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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숨은 신을 찾아서

by Diligejy 2017. 11. 29.

p.표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닿아오지 않는 순간을

우리는 소멸이라 부른다.


소멸이라 부르는 것은 경건함이다.


p.8~9

신앙은 무엇인가. 신앙은 기도로써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조건적으로 신에게 헌신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신앙은 인간의 앎을 넘어서 있다. 앎을 넘어서 있다. 인간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신앙은 무엇인가- 이 물음은 물음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인간이 묻고 인간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신앙인이 되려고 몸부림치다가, 죽기 직전까지 참다운 신앙인이 되었는지 의심하다가, 간신히 신앙의 끝에 와본 듯하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p.10

종교가 환상이라면, 그것에 매달린 인간 자체도 헛된 것이다. 이를테면 기독교의 신을 탐색하는 것은 그것을 탐색하고 있는 인간에 대해 탐색하는 것이다. 인간은 신을 보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신을 찾는다. 그러나 신은 보이지 않는다. 숨어 있다. 비교 검증할 데이터가 없으니 신을 만났다는 것을 확인할 도리가 없다.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인간 자체를 탐색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신에 대한 논의를 수없이 해왔다. 그것부터 알고 싶어 한다. 자신에 대해서보다는 신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p.19~20

'아테나이의 신'은 궁극적으로 법칙이다. 인간의 삶에 관철되어 있으나 인간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받아들일지 말지는 인간이 자세히 알아보고 결정한다. 아테나이 사람들은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따져묻지 않는다. 물론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인지를 따지기는 한다.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이, 나의 실존이, 너의 삶 자체가 정말로 제대로 된 것인지는 그리 관심을 갖지 않는다. 개인의 실존에 관한 한 가치판단을 보류한다. '너의 영혼을 돌보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예외적 인간을 하나 알고 있다. 그 예외적 인간은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는 멀쩡하게,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려서 살고 있던 아테나이 시민들에게 호통을 치고 다녔다. '너의 영혼을 돌보라!' 그의 호통이다.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대다수의 사람들이 언짢아하였다. 아테나이 사람들은 사물이 이치에 따라 잘 작동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물의 기능(ergon)이었다. 그들은 기능주의자였다. 더러 그들은 인간의 오만함(hybris)을 질타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것 역시 기능이라는 범주에서 움직인 것이었다. 인간은 필멸의 존재이다. 인간의 기능은 필멸이다. 필멸의 인간이 불멸을 원하면 인간의 기능을 벗어난 것이다. 인간의 권역을 넘어서려는 것이다. 인간의 명命(moira)을 벗어나려는 것이다. 이것이 오만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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