. 이는 5G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반도체를 TSMC가 제조해서 공급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TSMC의 위상이 워낙 확고하다 보니 한국에서도 TSMC에 대한 주식 투자자들의 관심이 매우 큰 편입니다. TSMC가 제조하는 반도체 중에는 스마트폰용 반도체뿐만 아니라 서버나 PC에 탑재되는 반도체도 있습니다. TSMC의 제품별 매출 비중을 응용처로 구분하면 스마트폰용 반도체와 서버 및 PC용 반도체가 각각 40% 내외로 거의 쌍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p.45-47

파운드리는 원래 반도체 산업이 아닌 곳에서도 사용되던 용어였습니다. 주조 공정을 통해 금속 제품을 생산하는 곳을 의미했습니다. 이처럼 반도체 산업이 태동하기 전부터도 파운드리라는 단어는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반도체 업종에서 파운드리 업종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파운드리라는 용어가 활발하게 쓰이게 된 것은 이동 통신 기술이 3세대, 4세대, 5세대로 변화하면서 스마트폰용 반도체, 데이터센터용 반도체에 요구되는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부터입니다. 각각의 통신 기준에 부합하면서도 빠르게 작동하는 반도체의 공급이 필요했는데, 반도체 설계와 제조를 동시에 전개하는 기업은 이러한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이 고성능화되면서 카메라 촬영, 지문 인식 등의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더욱 다양한 비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했습니다. 이 같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제조만 하는 파운드리와 설계만 하는 팹리스 기업이 각자의 역할에만 충실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마치 다양한 신규 요리가 새롭게 생겨나면서 음식을 조리하는 주방은 주방대로 발전하고, 요리법을 연구하는 요리사는 요리사대로 성장해서 각자 창업해서 사업을 키워가는 것과 유사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파운드리 기업은 대만의 TSMC입니다. 시가총액만 500조 원을 웃돕니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2022년 4월 현재 400조 원을 웃돕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부는 메모리와 비메모리로 나눌 수 있는데, 메모리 부문에서도 그리고 비메모리 부문에서도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동시에 영위하고 있습니다. 다만 증권 관련 뉴스에서 삼성전자를 파운드리 회사로 언급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비메모리 사업에서의 파운드리를 의미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래서 '삼성전자 파운드리'라는 단어를 보게 되면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제조 사업'이라고 해석해도 좋습니다. 원래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강자입니다. 매출과 영업이익의 상당수도 그쪽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최근 비메모리 부분에서 경쟁력을 키우려 하고 있습니다. 

 

p.48-49

스마트폰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는 이 같은 역할 구분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입니다. 팹리스와 파운드리 사업을 동시에 영위하는 기업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는 독일의 인피니언(Infineon)과 네덜란드의 NXP가 각각 1, 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양사 모두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팹리스와 파운드리 사업을 동시에 영위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업을 종합 반도체 기업이라고 부릅니다. 종합 반도체 기업을 영어로는 IDM이라고 부릅니다.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s의 앞 글자를 딴 것입니다. 이런 종합 반도체 기업, IDM 기업은 자체적으로 설계와 제조를 함께 전개하다 외부에 위탁 제조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이 들면 설계를 마친 반도체 중 일부 제품을 TSMC와 같은 전문 파운드리 기업에 맡깁니다. 최근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영향으로 32비트 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이라고 불리는 반도체는 TSMC와 같은 전문 파운드리 기업의 생산 설비에서 위탁 제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팹리스와 파운드리라는 단어는 반도체 중에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좀 더 많이 쓰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대만의 TSMC, 미국의 엔비디아는 모두 비메모리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입니다. 반면에 메모리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는 설계와 제조를 동시에 합니다. 비메모리 업종에서는 워낙 제품의 종류가 다양해서 파운드리 기업과 팹리스 기업의 역할 구분이 뚜렷하지만, 메모리 업종에서는 이 둘을 동시에 영위하는 기업이 훨씬 많습니다.

 

p.53-55

반도체 전체 시장에서 비메모리 반도체가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만 메모리 반도체는 30%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변동에 따라 비중이 늘었다 줄었다 합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비메모리 반도체가 무언가를 처리하거나 연산하는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디지털 정보를 일정한 시간 동안 담아 두는 역할을 합니다. 마치 쟁반에 밥과 국을 담아 빠르게 나르는 것과 비슷하고 음식을 냉장고에 저장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따라서 어떤 제품에 데이터 저장 기능이 많이 요구되면 될수록 고용량의 메모리 반도체가 탑재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스마트폰은 고사양의 메모리 반도체를 요구하는 대표적인 제품입니다. 스마트폰에 탑재된 카메라 이미지 센서로 촬영된 사진은 메모리 반도체에 해당하는 낸드 플래시에 저장됩니다. 카메라 이미지 센서에서 정보를 처리할 때는 메모리 반도체의 일종인 DRAM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율주행 기능이 강화된 자동차도 스마트폰처럼 고사양의 메모리 반도체를 요구합니다. 자율주행의 레벨이 올라갈수록 자동차 한 대당 필요로 하는 카메라 이미지 센서는 점점 늘어납니다. 당연히 이에 맞춰 메모리 반도체인 DRAM의 탑재량도 늘어납니다.

 

내연기관 자동차용 반도체에서는 메모리 반도체보다 비메모리 반도체가 훨씬 많이 사용됩니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일반적으로 30%를 웃돌지 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는 이보다 훨씬 작은 10% 미만입니다.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율주행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에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이용할 때, 즉, 주행하거나 주차할 때 특정한 데이터를 많이 저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내비게이션 기기나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정도에만 DRAM 반도체가 들어갔습니다. 운전을 오래 하셨던 분들은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2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내비게이션 기기를 탑재한 차량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즉, 20년 전에 도로를 달리던 내연기관 자동차에는 내비게이션 기기가 탑재되지 않았으니 DRAM의 탑재량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내비게이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율주행차량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향후 스마트폰 한 대에 탑재되는 메모리 용량보다 자동차에 필요로 하는 메모리 용량이 더 커질 수 있을 것입니다.

 

p.57-58

비메모리 반도체의 세분화와 다양화 추세는 스마트폰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컴퓨터에 탑재되는 CPU처럼 메모리에 저장된 명령어와 데이터를 불러와 순서대로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반도체를 스마트폰에서는 AP(Application Processor)라고 부릅니다. AP에서 P는 Processor를 의미하므로 CPU의 P와 같은 의미입니다. 컴퓨터의 CPU처럼 스마트폰에서는 AP가 두뇌 역할로 논리 연산이나 데이터 처리 등을 담당합니다. 다만 AP는 CPU를 포함해 GPU, 디지털 신호 처리장치, Connectivity 관련 반도체 등이 통합적으로 모여 있는 반도체입니다. 

 

그 외 AP와 CPU의 큰 차이점은 소비 전력입니다. CPU는 마치 하루에 다섯 끼를 먹고 종일 빠르게 달리면서 땀을 많이 흘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소비 전력 수준이 높습니다. 반면 스마트폰의 AP는 소비 전력 수준이 낮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 충전하고 종일 들고 다녀야 하는 스마트폰에 적합합니다. AP가 CPU보다 조금 더 단순한 명령어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하더라도 기능상 부족하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AP는 스마트폰의 이동성과 저전력 특성에 맞게 진화한 CPU라 할 수 있습니다.

 

p.66-67

인터넷에서 반도체 공정에 대해 검색해보면 '반도체 8대 공정'이라는 표현이 가장 자주 등장합니다. 저는 그 중에서 국산화가 활발하게 진행 중인 소재, 부품, 장비 공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공부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굳이 몰라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증시에서 관련 수혜주를 찾기도 어렵고, 투자 아이디어로 연결되지 않아 반도체 공정에 관한 공부가 시간만 오래 끌고 특별한 결론 없이 끝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p.70-71

주식 투자자 입장에서는 확산 공정을 자세하게 이해하기보다는 확산 공정에 필요한 부품을 만드는 기업과 그 부품을 어느 고객사에 공급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국내 반도체 기업 중 한 기업이 부품이나 소재를 메모리 반도체 기업뿐만 아니라 비메모리 반도체 기업에도 제공한다면 그 기업의 가치는 높은 수준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관련 기업이 많다 보니 비메모리 반도체 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는 업체라면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과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p.75-77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다시 메모리와 비메모리 사업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업이익의 대부분은 메모리 반도체에서 비롯됩니다.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발생하는 영업이익은 제한적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1~2조 원 사이로 추정됩니다(삼성전자의 전사 기준 영업이익 규모가 몇십조 원 수준이다보니 연간 기준 몇천억 원 정도의 이익은 가볍게(?) 반올림하거나 무시하고, 이렇게 몇 조원 단위로 설명합니다).

 

인텔이나 TSMC같은 비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실적을 살펴보면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실적이 더욱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기업 인텔의 실적을 살펴보면 2020년 영업이익이 237억 달러입니다. 원화로 27조 원 정도에 해당합니다.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의 영업이익 규모가 연간 기준으로 1~2조 원이고 아직 3조 원을 웃돌기도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가 왜 비메모리에서는 힘을 못 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인텔이 비메모리 주력 제품에서는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가격 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텔은 컴퓨터용 CPU에서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습니다. 경쟁사 AMD가 많이 쫓아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인텔의 시장 점유율이 높습니다.

 

인텔과 삼성전자를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식 투자자들은 대만의 비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TSMC와 삼성전자도 비교합니다. 그럼 TSMC의 연간 영업이익은 얼마나 될까요? TSMC는 대만 기업이지만 미국 증시에도 상장되어 있어 달러 기준 실적을 인터넷에서 금방 검색할 수 있습니다. 2020년 기준 영업이익은 202억 달러로 원화 기준으로 23조 원 정도가 됩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이 1~2조 원이었으니,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있어서는 삼성전자보다 훨씬 큰 영업이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TSMC는 비메모리 반도체의 위탁 제조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탁 제조 가격에 대한 결정권을 사실상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TSMC가 예전에 분기 실적을 발표할 때 "We are everyone's foundry"라고 스스로를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이 충분히 이해되는게 TSMC의 고객사는 자그마치 500곳 이상으로 반도체 위탁 제조 분야에서 고객사 한 곳을 확보하려면 최소한 2년, 3년이 걸리는 걸 고려하면 엄청난 수의 고객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TSMC와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실적이 제조두와 마라도 수준으로 차이가 난다면 굳이 마라도에 해당하는 삼성전자에 우리가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겠죠? 그런데 여기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최근 삼성전자가 TSMC와의 격차를 좁힐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겨나면서 이러한 기대감이 삼성전자의 주가 상승을 촉진시켰습니다. 이 기대감 때문인지 2021년 1월 기준으로 삼성전자 주가는 96,800원까지 상승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정답은 미중 무역 분쟁 때문입니다. 미중 무역 갈등으로 인해 반도체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반도체 고객사들은 반도체 공급사를 다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p.79

파운드리 기업이 고객사의 주문을 대량으로 받아오려면 최소 3년 정도가 걸립니다. 특히 고객사의 특허나 회로 설계도를 공유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한마디로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관계가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무역 분쟁이라는 이벤트 때문에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반도체의 위탁 제조 주문을 받는 속도가 빨라져 버린 것입니다. 정확하게 추정할 수는 없지만, 퀄컴의 핵심 제품이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파운드리 생산 설비를 통해 만들어지기까지는 2년 정도밖에 안 걸린 것 같습니다. 원래 3년 이상이 걸리던 기간을 2년으로 줄인 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이처럼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반도체 고객사로부터 주문을 받았다는 것은 마치 집 근처에 작은 미용실이 하나 있는데, 알고보니 BTS의 멤버 뷔나 블랙핑크의 제니가 방문한 미용실이었다, 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는 것과 비슷한 후광 효과는 당연히 주가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까지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중 주가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고 있는 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사업부는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나머지 사업부의 실적은 아무리 예상보다 뛰어나다 하더라도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제한적입니다. 

 

p.80-81

삼성전자가 순수한 반도체 기업은 아니지만 반도체 사업의 성과가 주가에 큰 영향을 끼치고, 그것도 영업이익의 기여도가 가장 작은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성과나 이벤트가 주가에 영향을 끼치다보니, 비메모리 사업이 삼성전자에 던지는 의미는 다소 양가적입니다.

 

그렇다면 메모리 반도체는 어떨까요? 삼성전자의 최대 실적을 올리는 메모리 반도체 사업 실적은 주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메모리 반도체의 업황이 좋아서 실적이 좋아진다면 삼성전자의 주가가 오르기는 하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입니다. 반도체 업종에 대한 투자 경험이 많은 분들이라면 이때는 오히려 삼성전자보다 메모리 반도체의 퓨어 플레이에 해당하는 SK하이닉스의 주식을 선호합니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실적은 대부분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좋아질 때 발생하는데, 이때는 SK하이닉스의 실적이 삼성전자보다 더욱 빠르게 나아지기 때문입니다. 

 

SK하이닉스 주가에 영향을 주는 경우의 수를 살펴보겠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 실적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변수 중에 제품 가격이 있습니다. 바로 DRAM 가격입니다. 이 DRAM가격이 급등할 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 하나만 사야한다면 앞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당연히 SK하이닉스를 사는 것이 맞습니다. DRAM 가격이 1% 올랐을 때 삼성전자보다 SK하이닉스의 실적이 더 빠르게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SK하이닉스 실적에서 DRAM 실적이 기여하는 비중은 꽤 높습니다. 2021년 기준 SK하이닉스의 전체 매출 43조 원에서 DRAM 사업의 매출은 무려 30조 6천억 원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DRAM 가격이 상승하는 신호가 나타나면 주식 투자자 입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아니라 SK하이닉스가 정답입니다.

 

p.82

반도체 애널리스트의 업무는 수많은 습관의 합집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매일 DRAM 가격을 확인하는 것, 열흘에 한 번씩 반도체 수출 데이터를 확인하는 것, 분기마다 마이크론의 실적을 확인하는 것 등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매일의 전망과 예측 등이 나오게 됩니다. 만일 이렇게 매일 하나씩 확인하는 것을 하나하나 습관으로 만들기에 어려운 환경이라면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기억해도 좋습니다. 반도체 업황이 좋다고 할 때 그것이 비메모리 반도체에 관한 것이라면 삼성전자의 주가에 좀 더 영향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DRAM과 같은 메모리 반도체의 업황이 좋다면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좀 더 빠르게 상승한다, 이 결론만 잘 기억해도 됩니다.

 

p.90~91

ASML은 주식 투자로 치면 어떤 성향의 투자자에게 적합한 종목일까요? 저는 단기보다 장기 투자가 목적인 분들, 부모님이나 자녀 앞으로 반도체 주식을 사 놓고 나중을 위해 쟁여놓고 싶다는 분들에게 ASML을 추천드립니다. 왜냐면 ASML의 독점력이 장기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반도체 노광 장비 시장에서 오랫동안 주도권을 가진 국가는 일본이었습니다. 광학 기술을 지닌 일본 기업들이 이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그러나 극자외선 노광 장비의 경우 ASML이 월등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한동안은 독점적 지위를 오래도록 누릴 것 같습니다. ASML은 극자외선 노광 장비에 들어가는 레이저 광원이나 각종 소재나 부품도 직접 만들거나 유럽의 강소기업들로부터 공급받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 기업은 ASML이 지분 투자를 한 기업도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세라믹 소재와 부품을 만드는 베를리너 글라스(Berliner Glass)라는 독일 기업을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ASML은 핵심 소재나 부품이 내재화되어 있고 협력사와의 밸류 체인도 탄탄해 지금의 위상이 흔들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ASML의 독점이 유지되고 ASML의 노광 장비가 있어야 하는 반도체 기업이 점점 늘어나다 보니 ASML의 주가와 관련된 지표 중 가장 극명하게 돋보이는 것은 PER이라고 불리는 지표입니다. 증권가에서는 이 지표를 밸류에이션 지표 또는 상대가치 지표라고 부릅니다. 여기서는 PER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드리기보다는 ASML의 PER 지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ASML이 극자외선 노광 장비를 연간 10대 이상으로 본격적으로 공급하기 전까지는 PER는 40배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극자외선 노광 장비의 공급량이 늘어나고나서부터는 EPR이 40배 중후반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에는 2022년 4월 기준으로 32배까지 내려왔지만, 그래도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에 편입된 대형주 중에 PER가 32배라는 것은 여타 편입 종목 대비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p.94

삼성전자가 TSMC를 따라잡으려면 여러 가지를 노력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TSMC만큼의 대규모 투자를 전개하는 것입니다. 특히 비메모리 반도체 후공정 기술에 대한 연구 개발과 투자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잠깐! 전공정과 후공정이란 말이 나왔는데, 반도체 웨이퍼에 회로를 인쇄하는 것이 전공정입니다. 이렇게 전공정을 마친 웨이퍼를 개별 칩 단위로 분리, 조립해 최종 제품인 반도체 칩으로 포장하고 성능과 신뢰성을 테스트하는 것이 후공정입니다. 

 

TSMC의 연간 설비투자 규모는 2022년 기준으로 50조 원 이상입니다. 연간 설비투자의 10% 내외에 해당하는 금액이 반도체 후공정 투자에 할당되고 있습니다. 즉, 5조 원 내외의 금액이 반도체 후공정 투자에 집행되고 있습니다. TSMC의 연간 설비투자는 아마도 2023년에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설비투자 규모는 아직 그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비메모리 분야 파운드리 사업에 있어서만큼은 TSMC가 삼성보다 앞서 나갈 것 같습니다.

 

p.107

SK하이닉스의 월간 DRAM 메모리 반도체 생산 능력은 웨이퍼 기준 38만 장 정도이고, 난야 테크놀로지는 7만 장 정도입니다. 이처럼 양사를 비교해보면 SK하이닉스의 DRAM 생산 능력이 웨이퍼 기준으로 다섯 배 이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웨이퍼 기준으로 생산 능력을 비교하는 이유는 웨이퍼를 잘라서 만드는 개별 반도체의 크기가 각각 다르므로 애초에 자르기 전의 원판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반도체의 원판에 해당하는 웨이퍼는 피자 반죽처럼 동글납작하게 생겼습니다. 반도체 제조사 간의 생산 능력을 비교할 때 보통 1만 장 또는 10만 장과 같은 만 단위를 사용하는데, 1개월 동안 피자 몇 판을 만들 수 있는지 비교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따라서 DRAM 생산 능력 규모를 개별 피자 조각(개별 반도체)이 아니라 피자 반죽(웨이퍼) 기준으로 비교하면 SK하이닉스가 난야 테크놀로지에 비해 다섯 배 이상의 생산 규모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삼성전자의 DRAM 생산 능력은 이보다도 훨씬 더 큽니다. 이미 월 60만 장을 넘겼습니다.

 

p.112-113

반도체 업종에서 중국이 위상을 키워온 것은 미국에서 발표하는 반도체 산업 데이터를 통해서도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 반도체 산업 협회(SIA, 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에서 매월 대륙별 반도체 기업의 합산 매출을 발표합니다. 지역별 분류 기준은 Americas, Europe, Japan, Asia Pacific, China 등입니다. 처음에는 중국 반도체 기업의 합산 매출이 아시아(Asia Pacific) 지역에 포함되면서 눈에 띄지 않다가 2015년 초부터는 별도로 발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어떤 특정 지역의 데이터가 별도로 발표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해당 시장의 규모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 반도체 산업 협회의 월별 데이터는 2개월 정도가 지나고 나서 발표가 됩니다. 2022년 4월 기준으로 가장 최근에 발표된 2022년 2월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 기업의 합산 매출은 월별로 100억 달러를 겨우 넘겼지만, 중국 반도체 기업의 합산 매출은 월별로 150억 달러를 넘나드는 수준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반도체 제조시설이 중국의 시안, 우시, 우한, 다롄 등으로 옮겨왔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중국 현지에 반도체 생산 설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은 특정 디바이스를 제조하는 시설이나 마무리 공정에 해당하는 후공정 생산 설비를 중국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화합물 반도체 공급사로 잘 알려져 있는 울프스피드라는 기업은 중국 현지에 후공정 생산 설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NXP와 같은 유럽의 반도체 기업도 중국 현지에 후공정 생산 설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반도체 제조 시설이 중국으로 몰린 데에는 인건비 등의 비용 절감이 가장 큰 목적입니다. 또한 고객사와 지리적으로도 가깝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반도체 공급 측면에서 생산 기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요 측면에서도 중요한 시장입니다. 중국 내에서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계기 중 하나는 4세대 이동 통신 스마트폰의 보급입니다. 

 

p.115-116

미 중 무역분쟁의 전초전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전초전의 주인공은 바로 미국의 반도체 기업 퀄컴입니다. 퀄컴은 휴대폰 중심으로 응용처가 한정된 사업을 다변화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자동차 반도체 공급사인 NXP를 440억 달러에 인수 합병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다국적 기업이 인수 합병을 전개할 때는 인수 합병의 대상이 되는 기업 제품을 주로 이용하는 국가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인수 합병에 성공한 기업이 자신들의 시장 점유율 향상을 계기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 그동안 해당 제품을 문제없이 이용하던 국가의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수 합병에 따라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국가의 규제당국으로부터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자금 조달 여력이 풍부하다고 해서, 당사자들끼리 원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인수 합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퀄컴의 경우 NXP를 인수하려고 했으나 중국으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지 못해 결국 20억 달러의 해약 수수료를 지불하게 됩니다. 이는 2018년 7월에 발생했던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3년 전 2015년 퀄컴은 중국으로부터 9억 7천5백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은 일이 있습니다.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중국의 스마트폰 시장이 커짐에 따라 스마트폰마다 반도체를 탑재해 크게 수익을 창출하던 퀄컴을 견제하기 위한 중국의 조치였다는 것이 당시의 평가입니다. 이 같은 조치는 미국 내 반중 정서를 자극했고, 결과적으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무역 전쟁으로 비화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결국, 중국의 퀄컴 견제에 맞불을 놓듯 미국도 통신장비 공급사인 중국의 화웨이를 압박합니다. 2019년 5월부터 안보상의 이유로 미국 내 기업들이 화웨이에 부품을 공급할 때 허가를 받도록 의무화하는 규제를 시행했고, 2020년 5월부터는 미국 장비를 사용해 부품을 생산한 외국 기업에도 화웨이에 부품을 공급할 때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습니다.

 

p.119

수출 제한이나 고율의 관세는 전통적인 무역 분쟁의 방법입니다. 요즘 대두되는 새로운 무역 분쟁의 방법은 기업 간 인수 합병을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특히 미국의 반도체 기업이 또다른 미국 기업을 인수하거나 합병할 때도 중국을 위시한 다른 나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만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규제당국이 승인은커녕 검토조차도 하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인수 합병을 추진하는 기업의 주가는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가 빤히 보이는 것에 헛된 노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2022년 초에 엔비디아가 영국의 반도체 기업 ARM 인수를 포기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 경우에는 ARM의 본사가 자리 잡고 있는 영국 측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ARM이 보유하고 있는 반도체 설계자산이 영국 입장에서는 중요한 자산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p.120

우리나라도 일본과의 무역 분쟁을 경험했습니다. 2019년 7월 일본에서 반도체 제조의 핵심 공정에 필요한 소재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는 일이 발생해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나는 등 반일 여론이 뜨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수출 규제 대상으로 지정된 품목은 세 가지(감광액, 불화수소 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필름)였습니다. 이 중에서 감광액과 불화수소 에칭가스가 반도체 노광공정과 식각 및 세정 공정에 사용됩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이후 국내 언론에서도 감광액이나 불화수소 에칭가스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게 되면서 반도체에 대해 잘 모르던 분들도 소재나 관련 지식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반도체 소재 기업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소재 국산화에 시동을 거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p.125-128

미국 반도체 기업 중 퀄컴은 적극적으로 인수합병을 추진했다 중국의 견제로 실패한 이후 미중 무역 분쟁 기간 동안은 조용히 지내는 것처럼 보이더니 2022년에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업 어라이버(Arriver)를 인수했습니다. 어라이버는 스웨덴 기업 비오니어(Veoneer)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플랫폼 개발 사업부입니다. 이처럼 미국의 반도체 기업은 전략적 판단에 따라 언제든 인수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퀄컴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 볼까요? 2015년 2월 퀄컴은 중국에서 독점 금지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9억 7천5백만 달러의 돈을 벌금으로 지급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불거졌던 이슈는 퀄컴의 3세대 및 4세대 이동 통신용 모바일 반도체 특허 수수료가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에 너무 큰 부담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9억 7천 5백만 달러(우리 돈으로는 당시 환율 기준 1조 원 이상 수준)는 그때나 지금이나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엄청난 거액입니다.

 

중국 당국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합의가 진행되던 사이 퀄컴의 주가는 계속 하락했습니다. 합의금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합니다만, 독점 금지규정 위반 관련 뉴스가 처음으로 알려졌을 때 70달러를 지키던 주가는 중국과 합의문 발표가 나온 이후 50달러 미만까지 하락합니다. 증시에서는 중국에서 퀄컴이 겪었던 일을 그만큼 부정적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다 퀄컴은 3년 후인 2018년, 또 다른 형태의 거액 해약 수수료를 지급하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퀄컴은 네덜란드의 차량용 반도체 공급사 NXP를 인수합병하려고 했지만 중국 규제당국의 최종 승인을 받지 못했고 이로 인해 위약금까지 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들 이후,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진행 중인 인수합병 건에 대해 중국의 승인이 늦어지거나 검토가 길어진다는 뉴스가 나오면 해당 기업의 주가는 점점 하락을 합니다.이전에 퀄컴을 덮었던 그림자가 다른 기업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봐야 할 정도입니다.

 

무역 분쟁 이전에도 글로벌 반도체 기업 간의 인수합병은 생각보다 쉽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에 빠져서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몇 년을 기다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오랜 기다림 끝에 인수합병을 성공시킨 사례가 있는데 대만의 미디어텍이라는 반도체 기업이 동종 업종의 엠스타(Mstar)를 인수합병한 사례입니다.(엠스타도 대만 기업입니다). 무역 분쟁이 발발하기 한참 전에 진행되었는데, 마무리가 될 떄까지 사실상 수년이 걸렸습니다. 

 

인수 합병 추진 당시 미디어텍은 휴대전화용 시스템 온 칩(System on Chip)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엠스타는 디지털 TV용 시스템 온 칩 반도체의 1위 공급사였습니다. 미디어텍과 엠스타의 결합은 한국 시장에서 크게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인수 기업인 미디어텍 때문이 아니라 피인수 기업인 엠스타 때문이었습니다. 엠스타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필요한 TV용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 규제당국에서 문제를 삼았던 것은 양사의 결합 이후 디지털 TV용 시스템 온 칩 반도체의 가격 인상 가능성이었습니다. 특정 반도체를 공급하는 기업(미디어텍, 엠스타)이 가격 협상에서 우선권을 가질 수 있고, 그러면 그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수요처(삼성전자, LG전자)에서는 부품 가격이 인상되더라도 이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규제당국은 양사의 인수 합병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습니다. 향후 3년간 신제품 출시 후 9개월이 지나면 제품 가격을 인하한다는 내용이었고, 이처럼 인하된 가격을 TV 제조사의 구매가 완료될 때까지 유지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TV 제조사의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내용을 조건으로 내건 셈이었습니다. 

 

이렇게 몇 줄로 정리하면 깔끔한 결론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결론이 도출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미디어텍과 엠스타의 인수합병 시도는 2012년 6월을 처음으로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모회사가 된 미디어텍과 자회사가 된 엠스타가 정식 합병을 마무리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2019년 1월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 만나 사귀고 결혼하기까지 6년 이상이 걸린 셈입니다.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인수합병 속도에 영향을 끼쳤지만 미디어텍과 엠스타의 제품을 주로 이용하는 한국에서 승인을 받는 데에만 수개월이 소요되었습니다.

 

p.130-131

원래 엔비디아는 인수합병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던 기업이고 연구개발을 주력하는 기업이었습니다. 회계연도 기준으로 2016년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26.57%로 2016년의 인텔(21.36%)이나 AMD(23.34%)보다도 높았습니다. 그랬던 엔비디아가 멜라녹스를 인수한다고 시장에 알려졌을 때 증시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었습ㄴ디ㅏ. 멜라녹스의 인수를 추진한다는 뉴스가 보도된 날, 엔비디아의 주가는 전일 대비 12.7% 상승했습니다.

 

이와 같은 주가 흐름은 특이한 모습입니다. 보통 인수합병 시도가 알려지고 나면 인수 기업의 주가는 하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자금 부담과 인수합병 실패 시 따라올 리스크 때문입니다. 그런데 뉴스 보도 첫날에 엔비디아의 주가가 10% 이상 상승했던 이유는 멜라녹스를 인수한 이후에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 사업부와의 시너지가 커진다는 점이 비교적 명확하게 기대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즉, 명분과 이유가 분명했고 업황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긍정적 전망을 점칠 수 있었습니다.

 

증시에서의 기대감은 엔비디아의 주가를 끌어올리며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지만 막상 규제당국의 승인은 빨리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2019년 연내에 마무리하는 것이 엔비디아의 목표였는데 당시의 컨센서스는 미중 무역분쟁이 완화되어야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을 수 있고, 특히 미국 기업끼리의 결합이므로 중국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기가 단기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었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미중 무역분쟁이 진행 중이었으므로 중국 규제당국이 승인을 검토하기는커녕, 검토조차 원활하게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런 의심이 지속되며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미중 갈등은 한층 격화되는 조짐이 나타났고 결국 엔비디아의 주가는 내림세로 돌아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20년 4월에 중국 규제당국의 승인이 드디어 마무리됐습니다. 엔비디아의 관점에서 13개월 만에 승리의 면류관을 쓴 셈입니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그 이후 두 배 이상 올랐습니다.

 

미중 무역분쟁이 반도체 패권전쟁의 양상을 띠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도 있는 복잡한 환경이다 보니 반도체 업종 내의 인수합병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입니다.

 

p.135-138

한국 반도체 업종에서 '슈퍼 사이클'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입니다. 이는 SK하이닉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때부터 SK하이닉스의 분기 영업이익이 완전히 흑자로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SK하이닉스가 마지막으로 분기 영업 손실을(적자를) 기록한 것은 2012년 3분기입니다. 그러다가 2012년 4분기부터 분기 영업이익이 흑자를 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3분기에는 영업이익이 1조 원을 웃돌기까지도 했습니다. 분기별 1조 원 내외를 달성하는 영업이익 기조는 2015년 1분기까지도 계속 이어집니다. 앞으로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는 기대감이 커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SK하이닉스에 대해 언급할 때 슈퍼 사이클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 하반기부터는 슈퍼 사이클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질 정도로 영업이익이 감소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메모리 반도체 중 DRAM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SK하이닉스의 분기 영업이익이 1조 원 미만으로 감소한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이 다시 1년 동안 지속되고 나서 2016년 4분기가 되어서야 다시 1조 원을 웃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미중 무역분쟁 등 전 세계 반도체 수요에 영향을 끼치는 이벤트가 발생할 때마다 영업이익은 다시 1조 원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이처럼 더 이상 적자를 기록하지 않으면서 영업이익이 1조 원 범위에서 왔다갔다하는 일이 2019년 2분기부터 2020년 1분기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슈퍼 사이클이라는 단어를 꺼내기에 조금 이른 것 같지만 적어도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이후 2022년 1분기까지 영업이익은 2~4조 원 내외를 기록중입니다.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흐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DRAM 가격입니다. 경쟁사들이 DRAM 생산 설비를 증설해서 공급을 빠르게 늘리면 DRAM 가격이 하락합니다. 하락 속도는 무척 빠른데, 단지 몇 개월 만에 1/2 혹은 1/3 수준으로 하락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중 무역분쟁처럼 반도체 수요에 영향을 끼치는 이벤트도 DRAM 가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미중 무역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2019년 1분기에는 1조 3,665억 원이었지만 6개월 후인 2019년 3분기에는 4,726억 원까지 감소합니다. 대략 1/3 수준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이는 6개월 동안 DRAM 가격이 1/3 수준에 가깝게 하락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2012년 3분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분기 기준으로 영업손실을 기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이익의 폭은 왔다 갔다 하며 변동성이 컸지만 이익을 못 낸 시기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반도체 기업들도 SK하이닉스처럼 분기 영업이익의 변동성이 클까요? 그렇지 않은 기업도 있습니다. SK하이닉스처럼 반도체를 직접 제조하면서도 분기 영업이익의 변동성은 제한적이고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대만의 반도체 기업 TSMC입니다. 

 

TSMC의 분기 영업이익은 2010년 이전까지는 1조 원 안팎으로 변동성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부터는 분기 영업이익이 1조 원을 웃돌 뿐만 아니라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0년 1분기 영업이익은 1.2조 원이었는데, 그로부터 5년 뒤인 2015년 1분기 영업이익은 3조 원으로까지 증가했습니다. 이후에도 분기 2조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미중 무역분쟁이 한창이던 시절에도 영업이익은 감소하지 않고 2019년 1분기 2.3조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2015년 1분기 때의 3.0조 원에 비하면 많이 감소했지만 그래도 양호한 수준입니다. 2019년 3분기부터는 4조 원대에 진입했고, 2021년 1분기와 2분기에는 각각 5조 원을 웃도는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분기에는 10조 원에 근접하는 영업이익을 달성했습니다(와우!).

 

TSMC의 영업이익은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경쟁사가 현저히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TSMC가 가장 잘하는 분야는 반도체 중에서 비메모리 분야 그리고 첨단 공정 분야의 제조입니다. 무역 분쟁 이전에는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14나노미터 미만의 회로 선폭을 첨단 공정으로 불렀지만 지금은 7나노미터, 5나노미터 정도를 첨단 공정으로 부릅니다. 반도체의 제한된 면적에 더 많은 구조물을 촘촘하게 세우면 세울수록 제한된 전력 범위 내에서 고성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TSMC는 본국인 대만 외에 미국 애리조나에 첨단 공정의 비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5나노미터 제품을 만들 예정입니다. 

 

그럼 TSMC와 함께 비메모리 반도체의 미세화를 주도한 기업에는 누가 더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7나노미터보다 조금 더 큰 14나노미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4나노미터 공정으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기업은 TSMC 외에 한국의 삼성전자, 미국의 인텔과 글로벌파운드리(GlobalFoundries), 중국의 SMIC 이렇게 다섯 곳입니다. 그러나 14나노미터 미만의 공정에서 10나노미터, 7나노미터, 5나노미터로 내려갈수록 이를 공급할 수 있는 제조사의 수는 줄어듭니다. 2022년 기준으로 7나노미터 및 5나노미터 양산이 가능한 제조사는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뿐입니다.

 

p.140-142

DRAM 산업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기 위해 10년 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2012년 기준으로 살펴보게 되면 DRAM 공급사가 8곳이나 되었습니다. 삼성전자(한국), SK하이닉스(한국), 마이크론(미국), 엘피다(일본), ProMOS(대만), Winbond(대만),  파워칩 세미컨덕터(대만), 난야 테크놀로지(대만)입니다. 이렇게 다수의 기업이 존재했는데, 현재는 파산한 기업도 있고 인수합병된 기업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변화가 전개된 이후 유의미한 규모로 DRAM을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은 이제 3개 업체만 남았습니다. 바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마이크론입니다. 나머지 공급사나 신규 공급사의 위상은 제한적입니다. 4위 기업인 대만의 난야 테크놀로지는 메모리 분야 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생산 설비 규모를 볼 때 생산량은 무척 제한적입니다. 시장 점유율은 3% 미만입니다. 나머지 대만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은 각각 1% 미만 수준입니다. 중국에서는 푸젠진화반도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라는 기업들도 DRAM 생산라인을 보유하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은 낮은 한 자리수 수준입니다. 따라서 2022년 현재 DRAM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주요 공급사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이렇게 3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단 공급사가 8곳에서 3곳으로 줄어들었다는 점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비메모리 반도체의 선단 공정에서 단둘만 남은 상황과 같습니다. 그러면 DRAM 반도체에서 마지막에 살아남은 3개의 공급사들이 슈퍼 사이클에 진입할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높을까요? 혹은 DRAM 분야에서도 TSMC와 삼성전자 위주로 재편된 첨단 공정의 비메모리 반도체처럼 공급사가 2곳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을까요? 즉,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어느 한 곳이 DRAM 사업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정답부터 말씀드리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경우 DRAM 메모리 반도체 사업이 회사 전체 실적의 주된 역할을 합니다. 매출 기준으로 70~80% 내외를 차지합니다. 그러니 사업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는 어떨까요? 삼성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전자가 영위하는 반도체 사업 중에 DRAM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이익 기여도가 가장 큽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디바이스별로 구분하면 DRAM 메모리 반도체, 낸드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비메모리 반도체 이렇게 세 개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에서 DRAM 메모리 반도체의 영업이익 기여도가 가장 큽니다. 사실상 DRAM 메모리 반도체에서 번 돈을 반도체 설비투자에 쓰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따라서 삼성전자도 DRAM 사업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어느 한 곳도 DRAM 사업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3곳이지만 이들에게 슈퍼 사이클 진입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메모리 역시 비메모리 파운드리만큼 기술 진입 장벽이 높아 신규 공급사가 새롭게 시장으로 들어와 대규모의 설비 증설을 통해 기존 공급사들을 위협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DRAM 미세 공정에서 14나노미터 이하로 선폭이 좁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p.172~173

SK하이닉스에 관심이 있다면 SK하이닉스의 경쟁사인 마이크론의 실적 발표 자료를 살펴보면 업황과 관련된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관심이 있다면 세계 1, 2위를 다투는 독일의 인피니언이나 네덜란드의 NXP의 실적 발표 자료를 살펴보는 게 좋습니다. 이런 자료는 각 회사 홈페이지에서 IR Material이라고 부르는 투자자 참고자료를 검색해보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 PDF 형식으로 되어 있어 스마트폰에서도 쉽게 열어볼 수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IR Material을 찾고 싶으면 구글 크롬 검색창에서 "nVidia ir material"이라고 입력하면 바로 "Events and Presentations - nVidia Investor Relations"이라는 검색 결과를 맨 상위에서 볼 수 있는데, 여기를 클릭하면 IR Material 관련 자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p.174~175

공시 자료도 잘 만드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파운드리 업종을 공부할 때 국외 기업 중에서는 TSMC, UMC, SMIC의 실적 발표 자료를 참고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중 UMC의 자료가 비교적 자세하게 나오는 편입니다. UMC의 자료가 가장 자세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누군가가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동종 업종의 여러 기업 자료를 비교해서 보면서 결국은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UMC는 매출에 영향을 끼치는 생산 능력과 제품 가격에 대해 비교적 자세한 수치를 공개하는 반면 TSMC의 자료에는 그런 내용이 잘 표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TSMC의 실적 발표자료는 말 그대로 실적을 확인하는 용도로만 활용합니다. 이처럼 개별 기업의 보고서를 이해하고 보고서의 성격과 패턴을 익히는 데에도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즉, 스스로 깨닫는 시간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p.205~206

제가 증권사 리서치센터에 발령받기 전, 신입사원 집합 교육 첫날에 선배에게서 들었던 말이 있는데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말입니다. 아주 간단한 내용입니다. 관심 있는 종목이 있는데 오늘 그 종목의 주가가 소속 지수보다 조금이라도 더 오르거나 더 빠졌다면 "오늘 잠들기 전에 반드시" 주가가 왜 그렇게 움직였는지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설명해 준 당시 회사 선배는 증권 회사에 들어온 이상 매일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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