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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는 오늘도 하드보일드를 읽는다

by Diligejy 2017. 7. 10.

p.51

운명이 있다고 믿는다. 타고난 운이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운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결정된 영화 같은 것은 아닐 게다. 겨울이 와도, 여름이 와도 저마다 모양은 다르다. 누군가는 혹독한 겨울에도 굳건하게 살아남는다. 누군가는 몸서리치다가 얼어 죽기도 한다. 똑같은 시련이 주어져도, 많은 경험을 통해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고 힘을 기른 후에 맞이하는 시련은 다르다. 그러니까 시련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자신이 어떻게 나아갈지를 선택하는 것.


p.61

히라타도 마스미도 자신의 운명에 맞서기 위한 모험을 감행한다. 그것이 끔찍한 진실이건, 화사한 거짓이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들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후회가 있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단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선택과 태도가 더욱 중요한 것.


p.97

과연 정상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약간의 강박과 공포와 질투 같은 것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두려움 없이, 공포 없이 어떻게 한 인간이 성장할 수 있는가. 누구나 마음에 칼 하나씩은 품고 있다. 그것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뛰쳐나오기도 하고, 편향된 마음을 계속 키우면 괴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나만 정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비정상'이 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우리가 함께 미쳐가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가 되지는 않는지 늘 헤아려봐야 하는 이유다. 그것만이 우리를 인간으로 머물게 하는, 괴물이 되지 않는 길이다.


p.191

태어났으니까 살아야 한다. '왜'라는 질문을 할 수는 있지만 답을 한다 해도 그건 그저 추측과 느낌과 논리적 판단에 의거한 하나의 주장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유는 있을 것이다. 있다고 믿어야만 이 세계가, 하나의 인생이 존재할 수 있다. 그건 외부에서 부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면서 찾아야 할, 마지막까지 정답을 찾을 수 없을지라도 끈질기게 추구해야만 하는 질문이다. 하나의 사건, 하나의 상황에 쉽게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면서 하나씩 쌓아두는 것, 그렇게 가다보면 언젠가 희미하게 무언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보이지 않아도 좋다.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결국은 답이니까. 그것 자체가 흥미진진한 드라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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