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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유혹의 학교(3)

by Diligejy 2017. 7. 26.

p.91~92

사람도 세상도 변화하는 것이 이치이다. 그리고 함께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 나뿐 아니라 세계의 변화를 끌어안고 참여한다고 느낄 때 인간은 가장 자연스러운 존재가 된다. 세계의 고통을 나의 불행으로만 이해하고 혼자 침잠하고 있을 때 나는 허우적거린다. 내게는 광장에서 그의 손을 마주잡은 이른 봄날이, 그가 사준 호떡을 베어 문 순간으로부터 소급된,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순간이기도 했다.


부디 광장으로 나아가는 유혹과 연애를 하길 바란다. 함께 세계를 열고 변혁하고 모두가 성장하는, 그래서 유혹의 비용이 화폐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으로 다가가는.


p.99

만나자고 말하기까지 몇 달이 걸렸잖아. 오기 전까지 정말 망설였고 또 두려웠어. 나는 아주 내성적인 사람이야.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에도 직전까지 혼자 얼마나 많은 리허설을 하는지 몰라. 너를 데리러 갈 때까지 수없이 다짐했어. 너는 내 여자친구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이미 몇 달은 만난 사람처럼 여유롭게 대하자고.


p.99~100

유혹은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있을 때 더 강력하게 다가온다. 조금 더 느리고 답답할지라도 신중함이 배려를 입을 때 마음은 더 쉽게 열린다. 물론 적절한 감각의 자극은 필요하다. 청각으로, 시각으로, 후각과 미각으로 그리고 촉각으로 이어지는 자극은 몸을 열리게 한다. 한 방의 도발이 있다면 더욱 좋다. 조금 간지러운 설명도 부록으로 넣어주길. 여자는 부록을 좋아한다.


p.112

자동판매기에서 또르르 굴러 나오는 음료수처럼 애인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음료수도 재료 수집에서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하물며 미래의 애인이 내 앞에 오기까지 거쳐야 할 공정이 얼마나 복잡 대단하겠는가.


p.123

이혼에 합의하고 별거에 들어간 이후에도 접촉사고처럼 사람을 만났다. 이성의 경우, 호감을 느끼고 가볍게 만남을 시도하는 정도에만 머물렀다. 결과가 연애로 이어지지 않아도 좋았다. 연애로 돌입할 망음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관계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부딪쳐 배우는 시기였다. 이제는 이성을 향한 환상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관계의 실패 이후 찾아오는 환멸 때문이 아니다. 단단한 중심이자 안정감의 원천을 나로부터 찾아서이다. 쉽게 빠질 수 없음은 무기력도 아니고 지나친 방어벽 탓도 아니다. 


p.125~126

일상도, 삶도, 끊임없이 갱신하지 않고는 지탱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섬세하게 직조된 정직과 존중, 소통이 중요하다. 유효기간을 갱신하듯 혹은 새로이 만들어내듯, 성찰과 실천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혼 후에 깨달은 것들이다. 이제야 알았냐고 자책하지 않는다. 이제라도 알아서 참 다행이라고 스스로 다독이는 중이다. 나는 새로운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니 더욱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를 돌보듯 나를 아끼고 살피려 한다.


p.135

호기심과 구체적 욕망의 간극은 어마어마하다. 욕망을 느끼는 것과 행동을 옮기는 데에도 엄청난 거리가 있다. 자신을 보듯 들여다볼 수 없는 미지의 존재는 신비와 위험 사이를 오가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매혹과 안전 사이 어딘가에 있을 관계의 적정지대를 찾기 위해 도발은 필요하다. 네가 도발했으니 나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그래서 무책임하다. 도발은 항복이 아니라 당장 맞서는 것이다. 유혹은 도발의 수위를 단계에 맞게 조절하는 협상 테이블과 같다. 


p.155~156

금지되었기에 다시 벌어져야 했다. 모든 금지된 것에는 아찔한 매혹이 따르므로, 비로소 그를 떠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떠나지 않는 묵직한 통증을 간직하고 복기했다. 수많은 밤과 낮을 채운 것은 행위의 기억들이었다. 사랑은 이토록 구체적인 것들, 감각들, 탄식들, 접촉들, 고통들 그리고 환희들, 그러나 막상 돌아가려 하면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자리들.


p.158

누군가의 몸을 알아가는 과정은 단순히 성기의 조합만으로 끝나지는 않으니까. 몸이 닿고 부딪치고 열리고 전율하고 확장되는 과정은 몸을 넘어선 파장을 갖고 있다. 절정의 순간을 함께 나누는 일은 함께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과 비슷해서 뒤돌아 선 순간 희미한 전우애를 남긴다. 그리고 그 균열을 타고 세상이, 일상이, 구체적 삶이 들어서는 찰나, 관계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낭만적 사랑과 자본의 이념이 만나는 자리에서, 육체의 자유를 강조하나 마음은 오히려 갈 곳을 잃은 현 사회에서, 섹스는 불안하다. 다시 만날 것인가, 안정적 관계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깔끔하게 돌아서야 할 것인가, 섹스의 끝은 지극한 불안을 내포한다.


p.159

위험은 삭제되고 쾌락에의 약속만이 소비를 부추기는 세상이란 얼마나 포르노그래피적인가.


p.161~162

날씨의 취향이 성적 몽상과 연결되어 있다 보니 한여름을 떠올리면 남자의 취향을 되돌아보게 된다. 성숙한 몸과 마음을 지닌 남자다. 가능하다면, 성정은 건조함을 유지하되 감각의 과잉을 누릴 줄 아는 남자와 여름을 보내고 싶다. 자의식의 과잉은 자주 사람의 눈을 흐려 자신과 상대방을 보지 못하게 한다. 반면 감각의 과잉은 관계 속 둘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그 안에서 함께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어디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가를 실험해보는 기회가 된다. 다만 감각의 과잉에 이르기 위해서는 건조하리만큼 명징하게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절제 없이는 과잉에 이를 수 없다. 절박함에 압도되는 순간, 침실은 주어진 답을 내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시험장이 되고 만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상실과 도달해야 할 목표에 휩쓸리는 순간, 행위는 지루한 서사의 답답한 틀 안에 갇히고 만다. 잠자리는 숱한 실망과 욕구의 어긋남이 오가는 자리이다. 자잘한 실망을 딛고서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배려와 소통, 용기와 도발에 있다. 지적인 성찰 능력 없이 배려와 소통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확한 판단과 순발력 없이 용기와 도발은 힘을 잃는다.


p.164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벼이 터지는 감각 혹은 쥐었던 것을 잃은 뒤 더욱 간명해진 나를 발견하는 기쁨에도 있다. 때때로 실연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황홀한 자기긍정의 계기가 된다. 세상 전부와도 같았던 관계가 마감되어도 마침내 살아남고 더 성숙해진 나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 세 남자는 한 남자가 되기도 하고 혹은 무수히 부서지고 분열을 거듭하다 사라지기도 한다. 어쨋든 나는 그 남자들의 존재와 부재를 거치되 그 누구의 여자도 되지 않는다. 나는 이미 나로서 모자람이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일 때 남성/여성을 바라보는 취향은 즐거워진다. 올바른 상대를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구원해주리라는 오래된 서사에의 믿음을 버리고서 말이다.


p.186

유혹은 독립된 개체로서 상대의 영역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 행위다. 당신과 함께 나 역시 존중받아 마땅함을 알고서 벌이는 놀이다. 명징한 경계를 의식하고 벌어지는 상호작용이다. '유혹'이 즐거운 이유는 다른 인간에게로 다가가는 다양한 루트를 탐험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무작정 침입하여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행위를 인간의 본능인 양 눈감아주는 것은 오히려 그릇된 사회적 가치해석을 강화시키는 일이다.


p.187

욕망 역시 단련된다. 욕망하고 유혹하고 비로소 가까워지는 희열을 배우면서 나의 욕망 또한 구체적이고 정확해진다. 소통과 배려의 여정 속에서 두 사람 사이에 명확했던 경계가 유혹의 서사에 의해 새로운 영토로 재편되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온다. 경계는 있되 움직이는 것임을, 때로는 겹치고 넘나드는 것임을, 유혹의 지도는 끊임없이 다시 읽히고 쓰이고 있음을. 지도를 다시 쓰기 위해 우리는 오래전부터 정확하게 유혹받고 싶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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