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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유혹의 학교 (5)

by Diligejy 2017. 7. 27.

p.256~257

때로는 명징하게 찾아오는 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마지막도 있다. 사랑이 저물었다는 사실이 돌연 찾아오는 깨달음처럼 혹은 패전의 선포처럼 찾아올 때가 있다. 당장의 인연이 마감되었다고 하여 상대방을 미워할 이유는 없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제대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사랑했던 시간을 너무 사랑해서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함께 사랑했던 시간 속 우리가 존재하기를 멈췄을 따름이다. 살아남지 못한 대신 새로운 우리가 탄생했을 뿐이다. 새로운 탄생을 당장은 축복하기 힘들겠지만, 존재의 죽음을 애도하되 미워할 이유는 없다. 왜냐면 소멸된 존재에는 내가 그를 사랑했던 모든 이유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새로이 생성된 존재를 미워할 이유가 없는 것은 그는 이미 나를 사랑했던 예전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랑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사람이 나와 아무런 인연을 맺지 않은 사람보다 소중하다. 그것이 내가 내 삶을 아끼고 긍정하는 태도이다.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때로 우리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랑을 재생성하고 관계를 갱신하는 데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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