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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 환영받지 못하는 기자들

by Diligejy 2023. 9. 17.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을 읽은 뒤 어떤 말을 서평의 첫 문장으로 써야 할까 고민했다. 결국 고민했다는 걸 언급하는 것으로 첫 문장을 시작하긴 하지만, 생각해봤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이 책을 쓴 기자들은 열심히 했다. 그리고 방향성도 있었다. 

열심히만 하는 기자가 아니라 방향성도 있는 기자들이었다. 

이 책을 읽고난 뒤 나는 그들의 방향성을 '센 사람들과 붙어보자'로 이해했다.

 

이 책에서 보여준 취재대상을 보면 여/야당 국회의원, 시의원, 도의원, 일본 정부, 전범기업 할 것없이 모두 엄청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까딱 잘못 하다간 어퍼컷을 맞고 쓰러질 리스크가 있는 대상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자들은 열심히 찾고 열심히 '뻗대고' 열심히 분석하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보여주었다. 책을 보고나니 AI가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기자는 쉽게 없어질 직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극히 인간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취재 덕에, 꼼수를 사용해서 사적 이익만 챙기던 사람들은 조금 더 귀찮게 되었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피해를 보상받을 가능성이 조금 더 늘어나게 되었다. 충분히 눈부신 성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이 앞으로 더 뛰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취재 후기 서적을 마음껏 남기고 기록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축적이 되어야만 꼼수를 사용해서 사적 이익만 챙기던 사람들이 귀찮은 정도가 아니라 노심초사할 것이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밑줄긋기

p.66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 이후 항공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박상인 경실련 정책위원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은 "항공사 대주주 자격 요건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당연히 규제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국회에선 "또 다른 이스타항공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항공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항공업 불황 등의 영향으로 논의 자체가 흐지부지됐다.

 

p.110-111

현행법상 본인 자녀 등이 지배 주주로 있는 법인에게 특수관계 법인이 일감을 몰아줘서 본인 자녀 친족 등이 이익을 얻게 되면 '증여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특수관계 법인과 수혜 보는 법인이 모두 중소기업일 경우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대기업에 비해 취약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살리기 위한 일종의 사회적 배려 차원인데, 국회의원인 강 의원이 오히려 이를 이용하고 나선 셈이다. 전문가들도 이를 의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회계사)는 "세법 상의 맹점들을 이용해 이와 같은 증여가 이루어졌다고 의심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강 의원은 회사 대표로 버젓이 이름을 내걸고 있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사기업 대표로 이름을 내걸고 있다는 게 무척 의아했다. 국회의원은 겸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법인등본 등을 살펴보니 강 의원은 경남도의원 두 번을 포함해, 국회의원 재선 기간에도, 계속 회사 공동 대표이사로 돼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이 또한 법적인 허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회법상 회사를 '휴직'하면 겸직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p.133-134

취재팀은 강기윤, 전봉민 의원 외에도 다수의 국회의원 재산 문제를 파헤쳐 보도했다. 그 중심엔 역시 '가족 법인'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고위공직자의 가족 법인 문제는 제대로 감시되지 않고 있따. 현실적인 한계 떄문이다. 

 

2021년 국민권익위원회의 국회의원 부동산거래 전수조사도 마찬가지였다. 국회의원이나 가족 개인이 아닌 법인 명의 부동산 거래는 조사 대상에서 아예 빠졌다. 권익위 측은 "개인정보동의서를 받은 부분만 조사할 것"이라며 "수사권이 없기 떄문에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국회의원이나 가족이 법인 임원 혹은 주주로 참여하면, 발생한 이득을 같이 가져가는 구조기 때문에,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취재팀 역시 취재 과정에서 난항을 겪었다. 공개된 정보 자체가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국회의원 제 식구 감싸기'란 말을 한다. 취재팀이 주요 탐사보도를 할 때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서로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금세 사그라들었다. 거대 양당 모두 '고위공직자 이해충돌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엔 유권자인 국민이 변해야 한다. 언론 역시 고위공직자 검증 보도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게 된다고 했던가. 더 이상 정치인들이 이해충돌이나 편법증여 문제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 아니 매우 엄중하게 바라보는 시대가 오길 기대한다.

 

p.149-150

전문가들은 미쓰비시가 사과와 배상 없이도 한국에서 잘나가니 굳이 사과와 배상할 필요를 못 느꼈을 거라고 지적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본 기업에 '사과하지 않아도 기업의 판매 실적이나 매출엔 영향이 없구나'와 같은 신호를 줬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같은 전범 기업인 독일 기업들의 상황은 다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독일 자동차 기업들은 과거 피해국 격인 이스라엘에서 유독 매출 순위권에 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무척 대조적이다.

 

p.156-158

일본 정부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취재팀은 일본 외무성에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관련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다. 외무성 측은 "한반도와 중국,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법률상 위치가 다르다"면서 "한 일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협정으로 해결했기 때문에 그게 일본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엄연히 개인 청구권에 따른 전범 기업의 배상 책임은 별개 문제인데 "이미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의 권리 회복을 위해 노력해 온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는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청구해야 하느냐에 대해 다를 순 있어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교수는 "한국 하나의 문제가 아니고 아시아 전체에 다시 전후 배상 처리를 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강제동원 피해를 본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배상을 요구하고 나올 가능성 때문에 원천적으로 선을 긋고 있다는 것이다.

 

미쓰비시그룹 도대체 얼마나 큰 그룹일까?

 

미쓰비시그룹은 공개된 정보가 매우 제한적이다. 일본 언론조차 미쓰비시그룹의 정확한 실체는 베일에 감춰져 있다고 평가할 정도다. 그나마 일본 유력 경제 주간지 동양경제가 2020년 미쓰비시그룹을 자세히 분석한 특집기사를 내놓은 적이 있다. 그들은 미쓰비시를 150년 명문 재벌이라고 표현했다. 미쓰비시가 일본 최대 규모 그룹이라면서 연결된 회사가 비상장기업 제외 모두 4,500개이고, 총 매출액은 69.3조 엔, 우리 돈 약 710조 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p.158-159

미쓰비시그룹의 역사는 1800년대 메이지 유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작은 '츠쿠모상사'란 작은 상회로, 이후 선박 회사의 여러 상점을 인수하며 점차 사세를 확장했다. 그리고 1873년에 우리가 알고 있는 미쓰비시상회로 이름을 바꾼 뒤 더 강력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침략 전쟁을 지원할 군수 공장을 세우고 군함, 어뢰, 항공기 등 군수품을 생산하면서 폭발적으로 몸집을 키웠다. 일본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에선 전쟁에 쓰일 80여 척의 군함과 1만 개 이상의 어뢰가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p.170-171

취재팀이 두 번째로 주목한 자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외무성 차관이었던 '마쓰모토 슌이치'를 심문하고 나서 작성된 보고서다. 38쪽 분량의 이 보고서엔 미 정보당국의 심문용 질문과 답변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작성 날짜는 1947년 4월 29일, 마쓰모토 슌이치 차관의 이력도 연도별로 상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당시 심문 담당자는 슌이치 차관에게 전쟁 당시 일본이 자행한 여러 범죄 행위에 대해 자세히 따져 물었다. 이 중 전쟁 포로들을 미쓰비시 조선소에 동원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Q.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에 전쟁 포로 2천여 명을 동원한 것에 대해 스위스 공사관이 항의했다는 것에 대해 알고 있는가? 
A. 그런 일이 많았던 것으로 알지만, 개별 사례는 모른다.

Q. 전쟁 포로를 석탄 생산에 동원한 게 합법이라 생각하는가?
A. 군사적인 목적으로 동원한 것이라면 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미국 정보당국의 일본 외무성 차관 '마쓰모토 슌이치' 심문 내용 중

 

슌이치 차관은 훗날 전쟁 범죄의 책임을 따지는 전범 재판에도 참석했다. 취재팀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공개한 전범재판 동영상 자료들 틈에서 재판받는 슌이치 차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심문 보고서를 통해 당시 일본 정부가 전쟁 포로 동원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조선인 노동자를 강제동원했다는 내용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포로를 전쟁 물자 생산에 동원하는 것에 위법 소지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p.172-173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지난 2017년 출간된 이 책의 저자는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다. 대표적인 혐한 인사로 알려진 무토 전 대사는 지난 2010년에서 2012년까지 우리나라에서 일본 대사를 지냈다. 혐한 인사가 한국과 일본의 외교를 위해 왔다는 건 아이러니였다. 취재팀은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를 직접 사서 읽어봤다. 책에는 "한국인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생각한다" 등의 표현과 함께 한국인을 비하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무토 전 대사는 임기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간 직후인 2013년 미쓰비시중공업 고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낸 배상 소송을 우리 정부가 고의로 지연시킨 이른바 '강제동원 재판개입 사건'에 다시 등장한다. 그는 미쓰비시중공업 고문 자격으로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을 만나 미쓰비시중공업에 유리한 판결을 얻기 위한 로비를 시도했다. 이렇게 미쓰비시중공업은 한국의 정관계 인사들을 잘 알았던 무토 전 대사를 로비의 창구로 활용했다.

 

이것이 미쓰비시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비밀이었다. 무토 전 대사의 사례처럼 미쓰비시는 일본 유력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들을 끊임없이 영입하며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p.174-176

주미 일본대사였던 가토 료조는 대사직에서 물러난 직후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미쓰비시상사 고문과 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대사 시절인 2007년, 미 하원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위안부 결의안'을 추진하려고 하자 이를 노골적으로 막으려 했던 인물이다. 그는 하원의원들에게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되면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거나 "미국의 이라크 정책을 지지해 온 일본의 입장을 재고할 수 있다"는 협박성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 보좌관 출신인 오카모토 유키오. 그는 무려 18년 동안 미쓰비시머티리얼 이사로 재직했다. 지난 2015년 미쓰비시머티리얼은 미국인 피해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과거 일본이 포로를 강제동원한 사실을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한국인 강제동원에 대해선 "법적으로 일본 국민이었기 때문에 국가 총동원법에 따른 것"이란 논리로 선을 그었다. 일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한국이 주장하는 성노예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억지 주장을 펴기도 했다.

 

미쓰비시머티리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동원 피해를 본 다른 나라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여왔다. 일본 나가사키엔 미쓰비시머티리얼이 낸 비용으로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 있다. 군함도에 강제 연행된 중국인 피해자와 유족을 위해 세운 추모비다. 당씨 미쓰비시머티리얼은 '반성과 사죄의 뜻'을 밝힌다고 했다. 그러나 이 추모비에는 조선인에 대한 언급은 없다. 조선인 노동자도 중국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군함도에 끌려와 가혹한 강제노역에 시달렸지만 이들을 향한 미쓰비시머티리얼의 사과나 위로의 말은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없었다.

 

미쓰비시 출신의 또 다른 정치인, 마츠모토 타카시. 그는 일본의 전 내각부 사무차관이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미쓰비시머티리얼 이사로 재직했다. 2019년 마이니치신문 기고문에서 "미쓰비시머티리얼 주주총회에서 어떤 사람이 '제 아버지께서 탄광에서 징용공들과 함께 일했는데, 그들은 탄광에서 일한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말하던데 그런 사실을 한국인들은 모르는 게 아닐지 싶다"는 망언을 했다.

 

이 밖의 인물로는 미쓰비시중공업이 고문으로 영입한 이마이 다카야 전 비서관이 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측근이자, 일본이 한국에 보복성 수출 규제를 할 때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아베 전 총리의 가문은 대대로 유력 정치인을 배출해 왔다. 그의 집안은 오래전부터 미쓰비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아베 전 총리의 형 아베 히로노부는 미쓰비시상사에 입사한 뒤 계열사인 미쓰비시상사 패키징의 대표를 맡았다. 또 그의 아들인 아베 히로토도 2017년 미쓰비시상사에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미쓰비시는 자사 임원들을 정계에 입문시키거나, 기성 정치인을 영입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역사 왜곡을 주도하고, 동시에 일본 내에서도 막강한 '로비력'을 행사해 왔다. 이 때문에 미쓰비시가 강제동원 문제를 꾸준히 외면해 온 일본 정부 입장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은 "궁극적으로 역사 왜곡 프레임으로 일본 기업들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막고 있는 건 일본 정부"라고 설명했다.

 

p.177

2021년 3월, 일본에선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36종이 문부성 심의를 통과했다. 일부는 강제동원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부분도 삭제했다.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교과서에 '다케시마'로 표기했다. 특히 이 중 절반에 해당하는 18종엔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거나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등의 억지 주장도 담겼다. 이 같은 일본의 역사 왜곡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같은 시기, 일본 극우 세력의 모임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의 구성원이 세운 출판사 지유사에서 출간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도 일본 문부성의 검정을 통과했다.

 

p.192-193

일본 미쓰비시와의 소송,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해 오고 있다는 사실은 언론 보도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피해자들은 한국과 일본 양국 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자들에게 강제 노동에 따른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로 소송을 냈다. 일본 1심 법원에선 미쓰비시 측이 우리 노동자들에게 일부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과 3심에서 해당 판결이 뒤집히며 최종적으론 일본 법원의 판결을 통해선 배상금을 받기 어려워졌다.

 

우리 법원은 일본과 다른 판결을 했다. 양금덕 할머니 등이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지난 2018년 대법원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본사가 피해자 1인당 최대 1억 5,0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은 별다른 이유 없이 이 판결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은 배상금을 받기 위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재산권과 상표권에 대한 압류 소송을 추가로 제기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국내에서 갖는 재산권을 매각해 발생하는 금액을 배상금으로 받기 위해서다. 법원은 피해자들의 소송을 받아들여 압류 결정을 내렸지만, 실질적인 배상이 언제 이뤄질 수 있을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국내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이 갖는 재산권과 상표권 자체가 사실상 가치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피해자 대리인단이 재산권과 상표권을 대상으로 경매 등 매각 절차를 밟아 현금화하기 어려운 이유다.

 

p.202-203

제2차 세계대전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소 먼 이야기로 느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군가는 전쟁이 끝난 이후 흘러간 시간을 언급하며 과거는 과거일 뿐 눈앞의 실익을 따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반성 없는 전범 기업과 거래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기업의 잘잘못을 따지면서 이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전쟁 이후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하기까지 굴곡 많은 시간을 보낸 우리 현대사에서 전범 기업과 거래하는 게 맞는지 따져 볼 여유가 없었던 것도 일정 부분 사실일 것이다.

 

이 때문에 LS엠트론을 비롯한 여러 국내 기업이 전쟁 이후 전범국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 일본 기업들과 기술 제휴를 맺었고, 그 대가로 적지 않은 비용을 그들에게 지불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반성이나 진정성 있는 사과도 없이 각종 꼼수를 써가며 경영하는 전범 기업과 거래하는 것에 정말 대안은 없는 것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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