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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설득의 심리학

by Diligejy 2023. 10. 22.

 

 

p.23

문명이 진보한다는 것은 인간의 의식적인 노력 없이 자동적으로 수행하는 활동이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p.28-29

유발기제를 조작하면 하등 동물의 행동을 좌지우지하여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행동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고소해하기 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꺠달아야 한다. 

 

첫째, 앞서 예시된 것과 같은 동물들의 자동화된 고정행동유형은 대부분의 경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순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오직 정상적인 새끼 칠면조만이 어미 칠면조의 모성애를 유발하는 '칩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어미 칠면조가 아무런 의심 없이 오직 '칩칩'이라는 유일한 유발기제에만 반응한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과학자라는 존재가 '칩칩'소리를 녹음하여 어미 칠면조를 놀리는 데 사용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두 번째로 우리가 이해해야 할 중요한 점은 우리 인간들도 그러한 종류의 미리 프로그램된 테이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테이프들을 활성화시키는 유발기제는 경우에 따라서 우리로 하여금 전혀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열려라, 참깨'라는 비밀 암호에 의해 육중한 동굴의 문이 자동으로 열리듯이 적절한 유발기제가 작동되면 우리는 정해진 행동을 순서에 따라 자동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동물들의 고정행동유형에 버금가는 사람들의 자동화된 행동은 사회심리학자인 랭거(Langer)와 그녀의 연구팀에 의한 실험 결과에서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Langer, Blank, & Chanowitz, 1978). 잘 알려진 인간 행동의 법칙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호의를 요청할 때는 왜 지금 그것이 필요한가에 대한 이유를 반드시 제시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이유 있는 것'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p.34-36

한 가지 실험을 예로 들어보자(Petty, Cacioppo, & Goldman, 1981). 연구원들은 미주리 주립대학 학생들에게 '졸업 자격을 부여받으려면 종합시험에 통과해야 한다'는 녹음 방송을 들려주었다. 그 시험이 내년부터 시행된다고 했으니, 그것은 곧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학생들이 술렁거리며 그 소식을 신중하게 분석해보려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별다른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 소식이었을 경우, 즉 종합시험은 그들이 졸업한 후에야 실시될 거라고 했을 때 그들은 그 내용의 진위여부를 굳이 고민하려 들지 않았다.

 

이 연구 결과는 매우 분명했다. 개인적으로 관련이 없는 주제에 있어서는 설득 효과가 메시지 전달자의 전문성에 주로 좌우되었다. '전문가가 그렇게 얘기했으면 틀림없겠지'라는 규칙을 이용하여 학생들은 메시지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중요한 주제의 경우에는, 메시지 전달자의 전문성보다는 그 주장의 진실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므로 '자동화된 반응'이라는 부분에서 우리는 스스로 안전망을 형성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면 그 정보의 유발기제가 자동적으로 반응하길 거부한다. 이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나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Leippe & Elkin, 1987).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과 능력이 있을 때에만 통제된 반응이 나타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에는 개인적으로 관련이 돼있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속도와 형태 때문에 신중한 생각을 거쳐 결정하지 못하게 되는 경향이 자주 나타난다(Cohen, 1978; Milgram, 1970). 너무 복잡한 주제이거나 시간이 촉박하거나 정신을 분산시키는 일들이 많거나 감정적인 동요가 너무 크거나 정신적인 피로가 너무 깊어서 조리 있게 생각할 겨를이 없을 때가 그런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중요한 일이든 아니든 지름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항공산업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연방 항공청의 사고 조사관들은 이런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된다. 기장의 오판이라는 것이 너무나 명백한데도 다른 스탭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사고로 이어지는 사건들이 많은 것이다. 기장의 판단이 자신과 승객의 생사를 가를 수 있을 만큼 중요성을 지녔음에도 항공기 스탭들은 '전문가가 그렇다고 말했으면 틀림없을 거야'라는 지름길을 선택한다. 재앙으로 이어지는 조종사의 실책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Harper, Kidera, & Cullen, 1971).

 

그 증거로 IBM의 회장을 지냈던 존 왓슨 주니어의 설명을 들어보자.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고급 장성들이 죽거나 부상당한 비행기 사고를 조사하게 되었다. 그 중 유잘 엔트라는 유명한 공군 장성이 관련된 사건이 있었는데, 그 비행기의 부조종사가 이륙 직전에 배탈이 나는 바람에 전설적인 장군을 모시게 되었다며 영광스러워한 다른 부조종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유잘 엔트는 이륙 과정을 수행하면서 고개를 까닥까닥거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신참 부조종사는 그 고갯짓을 바퀴를 들어올리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아직 비행기가 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가 아니었는데도 그는 랜딩기어를 잡아당겼고 그 즉시 비행기는 폭삭 주저앉았다. 그 와중에 프로펠러 날이 엔트의 등을 찔러 그는 전신마비 환자가 되고 말았다. 왓슨(1990)은 그 부조종사와 나눈 대화를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부조종사의 증언을 듣고 나서 내가 물었다. "비행기가 아직 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텐데, 왜 기어를 올렸습니까?"

그는 대답했다. "장군께서 그렇게 명령하신 걸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어리석다고? 그 상황에서만 본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부조종사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지름길이 요구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물론 얼마든지 이해가 되는 일이다.

 

 

p.38

유감스럽게도 동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사람들 중에도 자동적인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유발기제를 이용하여 불로소득을 취하는 자들이 존재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이렇나 자동화된 행동이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인간의 세계에서는 이들이 후천적으로 학습된 심리적인 법칙이나 고정관념에 의해 생성된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하는 몇몇 중요한 법칙들은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아주 어려서부터 그러한 법칙들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심지어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고 또 그것을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너무나 쉽게 승낙을 얻어낸다. 그들의 성공 비결은 경우에 따라서는 앞서의 '왜냐하면'과 같이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는 매우 신중하게 선택된 단 하나의 단어일 수도 있고 혹은 여러 법칙들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자동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 그러한 법칙들이 불로소득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들은 끊임없이 그것들을 이용하려 들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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