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1

92 - 황지우 92 황지우 聖母와 聖子와 목수, 하루 연탄 두 장과 쌀 여섯 홉을 배급받는 이 聖家族 , 이 核家族을 보호하고 있는 서울의 순 진짜 참 복음교회. 아들아 다시 사막으로 가자. 샛강 너머로 가자. 모래내, 沙川을 너머 구로동으로 가자. 최소한, 잉여인간은 되지 말자. 2016. 2. 1.
서해 - 이성복 서해 이성복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2016. 2. 1.
스며드는것 - 안 도 현 스며드는 것 안 도 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2015. 11. 10.
바이마르 헌법 제 2 조 바이마르 헌법 제 2 조 브레히트 1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나와서 어디로 가지? 그래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아무튼 어딘가로 가기는 가겠지? 경찰이 건물에서 줄줄이 나온다. ―그런데 나와서 어디로 가지? 그래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아무튼 어딘가로 가기는 가겠지! 2 보라 거대한 무리가 행진하고 있다 ―그런데 어디로 행진하지? 그래 어디로 행진하는 거지? 아마 어딘가로 행진하기는 하겠지! 지금 국회 주위를 돌고 있다 ―그런데 돌아서 어디로? 그래 돌아서 어디로? 아마 돌아서 어딘가로는 3 갑자기 국가의 권력이 멈춘다 뭔가 나란히 서 있다 ―무엇이지 그곳에 나란히 서 있는 것이? 글쎄 뭔가 나란히 서 있기는 서 있다 그러자 갑자기 국가의 권력이 고함친다 고함친다 즉각해산이다! .. 2015. 10. 30.
율리시스 - 알프레드 테니슨 알프레드 테니슨 하릴없는 왕으로서 이 적막한 화롯가, 불모의 바위 틈서리 늙은 아내와 짝하여 먹고 자고 욕심만 부리는 야만 족속에게 어울리지 않는 법이나 배푼다는 것, 쓸모없는 짓이다 나는 죽어도 모험을 그만둘 수는 없도다 내 삶의 마지막 찌꺼기라도 다 마셔 버리겠도다 나는 즐거움도, 고통도 마음껏 즐겨 본 사람 때로는 나를 따르는 부하들과 함께, 때로는 혼자서 해변에서 폭풍우가 몰아쳐 캄캄한 바다를 성나게 만들었을 때 자연히 내 이름은 사해四海에 떨치게 되었도다 채워질 줄 모르는 호기심으로 세상을 떠돌다 보니 보기도 많이 보았고, 배우기도 많이 배웠도다 신기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들, 이상한 풍속, 기후, 정치제도 어디에서나 항상 귀빈으로 대접받았도다. 바람 휘몰아치는 트로이 평원에서도 나는 동료들과 함.. 2015. 10. 17.
시를 잊은 그대에게(4)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저자 정재찬 지음 출판사 휴머니스트 | 2015-06-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눈물이 고일 정도로 감동받고, 소름 끼칠 정도로 감탄했다!”그... p.153 모든 기다림은 결국 시간과 변화의 문제다. 여우의 말이 기억나는가? 기다림이란 오늘 하루를 다른 날과 다르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 어제와 늘 같이 오늘을 살면서 내일이 변화되길 기다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이미 지나간 버스를 기다리는 것일 테다. 안타까워도 그것이 진실인데, 무서운 것은 과연 그 버스가 지나갔는지 여부를 알 길이 없다는 데 있다. 기다림에 녹이 슨 채, 그러다 우리는 죽을 테고, 그런 생각을 할 때면 가끔 인생은 두렵다. p.157~159 4.19가 나던 해.. 2015.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