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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법관의 일

by Diligejy 2023. 8. 18.

 

 

p.11~12

법은 사건의 필연을 이해하는 데 대체로 실패하지만, 최소한의 책임을 규명하는 일만은 그럭저럭 해낸다.

 

누군가는 이 모든 일이 부질없는 일이라 말할지 모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비아냥댈지 모른다. 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고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러나 하등의 필연적 이유 없이 그럴 수 있을 법한 일들로 가득찬 이 세계에서 뒤늦게나마 기대어 호소할 수 있는 법이라도 없다면 더없이 적막하고 쓸쓸하지 않을지. 법은 이 세상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온갖 종류의 '그럴 수 있는' 일들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승인하길 거부한다. 이미 벌어진 일의 사실성을 부인할 순 없어도 그 일의 당위성을 문제삼고 끝내 부정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법의 힘이다. 이 뒤늦은 부인과 거부가 무력하긴 해도 간혹 쓸모 있는 이유는, 그 일의 끝에 살아남은 이로서는 '결코 그래선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이 당연한 확증과 확인을 딛고서야 겨우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p.21

판사의 일이란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숱한 사람들을 '법정'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마주하는 가운데, 무수한 주장과 증거의 이면에 놓인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법관은 무언가를 알아내야 함과 동시에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 무언가는 도저히 알 수 없다고 고백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런 책임을 갖는 사람에게 인간 인식의 조건과 한계를 논하는 칸트의 인식론은 한번쯤 진지하게 공부해볼 만한 주제가 된다. 물론 모든 판사가 내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판사라도 사안의 실체가 무엇인지 판단하려면 무엇을 기준으로 진실을 가릴 것인지에 관한 나름의 관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누군가는 성찰을 거친 정제되고 명료한 형태로, 다른 누군가는 어쩌면 편견일지도 모르는 모호하고 암묵적인 형태로 갖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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