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1

시를 잊은 그대에게(3)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저자 정재찬 지음 출판사 휴머니스트 | 2015-06-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눈물이 고일 정도로 감동받고, 소름 끼칠 정도로 감탄했다!”그... p.87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2015. 9. 4.
시를 잊은 그대에게(2)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저자 정재찬 지음 출판사 휴머니스트 | 2015-06-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눈물이 고일 정도로 감동받고, 소름 끼칠 정도로 감탄했다!”그... p.64~66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합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散華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 2015. 9. 4.
시를 잊은 그대에게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저자 정재찬 지음 출판사 휴머니스트 | 2015-06-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눈물이 고일 정도로 감동받고, 소름 끼칠 정도로 감탄했다!”그... p.17~18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p.20 인간 존재의 모순과 그에 따른 불안, 자신이 인간이라는 이유로 흔들리는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 인간은 더욱 성숙해질 수 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 2015. 9. 4.
단계 헤르만 헤세 단계 모든 꽃이 시들 듯이 청춘이 나이에 굴하듯이 일생의 모든 시기와 지혜와 덕망도 그때그때에 꽃이 피는 것이며 영원히 계속 될 수는 없다. 생의 외침을 들을 때마다 마음은 용감히 서러워하지 않고 새로이 다른 속박으로 들어가듯이 이별과 재출발의 각오를 해야 한다. 대개 무슨 일이나 처음에는 이상한 힘이 깃들어 있다. 그것이 우리를 지키며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을 명랑하게 하나씩 거닐어야 한다. 어디서나 고향에 대해서와 같은 집착을 느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정신은 우리를 구속하려 하지 않고 우리를 한 단계씩 높여주며 넓혀주려고 한다. 우리 생활권에 뿌리를 박고 정답게 들어 살면 탄력을 잃기가 쉽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습관의 마비작용에서 벗어나리라. 죽을 때 아마 .. 2015. 6. 12.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2015. 6. 12.
詩論, 입맞춤 여자는 키스할 때마다 그것이 이 生의 마지막 입맞춤인 듯 눈을 꼭 감고, 애인의 입 속으로 죽음처럼 미끄러져 들어간다는데 남자는 군데군데 눈을 떠 속눈썹의 떨림이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이며 풍경의 변화와 춤추는 체온의 곡선까지 꼼꼼히 체크한다고 하니 누가 시인일까 독자는 여자 편에 설 것이고 시인은 당연히 남자 편에 설 것이다 몰입의 바닥에는 시가 없다 불타는 장작을 뒤집어 불길의 이면을 읽어야 하는 남자여 불쌍한 시인이여 키스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은 시인이거든 그대 당장 독자의 자리로 옮겨 앉아야 하리 그러나 시인의 발바닥은 완전 연소의 재 한 줌도 함부로 밟지 않는다 [詩論, 입맞춤] 이화은 2015.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