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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by Diligejy 2018. 12. 22.

p.16~17

소설이라는 장르는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프로레슬링 같은 것입니다. 로프는 틈새가 넓고 편리한 발판도 준비되었습니다. 링도 상당히 널찍합니다. 참여를 저지하고자 대기하는 경비원도 없고 심판도 그리 빡빡하게 굴지 않습니다. 현역 레슬링 선수도 - 즉 이 경우는 소설가에 해당하는데- 그런 쪽으로는 애초에 어느 정도 포기해버린 상태라서 '좋아요, 누구라도 다 올라오십쇼''라는 기풍이 있습니다. 개방적이라고 할까, 손쉽다고 할까, 융통성이 있다고 할까, 한마디로 상당히 '대충대충'입니다. 


하지만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거기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습니다. 소설가는 물론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소설 한두 편을 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보통 사람은 일단 못할 짓, 이라고 말해버려도 무방할지 모릅니다. 거기에는 뭐랄까, '어떤 특별한 것'이 점점 필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 나름의 재능은 물론 필요하고 그만그만한 기개도 필요합니다. 또한 인생의 다른 다양한 일들과 마찬가지로 운이나 인연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어떤 종류의 '자격'같은 것이 요구됩니다. 이건 갖춰진 사람에게는 갖춰져 있고, 갖춰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런 것이 갖춰진 사람도 있는가 하면 후천적으로 고생고생 해가며 습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자격'에 대해서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정식으로 거론되는 일도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건 대체로 시각화도 언어화도 안 되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찌 됐건 소설가로 계속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냉엄한 일인지, 소설가는 뼈저리게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소설가는 다른 전문 영역의 사람이 르포를 넘어 소설가로 등단하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포용적이고 대범한 게 아닐까요. '자, 올 테면 얼마든지 오시죠'라는 태도를 많은 작가들은 취하고 있습니다. 혹은 누군가 새로 들어와도 그리 신경 쓰지 않습니다. 만일 새로 들어온 사람이 얼마 안 돼 링에서 밀려난다면, 혹은 스스로 내려간다면(그 두 가지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 가엾게도"라든가 "그럼 안녕히"라고 할 것이고, 만일 그/그녀가 노력해서 끝까지 링에 남는다면 그건 물론 경의를 표할 만한 일입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공정하고 정당하게 경의를 표할 것입니다(라고 할까, 그러기를 바랍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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