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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건투를 빈다 - 출근하는 책들

by Diligejy 2023. 9. 17.

이 글은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구직할 때는 어느 회사건 좀 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첫 출근하는 날부터 현실은 그리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돈을 번다는 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인맥을 통해서 들어간 게 아니라면 어떤 사람을 만날지 알 수 없다. 폭언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아니면 천사같은 사람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설령 인맥을 통해서 입사한다 하더라도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제거할 순 없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말한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불확실성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직장은 아름다운 이데아가 아님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자고. 

 

사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라고 그런 현실주의적 사고를 갖고 싶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문제는 실현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만약 쉬웠다면 이 세상에 갈등이랄 것도 없고, 소송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냥 편안하게 읽으면 된다. 

문학을 통해서 이런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구나 정도만 생각할 수 있더라도 반은 성공이 아닐까.

 

건투를 빈다.

 

 

밑줄긋기

p.18~19

곰곰이 생각해보면 '친교'와 '뒤풀이'를 가장한 직장인들의 회식 자리는 그야말로 상하관계가 작동하는, 그렇지만 억지로 과장된 웃음과 익살을 연기해야 하는 연극 무대 같은 공간이다. 장르는 부조리 코미디다. 웃긴 듯 하지만 불가항력의 모순과 서늘한 폭력이 있는 희비극, 모두가 이 극속에서 광대가, 배우가 된다. 그리고 배우들 사이엔 엄연한 계급과 연공서열이 존재한다.

 

p.26

계속 2지망, 2지망 하다 3지망. 그렇게 엇갈리게 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또 살아보니 나쁜 게 아니더라. 오히려 엇갈림 속에 응집되고 축적된 에너지가 삶을 더 개성 있고 다채롭게 해주는 것 같았다. 고유의 지문처럼, 나여야만 생성되는 삐뚤뺴뚤한 총천연색의 오솔길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p.30

거기에는 언제나 내가 없다.
있어도 상관없을 만큼 주위는 나를 감사고 평온하다.
일은 언제나 내가 없을 때 터지고
나는 나 자신이어야 할 때를
그저 헛되이 보내고만 있다.
36년을 거듭하고서도
아직도 나의 시간은 나를 두고 간다.

김시종, 김정례 옮김, [광주시편], 푸른역사, 2014, 31쪽

 

p.31

모든 삶이 낱낱의 비극과 엇갈림, 어긋남을 정초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마찬가지. 맡은 업무도 그렇다. 원했던 1지망의 삶이란 건 존재와 거리가 먼 허상이나 이상향에 가까울 수도 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속하고 싶은 세계로부터 거절과 추방을 당할 수 있다. 세계는 인간들의 투쟁과 결투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내가 속하려는 세계에 진입하는 것은 끝끝내 좌절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끈질기게 분투해 그 세계의 규정에 맞게 나를 조각해 나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마지못해 지금 세계에 자족하고, 슬프지만 낙관해야 하는 순간도 온다. 그땐 그 어긋남을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승복하고, 그 삶 속에서 살아갈 틈새를 찾아야 한다. 주어진 조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세계와 빚은 마찰을 고스란히 삶에 녹여내 나만의 지도를 그려가는 것은 삶터와 일터에서 우리가 필연적으로 겪고 감당해야 할 생애 전제조건 아닐까.

 

p.67

"저는 인간은 다 별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너도 별로고, 나도 별로고 우리 다 별로기 때문에 다른 사람 말에 신경쓸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p.75

누가 한 말로 상흔을 입을 때, 그 말에 내가 휘둘린다고 느낄 때,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골몰할 때, 간혹 나의 기준과 원칙까지 무너진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땐 '니 까짓게 뭔데'라고 응수한다. 또 이렇게 생각해본다. 당신은 별로, 우리 모두 다 별론데 당신 말 따위에 괴로움을 받지 않겠노라고. '우신'의 전사 중 한 명인 망각과 자아 도취가 이 일도 금세 잊게 만들겠노라고.

 

p.106

낯선 일을 돌파해야 할 때, 위험을 감수하고 어떤 무대의 한 가운데 서야 할 때, 높은 직위의 누군가에게 자신감 있게 다가가야 할 때, 그럴 때 '죽음'을 생각했다. 그러면 투지가 샘솟았다.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선천적으로 갖추지 못해) 절박한 덕목이었던 용기가 불끈 솟아났다.

 

용기와 저돌성이 요구되는 일은 대게 뒤따르는 두려워질 상황, 거절로 인해 받을 상처, 망해버리는 장면에 대한 예기불안 탓에 행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기자회견장에서 질문을 했는데 목소리에 '삑사리'가 났다. 버벅거리거나 어눌한 말로 호사가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짤로 돈다. 수치심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일조차 종래에는 잊혀진다. 설령 그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들 언젠간 그들도 다 죽는다.

 

p.135-136

내게 아름다움은 튀어나오고 갈라진 곳 없어 코팅된 것 같은 매끈한 피부, 또렷하고 그윽한 눈, 털은 한 올도 없어 기능적이지 않은 상피세포가 아니다. 갓난 아기처럼 통통한 볼도, 육감적이고 관능적인 몸매 라인도, 얇고 긴 팔 다리도 아니다. 

 

내게 아름다움은 땀, 피, 침, 눈물, 거품 같은 체액이 흥건한 것들이다. 젖은 티를 입고, 숨이 턱까지 차올라 홍당무가 된 얼굴로 헉헉대면서도 꾸준히 달리는 습관, 사람에 상처받아 쓰러져 펑펑 울더라도 이내 회복해 다시 손내미는 따스한 마음, 상대가 한 손을 내밀면 두 손을 내미는 상냥함.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고 연대함. 내가 상처받는 투혼을 발휘해서라도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쓰는 것. 글과 삶을 일치시키려고 애쓰는 것. 불의와 악, 차별과 편견에 맞서 분연하게 싸우는 것. 그러면서도 종종 미소짓고 자주 박장대소하는 것.

 

이런 것들을 지킨다면 어떤 흉터와 주름이 생기든, 몸이 커지든 휘어지든, 머리털과 치아가 다 빠지든 말든,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근사하고 멋지다고. 그렇게 나만의 아름다움을 재정의했다.

 

p.140-142

상사에 대한 나쁜 인식은 '부정성 편향'과도 관계가 깊다. 부하직원을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선 지시와 간섭, 다그침, 지적, 잔소리가 필수적이다. '나의 행위를 구속하는 형식'의 권력이 작동한다. 이건 곧바로 우리 뇌에 부정적인 재료로 인식된다. 그 권력엔 당연히 거친 행동 수정이 포함이 될 것이다. 3번 칭찬하고 1번 혼내면 1번의 혼냄이 더 강하게 인식되기 마련이다.

 

[부정성 편향]에 따르면 부정성은 긍정성보다 더 뚜렷하고 강력하게 뇌를 지배한다고 한다. 나쁜 것이 좋은 것보다 더 강력해서다.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은 변연계의 편도체, 기저핵의 기능이 삐용삐용 경보음을 금세 울려된다. 호ㅊ통을 들을 때 느낀 고통은, 칭찬받아 얻은 기쁨을 압도하기 일쑤다. 모든 상사는 바쁘고 정신 없고 업무가 과중하기 땜누에 칭찬보다는 지적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상사가 내겐 '좋은 사람'보단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으로 느겨지기 쉬운 것이다.

 

설령 좋은 사람을 상사로 만나도 상사가 되면 싫어지는 것은 왜일까. 상사와 나의 관계가 내 '자율성', '능동성'이 억압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다. 그건 조직을 다니는 사람이 근본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큰 무게의 무력감을 만든다.

 

일터에서 우린 행위자일 때보다 감당해야 하는 자가 될 때가 많다. 지시는 대부분 상사가 내린다. 그 때 우리는 하기 싫어도 겪고, 어렵고 힘들어도 해내고, 참아내야 한다. 삶의 활력과 싱그러움을 불러일으키는 적극성이 아닌 수동성을 만드는 요체에 상사와 나의 관계가 있다.

 

p.161-162

윌리는 이상적 직업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의 '낙차' 때문에 자살을 택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낙차가 생겨나지 않게 일터에서 '이상' 따위는 만들지 않고, 비정하고 냉정하게 살아가는 것은 어떠한가. 어차피 힘들고, 어차피 괴로운 곳이 일터라고 인정하고 실제를 차갑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윌리를 해고하는 사장 하워드의 이 대사를 다시 머금어 본다. 조금 더 냉정하게, 허구가 아닌 실제, 환각이 아닌 현실의 삶을 터전으로 삼기 위해서.

하워드 : 하지만 당신을 어디에다 배치하란 말이오?
윌리 : 사장님, 이건 제가 물건을 팔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하워드 : 그건 아니죠. 하지만 이건 비즈니스니까 누가 됐든 자기 능력대로 일을 맡아야 한단 말이지요.
윌리 : 사장님, 잠깐 제 얘기좀 들어보시면
하워드 :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지요. 인정해야 해요

아서 밀러, 강유나 옮김, 세일즈맨의 죽음 94~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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