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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by Diligejy 2023. 7. 30.

 

p.28

외상을 입은 뇌에 구멍이 점점 커져가는 것이 무척이나 매혹적인 경험이었음을 여기서 밝혀두고자 한다. 한때 중요해 보였던 세상사가 이제는 보잘것없게 여겨졌다. 그 보잘것없는 세상의 일에 나를 얽어매던 재잘거림이 멈추고 침묵이 찾아왔다. 이제 신경의 초점을 내부로 돌린 나는 신체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수십억 개의 똑똑한 세포들이 힘을 합쳐서 열심히 일하며 내는 규칙적인 고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피가 뇌 사이로 흘러들자 내 의식이 서서히 속도를 줄여 거대하고 멋진 세상을 품 안에 끌어안으며 차분하고 만족스러운 상태가 되었다. 내 물리적 존재를 이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작은 세포들이 매 순간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느꼈다. 그 사실 자체에 매료되었을 뿐만 아니라 겸허한 마음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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